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 그리고 변화 (6)

옥황은 생각에 잠겼다. 염라가 자신을 속박하는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것을 알고 있다. 휘둘리지 않아야지 하지만, 악질적이게 죄책감을 느낄 부분만 골라서 짚으니 휘둘리게 된다.
벗어나려고 해도, 약점이 다 드러난 상태에서는 이미 늦었지.
“이 보고서들은 폐기할까요?”
“아니다. 이리 가져오거라.”
바꾸지 못할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것을 보기로 했다.
— — — — — —
“그 서류들은 폐기하기로 한 거 아닙니까?”
“앞으로 폐기되는 보고서는 없을 것이다.”
염라도 읽지 않고 구석에 넣어놨던 보고서를 펼쳐봤다. 도월의 말에 일리를 느꼈다.
그동안의 방식과 다르게 관리해야 한다. 도월에게 책잡힐 일을 하나씩 없애가야 한다. 하천의 일은 조금 더 방법을 모색하고, 당장 해치울 수 있는 것부터 정리했다.
— — — — — —
옥황과 염라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을 때, 도월은 축령들에게 한 가지 얘기를 들었다.
-제 주인이 저한테 그 얘길 해줬어요.
“무슨 얘기를 해줬니?”
-인간들 사이에 그 소문이 생겼데요. 저희가 먼저 죽으면 저승에서 주인을 기다렸다가 마중을 나온다는 소문이 생겼데요.
“어머, 신기해라~”
-제 주인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무것도 모르고 간절히 바라던 것이 진실일 때도 있지. 너도 주인을 곁에서 지켜주고 싶니?”
-네! 저한테 너무 잘해줬거든요. 그 은혜를 갚아주고 싶어요.
“그럼 몇 가지 약속을 해주렴.”
꼭 지켜야 하는 규율 세 가지를 알려줬다. 축령은 당찬 목소리 대답을 해왔다.
“착한 아이구나”
창으로 바닥을 치니 맑은 물방울 소리와 함께 진이 그려졌다. 경을 외우니 별무리가 올라오며 축령을 감쌌다. 축령에게 맑은 날개가 생기며 비로소 수호령이 되었다.
–우와~ 감사합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요!”
주인에게로 내려가는 축령에게 손을 흔들어 줬고,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휘청였다.
‘그래도 처음에 쓰러졌을 때보다는 낫네..’
“이럴 때가 아니지.”
왜 이런 소문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정확한 것을 알기 위해 내려가 봐야 했다. 혹시라도 인간이 아닌 존재에 의해 알려진 것이면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이승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일주일에 한 번은 올라와야 해.”
“보고서는 내가 받아서 보내줄게. 여기에 차원문 만들어주라.”
내려갈 준비를 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해선의 약방에 차원문을 만들고, 간단히 필요한 짐을 챙겨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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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을 얼마 만에 오는 건지 모르겠다. 지난 시간만큼 여러 가지가 바뀌어 있었다. 그중, 제일 큰 변화는 무공을 사용하는 이들이 확연히 줄었다는 것이다.
“주인장, 안에 계십니까?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중년의 여인이 도월이 목소리에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나왔다.
“현재 무공을 지닌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혹,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오셨소? 없어진 지가 언젠데.”
“한 명도 없습니까?”
“아, 그렇다니까. 어느 순간부터 무공을 못 쓰는 아이들이 태어났고, 그렇게 점점 없어졌지요.”
이미 한참 전부터 없어지기 시작했다. 저승에 있는 동안 인간들에게 변화는 빠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설령 남아있다 하더라도 숨기고 살걸요.”
“그렇겠네요.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예~”
“혹시 기르던 동물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된다는 소문이 있지 않나요? 오다 보니까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아서요.”
“아~ 그거구나.”
소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기르던 가축이 죽으면 저승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곳의 수호신이 선하게 살아온 가정에 가축을 수호령으로 보내줘 가정의 평안과 풍족을 빌어준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먼저 간 가축에 대한 애정과 그동안 같이 지내며 들었던 정이 만들어낸 미신이었다.
“알려진지는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어머, 그쪽은 산길이 험해요!”
“괜찮습니다~!”
당장 필요한 정보를 얻은 도월은 잠시 지낼 거처를 지을 곳을 찾았다.
— — — — — —
“여기가 적당하겠네.”
마을과 거리가 멀지 않지만 가깝다고는 할 수 없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길이 험하여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인 게 티가 났다. 그래서 조용히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나?”
“그러게. 여기는 어느 신에게 공양을 하는 곳입니까?”
“죽은 가축들을, 즉, 축령들을 돌봐주는 수호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공양은,”
“그럼 그분이 금전도 돌봐주시나? 이 마을 사람들한테 제일 필요한 것인데.”
“축령을 수호령으로 내려줘 안녕과 풍족을 빌어준다고 하네요.”
“자네도 며칠 전에 기르던 개가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
“그럼 집에 들렸다가 오자고.”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공양은 받지 않는다고 하려 했지만 저들의 말과 발이 빨랐다. 주변에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런 곳에 도월이 오므로 공양을 올릴 수 있는 곳이 생겼고, 안녕과 풍족을 빌어준다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 — — — — —
“그래서 이게 다 사람들한테 받은 거라고?”
“어, 맞아.”
“그런데 그 마을에서 온 축령들은 많이 없는 것 같던데. 어떻게 계속 공양을 하지?”
“내가 농사가 잘 되게 좀 도와줬지.”
“그럴 줄 알았다.”
그들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도월은 작게나마 농사가 잘 되도록 해줬다. 눈에 보일까 했지만 사람들은 금방 눈치를 챘고, 공양을 더 열심히 올렸다.
“요즘은?”
“오는 길이 그냥 험한 게 아니라 발길은 좀 줄어들었어. 오히려 잘 됐어. 계속 오면 나도 곤란하니까.”
“얼마나 더 있을 거야?”
“1년만 있다 오려고. 그전에 올 수도 있고.”
— — — — — —
한 달 동안 사람들의 발길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거의 끊겼다고 볼 수 있었지. 이쪽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저들도 오는 길이 편치 않을 것이고, 그걸 보는 도월도 편치 않았다. 그런데도 늘 오는 한 명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오셨네요. 길이 험한데, 매번 오는 거 힘들지 않아요?”
“제가 워낙 체력이 좋아서요. 이 정도는 가뿐해요. 아, 그러고 저희 통성명을 안 했죠? 저는 솔천예라고 해요.”
“이..”
“응?”
“도월이에요.”
이승에서 순순하게 가까워지고 싶다고 살갑게 다가온 이가 얼마 만인지. 가명이 아니라 본명을 알려줬다.
솔천예는 하루걸러 한 번씩 찾아왔다. 와서 하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어진 곳에서 도월의 말동무가 되어 시간을 보내다 갔다. 해선처럼 마음이 잘 맞는 아이였다. 언젠가 해선과 같은 존재가 있을까 했는데,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됐다.
“그런데 혼자는 외롭지 않아요?”
“익숙해서 괜찮아요.”
“저는 익숙해져도 종종 외롭던데.. 가끔 여기서 자고 가도 괜찮아요?”
“그게... 제가 조만간 다른 곳으로 가서요.”
“아...”
언젠가 해야 할 이별이었다.
만남과 이별은 뗄 수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승에 퍼진 소문은 그저 한 사람에 의해 퍼진 것이었다. 그저 가축을 소중히 여기던 주인의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된 소문이었지. 생각보다 싱거운 결과였다.
이제 도월이 이승에서 할 일은 끝났다.
“얼마나 있다가 가요? 여기로 다시 올 거예요?”
“그건 장담할 수 없고.. 보름 후에 가요.”
“그래도 시간이 좀 남아서 다행이네요.”
솔천예는 아쉬움을 감추며 애써 웃어 보였다.
— — — — — —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 아랑구에 일이 생겼다.
“지옥으로 들어간지 얼마나 됐어요?”
“조금 전에 생긴 일입니다. 품에서 갑자기 뛰쳐나가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사과는 나중에. 금방 올 테니까 아랑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최근에 온 선관이 순간 축령을 품에서 놓치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지며 놀란 축령은 선관을 피해 움직이다 지옥으로 들어갔다.
“겁먹지 말고. 그곳으로 더 들어가면 안 된단다. 응?”
-저리 가!
“아...”
-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미안해요.. 그러니 때리지 말아 주세요···
영원이 손을 뻗자 드리우는 그림자에 겁을 먹은 축령은 그의 손등을 할퀴었다.
“괜찮아. 내가 겁을 줬구나. 미안해.”
-저.. 안 맞아도 되는 거예요?
“여기서 누가 너를 해할 수 있을까. 설령 해를 가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지켜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이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축령에게 도월이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에 안정감을 느낀 축령은 도월의 품으로 들어갔다.
“더 들어가지 않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오히려 겁을 먹게 해서 미안한걸요.”
“다행히 흉은 안 생겼네요."
"치료는 괜찮았는데. 감사합니다."
"그럼 보름에 봬요."
아랑구로 돌아가니 축령은 안정을 취했고, 해선에게 잘 부탁했다.
“어?”
다시 내려가기 전, 탁자에 놓아준 구슬로 이승을 내려다보니 솔천예가 인간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원래라면 개입하지 않았겠지만 저 아이는 유독 신경쓰였다.
‘지금 가면 늦어.’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며 계속 움직이는 솔천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비바람을 부르고, 구름을 움직여 몸을 가려주는 것.
“조금만 더..”
쫓고 쫓기는 상황. 거기에 부상을 입은 솔천예. 그걸 지켜보는 도월은 마음이 급해졌다. 사람들과 거리가 생길 때까지 비바람과 구름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솔천예가 몸을 피할 수 있게 움직였다.
“하...”
고군분투 끝에 솔천예를 무사히 도망치게 하는 것에 성공했다.
“역시 너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솔천예의 정체는 두 번째 만남에서 의심하고 있었다. 늦은 밤, 솔천예가 집으로 간다고 할 때 뒤에서 지켜봤다. 그때 솔천예가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다.
‘우리 최대한 늦게 만나자.’
–"아직 안 내려갔네?"
월관의 정원에 월성초를 심으러 온 아랑. 집에 도월이 있는 것을 보고 창문을 열었다.
“응. 이제 갈 일은 없을 것 같아.”
–"누가 퍼뜨린 소문인 건가?"
“주인의 진심 어린 바람이 만들어낸 거였어.”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그러게. 별거 아니어서 다행이야.”
이승에서 만난 아이와 이별을옥황은 생각에 잠겼다. 염라가 자신을 속박하는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것을 알고 있다. 휘둘리지 않아야지 하지만, 악질적이게 죄책감을 느낄 부분만 골라서 짚으니 휘둘리게 된다.
벗어나려고 해도, 약점이 다 드러난 상태에서는 이미 늦었지.
“이 보고서들은 폐기할까요?”
“아니다. 이리 가져오거라.”
바꾸지 못할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것을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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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서류들은 폐기하기로 한 거 아닙니까?”
“앞으로 폐기되는 보고서는 없을 것이다.”
염라도 읽지 않고 구석에 넣어놨던 보고서를 펼쳐봤다. 도월의 말에 일리를 느꼈다.
그동안의 방식과 다르게 관리해야 한다. 도월에게 책잡힐 일을 하나씩 없애가야 한다. 하천의 일은 조금 더 방법을 모색하고, 당장 해치울 수 있는 것부터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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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과 염라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을 때, 도월은 축령들에게 한 가지 얘기를 들었다.
-제 주인이 저한테 그 얘길 해줬어요.
“무슨 얘기를 해줬니?”
-인간들 사이에 그 소문이 생겼데요. 저희가 먼저 죽으면 저승에서 주인을 기다렸다가 마중을 나온다는 소문이 생겼데요.
“어머, 신기해라~”
-제 주인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무것도 모르고 간절히 바라던 것이 진실일 때도 있지. 너도 주인을 곁에서 지켜주고 싶니?”
-네! 저한테 너무 잘해줬거든요. 그 은혜를 갚아주고 싶어요.
“그럼 몇 가지 약속을 해주렴.”
꼭 지켜야 하는 규율 세 가지를 알려줬다. 축령은 당찬 목소리 대답을 해왔다.
“착한 아이구나”
창으로 바닥을 치니 맑은 물방울 소리와 함께 진이 그려졌다. 경을 외우니 별무리가 올라오며 축령을 감쌌다. 축령에게 맑은 날개가 생기며 비로소 수호령이 되었다.
–우와~ 감사합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요!”
주인에게로 내려가는 축령에게 손을 흔들어 줬고,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휘청였다.
‘그래도 처음에 쓰러졌을 때보다는 낫네..’
“이럴 때가 아니지.”
왜 이런 소문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정확한 것을 알기 위해 내려가 봐야 했다. 혹시라도 인간이 아닌 존재에 의해 알려진 것이면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이승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일주일에 한 번은 올라와야 해.”
“보고서는 내가 받아서 보내줄게. 여기에 차원문 만들어주라.”
내려갈 준비를 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해선의 약방에 차원문을 만들고, 간단히 필요한 짐을 챙겨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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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을 얼마 만에 오는 건지 모르겠다. 지난 시간만큼 여러 가지가 바뀌어 있었다. 그중, 제일 큰 변화는 무공을 사용하는 이들이 확연히 줄었다는 것이다.
“주인장, 안에 계십니까?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중년의 여인이 도월이 목소리에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나왔다.
“현재 무공을 지닌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혹,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오셨소? 없어진 지가 언젠데.”
“한 명도 없습니까?”
“아, 그렇다니까. 어느 순간부터 무공을 못 쓰는 아이들이 태어났고, 그렇게 점점 없어졌지요.”
이미 한참 전부터 없어지기 시작했다. 저승에 있는 동안 인간들에게 변화는 빠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설령 남아있다 하더라도 숨기고 살걸요.”
“그렇겠네요.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예~”
“혹시 기르던 동물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된다는 소문이 있지 않나요? 오다 보니까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아서요.”
“아~ 그거구나.”
소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기르던 가축이 죽으면 저승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곳의 수호신이 선하게 살아온 가정에 가축을 수호령으로 보내줘 가정의 평안과 풍족을 빌어준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먼저 간 가축에 대한 애정과 그동안 같이 지내며 들었던 정이 만들어낸 미신이었다.
“알려진지는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어머, 그쪽은 산길이 험해요!”
“괜찮습니다~!”
당장 필요한 정보를 얻은 도월은 잠시 지낼 거처를 지을 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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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적당하겠네.”
마을과 거리가 멀지 않지만 가깝다고는 할 수 없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길이 험하여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인 게 티가 났다. 그래서 조용히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나?”
“그러게. 여기는 어느 신에게 공양을 하는 곳입니까?”
“죽은 가축들을, 즉, 축령들을 돌봐주는 수호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공양은,”
“그럼 그분이 금전도 돌봐주시나? 이 마을 사람들한테 제일 필요한 것인데.”
“축령을 수호령으로 내려줘 안녕과 풍족을 빌어준다고 하네요.”
“자네도 며칠 전에 기르던 개가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
“그럼 집에 들렸다가 오자고.”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공양은 받지 않는다고 하려 했지만 저들의 말과 발이 빨랐다. 주변에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런 곳에 도월이 오므로 공양을 올릴 수 있는 곳이 생겼고, 안녕과 풍족을 빌어준다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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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게 다 사람들한테 받은 거라고?”
“어, 맞아.”
“그런데 그 마을에서 온 축령들은 많이 없는 것 같던데. 어떻게 계속 공양을 하지?”
“내가 농사가 잘 되게 좀 도와줬지.”
“그럴 줄 알았다.”
그들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도월은 작게나마 농사가 잘 되도록 해줬다. 눈에 보일까 했지만 사람들은 금방 눈치를 챘고, 공양을 더 열심히 올렸다.
“요즘은?”
“오는 길이 그냥 험한 게 아니라 발길은 좀 줄어들었어. 오히려 잘 됐어. 계속 오면 나도 곤란하니까.”
“얼마나 더 있을 거야?”
“1년만 있다 오려고. 그전에 올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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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사람들의 발길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거의 끊겼다고 볼 수 있었지. 이쪽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저들도 오는 길이 편치 않을 것이고, 그걸 보는 도월도 편치 않았다. 그런데도 늘 오는 한 명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오셨네요. 길이 험한데, 매번 오는 거 힘들지 않아요?”
“제가 워낙 체력이 좋아서요. 이 정도는 가뿐해요. 아, 그러고 저희 통성명을 안 했죠? 저는 솔천예라고 해요.”
“이..”
“응?”
“도월이에요.”
이승에서 순순하게 가까워지고 싶다고 살갑게 다가온 이가 얼마 만인지. 가명이 아니라 본명을 알려줬다.
솔천예는 하루걸러 한 번씩 찾아왔다. 와서 하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어진 곳에서 도월의 말동무가 되어 시간을 보내다 갔다. 해선처럼 마음이 잘 맞는 아이였다. 언젠가 해선과 같은 존재가 있을까 했는데,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됐다.
“그런데 혼자는 외롭지 않아요?”
“익숙해서 괜찮아요.”
“저는 익숙해져도 종종 외롭던데.. 가끔 여기서 자고 가도 괜찮아요?”
“그게... 제가 조만간 다른 곳으로 가서요.”
“아...”
언젠가 해야 할 이별이었다.
만남과 이별은 뗄 수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승에 퍼진 소문은 그저 한 사람에 의해 퍼진 것이었다. 그저 가축을 소중히 여기던 주인의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된 소문이었지. 생각보다 싱거운 결과였다.
이제 도월이 이승에서 할 일은 끝났다.
“얼마나 있다가 가요? 여기로 다시 올 거예요?”
“그건 장담할 수 없고.. 보름 후에 가요.”
“그래도 시간이 좀 남아서 다행이네요.”
솔천예는 아쉬움을 감추며 애써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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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 아랑구에 일이 생겼다.
“지옥으로 들어간지 얼마나 됐어요?”
“조금 전에 생긴 일입니다. 품에서 갑자기 뛰쳐나가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사과는 나중에. 금방 올 테니까 아랑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최근에 온 선관이 순간 축령을 품에서 놓치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지며 놀란 축령은 선관을 피해 움직이다 지옥으로 들어갔다.
“겁먹지 말고. 그곳으로 더 들어가면 안 된단다. 응?”
-저리 가!
“아...”
-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미안해요.. 그러니 때리지 말아 주세요···
영원이 손을 뻗자 드리우는 그림자에 겁을 먹은 축령은 그의 손등을 할퀴었다.
“괜찮아. 내가 겁을 줬구나. 미안해.”
-저.. 안 맞아도 되는 거예요?
“여기서 누가 너를 해할 수 있을까. 설령 해를 가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지켜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이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축령에게 도월이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에 안정감을 느낀 축령은 도월의 품으로 들어갔다.
“더 들어가지 않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오히려 겁을 먹게 해서 미안한걸요.”
“다행히 흉은 안 생겼네요."
"치료는 괜찮았는데. 감사합니다."
"그럼 보름에 봬요."
아랑구로 돌아가니 축령은 안정을 취했고, 해선에게 잘 부탁했다.
“어?”
다시 내려가기 전, 탁자에 놓아준 구슬로 이승을 내려다보니 솔천예가 인간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원래라면 개입하지 않았겠지만 저 아이는 유독 신경쓰였다.
‘지금 가면 늦어.’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며 계속 움직이는 솔천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비바람을 부르고, 구름을 움직여 몸을 가려주는 것.
“조금만 더..”
쫓고 쫓기는 상황. 거기에 부상을 입은 솔천예. 그걸 지켜보는 도월은 마음이 급해졌다. 사람들과 거리가 생길 때까지 비바람과 구름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솔천예가 몸을 피할 수 있게 움직였다.
“하...”
고군분투 끝에 솔천예를 무사히 도망치게 하는 것에 성공했다.
“역시 너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솔천예의 정체는 두 번째 만남에서 의심하고 있었다. 늦은 밤, 솔천예가 집으로 간다고 할 때 뒤에서 지켜봤다. 그때 솔천예가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다.
‘우리 최대한 늦게 만나자.’
–"아직 안 내려갔네?"
월관의 정원에 월성초를 심으러 온 아랑. 집에 도월이 있는 것을 보고 창문을 열었다.
“응. 이제 갈 일은 없을 것 같아.”
–"누가 퍼뜨린 소문인 건가?"
“주인의 진심 어린 바람이 만들어낸 거였어.”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그러게. 별거 아니어서 다행이야.”
이승에서 만난 아이와 이별을 하고, 도월은 다시 아랑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 — —
“이게 뭐지?”
몇 년이 흐르고, 이승에서의 일을 잊어갈 즈음, 서신이 담긴 푸른색 주머니가 도월의 옷소매로 들어왔다.
⌈안녕, 도월 님.
인사를 제대로 하고 싶고, 안부도 전하고 싶어서
오랜만에 붓을 잡았어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제 짝도 만나고, 아이도 가졌어요.
이제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앞으로 제 가족이랑 잘 지낼게요.
도월 님도 몸 건강히 잘 지내야 돼요.
추신. 도월 님이 사람이 아니란 거, 문서 보고 알았어요.
말도 없이 마음대로 봐서 미안해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 말하지 않을 거예요.
약속해요.⌋
“눈치가 좋은 아이네.”
솔천예도 도월이 인간이 아닌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어느 날, 도월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한쪽에 펼쳐진 문서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안 보려고 했지만 적힌 내용들이 인간이 아님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었다. 정신 차렸을 때에 대부분의 내용을 읽은 후였지.
가장 확신을 했을 때에는 차원문을 통해 문서를 받는 도월을 봤을 때였다.
“아쉽지만 나중을 기약해야지.”
생과 사는 늘 가까운 곳에 있다. 하지만 생(生)과 사(死)만을 가진 존재는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갈 수 없다. 아니.
이어가면 안 된다.
얼굴을 보고 제대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 아이와의 인연은 이즈음에서 마무리 지어야 했다.
도월은 저 아이가 사에 가까워진 어느 날, 저승에 왔을 때에 환생길로 무사히 인도할 수 있도록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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