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저자가 꾸민 일입니다! (1)
이 작은 폐가에 바람이 분다.
휘오오-
귓가를 간질이는 작은 바람 소리.
옷자락이 펄럭이며 바람을 따라 나부낀다.
움직이는 마력량에 비해 터무니없이 미약한 바람에 시현은 표정이 굳었다.
“하필이면 바로 코앞에서···.”
어이가 없어서.
근처도 아니고 코앞이다.
느닷없이 A급 던전이 나타나는 것도 모자라서, 하필이면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라.
가장 우스운 건 마침 시현이 있는 장소가 던전이 생길법한 장소였다는 거다.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나타났다가 가끔 오류를 내는 마력 측정기만 믿고 넘어가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는 거다.
“하, 재수가 안 좋으려니까···.”
소용돌이치며 모든 걸 빨아들일 것같이 생긴 거대한 문을 바라보며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사실 A급 던전이 나타났다고 해도 들어가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시현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삼각산 쪽에 영구 던전이 하나 있었어.’
정확한 위치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하나 있었다는 건 기억난다.
언제 생겨났는지도 모르고, 회귀 후에 있는지 찾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 눈앞에 떡하니 A급 던전이 나타난다?
그것도 이렇게 인기척 없는 폐가에?
“아르르!”
호아의 입질이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가장 본능적인 육감이 발달한 아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얘기.
“··· 듀라한. 수진이 잘 챙겨.”
“네.”
평소의 장난기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뭇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듀라한.
그녀도 예감한 것이다.
저 던전이 곧 터질 거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지 않냐고?
쿠구구-!
··· 안타깝게도 이미 늦었다.
지축을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에 시현은 몸을 낮추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던전이 생겨났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마력의 파도.
분명 비슷한 마력량인데도 위력이 천차만별이었다.
마치 모았다가 방출하는 것처럼.
쿠오오-!
이윽고 소용돌이가 점차 커지더니.
후욱-!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집어삼킨 뒤.
콰아앙-!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냈다.
***
A급 이상 던전의 던전 브레이크는 평범한 던전 브레이크와 차이점이 있다.
첫 번째는 영구 던전.
A급 이상의 던전이 터졌을 때 그 장소에는 무조건 영구 던전이 생겨난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여 황무지로 만든 뒤, 다시 전부 내뿜어 자신의 영역 삼는다.
중앙에 생긴 영구 던전 주위로 지구와는 다른 생태계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몬스터도 등장하게 된다.
영구 던전이 생겨나면 헌터 협회는 대규모 몬스터 진압 작전을 실시하고 방호벽을 둘러 몬스터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
위치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던전이 생겨날 때는 마력량에 비해 파장이 잠잠한 편이지만, 던전 브레이크 때는 폭탄이라도 터진 듯 요란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기 전, 영구 던전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
던전 브레이크에 휘말려 어지러웠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자마자 시현이 본 풍경은.
“네, 네놈들은 누구냐!”
“허공에서 갑자기···!”
“고위 마법사인가!”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판타지 세계관의 알현실이었다.
‘··· 판테아다.’
척-!
시현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근위병의 창에 둘러싸인 후였다.
그가 뭐라고 채 변명하기도 전에.
“저 수상한 자들을 옥에 처넣어라!”
왕이 하명했다.
***
철컹-
무척 익숙한 소리였다.
철창이 닫히는 소리.
“··· 너는 옥살이가 체질이냐?”
“아니··· 이번에는 내가 의도하고 저지른 게 아니잖아.”
듀라한의 이죽거림에 한숨을 푹 내쉰 시현은 제 손을 묶은 수갑을 내려다봤다.
이 또한 중세 판타지 세계관에서 볼법한 수갑이었다.
무식한 철 덩어리처럼 생긴 묵직한 수갑.
제법 단단한 재질에 마력 저하 인챈트까지 걸려 있지만, 큰 어려움 없이 부술 수 있다.
문제는 수갑이 아니라 같이 들어온 이들이었다.
“으으···. 여긴···?”
“일어났어?”
시현은 신음을 흘리며 깨어난 수진을 바라봤다.
A급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휘말리는 건 헌터뿐이 아니다.
일반인도 충분히 던전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 웬 감옥이야?”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시현은 수진이 기절해 있는 동안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간략하게 전달했다.
그러자 수진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 여기 던전 안이라는 거야?”
“음, 조금 다르긴 한데. 그렇게 봐야지.”
영구 던전 안은 아니다.
지금 있는 곳은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기 전 던전과 이어진 곳.
시현 일행이 들어온 던전은 이제 사라져 없어졌다.
따라서 시간도 지구와 똑같이 흐른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 시현 일행은 던전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차원 이동을 했다고 봐야 한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알려주니, 안색이 새파래진 수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불안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우리 못 돌아가?”
“아니. 돌아갈 수 있어. 던전은 아니지만, 퇴장은 가능해.”
원래 A급 이상 던전에서 퇴장하는 것도 게이트를 이용하지 않는다.
즉 게이트가 사라져 던전이 아니게 되어도 시스템이 던전이라고 판단하는 이상 퇴장이 가능했다.
이는 시스템을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도 가능했다.
안도의 한숨을 쉰 수진은 수갑 찬 손목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지금 당장 돌아가면 되는 거야? 어떻게 나가?”
“아니, 나가면 안 돼. 지금 거긴 몬스터 천지니까.”
시현의 대답에 그제야 자신이 A급 던전 안에 있다는 걸 상기한 수진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놀라 순간 깜빡했지만, 던전 브레이크는 기본적으로 몬스터가 뿜어져 나오는 현상이었다.
더군다나 영구 던전 주변에는 몬스터가 정기적으로 소환된다.
지금 나가면 무척 위험했다.
시현 혼자라면 몰라도, 지금은 수진도 있으니.
이런 상황에 대비해 매뉴얼이 따로 준비되어 있긴 하다.
A급 이상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경우 영구 던전 게이트 주변에서 최대 한 달 동안 헌터들이 대기한다.
던전에서 퇴장할 경우 영구 던전의 게이트를 통해 나오니까. 그 주변에서 대기하는 거다.
다시 말해 정확히 몬스터 밭 정중앙에 떨어진다는 얘기기도 했다.
그러니 안전을 고려했을 때 헌터들이 제대로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못해도 며칠, 길게는 한 달은 있어야 한다.
안전하게 나가려면 여기서 보름은 있어야겠지.
“그런··· 보름씩이나···?”
“뭐, 생각보다 살만할 거야.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니까.”
치안이 현대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쁘고, 이따금 몬스터가 도시로 쳐들어오기도 하고, 환경이 근대, 심하면 중세 시대까지 내려가는 걸 제외하면.
뭐, 생각보다 살만할 거다.
그리고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쓰레기 처리를 현대보단 깔끔하게 할 수 있다는 거지.”
“···?”
아직 기절해 있는 스토커를 툭툭 치는 시현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수진.
어깨를 으쓱인 시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기다려. 진짜 기가 막힌 대본을 하나 준비해 뒀으니까.”
어쩌면 스토커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는 기가 막힌 대본을 말이다.
***
사실 시현 입장에선 현 상황이 제법 반가웠다.
물론 수진과 스토커가 함께 들어온 건 달갑지 않았지만.
마침 판테아에 한 번 왔으면 하긴 했다.
때가 되면 수진만 보내고 시현은 계속 남아 있을 예정.
그렇다고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고.
‘이그드라실의 상태만 확인하고 돌아가야지.’
생각을 정리한 시현은 눈을 떴다.
어느새 시간은 저녁.
쇠창살 바깥에는 근위병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따라와라.”
겁에 질린 수진과 달리 시현과 언데드들은 무척 평온했다.
오히려 듀라한은 이런 취급을 받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표정에 심통이 가득했다.
뭐,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내려오신 분이 잠시나마 옥살이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랴.
근위병들은 알현실이 아닌 다른 장소로 그들을 데려갔다.
시현이 기억하기론 재판소가 있는 곳이었다.
뭘 잘못했다고 재판받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 정도는 예측했다.
“···.”
스토커는 영문도 모른 채 옥에 갇히고 이상한 곳으로 끌려가고 있었지만, 조용히 있었다.
하긴. 죽기 직전까지 처맞고 간신히 살아났는데 난동을 부리면 그건 머저리였다.
오히려 지금 이걸 기회라고 여기는지 두리번거리며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뭐, 여기서 도망쳐도 상관없었다.
스토커 정도 수준이면 여기서 탈출할 가능성도 없을뿐더러, 탈출해도 흉악범으로 낙인찍혀 얼마 안 가 죽을 거다.
재판소에 도착하자 저 위 의장석 단상에 근엄한 얼굴로 앉아 있는 재판이 보였다.
주변엔 재판에 참석한 이들이 보였다.
배심원은 아니고, 순전히 재판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다.
한꺼번에 재판할 요량인지 피고인석에 모였다.
피고인석이라고 해도 따로 책상이나 의자가 있는 건 아니었다.
마치 콜로세움의 검투사가 된 심정.
시현은 은근슬쩍 스토커를 앞에 내세우며 재판관이 말하길 기다렸다.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다. 그대들에겐 현재 국왕 암살 미수 혐의가 있다. 이 점 유의하고 발언에 신경 쓰도록.”
국왕 암살이라는 말에 수진과 듀라한은 흠칫 놀랐다.
수진은 일이 생각보다 더 복잡하게 흘러갈 것을 예감해 걱정되어서 놀랐고.
듀라한은 암살 미수라는 말 같지도 않은 혐의를 받아 기분이 나빠서 놀란 것이다.
뭐, 하긴. 갑자기 국왕이 있는 알현실에 다섯이나 되는 사람이 뚝 떨어지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이 부분도 시현이 예상한 상황이었다.
“먼저 발언할 피고는 누구인가?”
이 세계에선 나름 재판하지만 가장 중요한 변호사가 없었다.
검사의 역할은 판사가 했다. 다만 증거 수집은 수사 기관에 의탁한다.
따라서 변호는 자기 스스로 해야만 했다.
“저기···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흠칫-
시현은 옆에 서 있던 수진과 알레프, 듀라한, 심지어 평온하게 잠을 청하고 있던 호아 마저 놀랄 정도로 비굴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이 양반이 뭘 잘못 먹었나?
그러거나 말거나 시현은 자신이 짜 놓은 대본대로 행동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먼저 저와 제 친구들은 이번 사건에 억울하게 휘말렸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억울하다?”
재판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시현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돌인 수진도 감탄할 표정 연기였다.
“저희는 그저 일개 모험가일 뿐입니다. 아직 정식으로 모험가 카드도 없는 말단이죠.”
“평소처럼 F급 모험가 자격을 얻기 위해 약초 채집 의뢰를 수행하던 도중, 제 앞에 선 남자가 다가오더니 말을 걸어왔습니다.
흠칫-!
순간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인지한 스토커가 무어라 항변하려 했지만.
콱-!
듀라한이 그의 등을 꼬집었다.
함부로 아가리 놀리면 곧장 죽여버리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이리 죽나 저리 죽나.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보시다시피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저희는 그를 도우려 했습니다만··· 그래선 안 됐습니다.”
시현은 마치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끔찍한 표정을 지은 뒤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며 눈가를 훔쳤다.
알레프와 듀라한은 물 흐르는 듯한 시현의 연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양반에게 저런 재주가 있었다니.
“순식간에 검은 안개가 저희를 감싸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상처 입은 민간인인 줄 알았던 그가 사실은 간악한 흑마술사였던 것입니다!”
“흑마술사!”
시현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재판관.
생각보다 격렬한 반응에 정말로 일이 꼬였다는 걸 깨달은 스토커가 다급히 항변했다.
“자, 잠깐! 아닙니다! 저는 흑마술사가 아닙니다!”
시현은 항변하는 스토커를 가만 내버려 두었다.
그가 흑마술사라는 건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듀라한 역시 시현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스토커가 입을 놀리도록 두었다.
“오히려 저는 피해자입니다! 제 뒤에 선 창백한 인상의 여자에게 죽기 직전까지 처맞고 방금까지 기절해 있다가 지금 정신을 차렸단 말입니다!”
“흠! 좋다. 여기선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겠군. 마도구를 갖고 오라!”
마도구?
무슨 마도구?
안색이 파리해진 스토커를 바라보며 시현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 작가의말
정보) 법정물 잘 쓸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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