멈춘 달, 모두의 바람 (1)

다른 선관들은 제 일상으로 돌아갔다. 도월의 일은 안타깝게 됐지만, 남은 자기들은 살아야겠지 않냐는 말을 했다. 이 말도 맞는 말이지만 도월과 가까이 지냈던 넷은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리 말하는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소윤은 옥황을 찾아가 입구로 배정을 해달라고 구두로 요청을 했다. 자리도 비어있고, 가겠다는 이들이 없으니 자신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지.
“자기, 적응하기 힘들면 얘기해요.”
“고마워요, 자기.”
“더 필요한 거는 없어요?”
“거기에 다 있어서 괜찮아요.”
옥황은 소윤의 요청을 바로 승인해 줬고, 소윤은 승인을 받자마자 입구로 갈 채비를 했다. 1년 잠깐 있었다고 낯선 것 없이 익숙했다.
“자기도 오늘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요. 이제 가려고요. 다녀올게요.”
“네~”
— — — — — —
”그렇게 해서 도월 님이 소멸됐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억울함이나 낙망함은 없으십니까?”
생각보다 큰 반응이 없는 그에 방울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랑이 이렇게 침착함을 유지하는 이유가 있었다.
–”도월은 죽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월성초와 월성목은 도월이 죽으면 같이 죽는다. 내가 잠시 생명력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아랑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여전히 생명이 가득한 월성초와 월성목이 보였다. 작은 희망이 생겼다.
“그럼 도월 님을 살릴 수 있다는 겁니까?”
–”절대신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는 게 문제지.”
작은 희망을 보긴 했지만 너무나 작은 탓에 방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무기도 이 이상은 확신할 수 없었다. 절대신이 개입을 하면 도월을 나락에서 끌어올릴 수 있지만, 도월이 다시 살아갈 의지가 없다면 의미가 없어진다.
— — — — — —
해선은 도월의 빈자를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아랑구를 자주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영원과 마주치는 날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전과는 사뭇 다르게 해선과 거리가 느껴져 영원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리고 도월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영원 님 잘못이 아니란 걸 알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보기엔 어려울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제가 더 일찍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아니에요. 영원 님 잘못은 아니잖아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지금 해선은 영원과 마주하는 것이 불편했다. 도월이 그렇게 사라진 이후로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문강도 후회와 눈물로 지새우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월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신에게 간절히 비는 것 밖에 없었다.
— — — — — —
진운과 영원은 태영의 상황이 위중하여 그날 이후의 상황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무리 실망스럽고, 미워도 태영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태영이 일어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를 피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지.
“아직 안 일어났어?”
“응. 비도가 워낙 깊게 박혔고, 피도 많이 흘려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어서 일어나라 이놈아. 이러다 네 죄를 묻기도 전에 도월 님이 죽게 생겼다.’
진운과 영원은 염라가 어떤 일을 벌이는지도 모른 채 태영이 빠른 시일 내에 의식을 찾길 기다렸다.
“태영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요?”
“응.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하더라고.”
“하... 도월 님한테 죄송해서 어떡하죠.. 선배라면 어떨 것 같아요?”
“공적인 부분에서는 이성적으로 나올 것 같긴 한데.. 너무 어렵다...”
이들이 걱정을 하는 동안, 도월은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 걱정이 무색하게 사과도 못하고 끝이 나버렸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는 잠시 바람 쐬고 올게요.”
“오냐-”
영원이 불편한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기 위해 아랑구로 갔다. 그곳에서 해선을 만났고,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쾅!
“아, 깜짝이야.”
진운은 화가 난 것을 잔뜩 티 내며 들어오는 영원을 보며 놀랐다. 거기 가서 혹시 선관과 무슨 일이 있는가 했지.
“무슨 일 있었어?”
“저, 태영이 그놈 죽일렵니다.”
“아, 아니 갑자기 왜 그래. 응?”
영원은 해선에게 들은 내용을 그대로 다시 얘기했다. 진운은 탁자를 내리치며 자신들이 얼마나 바보같이 있었는지 실감했지.
“그래도 죽이는 건 아니다.”
“그럼 어떡해요?”
“그 감정이 선관 님을 위한 거야? 도월 님을 위한 거야? 아니면 그저 네 분을 삭히기 위한 거야?”
진운은 잔뜩 성이 난 그를 말로 진정시켰다. 지금 저 모습은 도월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영원도 앉아서 분을 삭이며 차분히 생각을 하니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당장 이성을 잃고 감정에 휘둘리는 본인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분이 쉬이 풀리지 않았다.
“진짜 방법이 없을까요? 저희는 이대로 또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누가 그냥 넘어간데?”
진운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열린 재판에서 태영과 염라가 시선을 주고받는 것을 봤다. 그것을 보고 둘이 아무도 모르게 무언가 거래를 한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염라님이랑 태영이 사이에 금이 가게 만들어야지.”
“혹시.. 아니죠?”
“그놈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 것 없지.”
태영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 손을 쓰기로 했다. 영원은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진운이 어느 상황에서나 이성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지만, 일어나지 않을 만약에 대해 걱정을 하며 뒤를 따랐다.
모두가 일과를 끝내고 자리를 비워도 약방의 주인인 이원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이고. 왜들 그리 험한 얼굴로 오셨나. 응?”
진운이 이원에게도 상황을 설명했다. 영원은 저렇게 모든 것을 다 말해도 괜찮나 했지만, 진운은 이 저승에서 억울하게 나락으로 떨어진 도월의 일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했다.
“그럼 나는 못 본 척 하지.”
이원은 약방의 창문을 닫고, 가름 막으로 저들을 가렸다.
진운은 이원의 그림자 아래에서 부적들을 꺼냈다. 정신을 지배할 수 있는 부적은 상자에 넣어 서랍 구석에 넣어 감춰두고 있었다. 꺼내는 상황이 올까 했었는데, 지금 그 상황이 찾아왔다.
“진법 펼쳐.”
그의 말에 영원은 자리를 잡고 경을 외우니 검은 진법을 펼쳤다. 진운은 태영의 머리에 부적을 감싸듯 두르고 술법을 외웠다.
“됐다.”
짧은 한 마디에 영원은 진법을 거두고,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이원, 어질러진 거 정리는 다 했어.”
“그거는 내가 해도 되는데. 고맙다.”
“내가 더. 일어나면 잠깐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어. 그때는 나한테 물어보라고 해.”
“얼마나 건든 거야?”
“많이 건든 건 아니고, 가볍게 불신을 심어놨지.”
진운은 태영이 했던 모든 짓을 염라의 부당한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움직였던 것으로 기억을 조작했다.
“그런데 도월 님에 대한 기억은 그대로 둔 거예요?”
“죄책감 좀 느끼라고. 지 때문에 한 명이 억울하게 죽었으니, 이 녀석도 죄책감은 느껴야지.”
진운은 도월에 대한 기억은 일부러 지우지 않았다. 좋다고 쫓아다닌 여인이 자신의 어리석은 짓으로 죽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라고 그대로 뒀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태영이 의식을 찾았다.
“드디어 일어나셨네요.”
“저 얼마나 누워 있었어요?”
“한 달이요.”
“아... 그런데...”
“어디 불편한 거 있으세요?”
“그건 아니고, 기억이 좀 섞인 것 같아서요.”
“진운 님한테 물으면 어느 정도 기억 맞추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지난 일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어서 그런 것인지 태영은 평소보다 차분하고 얌전했다. 이원은 자연스럽게 태영을 진운에게 넘겼고, 진운은 집무실로 가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영원아, 잠깐 집에 좀 다녀올게.”
진운은 식탁에서 태영과 마주 앉았다.
“기억나는 대로 얘기해 봐. 순서는 내가 맞춰줄게.”
태영은 순서 없이 떠오르는 대로 말을 늘여놨다. 태영은 빼고 다 아는 얘기.
진운은 그의 말이 끝나자 전쟁이 일어난 상황부터, 태영이 단독으로 도월을 습격한 것, 그래서 도월이 어떻게 되었는지 빼지 않고 얘기해 줬다.
“염라님의 부당한 명으로 인해 네가 움직였지.”
“다 염라님 때문에...”
“애초에 네가 도월 님을 마음에 품지 않았더라면, 품었더라도 남들 모르게 했으면 염라님이 너를 이용하지 않았겠지.”
“그럼 다 저 때문이라는 거예요?”
“아니라고는 못하지.”
태영은 마른 세수를 하곤 죄책감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태영과 염라의 사이에 불신을 만들 약간의 거짓이 들어간 것 외에 달리 말한 것은 없었다.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일주일은 쉬고 복귀해. 약방 가는 거 빼먹지 말고.”
진운이 집무실로 돌아가고, 집에 홀로 남은 태영. 그에게 설명을 들었음에도 혼란스러운 머리는 쉽사리 정리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믿을 수 없는 것은 도월이 저승에 없다는 것과 염라가 자신에게 부당한 명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운 님이 나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
“하...”
태영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감정이 널뛰기를 하듯 오락가락하는 것을 도영에게 그대로 드러낸 것이 후회됐다. 그것으로 도월을 불편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상처를 준 것에 죄책감이 느껴졌다. 진운이 원한대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처음부터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고.
‘아니야.. 결과로 보면 내 잘못이 맞아...’
지금 이 순간에도 널뛰기를 하듯 생각과 감정은 시시각각 바뀌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절대신에게 빌었다.
‘이 저승에도 기적이란 것이 있다면..’
“제발 달님을 돌려주세요..”
— — — — — —
도월이 저승에서 사라진 지 1년이 지났다. 다들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일상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소윤 님, 해선이 왔어요~”
해선은 홀로 입구에 있는 소윤이 적적하진 않을까 하여 일과를 끝내면 종종 오고 있다. 둘은 전보다 더 가까워진 듯했다.
“문강! 오늘 저녁에 같이 한 잔 어때?”
“좋습니다!”
문강이 도월을 좋아한다는 것을 일찍이 눈치챈 선관들은 그가 도월의 빈자를 크게 느끼지 않도록 자주 함께 했다.
“방울 님~ 계세요?”
모두가 챙겨줘도 헛헛한 마음이 들 때에는 방울과 함께 있었다. 방울도 그가 오면 반가웠다.
이들은 서로의 옆자리를 채워주며 그날의 아픔을 달래줬다. 선관들은 상심이 클 이들에게 굳이 털고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고, 무뎌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이렇게 기다려주는 선관이 있는 반면, 대놓고 질타를 하는 이들이 있었지.
“1년이나 지났으면 이젠 무뎌질 때도 되지 않았냐?”
한 선관은 해선에게 저렇게 말했다.
“네가 도월 님을 좋아했다는 건 알지만 언제까지 제자리에 있을 거야?”
다른 선관은 문강에게 저렇게 말했지.
“방울 님이랑 소윤 님도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서야죠.”
소윤과 방울도 같은 말을 들었다.
몇몇 선관들은 이들이 무뎌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슬픔의 크기와 회복되기까지의 시간이 제각기이거늘. 그 부분을 헤아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대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는 것은 아니지 않나.”
“...”
“분위기 흐리지 말고 빠른 시일 내에 일상으로 돌아가거라.”
옥황마저도 저들에게 등을 돌리며, 아직 도월을 보내지 못한 저들을 향해 질타를 했다.
이 저승에 저들을 헤아려 줄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 이들의 대화를 귀로 듣던 아이가 있었으니.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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