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데자뷰(1)

쿠구궁!
갑자기 알 수 없는 탑이 하늘을 뚫고 나온다.
끝없이 뻗어있어 하늘과 땅을 잇는 탑,
흑암과 같은 어둠에 싸인 외벽은 광택이 없고 매끄럽다.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많은 문양과 기호들이 새겨져 있다.
가만히 그 탑을 바라보기도 잠시,
탁탁탁-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집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
‘또 이 꿈이야?’
···
‘이제 슬슬 느려질 때 됐는데.’
꿈에서 도망가다 보면 달리기가 잘 안돼서 답답했던 적이 있는가.
듣기론, 속에서는 근육이 쉬고 있고 주변에서 처리할 정보.
즉, 오감을 바탕으로 한 정보가 없으니 혼돈돼서 그렇다는데
그런 건 다 엿 먹으라 하고 벌써 몇 번째 느려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서히 느려지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
그러다 간신히 집에 도착하고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문을 연다.
안은 난장판이다.
현관에서부터 무겁고 비릿한 피 냄새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며 숨을 막히게 하고,
거실은 더 이상 집으로 부를 수 없는 모습으로 구름 벽지 위에는 핏방울이 여기저기 튀어있는 데다
마치 추격이라도 벌어진 듯 테이블이 뒤집혀 있다.
바닥은 짙은 피가 고여 있었고,
그 피의 선은 안방까지 쭉 뻗어 있었다.
‘꿈인데 왜 냄새는 맡아지는 거야. 너무 실감 난단 말이지?
이제 슬슬 끝날 때 됐는데. 에휴.’
긴장감이 감도는 침묵 속에서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피를 밟을 때마다 끈적거리는 소리가 좁은 공간을 울렸다.
떨리는 손으로 방문을 열고나면
벽에 남은 손자국, 저항한 흔적, 부서진 가구,
그리고 그 중간에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는 시신들.
그리고 문을 여는 나와 어둠 속에서
나를 천천히 바라보며 활짝 미소 짓는···
“허억, 허억.. 매번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네.
벌써 몇 번째야.”
데자뷰,
처음 해 보는 일이나 처음 보는 대상, 장소 따위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현상으로
뇌가 저장된 기억의 자취를 더듬는 과정에서 기억의 착각이나
신경 세포의 혼란으로 정보 전달이 잘못되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꿈을 자주 꿨다.
어떤 날은 태풍에 휩쓸려서 하늘을 날아다닌다던가,
어떤 날은 티라노사우르스에게 잡아먹힌다던가,
전반적으로 유치하지만,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꿈속에서 느낄 수 있어 재밌다.
티라노사우르스 입안의 눅눅한 공기와 태풍에 휩쓸려서 맨몸으로 하늘을 붕붕 떠다니는 느낌을 언제 느껴보겠어.
고등학생 들어서는 비현실적인 꿈보다 현실적인 꿈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
그때부터 데자뷰를 자주 느꼈는데,
꿈속에서 친구는 복도에서 뛰다 바나나를 밟은 것처럼 한 바퀴 돌면서 넘어진다.
그걸 직관한 나랑 친구들은 웃고 있고 넘어진 친구는 상처를 보면서 울상을 짓고 있다.
그럼 신기하게 현실에서도 그 일이 똑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곳에서 웃는 사람들, 넘어지는 정확한 위치와 아크로바틱한 몸동작,
무릎에 생긴 상처, 상처를 보고 하는 말과 표정까지 전부 똑같다.
그때마다 ‘야! 나 이 장면 꿈에서 꿨어!’ 하고 말하면,
애들은 지랄하지 말라든가 ‘응 그거 원래 다 그래~’라고 넘어가서 나도 개의치 않게 넘어갔다.
다만 나이가 먹을수록 그 기시감이 자주 느껴져서 점차 이상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
고등학교 때 내가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과 같이 처음 보는 공간에서 놀고 있으면
이게 뭔가 싶다가도 1년쯤 지나면 대학교 과 동기들이랑 과방에서 놀고 있던 거라던가,
군대 가기 전인데 턱 아래 점이 있는 웬 군복 입은 아저씨가 샤우팅을 치고 있으면 ‘이건 또 뭐지?’ 싶다가도,
알고보면 자대배치 후 면담 간 말실수한 동기놈 때문에
턱 아래에 점이 있는 대대장이 나와서 샤우팅을 쳤다던가,
이렇게 얘기하면 끝도 없을 정도로 많아서 이제는 그냥 예지몽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물론 10번 꿈꾸면 10번 다 실현되는 건 아니라
꿈속에서의 사건이 진짜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예측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최근 들어 같은 꿈을 반복적으로 꾸고 있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좋은 꿈이면 모를까 좋지도 않다.
처음에 그 꿈을 꿨을 때는 너무 생동감이 있어서 현실과 구분을 못 하고
새벽에 안방으로 우당탕 달려가서 괜히 엄마, 아빠가 살아있는지 확인하다가 혼났던 적이 있다.
이제야 너무 자주 꿔서 익숙해졌다지만 괜히 불안해서 엄마와 아빠에게 주의를 주기 일쑤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식은땀을 흘리며 냉수를 마시니 엄마가 걱정되는 목소리로 내게 물어봤다.
“화민아. 또 그 꿈 꿨니?”
“네, 이제 좀 그만 좀 꾸고 싶은데요.”
그러자, 신문을 보고 있던 아빠가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하, 나약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런 놈 있으면 얼마든지 오라 해라. 아빠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실제로 아빠는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떡대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인데, 최근에도 외식 중에 소리를 지르며
가게 사장님께 시비를 거는 양아치 무리를 보고 못 참지 않았는가.
그 무리가 어떻게 됐는지 말하기는 좀 그렇고..
괜히 주변 사람들이 아빠를 보고 조폭 아니냐고 물어보는 게 아니란 말이지..?
“아니, 아빠 강한 거야 당연히 알죠. 근데 이게 한두 번 아닌 거 알잖아요. 괜히 쎄해서 그래.”
“아빠가 우리 아내에게 무슨 일 있게 하겠니?
우리 아내 위험하게 하는 놈 있으면 바로 척추 4번 5번부터 하나하나 부시고 보는 거다.”
좀 과격하긴 하지만 그게 맞지, 근데 난 왜 없냐?
“근데 왜 전 빼고 말하세요?”
“응? 화민이 너는 군대도 전역했고 지금 26살 먹고 하는 것도 없잖냐.
아, 있긴 있네. 누워서 휴대폰만 주구장창.”
“그거랑 그거랑 뭔 상관이에요!!!”
“백수인 너랑은 상관있지?”
“백수 아니고 취준생이거든요?
아빠는 수십만 취준생들한테 저항받을 거예요.”
“수십만 와보라고 해라~ 하나도 안 무섭다. 핫핫핫.”
선 넘네···
엄마는 설거지하면서 우리 얘기를 듣고 있더니 아빠를 흘겨보며 말했다.
“우리 애 좀 놀리지 마요, 얼마나 열심히 사는 앤데.”
“아이고, 알겠소.”
아빠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나를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엄마 같은 여자는 반대다.”
“여보!!!!”
아빠는 엄마의 고성에 서둘러 신문을 접고 안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어휴, 못 살아. 어쩌다 저런 남자를 만나선.”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서로 좋아서 못 사는 잉꼬부부이다.
그리고 꿈 얘기할 때마다 아빠가 매번 하는 말이 있는데,
다시 슬쩍 나온 거 보니 또 그 얘기를 하려나 보다.
아빠는 문밖으로 목만 슬쩍 빼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화민아, 아빠가 만약에라도 없으면 네가 이 집의 가장이다.
그땐 네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엄마를 지켜야 돼.”
너무 진지하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네.
나도 아빠를 진지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말했다.
“아빠, 너무 플래그 세우지 마세요.”
“···”
알 수 없는 눈싸움을 시작하는데 이를 눈치챈 엄마가 적절히 끊어줬다.
“화민아~ 알바 안가니? 곧 있으면 알바가야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얼른 준비해야겠네.
내가 뭐 아무것도 안 하는 백수같지만 카페 알바를 하면서 부모님께는 금전적으로 기대지 않고 착실히 살아가고 있다.
취업만 하면 되는데··· 하고 싶은 일은 둘째치고 당장 취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지-
***
“화민씨, 오늘 갑자기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요.”
“아, 뭘요. 평소에 이런 부탁 하시는 분도 아니고 급하게 일 생겨서 그런 건데요. 괜찮아요.”
이소윤, 내가 일하는 카페의 매니저 누나다.
말이 카페 매니저지 카페 주인이 누나의 아버지라 누나가 사장과 다를 게 없다.
‘생각해 보니 사장님은 면접 때 이후로 본 적도 없네. 바쁘신가?’
평소엔 누나가 마감까지 하는 데 전화를 받더니 급하게 가야 한다며 마감을 부탁한다고 했다.
어차피 늘 하던 시간만 하고 마감하면 되는 거라 별로 부담도 안 되고 말이지.
다만 카페가 작은 것치고는 사람이 많아서 바쁜 편인데,
이 작은 카페에 사람이 붐비는 이유는 누나의 역할이 크다.
백옥처럼 깨끗한 피부에 등까지 내려오는 검은 장발,
탄탄하면서 육감적인 몸매에 얼굴도 전형적인 미녀상이라고 해야 되나,
자기 관리도 잘하는데 예쁘기까지 하니 누가 봐도 매력적이긴 하지.
생각도 잠시,
“화민씨, 저 먼저 가볼게요. 그리고 오늘은 6시에 마감하시면 되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주세요. 다시 한번 고마워요.”
소윤이 누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나를 쳐다봤다.
“저야 늘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요. 걱정하지 마시고 들어가세요!”
딸랑-
누나가 나가고, 나는 의자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가고, 손님들은 저마다 자리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다.
살며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유리창 너머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들이 도로를 달리며 남기는 소음이 희미하게 들렸고,
서둘러 걷는 직장인들, 간간이 멈춰 휴대폰을 확인하는 사람들,
한쪽 구석엔 벤치에 앉아 서로 손깍지를 낀 연인들까지.
음, 이게 평화지.
백수.. 아니 취준생도 가끔씩 이 정도 평화는 누려도 괜찮잖아?
계속해서 밖을 바라보며 일상을 즐기고 있기도 잠시,
갑자기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두두—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걸 보니 별 건 아니네.
난 감각이 예민한 편이다.
잠을 잘 때도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으면 맥박 소리가 들리는데,
손가락에서부터 손목, 팔, 목.
전신에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집중하고 있다보면 어느새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에 빠져들고는 한다.
뭔가 자연과 하나가 된 느낌이랄까?
안방에서 주무시는 부모님의 숨소리나
과장해서 말하면 자그만 벌레가 톡톡- 지나가는 소리와
내 몸에 앉았을 때 그 사소한 촉감까지.
이런 말을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여튼 주변보다 다른 반응을 좀 일찍 알아차리는 것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 내가 예민한 편이기에 남들이랑 있을 때는 하나하나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편이다.
괜히 호들갑 떨면 나만 이상한 놈 되잖아.
두두두둑—
응?
두둑두둑두둑-
이건 뭐가 있는데?
급하게 주변을 돌아본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무 일 없는 듯 앉아있다.
지지직-
머리칼이 곤두서는 느낌과 함께 귀에서 노이즈가 울리기 시작했다.
벌떡-
내가 갑자기 일어서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바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위험신호.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당장 탁자 아래로 들어가세요!”
처음엔 잔잔한 떨림이었지만, 이내 강하게 흔들리고 카페 안의 모든 물건이 덜컥덜컥 움직였다.
커피잔이 선반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천장의 조명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사람들은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듯 다급하게 탁자 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조명이 떨어지고 카페가 기울었다.
가게 바깥에서는 사람들의 비명과 혼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난 순간적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도로에 차들은 뒤집혀 있었고 아까 연인이 앉아 있던 구석 벤치에는 가로등이 깔려있었다.
그때, 하늘이 갈라지듯 짙은 구름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마치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탑이었다.
처음에는 희미한 윤곽만이 보였으나, 이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점차 선명해졌다.
탑이 대지와 가까워질 때마다 땅은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고, 뿌연 먼지가 땅에서 솟아올랐다.
“저건.. 뭐지?”
사람들은 혼란에 휩싸인 채 탑을 올려다봤다.
그 탑은 감히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 마치 다른 차원에서 뚫고 나온 듯한 이질적인 존재였다.
첨탑은 날카롭게 하늘에 닿아있었다.
탑..?
나는 그 이질적인 것을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늘을 뚫고 끝없이 뻗어있는 탑,
흑암과 같은 어둠에 싸인 외벽은 광택이 없고 매끄럽다.
가까이서 보면 수없이 많은 문양과 기호들이···
기시감을 느낀 동시에 휴대폰, TV, 전광판 등 주변 모든 디스플레이가 깜빡거리더니,
푸른빛의 형태가 서서히 나타났다.
그 존재는 인간의 모습처럼 보였지만 감정이 읽히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 인간이 아님을 짐작하게 했다.
이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
- 흠흠, 여러분 잘 들리시나용?
엥?
- 작가의말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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