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시대(7): 기자가 왕검조선의 수도 아사달을 점령하다

요동에서 출발한 기자가 이끄는 예맥 군사는 요서 원정에서 염려하였던 왕검조선군과의 첫 전투에서 승리하자 사기가 충천하였다.
군사들은 첫 격전지였던 요서 동부의 의무려산맥 가운데 있는 고개의 방책을 철거하여 길을 열었다.
기자는 언덕의 정상에 올라 병사들 앞에서 선언하였다.
“지금부터 이곳은 우리의 땅이다.”
군사들은 환호하며 첫 승리를 자축하였다.
기자의 군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조선의 수도인 아사달(현 요서 조양)을 향해서 출발하였다.
가는 길 저쪽 산 아래에는 크고 작은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기자의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은 왕검조선 전체에 전해지고 가까운 지역에는 의무려산맥에서의 전투에서 왕검조선군이 참패했다는 소식까지 알려졌다.
많은 사람은 이미 서쪽이나 남부 해안가로 피난을 떠났고 남은 사람들도 집 안에 숨어 있었다.
좀 큰 마을을 지나갈 때는 가끔 한두 사람이 멀리서 조심스레 바라보기도 하였다.
전진하던 기자의 군사는 3일째에 대릉하의 북쪽 지류인 망우하를 만나게 되었다.
지휘관은 병사들에게 뗏목을 만들도록 하였다.
강폭이 넓지 않았으므로 뗏목을 연결하여 다리를 만들고 병사들이 건너도록 하였다.
강을 건너면서 하루를 지체하였기에 빠르게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주변에 마을이 많아지는 것으로 보아 아사달이 멀지 않았다.
마을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 사람들도 피난을 가거나 당분간 예맥의 진격로에서 멀리 떨어진 서쪽이나 남쪽으로 피해 있었다.
한편 아사달에서 방어 준비를 하고 있었던 80대 왕검과 관리들은 의무려산의 전방수비대가 방어에 성공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성안은 물론이고 성 밖까지 피난 온 백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왕검이 피난을 가면 따라가려는 것이다.
모두가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을 때 관리들이 두 명의 병사를 데리고 왔다.
병사는 왕검 앞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보고하였다.
“전방수비대가 적의 공격을 받아 전멸하였습니다.
저희가 지름길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왔으니 이삼일 안에 적이 이곳으로 올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검과 관리들은 절망하였다.
적어도 닷새 정도만 적을 막고 적의 사기를 꺾어주면 아사달에서 좀더 철저히 준비하여 승부를 걸려고 하였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누구보다도 절망한 사람은 왕검이었다.
왕검은 몇 년 전에 젊은 나이로 새로 즉위하였다.
북부 지역을 예맥에 빼앗긴 후 100여 년 동안 여러 왕검이 교체되었으나 아무도 수복하지 못했다.
왕검은 왕자 시절부터 북부 영토 수복을 꿈꾸어왔다.
왕검으로 즉위하자 그동안 관리들과 적을 정복할 방책을 논의해 왔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면 오히려 아사달이 또 다른 예맥의 적에게 둘러싸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망국의 통치자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왕검은 회의를 열었다.
“성을 지키고 조선을 지킬 비책을 말해 보시오.”
하지만 관료들은 피신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전하, 지금은 떠나셔야 합니다.
떠나서 후일을 기약하셔야 합니다.
지금 당장 떠나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절망한 왕검은 처절한 심정으로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나는 아사달을 떠날 수 없소.
1,400년 역사의 이곳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이오.
우리 성은 견고하오.
적을 막을 방법이 있을 것이오.”
“전하, 전하께서 안 계시면 조선도 없습니다.
성 안팎에 가득 찬 백성들을 생각하십시오.
저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끄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곳을 버리면 저 남쪽 반도 남부에 가 있는 우리 백성들은 이제는 정말 의지할 데가 없게 되오.”
왕검이 계속 망설이자 총책임자 관리가 주도하고 나섰다.
“우리는 대릉하 상류의 객좌 지역으로 갈 것이오.
관리를 둘로 나누겠소.
전하를 모시고 이동할 사람들과 여기 남아서 아사달을 사수할 사람들이오.
우선 내무를 맡은 군장은 전하를 모시고 갈 준비를 해 주시오.
국방 담당 군장은 아사달 성을 사수할 지휘관을 찾아주시오.”
그때 한 사람이 나섰다.
“전하, 제가 아사달에 남아서 성을 지키겠습니다.”
“명진 군장 아니시오.”
그는 왕검 가문의 부족인 태원 부족 군장으로 젊은 왕검에게 많은 좋은 조언을 해 주던 원로 군장이었다.
누구나 망설이는 일에 의외의 사람이 나서자 모두가 놀랐다.
명진 군장은 왕검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었다.
“전하, 제가 여기에 남아 목숨을 다해 아사달을 지키겠습니다.
이 땅은 아주 오래고 오랜 제 고향입니다.
다만 전하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명진 군장을 바라보았다.
“제 조국 조선을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 주십시오.
지금은 떠나셔야 하지만 후일 꼭 돌아오셔서 이 땅에 조선을 다시 세워 주십시오.
그러면 저와 병사들은 지하에서 만세를 부를 것입니다.”
그러자 왕검은 울음을 삼키며 다가와서 명진 군장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약속을 꼭 지키겠소.
내 조국이기도 한 조선을 반드시 지키겠소.
내가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후손에게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전하겠소.
명진 군장이 이곳을 맡아 준다니 이제 아사달을 맡기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소.”
명진 군장이 나선 마음을 헤아린 왕검은 관리들에게 내일 아침까지 떠날 준비를 하도록 지시하였다.
명진 군장은 국방을 맡은 군장과 아사달을 지킬 병사에 대해 의논하였다.
각 군장들이 데리고 왔거나 아사달 서쪽 지역 군장들의 사병들은 모두 아사달을 떠나 객좌로 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왕검의 친위 부대도 왕검을 호송하여 객좌로 떠나도록 하였다.
거기서 결집하여 마지막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하였다.
아사달에는 기존의 성을 지키던 병사들과 명진 군장의 사병이 남기로 하였다.
명진 군장이 남기로 하자 아사달 대성에 살고 있던 태원 부족의 많은 부족민이 오랜 고향인 이곳에 군장과 함께 남겠다고 하였다.
남아서 군장님이 싸우는 것을 돕겠다고 하였다.
모든 것이 결정된 후 국방을 맡은 군장은 떠나기 전날 남아서 성을 지킬 군사들을 위한 무기를 최대한 마련하도록 하였다.
성안과 밖의 백성들을 한 줄로 세워서 강에서 성까지 투석기에 쓸 돌을 밤늦게까지 나르도록 하였다.
장인들과 남자들을 전부 모아서 밤새도록 활과 화살을 만들게 하였다.
긴급하게 준비를 마친 왕검과 군장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아사달을 출발하여 대릉하 상류의 객좌로 향했다.
수많은 백성이 고향을 돌아보고 눈물을 삼키며 뒤를 따랐다.
떠날 사람들이 성을 나간 다음 명진 군장은 지휘관과 병사들을 집합시켰다.
“우리가 할 일은 가능한 한 오래 아사달을 조선의 땅으로 지키는 것이오.
그만큼 떠나간 사람들이 더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소.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가능성 더 많아집니다.
아사달은 1,400년 조선의 수도이며 혼이 깃든 곳이오.
이곳을 지키는 것이 조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적이 함부로 이 땅에 들어서지 못하게 하시오.
모두가 한마음으로 조국 조선을 지킵시다.”
주저하던 병사들도 결연한 마음으로 배치된 자리로 돌아갔다.
투석기는 적의 진입로를 고려하여 가장 효율적인 곳에 배치하였다.
명진 군장은 성의 각 지점의 병사들을 점검하면서 이렇게 지시하였다.
“목숨을 아껴라.
목숨을 적에게 내주지 마라.
살아 있어야 적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성 위에 유리한 곳에 있다.
무기를 아껴라.
핵심은 적이 성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동료들과 협력하여 가장 효율적으로 방어하라.”
왕검이 떠난 다음 날 오후에 기자 군사가 아사달에 도착하였다.
예맥 군사들은 산 위에 웅장하게 서서 깃발이 펄럭이는 대성을 처음으로 보고 놀랐다.
기자 군사는 그날은 성 주위에 군사만 배치하였다.
다음 날 아침 군사들이 집합하자 기자가 공격을 앞두고 선언하였다.
“우리는 강하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그러니 병사가 아닌 자는 공격하지 마라.
부상자를 살해하지 마라.
조선은 특별한 민족이다.
오랫동안 평등한 사회였으며 지금도 노예가 없다.
그들은 인간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을 분노하게 하지 마라.
그들은 이제 우리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함께할 같은 민족으로 대하라.”
기자의 군사는 전략 지역에 배치되어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조선 군사들은 성을 둘러싼 대규모의 예맥 군사의 수에 놀랐다.
하지만 적을 마주하자 오히려 용기가 솟아났다.
성과 동료를 믿으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 그리고 남은 가족을 지키려는
목숨을 건 애국심이 불타올랐다.
성에 남은 주민들 가운데 건장한 남자와 여자들이 명진 군장을 찾아왔다.
“군장님 필요한 것을 말씀해 주시면 무엇이든지 돕겠습니다.”
“아직은 괜찮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하겠소.”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예맥의 기자 군사였다.
성과 찌를 파괴하기 위해서 대형 투석기를 발사하였다.
그러나 왕검이 머물던 대성은 견고하게 축성되어서 잘 견뎌내었다.
게다가 성 위에서 대형 돌이 날아와서 투석기를 파괴해 버리기도 하였다.
예맥군 지휘관은 투석기를 쏘면서 병사를 성 밑으로 진입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성에서 화살이 날아오고 주먹돌이 날아와서 병사들이 쓰러졌다.
그렇게 변화 없이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에는 예맥군이 공격을 좀 더 집중적으로 하였다.
바위와 주먹돌 투석기를 한꺼번에 쏘면서 많은 병사가 성 밑으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성 위에서는 돌을 피하느라 충분한 대응을 못하였다.
성 밑에 도달한 예맥군은 갈고리를 던져서 성에 걸고 올라오려고 하였다.
위기가 닥치게 되자 조선군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필사적으로 나서서 적을 막아내었다.
그러면서 희생이 늘어서 조선 병사의 수가 점점 줄게 되었다.
그러자 명진 군장은 주민들에게 투석기에 돌을 실을 때 돕도록 하였다.
예맥군은 그날 밤 야간에 포복으로 은밀히 성 밑으로 진입하였다.
막 갈고리를 던지려고 할 때 성 위에서 돌과 화살이 비 오듯이 날아왔다.
진입하였던 많은 병사가 돌아오지 못했다.
3일째가 되어도 성을 공략하지 못하자 기자는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오늘 중으로 성을 점령하시오.
적은 수가 얼마 되지 않소.
효과적인 전략을 찾으시오.”
“성을 점령하려면 성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을 부수거나 넘어야 합니다.
가장 취약한 곳을 찾아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합니다.
무기와 병력과 장비 모두 한꺼번에 최대로 투입하여 순간적으로 최대로 공격하여 적을 장악한 후 순식간에 성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지휘관들은 논의 끝에 성문 쪽 구간을 목표로 정했다.
그중에서도 성문이 핵심 목표였다.
많은 투석기를 그 앞으로 집중시켰다.
돌을 충분히 준비하였다.
성으로 진입할 공격조도 가능한 성에 가까이 전진하여 대기하도록 하였다.
“공격하라.”
총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전체 투석기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침내 바윗돌에 맞은 성문이 부서지기 시작하였다.
주먹돌까지 비 오듯이 날아가니 조선 병사는 성문 쪽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성문이 부서져서 드디어 진입할 간격이 벌어졌다.
다시 몇 번 더 바위가 날아들자 상당한 간격이 생겼다.
“성안으로 진입하라.
성을 넘어 공격하라.”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은 한꺼번에 성으로 돌진하였다.
일부는 칼을 빼든 채 성문으로 진입하였다.
다른 많은 병사는 성 위로 갈고리를 던져서 성벽을 기어 올랐다.
성안으로 들어서니 성벽 쪽에는 조선군 병사의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예맥군의 저 앞에는 조선군 병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예맥군의 집중 공격이 있자 명진 군장은 이제 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3일을 지켜내었으니 왕검 일행이 객좌에 도착해서 방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을 것이다.
명진 군장은 예맥군의 집중 공격이 있자 적이 성안으로 진입하기 전에 성안의 주민들에게 전부 집 안으로 들어가 절대로 나오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성 배후를 지키던 지휘관에게 일부 부하들을 데리고 지금 당장 성 후문으로 나가서 산을 넘어 객좌로 가라고 명했다.
지휘관이 망설였다.
“당장 떠나라.
여기 있으면 이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죽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객좌에는 제대로 된 지휘관이나 병사가 없다.
달려가 목숨을 걸고 전하를 구하라.
그것이 조선을 구하는 길이다.
그래야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올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네들이 떠날 수 있도록 막을 것이다.”
지휘관은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눈물을 삼키고 부하들을 재촉하여 성을 빠져나갔다.
그런 후 명진 군장은 나머지 병사들과 함께 적이 진입할 쪽을 마주 보고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였다.
적은 성을 넘어왔으나 조선 병사들이 막아서자 선뜻 공격하지 못하였다.
점점 더 많은 병사가 성으로 진입하자 예맥군은 함성과 함께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 순간 조선 군사 뒤에서 엎드리라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조선군이 모두 엎드리자 그 뒤에서 주먹돌 투석기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예맥 군사들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조선 군사들이 적진으로 돌격하였다.
투석기 공격에 쓰러지고 당황하던 예맥군은 적이 공격하자 진열을 정비하여 반격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지막 조선 병사까지 쓰러졌다.
예맥군은 환호하였다.
그렇게 하여 1,400년 동안 왕검조선의 수도였던 요서의 아사달은 예맥의 공격에 함락되어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
압록강 중류 유역을 기원지로 하는 예맥 세력은 요서를 장악하고 번영하였으나 오래전에 하북 지역에서 요서로 진입한 한 계열에 밀려서 요서를 떠나야 하였다.
예맥은 그 후 오랜 기다림과 부흥의 시간을 지나서 2,000년 만에 다시 요서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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