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유명세(1)

“성장형이라고요?!”
전화기 너머로 격앙된 목소리가 넘어왔다.
“그렇다는데요? 저도 처음 보는 거라 누나한테 물어본 거에요.”
“그거 전 세계에서 1명 밖에 없는 거 알죠?”
“누구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성장형인 사람이 있구나.
“에스텔 몰라요?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플레이어!”
에스텔··· 처음 들어보는데?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도 그럴 게 나는 탑이 생긴 이래로 제대로 정신 차려본 적이 없다.
정신 차리자마자 탑에 들어왔으니 알 수 있을 리가···
이소윤은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미국에서 있는 플레이어인데 이 사람도 화민씨처럼 5라운드를 깨고 나서 성장형 능력을 얻은 사람이에요.”
“5라운드를 깨면 성장형 능력을 주는 거에요?”
5라운드가 살짝 까다롭긴 해도 충분히 깰 만한데.
“그건 아니에요. 다만 확실한 건 성장형은 5라운드를 끝까지 깬 플레이어에게서만 발현된다는 것과 그 잠재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점이죠.”
그러고는 이소윤은 흥분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앞서 얘기한 에스텔은 ‘아스트로’, S급 성장형 능력이에요.”
“아스트로?”
“별 자체를 조작하는 능력이죠.”
별을 조작해? 그러면 레이저 같은 빛 발사하고, 빛으로 섬광탄처럼 눈갱하고, 그 뭐야. 흔히 게임에서 나오는 것처럼 ‘별의 축복’이라고 버프 걸어주는 거 아냐? 개사기잖아.
생각보다 너무 스케일이 큰 능력이라 잠시 생각에 잠겨 있으니, 이소윤이 말을 이었다.
“능력 발현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레이저를 사용하고 특정 별자리의 상징적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에스텔은 벌써 10층까지 올라갔죠.”
나랑 너무 다른 거 아냐?
아니지 굳이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한테도 그만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도 그만한 잠재력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요! 전 세계가 뒤집힐 거에요. 에스텔 다음 성장형 능력자가 한국에서 나오고, 그게 화민씨라니!”
소윤이 누나가 많이 놀랐나 보네. 하지만 내 능력은 육감이 다가 아니다. 하나 더 있다고 말하면 기겁할려나.
“누나 근데 하나 더 있어요.”
“뭐가요?”
“능력이 하나가 더 있다고요. 잠겨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화민씨가 ‘듀얼 어빌리티’라는 거에요?”
듀얼 어빌리티는 또 뭐지.
이소운이 들뜬 듯 전화기 너머로 우당탕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화민씨 거기 가만히 계세요, 금방 갈 테니까!”
“엥, 지금 시간에요?”
뚝.
이소윤은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고개를 돌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새 11시다.
지금 시간에 오는 거면···
당연히 그런 건 아니지만 괜히 몸에 냄새나는 거 같은데, 일단 빠르게 씻어야지.
***
딩동!
깔끔히 씻고 나니 벨이 울렸다.
‘뭐야, 10분 내로 씻었는데, 벌써 왔다고?’
자연스레 문을 열었더니 이소윤이 한 손에 무언가 들고는 빠르게 들어왔다.
그러고는 내 어깨를 잡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져요.”
네???
“뭐해요, 빨리 안 만지고.”
누나가 이런 성격이었나?
당황해서 진짜 만져도 되나 손을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이소윤이 답답한지 들고 있던 물건을 내게 건넸다.
아, 이거요?
잠시나마 기대한 제가 병신이었습니다. 육감이라더니 내 능력은 일 안 하고 뭐 하냐.
이소윤이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화민씨 혹시··· 이상한 생각한 거 아니죠?”
“뭐가요? 이런 건 처음이라 당황해서 그렇죠.”
뜨끔했지만 자연스레 이소윤이 들고 온 물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렇지. 화민씨는 처음 보니까. ‘소울 크리스탈’이라고 이걸 잡고 있으면 네 능력을 확인할 수 있어요. 한번 잡아보실래요?”
소울 크리스탈을 손에 쥐자, 크리스탈에서 하얀빛이 나더니 빛이 내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이내 두세번을 더 반복하더니 흰색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색깔은 계속해서 변하더니 스캔이 다 끝낼 때쯤에는 정해지지 않고 무지갯빛으로 일렁거렸다.
무지갯빛으로 일렁이던 크리스탈은 이내 위로 내 능력을 띄웠다.
[능력]
1. 육감(六感)(A*성장형): 오감을 넘어서는 제6의 감각. 오감으로 알아내지 못하는 정보와 위협을 알아낼 수 있다. 예리한 직감을 통해 상황의 본질을 파악한다.
- 집중: 고도의 집중력으로 긴박한 상황에도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는다. 위험을 예측하고, 필요한 순간에만 집중을 발휘한다.
- 타이밍: 공격과 방어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다.
- 미래예지: 목숨에 큰 위협이 생길 시 미래를 잠시 볼 수 있다. (24H)
2. [잠금]
이소윤은 일렁이는 무지갯빛과 내 상태창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나?”
몇 번 이소윤을 툭툭 건드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이소윤이 내 어깨를 꽉 잡고 나를 노려보았다.
눈이 단단히 맛이 갔는데?
무서울 정도로.
“대박··· 대박이라고!!! 화민아!!!”
이소윤이 감정이 격해졌는지 존댓말을 잊은 채로 소리쳤다.
“누나··· 진, 진정 좀 해요!”
“이게 진정하게 생겼어? 화민아 너 관리국에 들어올 생각 없어? 그리고 우리 팀에 들어오면 되겠다. 그치?”
계속해서 내 어깨를 잡고 흔들자, 나는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벼처럼 탈탈 털렸다.
저항 없이 가만히 멍을 때리며 흐느적대고 있으니 이소윤이 정신을 차린 듯 흔드는 것을 멈췄다.
그러곤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입술을 움직이며 웅얼거렸다.
“네?”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했나 봐요.”
“좀 괜찮아지셨어요?”
“네···”
순식간에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난 이런 어색함을 참지 못하는 병이 있지.
“흠흠.”
헛기침으로 입을 떼 침묵을 깨고는 크리스탈에서 나오는 빛을 보며 말했다.
“누나, 이 색깔은 무슨 의미에요?”
“제가 제일 중요한 얘기를 안 했네요.”
이소윤은 설명을 깜빡한 게 민망한 듯 입꼬리를 올리며 살짝 웃었다.
“소울크리스탈은 플레이어의 능력을 보여주는 도구에요. 능력에 따라 색이 변하죠. 에스텔이 크리스탈을 잡았을 때 화민씨처럼 무지갯빛이 반짝이며 일렁였어요. 이로써 확실히 성장형은 무지개빛이 나오는 걸 알았네요.”
“누나는 무슨 색이었어요?”
내 말에 이소윤은 일어나 창문을 열더니 손을 총처럼 펴 보였다. 그러고는 빵, 하고 장난스럽게 소리를 내며 총을 쏘는 체했다.
뭐지, 총 관련 능력인가, 생각도 잠시 이소윤의 검지손가락 끝에서 바람이 거세게 뻗어나가 구름을 반으로 갈랐다.
“제 능력은 A급이고 바람을 다룰 수 있어요.”
개사기네.
그리고 1층에서 도대체 뭘 해야 바람을 다루는 능력이 생기지?
“조절하는 게 살짝 어려웠는데 이젠 감이 잡혀요. 후후.”
말을 하면서 손을 조물딱거리는데, 저 가는 손가락에서 지풍을 쏘아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누나가 특별대응 팀장이라고 그랬죠?”
내 말에 이소윤이 눈을 빛내며 재빠르게 대답했다.
“맞아요! 화민씨 우리 팀에 관심 있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정확히 뭔가 싶어서요.”
“능력이 생긴 사람들이 사회에서 헛짓거리··· 흠흠. 사회의 혼란을 막는, 능력자 전용 경찰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적성에 맞아서 즐거워요.”
말을 하며 생긋 웃는데 예쁘긴 하지만, 도망가는 플레이어에게 웃으며 지풍을 쏘아댈 것을 생각하니 호러가 따로 없다.
나는 문제일으키지 말아야지···
그러고 보니 누나랑 우리 집은 거리가 꽤 있는데 금세 온 것도 능력의 일환인가?
“누나, 10분 내로 온 것도 능력 사용하신 거에요?”
“맞아요.”
“능력 부럽네요. 저도 한 번쯤 바람을 다뤄보고 싶었는데요.”
“무슨 소리하시는 거에요. 화민씨.”
이소윤이 정색을 하며 답했다.
“화민씨는 이미 A급인 데다가 성장형이잖아요. 탑에 가면 그 능력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화민씨는 듀얼 어빌리티잖아요!”
“듀얼 어빌리티가 뭔데요?”
“화민씨처럼 능력이 두 개인 경우를 말하죠. 이것도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에요! 성장형에 듀얼 어빌리티라니··· 어디 가서 부럽다는 소리하지 마세요.”
오늘따라 누나가 흥분하는 모습을 많이 보네.
“여튼 화민씨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거에요. 제가 이렇게 흥분할 정도니까.”
능력이 뛰어나다 얘기를 해도 비교군이 없으니, 직접적으로 느끼는 체감은 없다.
탑을 올라봐야 뭐라도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내일 당장 올라가 봐야겠어.
“두 번째 능력이 잠겨있는 건 처음 보긴 하지만, 아직 탑이 출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계속 오르다 보면 능력의 발현조건을 금방 알 수 있을 거에요.”
“안 그래도 내일 바로 올라가려고요.”
“그러면 여기서 능력 확인한 김에 제가 관리국에 데이터 보낼게요. 굳이 관리국 안 오셔도 돼요.”
“고마워요. 매번 도움받는 게 많네요.”
이소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새침하게 말했다.
“고마운 마음이면, 나중에 저녁이나 같이 먹어요. 나중에는 탑도 같이 등반하고요.”
“좋죠. 누나는 지금 몇 층까지 올라갔어요?”
“전 9층이에요. 1층에서 10층까지는 혼자서 깨야 하고, 11층부터는 단체플레이인 것 같더라고요? 저랑 같이 가려면, 빨리 올라오셔야겠어요. 후후.”
“금방 올라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대단하다고 말하는 에스텔이 10층인데 누나가 9층이면··· 그만큼 강한 건가.
“근데 누나랑 에스텔이랑 층 차이가 얼마 안 나네요?”
“에스텔은 10층까지 독보적으로 빨리 깨버려서 11층을 함께 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10층에서 기다리며 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이소연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제가 너무 늦게 와서 그런가..? 내일 탑 조심해서 다녀오고 오면 꼭 연락하세요!”
이소연이 순식간에 돌아가 버렸다.
태풍이 왔다 간 기분이네.
능력은 내일이 되어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
***
아침이 되자, 나는 옷만 챙겨입고 탑에 왔다.
7시··· 들어갔다 나온 지 하루도 되지 않았지만, 어제와는 부담감이 다르다.
처음이랑 다르게 그 압박감이 많이 줄었다. 오히려 기대가 된다. 내 능력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육감(六感)이 전투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어젯밤은 설레서 잠도 설쳤다.
기대감을 가득 끌어안고 문 앞에 서자, 문구가 나타났다.
[탑에 진입하시겠습니까?]
그때와 같이 눈앞에 뜬 시스템 메시지는 무심하게 깜빡였다.
“그래.”
쿵.
[탑의 2층에 입장하셨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방에 앉아 있었다. 저번과 다른 것은 로봇이 없다.
방을 가만히 둘러보고 있으니 시스템 메시지가 생성됐다.
[원하는 무기를 잡으세요.]
음··· 원하는 무기는 저번이랑 같이 검과 방패, 창, 단검이지.
그리고 검을 집는데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더니 초원으로 왔다.
“뭐야, 나 무기 다 못 챙겼는데?”
[클리어 조건: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를 격멸하세요.]
눈 앞에 있는 몬스터를 격멸하라고?
정면을 보니 고블린과 오크가 무리 지어져 있었다. 어림잡아도 10마리는 넘어 보였다.
녀석들이 갑자기 나온 나를 보며 당황하더니 이내 자신의 영역이 침범받은 것이 불쾌하다는 듯 취익거리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눈앞에 점선이 생기더니 녀석들이 달려오는 공격로와 공격궤적이 보였다.
녀석들이 나를 향해 달려올 수록 점선이 확실히 보이더니 놈들의 몸뚱아리에도 선이 나타났다. 고블린은 쇄골에 선이 그어져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오크가 거대한 뭉둥이를, 내 머리를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육감(六感) - 타이밍 발동]
몽둥이를 향해 발이 나가더니 동작이 커진 오크의 품 안으로 순식간에 들어가 오크의 목을 베었다.
오크의 머리가 무력하게 땅에 떨어지며 구를 때 화살이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왔다.
[육감(六感) - 타이밍 발동]
미동도 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챙!
화살촉이 검면에 닿는 순간, 마치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지듯 울림이 퍼졌다. 그리고 손끝으로 전해진 진동이 끝나기도 전에 종아리에 힘을 주어 지면을 박차 화살을 쏜 고블린을 베어냈다. 순식간이었다.
툭.
아? 사기는 내가 치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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