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감으로 탑을 부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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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백도일
작품등록일 :
2024.10.15 15:27
최근연재일 :
2024.12.1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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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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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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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화 가능성(4)

DUMMY


“왜 저를 쏘셨습니까?”


방서환의 뒤쪽에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던 로봇이 고개를 들었다. 로봇의 머리 정중앙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당신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모두가 피해를 볼 수도 있었습니다.”


로봇의 무미건조한 말에 나는 같잖다는 듯 비웃었다. 방서환은 이해가 되지 않아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었다.


“왜 다 된 밥에 재를 뿌려요! 답은 정해져 있었잖아요.”

“헌터도 뭣도 아니면서 뭐가 문제지?”


신유희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쌀을 찌푸리며 나를 닦달하자 나는 존댓말을 거두었다.


“무.. 무슨 소리에요.”

“이제 연기는 그만해.”


로봇의 눈이 빛나더니 나를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언제부터 눈치채셨습니까?”


로봇이 묻자, 나는 여유있게 답했다.


“‘10초 뒤에 몬스터가 등장합니다.’라는 말 다음에는 반드시 몬스터가 등장했어. 그런데 이번에는 몬스터가 나오기는 커녕 공간이 바뀌고 문들이 생겼잖아. 이상하지 않아?”

“설마 그것만 가지고 눈치챘다고 말하진 않겠죠?”


신유희가 어이없다는 듯 입술을 삐쭉이며 나를 쏘아봤다.


“이 공간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누가 있을까? 적어도 너희들은 아니야.”


나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처음에 너희가 문에서 나왔을 때, 인원은 5명이었지만 의자는 6개였어. 누군가는 더 참여한다는 뜻이겠지. 때마침 녀석이 나타나더군. ‘이놈이 몬스터구나.’ 하고 눈치챘지.”


내가 로봇을 거론하자, 방서환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놈이 처음에 우리를 입장시키기도 했고 너무 자연스레 설명하길래 당연히 사회자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구만···”

“녀석은 그것말고도 힌트를 줬어요.”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시여?”


방서환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설명을 시작하기 전 녀석은 전원 착석시 설명한다고 했죠. 아마 자기도 포함되는 말이었을 거에요. 우리가 다 앉고나서 남은 의자를 끌더니 거기에 자기가 앉더라고요. 그러고 나선 설명을 하는데 도플갱어랑 헌터를 언급하며 애매하게 진실과 거짓을 섞었어요. 거짓말을 하려면 진실을 어느정도 섞어야 더 그럴 듯 하잖아요?”


로봇이 이해가 안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이 기울였다.


“그렇다고 제가 도플갱어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웠을 텐데요. 그리고 헌터가 없는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 근데 초반에 신유희가 규칙을 정리하는데 총원을 5명이라고 확실히 단정짓더라고. 몰랐을 수는 있는데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거 같고··· 왠지 도플갱어를 도울 스파이가 한명쯤은 있을 것 같았달까.”


내 말에 신유희가 매섭게 나를 노려보길래 가볍게 맞받아쳤다.


“확실한 건 마지막에 헌터냐는 내 질문에 자기가 헌터라고 말했잖아. 그때 좀 쎄하더라고. 얘는 느낌이 도플갱어는 아닌데 딱 스파이같은 거 있잖아. 뭔지 알지? 쎄한거.”


신유희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이론적인 척 다하다가 중요한 부분에서 감으로 때려박으시네요. 그럴 듯 해보이지만, 확정적이지도 않고 허점이 많아요. 만약에 제가 스파이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요. 아저씨가 맞았으면 모두가 피해를 볼 수도 있었잖아요.”

“말했잖아, 감이 좋다고. 지금까지 살면서 불안한 건 틀린 적이 없어. 한번도···”


잠깐 가족 생각이 났는지 시선이 허공에 맴돌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툭 내뱉은 말에서 울적함을 느꼈는지 정적이 감돌았다.


“흠흠··· 그리고 방서환씨는 딱봐도 트롤이잖아. 개트롤 시민이랄까 하하.”

“야 임마! 말을 그렇게 하면 내가 뭐가 되냐!”


방서환이 분위기를 풀려는 듯 괜히 오버액션을 취했다. 그리고 5라운드를 클리어한 감격이 큰듯 어깨를 들썩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축하드립니다. 여러분. 5라운드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이대로 저 문을 열고 나가시면 능력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로봇이 팔을 들어올리더니 한쪽 문을 가리키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신유희는 아쉽다는 듯 입을 삐쭉거리며 발을 뗐다.


“오, 드디어 나도 능력을 얻을 수 있겠구만!”


방서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오르더니 주저 없이 문을 향해 달려갔다. 두 눈엔 어린아이처럼 설렘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고는 문 앞에 서서는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입가에 얄미운 미소를 얹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이! 빨리 오라고. 나가는 건 같이 나가야 할 거 아니여.”


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로봇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로봇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안 가시나요?”


나는 대답 대신 짧은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끝까지 장난치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공간을 울렸다.


“다 가짜잖아.”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문 앞에 서 있던 방서환도, 천천히 걸어가던 신유희도 그대로 얼어붙었다. 침 삼키는 소리조차 크게 들릴 만큼 숨 막히는 정적이었다.

‘가짜’라는 단어가 마치 트리거처럼 작용한 건지, 눈앞의 모든 것이 거짓임을 스스로 증명하려는 듯, 공간이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가짜라고 단정짓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로봇의 눈이 붉게 깜빡였다. 이전보다 한층 낮고 기계적인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분명한 의문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조용히 로봇을 응시하다가 대답했다.


“평생 할 설명 여기서 다하겠다. 저 사람들 이미 탈락한 사람들이잖아.”


그 말에 로봇은 한순간 멈칫했다.


“한승윤은 2라운드, 강예은은 3라운드, 방서환은 4라운드, 신유희 적어도 5라운드까지 올라왔겠지. 이후에 탈락했겠지만···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4라운드에 대해 물어봤을 때 눈치챘어.”

“맞습니다. 탑은 각 라운드별로 플레이어 소양을 확인합니다.”


로봇의 말이 공허하게 울렸다. 그리고 눈빛을 스캔하듯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플레이어 한승윤은 전반적인 전투능력이 부족해 고블린 무리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플레이어 강예은은 상황분석은 뛰어났지만 반사신경이 떨어졌기에 은신뱀에게 순식간에 죽고 말았습니다.”


로봇은 잠시 멈추고 이어지는 말에 잠복한 냉정한 진실을 무심히 털어냈다.


“방서환은 신체적인 능력은 월등하나 정신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렸습니다.

신유희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탁월했으나 다른 플레이어를 너무 쉽게 믿었습니다.”


로봇의 눈에서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 그의 말투에서 단 하나의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설명이 끝날 때마다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고 있었다.


“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때로는 동료와 협력해 더 큰 목표를 이뤄야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의도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배신이나 속임수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봇의 눈빛이 잠시 깜빡이며,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5라운드까지 올라오며 그 모든 소양을 갖춘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또한···”


기계적인 얼굴에 의외의 찬사의 흔적이 드러난 듯,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조금 더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와 분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직감.”


그의 눈빛이 잠시 나를 가로지르며 스캔하듯 움직였고, 그 뒤에 따라오는 차가운 인정이 기계적인 소리와 어우러졌다.


“대부분의 존재들은 환상의 유혹에 쉽게 휘둘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명확하게 꿰뚫어 보고, 진실와 거짓을 구분할 수 있군요.”


잠시 멈추더니, 다시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 능력은 단순히 탑을 오르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생존 그 자체를 위한 필수적인 소양이죠. 당신의 능력, 그것은 단순한 관찰력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로봇의 목소리에는 감동도, 칭찬도 없었지만, 그 말 속에는 주인공의 특별한 능력에 대한 깊은 인식이 담겨 있었다.

고백하자면, 그 기계적인 존재조차도 존경의 감정을 잠시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제 더 이상 거짓에 속지 않겠군요. 그것이 진정한 힘입니다.”


로봇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충분히 탑에 오를 자격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로봇이 말을 마치자 공간에 서서히 금이 가더니 깨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균열이 퍼져가며 흐릿한 빛이 스며들더니 이윽고 빛이 점점 더 강해지며 로봇의 모습이 일그러졌다.


[축하드립니다. 5라운드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전과 달리 감정이 실린 느낌이라면 기분 탓일까.

음성이 공간의 금이 간 곳을 통해 부셔져 나가며 흐릿해질때 쯤, 균열이 가득한 공간이 완전히 붕괴되며,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리고 열리는 문 앞에 나만이 홀로 서 있었다.


“여기를 나가면 능력이 생기는 거구나. 어떤 능력일까. 이정도 했으면 제발 S급 떠보자!”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온몸으로 끌어안 듯 망설임 없이 문 너머로 나아갔다.


문을 넘자, 잠시 정신을 잃은 듯한 기분에 휘둘렸다. 주변은 고요하고 뚜렷한 실체를 가진 것들이 나를 감쌌다.

몸속에서 뜨거운 에너지가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손끝에서 발끝까지, 마치 새로운 힘이 흐르듯 전해졌다.


뭐지, 이 강렬함은? 이게 내 능력인가.


정신을 차리자 내가 서 있던 곳은 다시 처음 내가 들어왔던 탑문 앞이었다.


“어··· 이게 끝인가?”


그리고 그 순간, 차분한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능력, 「제 육감(六感)」이 개방되었습니다.]


제 육감(六感).

마음 속에 무엇인가 자리잡은 느낌과 함께 그 흐름을 따라가 보니 첫 번째로 떠오른 건 강한 직감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한 발짝 앞서 예측하는 능력.


‘역시 1층에서 나온 사람들 얼굴 보는 게 제일 웃기단 말이야.’


웅성웅성거리는 느낌과 함께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그리고 정면을 보자 저 멀리 관리관이 서 있었다.


“역시 1층에서 나온 사람들 얼굴 보는 게 제일 웃기단 말이야.”


관리관이 작게 중얼거렸지만 그 말이 귓속에 깊숙히 박히는 느낌이었다.


“미친, 이건 저 사람이 말하기 전에 미리 내가 앞을 본 건가?”


다시 한 번 능력을 살펴보려고 하니, 상태창이 생겼다.


【상태창】

이름: 이화민

나이: 26세

성별: 남자

탑: 1층

능력: 육감(六感), [잠금]

1. 육감(六感)(A*성장형): 오감을 넘어서는 제 6의 감각. 오감으로 알아내지 못하는 정보와 위협을 알아낼 수 있다. 예리한 직감을 통해 상황의 본질을 파악한다.

- 집중: 고도의 집중력으로 긴박한 상황에도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는다. 위험을 예측하고, 필요한 순간에만 집중을 발휘한다.

- 타이밍: 공격과 방어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다.

- 미래예지: 목숨에 큰 위협이 생길 시 미래를 잠시 볼 수 있다.(24H)


2. [잠금]: 해금조건을 달성하세요.

*해금조건: 층이 낮아 제한됩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상태창? 미친 A급! 근데 성장형이랑 잠금은 뭐지?’


잠시 상태창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관리관이 내게 다가왔다.


“이화민님 1층 클리어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집으로 복귀하시면 사흘 내로 능력을 관리국으로 보고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대강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


잠깐이지만 능력에 대해 살펴본 결과 이 능력은 위험이 다가오거나, 숨겨진 의도, 잠재적 위협을 감지하는 데 탁월하다.

내가 직접 보고 듣지 않아도, 주변의 분위기와 에너지에서 그 무엇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육감은 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어떤 상황에서 경계를 풀어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느낌이랄까?


“육감은 그렇다치고 잠금은 뭐지? 이런 건 처음 듣는데 누나한테 물어봐야지.”


그러고는 누나한테 1층 클리어 사실을 문자로 보냈다.


- 누나 덕분에 잘 갔다왔습니다! 1층도 무사히 깼구요.


그러자 순식간에 울리는 휴대폰.


“뭐.. 뭐야. 금방 오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받자, 다소 덤덤하지만, 뭔가 긴장된 기운이 섞여 있었다.


“화민씨, 1층 잘 갔다왔어요? 다친 데는 없고요?

“멀쩡하죠. 1층도 완벽하게 클리어도 했고.”

“정말요?! 5라운드까지 다 클리어했으면···”


이소윤의 목소리에서 감춰지지 않는 호기심이 묻어났다.


“능력··· 물어봐도 될까요?”


이소윤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누나 덕분에 금방 들어갔는 걸요. 저 A급 떴어요!”


전화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이소윤의 목소리가 크게 놀라며 터져 나왔다.


“A급이라고?! 대박이에요, 화민씨!”

“그리고 성장형이래요.”

“뭐?!”


어우 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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