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감으로 탑을 부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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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일
작품등록일 :
2024.10.1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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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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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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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데자뷰(3)

DUMMY

주변의 소리가 멀어지고 이명이 심해진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며 강렬한 박동이 몸을 울린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는 실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네 부모는 어떻게든 살길을 찾고자 발버둥 쳤지만, 그 발끝도 못 따라가는군.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봐라. 혹시 아나? 살려줄지.”


시뻘건 핏자국이 잔뜩 묻은 손끝이 마치 내 심장이 움켜쥐려는 듯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잠깐!”


밑져야 본전이야. 뭐라도 해야 돼.


“난 옛날부터 만화를 즐겨봤어. 특유의 소년만화 감성을 좋아한단 말이지.”


“결국 정신이 나간 건가? 호부견자군. 안타까워.”


적어도 바로 죽이진 않는다.

그래, 날 언제든 죽일 수 있는 벌레로 생각해라.


나는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느긋하게 얘기하며,

온몸의 맥박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 검사의 말을 잊지 않아.”


그는 계속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여기서 한 발짝이라도 물러서면 소중한 지금까지의 맹세라든가 약속이라던가..

많은 것이 꺾여서 이제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이야.”


“전쟁 한 번 해본 적도 없는 놈이 겉멋만 들었군.

죽음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그깟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버리다니.”


손, 발, 무릎, 목.

서서히 들리는 맥박소리.


“자존심이랑은 달라.

부모님은 어땠지? 아빠는 죽을 걸 알고서 너한테 달려들었겠지.

엄마도 어떻게든 너한테 저항했을 거야.”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찢어질 거 같다.


“그래, 그 패기는 인정하지. 하지만 어리석은 행동이다.

어미라도 냅두고 도망쳐서 목숨이라도 부지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겠지.

벌레처럼 꿈틀대는 꼴을 보다니..”


나는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하, 네 수준을 알겠어. 겁쟁이랑 다를 게 없네.

그깟 가능성이 뭐라고 굳이 와서 죽이는 정성을 보니, 무서웠던 거 아냐?

넌 한 번도 죽음과 싸워본 적 없지? 질 것 같으면 평생을 도망쳤을 테니.

전쟁에서도 위기 상황이 되면 먼저 도망치는 벌레.”


서서히 빨라지는 심장박동 소리.


그는 내 얘기를 듣고는 슬쩍 웃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하찮은 말로 나를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나름대로 시간을 끌려고 한 거 같은데 가치가 없군. 죽어라.”


삐————


쿵쿵-


머리를 울리는 경고음과 함께 거세게 뛰는 심장.

집중해.


슥-


주변의 공기가 묘하게 바뀐 것을 느꼈다.


한순간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고,

뭔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확신처럼 밀려들었다.


왼쪽이다.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던졌다.


처음으로 그의 표정이 깨진 듯했다 .


“어떻게 피했지? 요행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찰나의 순간, 녀석의 손이 왼쪽으로 움직였다.


왼쪽,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던지려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발을 멈췄다.


바람이 날카롭게 울리더니, 순간 오른쪽으로 날아든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얇고 날카로운 선이 그어지고 뺨을 따라 선혈이 흘러내렸다.


“오호. 이것조차 피했나.

타고난 감각이 본능적으로 생존하는 방법을 알려주나 보군.”


이번에는 정말 죽을 뻔했다.

아직인가? 지금쯤이면 됐을 텐데.


그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아직이지만, 성장하면 귀찮을 여지가 있겠어.

미리 끝내는 게 현명하지, 이번에는 확실히 끝내주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놈은 번개처럼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쿵쿵쿵-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뇌리에 강한 경고음이 울린다.


세상이 마치 천천히 흐르는 듯한 기이한 감각.

내 앞을 가로막은 그의 손이 거대한 파도처럼 다가온다.


이대로 끝이라고? 아직이야?


그 순간, 내 눈앞에 섬광이 일었다.


쾅!!!


그가 휘두른 주먹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그리고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 이 이상의 간섭은 불허합니다.


안내자..!


안내자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단호했다.

이어 손을 가볍게 휘젓더니 빛의 장벽을 강화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장벽을 두드려보았다.


- 탑에서는 몰라도 현재 당신의 힘으로는 깰 수 없습니다.

돌아가십시오.


그러고는 안내자를 쳐다보며 웃었다.


“나오면서 힘을 너무 많이 사용했군.”


더 이상의 도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이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운이 좋군.”

“전형적 클리셰지. 위기의 상황에서 간신히 살아남는 것.”


애초에 안내자는 상황을 금방 해결한다고 했다.

오히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


“그리고, 덕분에 확실한 목표가 생겼어.”


녀석은 다시 뒤돌며 나를 쳐다봤다.

나 역시 피하지 않고 계속 쳐다보며 말했다.


긴말은 하지 않아.


“나중에 보자.”


너를 죽이기 전까지, 난 죽지 않을 거다.

내 모든 걸 불태우더라도,

반드시 배로 갚아주지.


그는 서서히 내게 다가오더니 장벽을 만지며 말했다.


“기대되는군. 벌레처럼 비참하게 죽을 네 모습이.”


그러고는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안내자는 그 녀석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내게 말을 걸었다.


- 하하, 죄송합니당!

저도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우선 확실한···


한순간에 너무 많은 것을 경험했다.


부모님의 죽음을 눈앞에서 봤기에,

녀석과 있을 때는 살기 위해 몸부림쳤기에,

순간의 감정에 지배당해 허무하게 죽지 않기 위해,


감당하지 못할 많은 것들을 받아들였나보다.


눈앞의 풍경이 점점 희미해졌다.

무릎이 풀리고, 차가운 바닥에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몸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싸늘하게 누워 있는 부모님.


마지막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내 의식은 완전히 끊어졌다.


- 이봐요? 이봐용!?

정신차려요..!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나는 혼자다.


끝도 없고 깊고 차가운 어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텅 비어 있었고,

몸이 서서히 어둠에 잠식되어 간다.


그때, 부드러운 빛이 멀리서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보이는 빛이 점점 선명해지더니,

그 안에서 두 개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익숙한 모습들.

너무나 익숙해서 잊을 수 없는 두 사람.


“엄마.. 아빠..?”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환하게 미소 짓는 얼굴, 따뜻한 눈빛.

나는 그저 두 눈을 멍하니 뜨고 바라보았다.

점차 차오르는 눈물.


“왜.. 여기 있어요? 나는.. 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익숙한 향기, 보드라운 품.

그 순간 모든 불안과 고통이 녹아내렸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처럼, 그 품속은 평화로웠다.


이대로 계속 있고 싶다.


하지만 아빠가 나서더니 엄마에게서 나를 떨어뜨렸다.


“뭐요! 또 엄마 품은 아빠 거라고? 오늘만큼은..!”


아빠도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었다.

강하고 따뜻한 팔이 나를 감싸안았다.

아빠는 말없이 내 등을 토닥였다.


말할 게 너무나 많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말하지 않아도 내 맘을 이해하듯 다가와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나는 그들의 품속에서 울었다.

말없이, 소리 없이.

그저 그들의 품 안에서 모든 걸 내려놓은 채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가 되어 부모님의 보호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 따스함이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며 빛으로 변해갔다.


나는 그들을 붙잡고 싶었지만, 손끝에서 그들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엄마.. 아빠.. 가지 마요..”


부모님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넌 혼자가 아니야. 언제나 네 마음속에 우리가 있어.”


따뜻하고 부드러운 엄마의 목소리.

매번 장난으로 날 위로해 주는 한결같은 아빠의 목소리.


내가 어릴 적 힘들 때마다 듣던 그 목소리.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제발!!!”


메아리치는 소리와 함께 내 의식은 빛으로 빠져들었다.


***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흐릿한 시야에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 먼저 들어왔다.


차가운 공기와 특유의 소독약 냄새.

링거가 천천히 내 혈관을 타고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여긴 병원인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지?


간신히 몸을 세워 침대에 기댔다.

차가운 병실의 풍경은 이상하게도 현실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꿈속에서 만난 부모님의 따뜻한 품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이곳의 차가움은 그 온기를 무참히 빼앗았다.


아.. 이제 더 이상 손에 닿지 않는구나.


“..엄마, 아빠.”


그리움이 다시 밀려오지만, 이곳은 너무나도 차갑고 고요하다.

그리고 그 간극만큼 나를 채우는 강한 감정.


그놈의 싸늘한 시선, 비웃음.

아빠의 목을 자른 순간 내뱉던 말.


그날의 장면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가자,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었다.

무력했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

그 모든 것을 앗아간 자에 대한 증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죽인다.”


내 뇌리에서 복수가 선명해졌다.

더 이상 뜨거운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대신에 내 가슴 깊은 곳에 차가운 결의가 자리 잡았다.


나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더 이상 무력하게 쓰러져 있을 수 없다.

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탑에 가는 것.


결심은 굳어졌다.

부모님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드르륵-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누구지?


“화민씨! 괜찮아요?”

“어..? 누나가 왜 여기에?”

“화민씨가 쓰러진 날, 전화했는데 따로 연락을 안 받더라고요. 그럴 분이 아닌데.”


전화?

아.. 마감을 안 하고 바로 집에 가서 그런가.


“혹시나 해서 집에 찾아가 봤어요.. 부모님 일은 유감이에요..”

“죄송해요.. 제가 마감을 안 하고 바로 집에 가서.”


누나는 내 말을 듣고는 처음엔 어이없어하더니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제가 마감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네?”

“어휴, 여튼 화민씨 집 정리는 다 했어요. 부모님은 따로 모셔 두었고요..

장례는 화민씨만 준비되면 바로 진행할 수 있어요.”

“왜 그렇게까지..”

“이걸 따져가면서 하는 사람이 있나요? 당연히 해야하는 거에요.”


누나는 내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단호한 눈빛 안에서 나를 걱정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럴 때는 ‘왜’가 아니라 그냥 고맙다고 하세요.”

“누나,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누나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헛기침하더니 내가 쓰러진 동안의 상황을 설명했다.


“흠흠, 그래요.

그리고 화민씨는 일주일간 쓰러져있고 그간 많은 일이 있었어요.”


누나한테 듣기론 탑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었고

정부는 혼란과 공포에 휩싸인 시민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출입 통제하고자 했으나,

관리국의 등장으로 탑의 출입이 허용됐단다.


그리고 탑에 출입을 원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들어가기 전 관리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출입한 사람은 이후 관리국에게 자신의 능력과 상태를 보고해야 한다는 것.


이어 관리국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발표했다.


- 탑은 금기된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그곳을 출입하는 이들은 모두 관리국의 아래 있을 것이다.

또한 탑은 개인의 힘을 시험하는 장소일 수 있지만,

그 힘이 사회에 혼란을 가져온다면 우리는 이를 막을 것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소개할게요. 저는 특별대응 제2팀장이에요.”

“네?”

“나중에 탑에 들어갈 거면 꼭 관리국에 와서 허가증받고요!

미리 저한테 연락하세요!”


왠지 누나 분위기가 다르다고는 생각했다.

뭔가 몸이 더 단단해지고 아우라가 느껴진달까?


근데 일주일만에 팀장이면 특별한 능력?

아니면 엄청 강한 건가?


생각도 잠시,


“화민씨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쉬지도 못하게 한 거 같아서 이만 가볼게요.”

“아니에요, 덕분에 금방 정신 차린 거 같은데요?

다시 한번 고마워요. 누나.”

“후후. 푹 쉬고 연락주세요.”


누나가 나가고, 방에는 나만 남아 다시 고요해졌다.


“뭔가 훅- 지나간 느낌이네.”


- 안녕하세용? 드디어 혼자 남았군요!?


조용할 틈이 없구만.


작가의말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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