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웅시대(3): 환웅 고마와 재회하다
지난 2년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고 바쁘게 지나갔다.
형인 주호가 무리수를 두지 않았더라면 서자인 동생이 아사달 원정에 성공했더라도 형이 환웅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운명처럼 서자인 동생이 환웅으로 선출되었고 형 주호는 서쪽으로 떠나야 했다.
그러자 아버님이신 환인이 서거하셨다.
그리고 아사달 이전을 위한 성의 건설이 이어졌다.
이런 연이은 사건으로 환웅으로 선출된 후에도 체제를 정비할 시간이 없었다.
모든 것이 정리되자 모든 체제를 새로운 친정체제로 정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각 성을 방문하여 미비한 분야를 정비하도록 하였다.
각 성의 자치를 책임질 가문장도 새로 임명하였다.
아버님이신 환인 때부터 업무를 보던 관리들을 상당 부분 젊은 세대로 교체하여 친정체제로 구성하였다.
관리들을 불러서 지시하였다.
“다섯 개 성의 방어 체계도 수립하도록 하고 지휘체계와 통합된 신호체계도 정하도록 하라.
이웃 부족의 성과 연락 체계도 마련하도록 하라.”
대외적으로도 문제를 점검하여 대처하도록 지시하였다.
“아직 병합되지 않은 인접한 세력을 조사하고 주변 세력을 파악하여 대처 방법을 세우도록 하라.
특히 교류와 교역을 충분히 고려하도록 하라.”
이러한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동안 여러 달이 지나갔다.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던 무렵 한 관리가 이상한 보고를 하였다.
“중앙 대성의 신단수 아래에서 한 여인이 기원을 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의 노천 단군회의장에는 여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신단수 아래 자리는 신성한 곳이다.
특히 중앙 대성의 경우 그 자리는 환웅만이 갈 수 있는 장소였다.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라.”
조사를 한 후 관리가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그 여인은 중앙 대성의 이웃에 있는 성호 부족의 진호 단군장의 딸인 고마라고 합니다.”
“고마라는 여인이라고?”
“그렇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이전에도 몇 번 신단수 앞에서 기원을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고마라는 말에 몇 해 전에 아사달 원정에서 만났던 고마와 그때의 일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 올랐다.
자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던 고마가 생각났다.
고마는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부끄러워서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미소지며 바라보곤 하였다.
거기서 보낸 꿈 같은 이틀이 생각났다.
고마를 생각하였기에 아버님이신 환인이 혼인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절박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너무 늦지 않게 고마가 위험을 무릅쓰고 일깨워주어서 반갑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호 부족의 진호 단군장과 고마를 불러오도록 하라.”
다음날 진호 단군장이 고마를 데리고 찾아왔다.
단군회의실에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진호 단군장 인사드립니다.
제 딸 고마입니다.”
“환웅님께 인사드립니다.
고마입니다.”
환웅을 보자 부끄러워하며 인사하는 고마는 그동안 더 성숙하고 더 이름다워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고마 아가씨는 2년 만에 보네요.
자, 앉으세요.
진호 단군장은 그 후에도 행사에서 몇 번 만났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인사만 하고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떤 아가씨가 신단수 아래서 기원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이 고마 아가씨일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고마 아가씨였네요.”
“저도 관리가 찾아오기 전에는 제 딸 고마가 여기까지 와서 무엄하게도 이곳 신단수 아래서 기원을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고마 아가씨가 하늘에 기원하는 모습으로 내게 기억을 생각나게 해 주어 고맙습니다.
고마 아가씨는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졌네요.”
고마는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제 딸은 집사람이 꾼 태몽에서 곰을 보았다고 해서 고마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아사달 원정을 오신 환웅님을 만난 후부터는 어떤 혼처도 막무가내로 마다하고 있습니다.
환웅으로 선출되신 후부터는 우리 부족 신단수 아래서 기원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성이 완성되자 이리로 온 모양입니다.”
“무엇을 기원한다고 합니까?”
“물어도 말을 안 합니다.
한 번 직접 물어보십시오.”
“고마 아가씨, 무엇을 기원하였나요?”
그러자 고마는 이렇게 말했다.
“제 기원이 이루어지면 하늘에 감사드리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마 아가씨, 내가 그 기원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면 안 되겠어요?”
그러자 고마는 환웅을 바라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무어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열흘 후에 저희 성을 방문해 주셨으면 합니다.
환웅님의 어머님도 함께 모시고 오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꿈에 그리던 환웅을 2년 만에 만난 고마는 뒤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돌아갔다.
열흘 후에 어머님과 함께 성호 부족의 진호 단군장을 방문하였다.
진호 단군장과 고마 그리고 가족들이 성 밖까지 나와서 반갑게 맞이하였다.
진호 단군장의 안내를 받아 단군회의실로 들어갔다.
“이곳까지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이 성은 내게 아주 낯익은 곳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곳입니다.
나아가 내일의 나를 있게 할 곳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어머님도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맞습니다.
그때 단군장님이 좋은 결정을 해 주신 덕분에 모든 일이 잘 이루어져서 지금과 같은 평화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때 환웅님이 모두가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여 지혜롭게 대처하시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다쳤을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서로 믿고 마음을 합하니 이제 이 아사달 지역이 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동쪽으로 더 나아가야 하겠지요.”
“어머님, 고마 아가씨와 저는 잠시 밖에서 좀 걷다 오겠습니다.”
고마와 같이 밖으로 나가서 둘레를 걸으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이 밖으로 나간 후 어머님이 고마의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고마 어머님, 따님을 고마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가 꿈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네, 꿈에 곰을 보았다고 이름을 고마라고 지었습니다.”
“자세하게 예기해 보세요.”
“꿈에서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빌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쪽씩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무 쪽이라면 출산을 한 후 금기를 하는 삼칠일인 스무하루를 말하고 100일이면 이제는 안심할 수 있다고 100일 잔치를 하는 날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 시간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위험한 시기를 지나 어느 정도 안전해지게 되는 기간이지요.
그리고 쑥은 그때 집 대문에 거는 금줄에 사용하구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곰과 호랑이 중에서 곰만 그 기간을 견뎌내었습니다.
그러자 곰이 아가씨로 변하였지요.”
“호랑이가 견뎌내었다면 사내가 태어났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렇지요.
그런데 고마라고 지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이유라뇨?”
“이 땅에서는 오래전부터 짐승 곰과 상관없이 곰이라는 말이 민족을 이끌어갈 하늘의 정기를 받은 위대한 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특히 동쪽의 예맥 지역에서는 그런 곰에 대한 숭배가 더 대단합니다.
우리 아이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였으나 여자여서 영도자는 될 수는 없으니 위대한 영도자를 낳으라고 고마라고 지었습니다.”
그때 고마의 아버지인 진호 단군장이 말했다.
“딸 자랑 같지만 고마는 어려서부터 더없이 지혜롭고 대의를 보면 물러섬이 없이 여장부처럼 대처했습니다.”
“그런 태몽을 가지고 태어나서 아름답고 매사에 지혜로우면서 거리낌이 없나 봅니다.
누가 감히 왕성의 신단수에서 기원할 수 있겠습니까?”
“딸을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며느리로 삼아 주시면 더없는 영광이겠습니다.”
“좋은 배필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하늘이 내린 행운입니다.
환웅의 좋은 배필이 될 것 같습니다.”
부모들이 고마의 태몽 이야기를 하는 동안 환웅과 고마는 주위를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마 아가씨, 이제 무엇을 기원하였는지 말해줘요.
아니, 그보다 왜 우리 성에 와서 기원을 하였나요?”
고마는 절박했던 심경이 다시 생각나는지 눈물을 삼키며 이야기하였다.
“우리 성에서 그렇게 사랑스럽게 마주 보며 웃어주던 환웅님이 떠나가신 후 오랫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어요.
환웅님이 되셨다는 소식이 들려도 아무 기별도 없었구요.
바로 이웃 성으로 천도한 후에도....”
고마는 감정이 복받쳐서 말을 잊지 못하였다.
“환웅님이 다른 여인과 결혼하고 나를 영영 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환웅님의 대성의 신단수를 찾았습니다.
환웅님께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전에 환인이신 아버님이 혼인을 권하셨습니다.
그때 고마 아가씨를 생각하면서 제가 배필을 찾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 후에 제 운명을 걸어야 하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게 되어서 다른 일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지요.
어쩌면 조금 더 시간이 지났더라면 내가 고마 아가씨를 찾아갔을 겁니다.”
그제야 고마는 웃으며 말했다.
“무어라고 기원하였는지 알고 싶으시다고 하셨죠?”
“무엇을 기원하였나요?”
“환웅님의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기원했어요.”
그렇게 말하고 고마는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눈에 아직 눈물자국이 있는 채로 웃는 고마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마주 보며 웃었다.
다시 부모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천생연분인 것 같습니다.
새해가 되면 이른 봄에 혼인을 하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더 없이 감사합니다.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가문은 오는 새해에 백년가약을 맺기로 굳게 약속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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