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 그리고 변화 (3)

재판이 끝난 후, 오래 지나지 않아 승인이 떨어졌다.
“아랑구에 약방은 선관들이 짓고 있다. 완공되기 전까지 도월과 같은 곳에서 지내고 있으면 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약방은 그대의 빈자리가 크겠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들 훌륭한 의원이니까요.”
여전히 옥황은 해선이 아랑구로 가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해선이라서가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세상에 있는 선관 하나가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것이 언짢았다.
“야- 너만 가냐?”
“부럽냐?”
“어. 엄청. 배 아플 정도로.”
“그럼 너도 와.”
“달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동물 별로 안 좋아해.”
“응?”
“멀리서 보는 건 좋은데, 가까이서 보는 건 좋아하지 않아.”
“그러면서 뭐가 배가 아파.”
“나는 친구랑 떨어져 있는데, 너는 붙어있으니까 그렇지.”
도월의 생각이 맞았다. 문강은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부 선관 때문에 골치 아픈 일이 자주 있지만, 그들과는 말이 통한다. 하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동물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좋을 뿐, 가까이하는 것은 솜털에서부터 거부했다. 그게 이미 죽은 축령일지라도.
“그럼 싫더라도 오시던가요.”
“일과 끝나고 도우러 가도, 그 이상한 달이한테 민폐거든요.”
불편한 티를 내며 도월을 불편하게 하기도 싫었다. 그저 얌전히 자리를 지키며 천국의 선관으로 있는 수밖에.
— — — — — —
해선이 아랑구로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천국은 도월의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도월 님, 아랑구 수장이 되더니 더 지독해진 것 같아.”
“방울 님은 도월 님 어렵지 않아요? 어떻게 친하게 지냈어요?”
“너네는 도월 님 무섭지 않았어?”
여러 소문이 돌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도월은 무자비하고, 온정이라곤 1도 없는 수장이었다. 그렇게 해선이 아랑구로 가고 나서도 한참 이동 요청서가 올라오지 않았다.
“달아, 선관이 생각보다 많이 늦게 모일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이미 예상한 일이야.”
“그래도 너 혼자는 힘들잖아.”
“왜 내가 혼자야. 아랑도 있는데.”
“우리 셋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
다른 금방 지나치는 선관들이 이번엔 꽤 오래갔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있는 곳의 수장이 아니라 다른 저승의 수장이 되어 낯선데, 그런 모습까지 보니 더 멀게 느껴졌을 것이다. 선관이었을 적에도 다름을 느꼈지만, 너무 달라진 모습에 적응을 하지 못한 선관들이 태반이었다.
“제일 고생하고 있는 건, 방울 님이랑 소윤 님일걸?”
도월의 예상대로 현재 제일 고생하고 있는 것은 방울과 소윤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문강까지.
방울은 약방에서, 소윤은 잠시 중앙을 오갈 때, 도월에 대해 오해를 푸는데 힘을 쓰고 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소문과는 다르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었다.
“달이는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저 지켜야 할 게 생겼을 뿐이에요.”
“도월 님은 달라진 게 아니에요.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휘둘리지 않을 뿐이에요.”
의미가 같은 질문에 답을 해주며, 마지막은 꼭 이 말을 덧붙였다.
“본질적인 건 여전히 똑같아요.”
알고 있었다. 도월에게 지켜야 할 것은 앞으로 계속 많아질 것이란걸. 처음부터 입지를 잘 다져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많이 휘둘리게 된다는 것도, 옥황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 돌아온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멀게 느껴지는 건.. 그런 모습을 처음 봐서 그런 거겠죠?”
“앞으로 익숙해질 거예요.”
“시간이 좀 오래 걸리겠네요.”
다른 선관들에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갑자기 거리를 두고 피하면 서운해할걸요?”
“네?”
“달이가 보기랑 다르게 정이 많거든요.”
소윤, 방울, 문강의 노력으로 도월의 소문은 빠르게 잠잠해졌다. 더불에 도월에 대해 의외인 부분까지 알게 된 선관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친밀감이 생겨 있었다.
— — — — — —
저들이 오해를 풀어주고 있는 동안 도월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여기는 무슨 공간인가?"
“제4의 공간. 수장들 기운이 세어 나가지 않는 곳이 필요해서 만들어 봤어.”
–"앞으로 이곳에서 모이는 건가?"
“맞아. 그리고 다음 주에 여기서 한 번 모일 거야.”
–"그렇게 빨리?"
“응. 오랫동안 박힌 빌어먹을 법을 바꿔야지.”
도월은 과거에 박혀있는 법을 크게 바꿀 계획을 하고 있었다. 자리를 잡은 지 1년 만에 새로운 바람이 다시 불게 할 생각이었지.
“근데.”
–"응?"
“너는 왜 맨날 나랑 붙어 다녀? 천국 이무기랑 지옥 이무기는,”
–"천무, 옥무."
“그래. 천무랑 옥무. 걔네들은 맨날 혼자 있는데, 너는 왜 늘 내 뒤를 쫓아다니는 거야?”
–"신기해서."
“뭐가?”
–"그저 어리기만 했던 아이가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척척해내는 걸 보는 마음이랄까?"
혼자 뿌듯한 표정으로 얘기하는 아랑에 도월은 오글 거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랑은 그 반응을 즐기고 재미는 다 봤다며 둥지로 돌아갔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애야.’
“나는 해선이 보러 가야겠다.”
혼자 약방을 정리하고 있을 해선을 생각해 걸음을 서둘렀다.
약방은 최근에 완공을 했다. 2층은 해선이 지내는 공간, 1층은 약방이었다.
천국의 약방보다 조금 작지만 약방을 한 곳에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후에 선관이 들어오고, 의원이 늘어난다면 지역별로 최소 두 명씩 보낼 것이었다. 그럼 천국처럼 약방이 크게 자리 잡을 이유가 없어지지.
“해선이~ 왜 그렇게 축 처져 있어?”
그리고 이 안에는 늘 밝은 모습과 달리 시든 민들레처럼 탁자에 엎드려 있는 해선이 있었다.
“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모르겠어..”
늘 망자만 보다가 새로운 영혼을 보려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축령과 아랑구에 대해 고찰을 하면서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오늘도 새로운 방향으로 고찰을 하다가 또 엎어졌다.
“나는 달님처럼 언제 능숙해질까...”
해선은 옆에 앉은 도월의 무릎에 누우며 칭얼거렸다. 도월은 해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응석을 받아줬다.
낯선 곳에 와서 자리를 잡고 적응하기 급급했을 것이다. 적응을 했을 때에는 새로운 환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낯선 것이었다. 축령들은 당연히 망자와 달랐고, 천국과 달리 아랑구는 지역별로 다 달랐다.
“혹시 몰라서 천국에서 내 자료들도 다 가져오고, 방울 님한테도 몇 개 빌려왔거든?”
“응.”
“그런데 다 쓸모가 없어졌어.”
자료가 있지만 자료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0에서 시작해야 하는 곳에서 천국에서 가져온 자료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쓸모는 충분히 있었어.”
해선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눈으로 도월을 올려다봤다.
“뭐부터 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아줬잖아.”
“그래도 어느 게 맞는지 찾지 못했잖아.”
“맞는 걸 찾는 것도 중요하지. 그런데 나는 맞지 않는 걸 먼저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
“아랑구의 모든 것을 병들지 않게 지켜줄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완전히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어떤 게 아랑구에 맞지 않는지, 축령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는 지 알았다.
축령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그것은 기록을 하고 좀 더 안전한 것으로 바꾸거나 다시는 하지 않는다.
안 좋은 것들을 먼저 알았기에 미연의 상황을 방지할 수 있었다. 해선의 생각과 달리 수확이 아주 없던 것이 아니었다.
‘나, 잘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응?”
“나도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야. 실수투성이야.”
해선의 눈에는 도월은 모든 것이 능숙해 보이는 어른이었다. 하지만 도월도 모르는 것으로 가득한 건 마찬가지였다. 같이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같이 잘 크자.”
“응!”
해선이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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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해선의 약방에는 아랑이 내려와 있었다. 아랑은 약방을 둘러보고 있었고, 2층에서 내려온 해선은 아랑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도월이 부탁을 했거든."
“달이가요?”
–"그래. 그대에게도 아랑구에 대해 소개를 해달라고 해서."
전날 저녁, 도월은 아랑의 둥지에 올라가서 해선에게도 아랑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라고 했다. 거기에 더불어 축령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라고 했다.
–"내가 그동안 그대를 너무 신경 쓰지 못했어. 미안하다."
“괜찮아요. 지금 가면 되나요?”
–"먼저 여기에 있는 약재들에 대해 알고 싶은데."
“아, 네! 여기 안으로 들어오세요.”
해선은 밝아진 모습으로 약재방으로 안내했다.
아랑은 약재들이 어떤 효능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물어본 이유는 해선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서였지.
그렇게 아랑구에서는 아랑과 해선이 함께 길을 거닐고 있을 때, 도월은 천국과 지옥을 방문하고 있었다.
— — — — — —
“무슨 일로 왔지?”
“그냥 잠시 얘기 좀 하고 싶어서.”
그때의 일로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은 옥황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월은 그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그동안 염라와 이곳에서 회의할 때, 선관과 망자들이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을 인지하고 있었나?”
“그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회의할 공간을 만들었네.”
“뭐?”
옥황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가능한가?”
“그러니까 제4의 공간을 만들었지. 그리고 올 때에는 저 문을 열고 오시게.”
도월의 손짓 한 번에 제4의 공간과 이어진 문이 만들어졌다. 돌아서 오는 번거로움을 덜어냈다.
“평소에는 책장에 가려져서 안 보일 텐데, 혹시 모르니 선관들은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게.”
“귀찮은 일을 덜어줘서 고맙네.”
한순간에 옥황의 태도가 바뀌었다.
“알면 됐어. 다음 주 중에 회의를 열 거야. 전날 나비를 보낼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
“왜 벌써 일어나나?”
“내가 여기에 오래 있을 이유는 없지.”
‘떨어지는 콩고물을 찾으려는 속이 뻔히 보이는 데 있을 리가.’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
천국을 위해 도월이 자처해서 움직인 것으로 생각한 옥황은 무언가 떨어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 도월의 앞을 막으며 자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하는 짓이지?”
“아니. 그냥. 이렇게 바로 가면 아쉽지.”
“뭐라는 거야. 이럴 시간에 선관과 망자를 위한 게 무엇인지 생각이나 해.”
의중이 뻔히 보이는 모양새에 도월은 그를 옆으로 밀치고 나왔다. 한순간에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진 도월은 사나운 냉랭한 얼굴을 하고 이동했다.
— — — — — —
도월과 마주한 염라. 불청객의 방문에 불편한 티를 드러내고 있었다.
“콧대 높으신 분이 어찌 이리 누추한 곳에 오셨는지.”
“앞으로 회의할 때, 저 문을 열고 제4의 공간으로 오면 된다.”
“제4의 공간? 그대가 만든 공간인가?”
말 대신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염라는 콧방귀를 끼며 오기에 젖은 눈을 하고 거짓말도 적당히 하라고 했다. 그런 태도가 오히려 자신을 가볍게 보이게 만든다는 것을 모르는지 도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주 중에 회의 전날 나비를 보낼 것이다.”
“안 갈 것이다.”
“그러든가. 안 오면 지옥만 손해를 볼 것이라는 점, 참고하고.”
손해를 보는 것은 죽어도 싫어하는 염라의 심리를 이용했다. 염라는 도월이 심리를 이용하는 것을 알아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늘 하던 곳에서 하지. 번거롭게.”
“망자와 선관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그럴 뿐이니 협조하거라.”
본전도 건지지 못한 염라는 아랑구와의 첫 회의를 하는 날을 기다릴 뿐이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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