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왕검(1): 하북지역 한과 예맥 통합을 계획하다

19대 왕검은 18대 왕검의 장자로서 이름은 시천이다.
기원전 20세기 초에 아버지인 18대 왕검을 계승하여 19대 왕검으로 즉위하였다.
선친인 18대 왕검이 장수하였으므로 19대 왕검은 중년의 나이에 왕검으로 즉위하였다.
시천은 오랫동안 부친을 보좌하며 통치를 배웠다.
그러면서 자기가 왕검이 되면 이룩하고 싶은 대업을 생각하곤 하였다.
시천은 사람들로부터 철저하면서 야망이 있는 인물로 평가되었다.
그런 인물이 너무 늦게까지 세자로 지내는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19대 왕검은 오랜 기다림 끝에 왕검으로 즉위한 후 상당한 시간에 걸쳐서 모든 것을 친정체제로 개편하였다.
1대 왕검 이후 3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조선은 뛰어난 왕검들이 대를 이어서 통치하면서 왕정이 완전히 정착되고 안정적인 사회에서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러한 발전을 발판으로 조선은 이제 앞으로 수백 년 동안 이어지게 되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발전하는 동안에도 많은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전통을 고수하면서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도 있었다.
그동안 변방의 여러 부족이 조선에 새로 복속해 왔다.
특히 노합하 유역 북서쪽의 서남목륜하와 난하 상류 지역의 부족들이 새로 조선에 합류하였다.
교래하의 북부에서도 추가로 합류하는 부족이 있었다.
그런 합류를 통해서 직접적 관할 영토가 늘어나기는 하였지만 조선의 영토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조선에서는 그동안 사회가 안정되고 농토가 늘어나고 농업기술이 발전하면서 농업 수확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였다.
그와 함께 인구도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증가한 인구를 수용할 새로운 성들이 기존의 성들 옆에 건설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성에 세워진 주거지는 변함없이 원형의 반움집 형태였다.
주거지 안에는 두 개의 기둥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개의 기둥 사이에 타원형 형태로 파낸 화덕이 설치되었다.
이 기둥은 지붕을 받치면서 음식물을 익히거나 데울 때 그것을 매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주거지 주위에 저장구덩이도 여전히 설치되었다.
성에는 단군회의장도 예전처럼 설치되었다.
성을 지을 때 신단수로 선택된 나무도 여전히 신성하게 장식되었다.
오래된 성의 신단수는 이미 고목이 되어 있었다.
그러한 단군회의장에서는 부족의 성인 남자들이 참석하여 열리는 단군회의가 변함없이 열렸다.
거기서 단군장이 선출되었으며 부족의 여러 가지 일들이 논의되었다.
부족 사회는 여전히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였다.
계급제도가 없었으며 당연히 노예제도도 없었다.
이처럼 조선에서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부족에서는 여전히 평등하고 민주적인 단군회의 체제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1대 왕검시대에 처음으로 조선이라는 국호를 정하고 수도를 아사달로 하여 민주적 체제의 왕정이 시작되었으며 왕위는 세습되었다.
왕정으로 되면서 국가의 의결기관이었던 전체 단군장회의를 종식시키고 그대신 구역의 단군장들을 대표하는 단군장대표를 선출하여 중앙에서 왕검의 통치를 보좌하게 하였다.
단군장대표를 통해 구역 부족의 대표성과 국정 참여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게 한 것이다.
이전에는 전체 부족을 10개 구역으로 나누어 각 구역에서 구역 단군장 중에서 1명의 단군장대표를 선출하게 하여 총 10명을 선발하였다.
10명의 단군장대표 중 총책임자가 1명, 부책임자가 1명이었으며 나머지 8명은 각 부서를 담당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단군장대표는 2명이 추가되었다.
기존의 8개 업무 분야인 재무, 국방, 외교, 내무, 제의, 법, 단군회의, 의전 외에 성의 건축을 관장할 건축 담당 단군장대표와 교역을 담당할 단군장대표가 추가되었다.
교래하 유역과 대릉하 유역에서 구역이 각각 1개씩 늘어났다.
이러한 단군장대표는 단지 그 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단군장대표가 등장함으로써 조선의 정치가 크게 변하였다.
단군장대표가 역동적인 정치의 중심이 된 것이다.
중앙정치에서 단군장대표는 왕검에게 각 구역의 의사를 전하고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서 건의하고 함께 논의하였다.
이것은 이전에 관리들에 의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전체 조선의 의사가 전해지고 논의되는 것과 같았다.
중앙의 통치에서 단군장대표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의미가 커지면서 각 구역에서도 선출되는 단군장대표의 의미가 커지게 되었다.
각 구역에서는 구역의 전체 단군장들과 그들 중에서 선출되며 중앙정부에서 구역을 대표하게 되는 단군장대표라는 체제가 새롭게 정립되었다.
그러한 상황은 부족의 단군장을 선출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이전에는 많은 경우에 단군장이 세습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족에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부족 단군회의가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
부족의 단군장은 단군장대표로 선출될 자격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장을 선출할 때 이후에 자기 부족의 단군장이 단군장대표로 선출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자를 단군장으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각 부족은 단군장을 선출할 때 자기 부족을 이끌 인물을 넘어서 단군장대표로 선출될 만한 인물로서 특별한 전문성을 가진 인물을 뽑게 되었다.
이제는 부족의 단군장을 선출할 때 세습을 넘어서는 새로운 기준이 생긴 것이다.
물론 세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더 설득력 있고 자유로운 객관적 기준이 확립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기준은 이후의 국가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단군장대표는 부족과 왕검을 연결하는 중계자 역할도 하였다.
특히 왕검이 자녀들의 배우자를 선정할 때 단군장대표의 소개나 의견이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단군장대표는 자기가 알고 있는 뛰어난 배우자 후보를 소개하거나 다른 단군장대표의 자녀를 소개하였다.
많은 경우 그렇게 해서 혼사가 이루어졌다.
현 왕검의 부인도 대릉하 유역의 단군장대표의 딸이었다.
자녀가 왕검 가문에 출가를 하면 통치의 공정성을 위해서 그 단군장대표는 대표를 그만두고 부족의 단군장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주변 세력 중 예맥은 요서를 한 계열이 장악하고 요동의 중앙 세력이 와해된 이후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산동 반도 서쪽의 강북지역에서는 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원전 22세기 초에 우(禹)에 의해서 처음으로 “하(夏)”라는 국명을 가진 나라가 세워지고 기원전 22세기 중반에 우의 사후에 그 아들 계(啓)에 의해 왕위가 처음으로 세습됨으로써 하나라가 세습 왕조로서 확립되었다.
그 이후 하나라는 세력 범위를 점점 넓혀가고 있었다.
하나라는 주변의 자기 민족을 병합한 후 언젠가는 북쪽과 동쪽의 이민족인 한과 예맥 계열과 접하게 되고 공격하게 될 것이다.
왕검은 즉위한 후 이 모든 것들을 점검하고 숙고하여 필요한 경우 새로운 젊은 책임자로 교체하여 친정체제를 구축하였다.
민족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왕검은 특히 군사를 담당하는 단군장대표를 젊고 뛰어난 자로 임명하였다.
왕검은 오랫동안 세자로 지내면서 오래전에 선조들에 의해서 천명되었으나 그동안 이룩하지 못했던 민족 대통합이라는 오랜 염원을 자기 손으로 이룩하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국가가 여러 가지 면에서 중흥기를 맞은 지금이 그것을 실행할 적기라고 생각하였다.
친정체제로 모든 것들을 정리한 왕검은 민족 대통합을 위한 구상에 몰두하였다.
상황으로 보아서 서쪽 하북지역의 예맥과 한 계열의 통합이 더 시급해 보였다.
그래서 서쪽 민족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왕검은 조선이 처음으로 대규모 병사를 이끌고 외부 세력을 정복해야 하는 이 출전을 앞두고 결정권자로서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였다.
앞으로 이룩해야 하는 민족 대통합은 전쟁을 요구한다.
전쟁은 어느 경우에든 국민을 죽음의 위험으로 내몬다.
적이 침입한 전쟁이 아니라 우리가 전쟁을 일으킬 필요성을 확신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민에게 그것을 확신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더 힘들다.
그것이 조선 창건 후 민족 대통합이라는 역사적 염원이 오래전에 천명되었음에도 지금까지 달성되지 못한 이유이다.
아주 많은 것들이 그런 확신을 위해서 필요하다.
그중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은 예지를 가진 통치자의 확신이다.
그것이 역사를 만들고 견인한다.
그 확신이 국민의 확신을 견인한다.
왕검은 그 확신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승리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왕검은 단군장대표 회의를 소집하였다.
“이전에 논의한 서쪽의 예맥과 한 계열의 통합과 출전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소.”
“전하, 그 출전은 이전에 이미 단군장대표 회의에서 논의되었으며 모두가 더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최적기라고 생각합니다.”
왕검은 각 분야를 맡은 단군장대표에게 출전을 위해서 필요한 업무를 파악하여 준비하도록 지시하였다.
필요한 정보도 최대한 수집하여 대비하도록 하였다.
왕검은 군사를 맡은 단군장대표와 그 휘하의 관리들과 함께 그동안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출전 계획을 세웠다.
우선 통합 대상인 한과 예맥 계열의 전체 지역 및 그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 경계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저항이 더 거셀 것이 분명한 예맥 지역을 다시 구별하였다.
그 지역 중에서 공격 대상이 될 주민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을 구별하였다.
그리고 진입이 가능한 이동로를 확인하고 공격 순서를 정하였다.
일차적인 공격로는 요서에서 북상하여 난하 상류를 넘은 후 서쪽으로 진격하여 발해만으로 흐르는 영정하 상류 지역까지 장악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공한다면 이차 진격로는 영정하를 건너서 남하하여 남쪽 지류인 당하에 이르는 전체 지역을 장악한 후 당하를 하나라와 조선의 경계로 삼는 것이었다.
영정하를 넘어 당하 유역까지 완전히 장악하여 당하를 하나라와 조선의 경계로 삼는 것이 이번 출전의 최종 목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계획들이 구체화 되고 마무리가 되어갔다.
이제는 거기에 따라 병사들을 차출하여 필요한 훈련을 시키고 최종적으로 무기를 정비하는 것이 남아 있었다.
오는 봄에 출전을 하기 위해 마무리 준비 작업이 한창이던 때에 왕검이 갑자기 병이 들었다.
젊지는 않았으나 아직은 건장하던 왕검이었다.
그동안 왕검으로 승계한 후 오랜 민족의 숙원인 민족 통합의 대업을 이루기 위한 준비에 과도하게 몰두하여 건강을 해친 것이다.
병이 든 후 건강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왕검은 증상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위기를 느꼈다.
왕검의 눈에서는 그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안타까웠던 오랜 세자 시절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왕검이 되어 기쁜 나머지 잠을 설치며 내일을 꿈꾸었었다.
그리고 오랜 민족 대통합의 대업을 자신의 과업으로 정한 그날의 벅차던 순간이 떠올랐다.
힘든 줄 모르고 달려왔던 준비의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출정을 눈앞에 둔 지금 떠나야 한다.
기적은 없는가.
왕검은 간절히 기적을 원하였다.
그 순간 병든 몸을 부축에 의지해 가며 간신이 자기에게 관을 씌워주시던 선대 왕검이었던 아버님이 생각났다.
촉촉이 젖은 눈에 기대와 신뢰를 가득 담고 자신을 바라보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늦어서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왕검은 곧 단군장대표들을 소집하고 장자와 가족들을 오도록 하였다.
단군장대표와 가족들이 모두 모인 후 왕검은 장자인 정호를 앞으로 나오도록 하였다.
왕검은 다음 대를 이을 왕검 승계는 장자인 정호에게 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리고 장자를 가까이 불러서 당부의 말을 하였다.
“네가 이제는 성인이 되어서 안심하고 책임을 맡길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너도 내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너의 뜻에 맡기겠다.
다만 이 과업은 수백 년 동안 꿈꾸면서 미뤄온 것이고 그만큼 절실히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면 때가 이르러 너를 도울 것이다.
내 아들인 너를 믿는다.”
왕검은 모두가 간절히 바라며 애쓴 보람도 없이 회복하지 못하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조선 민족의 오랜 염원인 민족 대통합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꿈꾸었으나 출전을 목전에 두고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러나 그가 뿌린 씨앗은 결코 헛되지 아니할 것이다.
왕검이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져서 곧 사망하였기에 살아 있을 때 승계를 할 여유도 없었다.
왕검의 부재는 있을 수 없기에 사망 직후 장례를 치르기 전에 긴급히 승계 의식이 이루어졌다.
승계 의식은 단군장대표와 가까운 단군장과 부족민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단군장대표의 총책임자가 사회를 보았다.
“지금부터 새로운 왕검님의 즉위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모두 일어서서 신단수를 향해 서 주십시오.
4배를 하겠습니다.
일배, 이배, 삼배, 사배.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전하께서는 앞으로 나서서 다시 4배를 해 주십시오.”
왕검은 4배를 하였다.
“전하께서는 좌석에 앉으시고 부책임자는 왕검님께 관을 씌워드리고 복장을 갖추어 드리십시오.”
부책임자가 앞으로 나오고 관리가 관과 복식이 든 상자를 들고 따라 나왔다.
부책임자는 왕검에게 관을 씌워주고 복식을 입혀 주었다.
“이제 새로운 왕검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전하께서 말씀이 있겠습니다.”
왕검이 일어서서 앞으로 나섰다.
단군장들이 일어서서 힘찬 박수를 보냈다.
박수가 가라앉고 모두 자리에 앉자 왕검은 승계 인사를 하였다.
“지금 여러분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보통 때라면 이 자리는 더 힘찬 박수를 받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아버님인 왕검께서 뜨거운 마음으로 꿈꾸던 대업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이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그 꿈이 어떤 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기에 이제 그 꿈을 나의 꿈으로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나와 함께 기꺼이 그 꿈을 나누어 안고 새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라 믿습니다.
그것이 그 어떤 것보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혼을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함께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갑시다.”
모든 참석자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오랫동안 꿈과 뜻을 함께하는 박수를 보냈다.
새로 등극한 왕검은 이어서 아버지를 선산에 장엄하게 장례를 지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아버님이 세우신 뜻을 꼭 이루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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