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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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송하월
작품등록일 :
2024.10.14 12:07
최근연재일 :
2025.02.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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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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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움직이는 달 (2)

DUMMY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

이 안에 있는 것이라곤 침상과 의자, 탁자와 그 위에 구슬 하나가 전부였다.


“어린 영혼아, 가엾게도 너의 모든 것을 잃었구나.”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던 여인을 끌어올렸다.

의식을 잃은 여인은 며칠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살아갈 의지를 잃은 여인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 하지만 여인은 이렇게 끝을 보면 안 됐다.


망령이 되어 생도, 사도 없는 곳에 갇히게 할 수 없었다.


“아이야, 저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

“1년이 지나고, 2년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야.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응?”


보이지 않는 곳까지 만신창이인 여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오늘도 아닌 건가.’


이번에도 날이 아닌듯하여 체념을 하려고 할 때에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드디어 눈을 떴구나.”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전의 일들은 모두 기억하느냐?”


그저 마음 편히 잊혀졌으면 바랐지만, 잔인하게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핏대가 섰다. 이를 악물었다.


“아이야, 이름 없는 저승의 주인이 되거라.”

“더불어 제가 저승을 군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건 네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제가 훗날 옥황과 염라를 벌하여도 간섭하지 않으실 겁니까?”



절대신은 무름에 답을 하지 않았고, 도월의 소매 안에 있는 단약을 끌어내더니 가루로 만들었다. 그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이내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했다.


“손을 내밀어 보거라.”


손을 맞잡으니 뭔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오른손에는 네가 그 저승의 주인이라는 증표이고, 왼손은 이무기들의 주인이라는 증표이다. 이거는 웬만하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양쪽 손등에 보다 선명하고 정교한 낙인이 생겼다.


“근데 어찌하여 저를 살려주신 겁니까?”

“정당치 않은 방식으로 망령이 생기면 저승의 질서가 무너지거든.”

‘고작 그런 이유로...’

“그리고 그대가 나와 닮은 부분이 많아서였지.”


그의 말에 도월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저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예. 너무 잘 들립니다.”


남은 이들에게 질타를 날리는 선관과 저들에게 등을 돌리는 옥황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들 덕분에 다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


“훗날, 늦더라도 언젠가 옥황과 염라를 벌하고 싶습니다.”

“그건 내게 말하지 않아도 하게 될 것이다.”

‘너에게 진정한 주인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줬거든.’


절대신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월은 당장 그 미소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래도 훗날, 기회가 오는 날 알게 되겠지.


“이름 없는 저승의 주인이 되어 잘 보살피거라.”

“아랑구입니다. 알리지 않아 아는 이가 없지만, 이젠 이름이 있는 저승입니다.”

“잘 지었구나.”

“감사합니다.”


절대신이 머리를 쓰다듬으니 눈이 스르륵 감기며 몸에 힘이 빠졌다. 절대신은 도월을 안아 들고 아랑의 둥지에 조심스럽게 눕혀놨다.


“아랑구를 잘 부탁한다, 아이야.”


— — — — — —


잠시 아랑구를 둘러보고 온 아랑은 두 눈을 의심했다.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짙은 푸른색 장포를 입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도월이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끝난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왜. 오랜만에 보니 귀신인지 아닌지 헷갈리나?”

–"진짜.. 도월인가?"

“내가 없는 사이에 우리 아랑의 감은 다 죽었군, 죽었어. 제 주인도 못 알아보고 말이야.”

–"돌아왔구나. 돌아왔어!"


아랑과 도월은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재회의 순간을 즐겼다. 둘의 얼굴에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가 만개했다.


–"무슨 일이 있던 건가?"


도월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줬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절대신이 도월에게 손을 내민 것에 놀라웠다.


–"다시 살아갈 의지를 가져줘서 고맙다."

“새로운 주인을 찾지 않아서 내가 더 고맙다.”

–"그대만큼 나를 막 대하는 존재는 없어."

“그렇긴 하네. 나 말고 누가 이무기를 막 다루겠어.”


아랑 덕분에 도월이 다시 웃었다.


–"이제 알리러 가야지."

“다녀오마.”

–“오늘 오지 말고, 내일 늦게 돌아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면사가 달린 흑립(笠)을 쓰고 천국으로 갔다. 손짓 한 번으로 옷도 흑의로 바뀌었다.


— — — — — —


검은 옷에 흑립. 얼핏 보면 지옥 것처럼 보였지만 확실히 달랐다. 같은 흑이어도 도월의 흑은 더욱 무게가 있고, 지중해 보였다.


‘입구에는 누가 있으려나. 소윤 님이 있으면 좋겠는데.’

“소윤 님.”


일과가 끝나기 전이라 몇 명이나 만날 수 있을까 했다. 마침 소윤이 밖으로 나왔고, 운 좋게 빨리 만날 수 있었다.


“...”


소윤이 상자를 떨어뜨리는 소리에 놀러 와서 안에 있던 해선도 밖으로 나왔다.


“제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걸까요...”

“저만 보이는 거 아니죠?”


저들의 반응에 도월은 웃으며 면사를 살짝 거뒀다.


“귀신 취급은 생각 못 했는데.”


그리운 목소리, 짧은 몇 마디에 해선과 소윤은 한달음에 달려가 도월을 안았다. 저 둘은 소리내어 한참을 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진정을 했는지 코를 훌쩍이며 도월과 얼굴을 마주했다.


“흐이이잉. 왜 이제야 와요!”

“늦어서 미안해요.”

“너무 늦었잖아! 2년이 다 되어간다고!”


도월의 얼굴을 보고 말하다 보니 소윤과 해선의 눈물보가 다시 터졌다. 도월은 당황하며 저의 등을 다시 다독였다.


“아이고~ 언제 이렇게 울보가 되셨나~”

“당신은 누군데 내 친우와 그러고 있나?”

“왜 남의 부인과도 그리 가까이 붙어 있는지 말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둘을 달래는 사이에 일과를 끝내고 돌아온 문강과 방울. 흑의에 검은 장포, 거기에 흑립. 모르고 보면 수상한 차림을 한 도월의 뒷모습에 경계를 하며 어깨를 붙잡았다.


“어서 그 흑립을 벗고,”

“미안, 미안. 지금 내 행색이 바로 알아보기 어렵겠구나.”

“ㄴ, 너...”

“이게 어떻게..”


얼굴을 가리는 흑립을 벗으니 가려져 있던 은빛 머리칼을 달빛을 받으며 드러나며 도월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너무 늦었네요.”

“그러게요. 그래도 많이 혼내지는 않을거죠?”

“한 번만 봐드리겠습니다.


악수를 하며 손을 마주 잡으니 도월이 돌아온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옆에서 아직 믿기지 않는지 벙쪄 있는 문강의 팔을 손끝으로 가볍게 건드렸다.


“진짜 나야. 도월이라고.”

“달아...”


문강은 도월의 머리가 어깨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 ‘달’이라는 호칭에 손이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잘게 떠는 그의 등을 다독였다.


“들어가자. 응?”

“응...”


도월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여 자신이 썼던 방에 갔다.


문을 여니 차가운 공기가 반겨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 그대로 있었다. 하얀 천을 거두니 그 밑에 미처 다 옮기지 못하고 남은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다. 비녀도 한구석에 그대로 있었다.


‘일부러 정리하지 않았구나.’


소윤은 도월이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고 먼지가 않지 않게 관리하되, 물건들을 정리하지 않았다. 도월은 그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도월 님~”


다 된 것을 알리는 부름에 도월은 방 문을 닫고 나갔다.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어떻게 돌아온 거예요?”

“절대신이 도와준 거야?”

“돌아온 지 얼마나 됐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질문들. 도월은 웃으며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 — — — — —


“그런 일이 이었구나.”

“다행이다. 헛된 짓이 아니었어.”


도월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은 저들은 절대신의 개입에 다들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옥황과 몇몇 선관들 덕분에 오는 거 서둘렀어요.”

“다 들렸어?”

“응. 너무 선명하게 잘 들리더라. 그래서 내일 일부러 일과 시간에 움직이려고.”

“우리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뒷배로 누가 있는지 확실히 알려줘야죠. 신의 친우들을 건드는 것이 무섭다는 걸 알아야 다시는 안 그러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리에 오른 지금. 도월은 그동안 저들이 느꼈을 원통함을 다시는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아, 한 가지 더. 축령들 저승 이름은 ‘아랑구’입니다. 내일 옥황이랑 염라한테 정식으로 알리러 갈 거예요.”


도월은 아랑구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화제를 돌렸다. 이 모습에 저들은 그저 선관으로 있던 아이가 한 저승을 책임지는 주인이 된 것을 실감했다.


“너무 제 얘기만 했네요. 제가 없는 동안 달라진 게 있을까요?”

“제가 입구로 오면서 방울도 같이 거처를 옮긴 것 말고는 달라진 거는 없어요.”

“방울 님이 약방이랑 거리가 생기니까 돌아가면서 자리를 지키는 걸로 바꿨어.”

“그렇구나. 다른 거는 더 없어요?”


이들의 재회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어졌다.


— — — — — —


밤을 지나 시간이 새벽을 향해 달릴 때, 도월은 땀을 흘리며 일어났다.


‘또...’


끝난 줄 알았던 악몽에 다시 시달렸다. 현진만 있던 꿈에 청령까지 같이 나왔다. 꿈이지만 두 눈으로 그날의 상황을 선명하게 보는 것은 숨이 막혔다.


“후...”


이대로는 다시 잠을 자기 어려울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새벽 공기를 마시니 요동치던 마음이 진정되는 듯했다.


벌컥-


멍 때리며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식은땀을 흘리며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문강이 있었다.


“문..강?”


그는 아까 다시 만났을 때처럼 도월을 안았다. 처음보다 힘이 들어가고 크게 떨리는 손에 그를 떼어내지 못했다. 어린아이를 달래듯 등을 쓸어줬다.


“괜찮아... 괜찮아...”

“...”

“악몽이라도 꿨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말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아 묻지 않았지만, 문강은 금방 입을 열었다.


“꿈에서 네가 죽었어..”

‘아...’

“그게 현실이고, 지금이 꿈인 줄 알았어..”

“달아...”

“해선이도 악몽 꿨어?”


문강과 같은 꿈을 꾼 해선도 도월을 보자마자 안겨왔다. 어린아이가 둘이 됐다.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얘들아, 나 봐.”


불안에 휩싸여 흔들리는 눈동자. 저들의 손등을 쓸어주며 안심시켰다.


“절대신이 나락에서 나를 구해줬어. 덕분에 죽기 전에 살 수 있었던 거야.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상처 없이 깨끗하게 나아서 돌아왔어.”

“...”

“진짜 신이 됐어. 그때처럼 날 함부로 끌어내릴 수 있는 존재는 없어.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계속 옆에 있을 거야.”


낮고 일정한 음성으로 조곤조곤 말해주는 그 목소리에 안심이 됐다. 불안에 젖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 심신에 안정을 주는 약재를 넣은 차를 내어주며 남은 밤을 편히 보낼 수 있게 해줬다.


저들을 바라보며 도월은 속다짐을 했다.


‘악몽은 잊혀져 갈 즈음 너희를 또 괴롭히겠지. 하지만 걱정 마라. 내가 곁에 있으니.’


‘악몽이 괴롭힐 때에는 혼자 견디지 말고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라. 너희를 안심시킬 수 있다면, 몇 번이든 확인시켜 줄 것이다.’


‘내가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불안에 먹히지 않게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


‘다시는 무너지지 않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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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후기 25.02.05 5 1 1쪽
86 겨울지나 봄으로 (完) 25.02.03 6 1 12쪽
85 겨울지나 봄으로 (2) 25.02.02 6 1 12쪽
84 겨울지나 봄으로 (1) 25.01.31 8 1 13쪽
83 25.01.29 9 1 12쪽
82 잔치의 종막 (3) 25.01.27 9 1 12쪽
81 잔치의 선율 (2) 25.01.26 11 1 12쪽
80 잔치 : 가락의 시작 (1) 25.01.24 7 1 11쪽
79 잔치 : 가락 전주 - 계책 (5) 25.01.22 9 1 13쪽
78 잔치 : 가락 전주 - 준비 (4) 25.01.20 10 1 11쪽
77 잔치 : 가락 전주 - 움직임 (3) 25.01.19 10 1 13쪽
76 잔치 : 가락 전주 - 만행 (2) 25.01.17 11 1 12쪽
75 잔치 : 가락 전주 - 만행 (1) 25.01.15 11 1 13쪽
74 아물지 않았던 상처 (1) 25.01.13 13 1 12쪽
73 정착, 그리고 변화 (6) 25.01.12 9 1 23쪽
72 정착, 그리고 변화 (5) 25.01.10 10 1 12쪽
71 정착, 그리고 변화 (4) 25.01.08 10 1 13쪽
70 정착, 그리고 변화 (3) 25.01.06 12 1 12쪽
69 정착, 그리고 변화 (2) 25.01.05 15 1 13쪽
68 정착, 그리고 변화 (1) 25.01.03 15 1 12쪽
67 재회 (3) 25.01.01 16 1 12쪽
» 다시 움직이는 달 (2) 24.12.30 15 1 12쪽
65 멈춘 달, 모두의 바람 (1) 24.12.29 14 1 12쪽
64 원망, 실수, 후회 (3) 24.12.27 12 1 12쪽
63 원망, 실수, 후회 (2) 24.12.25 11 1 12쪽
62 원망, 실수, 후회 (1) 24.12.23 12 1 12쪽
61 소강상태 (5) 24.12.22 13 1 12쪽
60 변수 (4) 24.12.20 13 1 12쪽
59 확산 (3) 24.12.18 1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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