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소란스러움에 고갤 쭉 빼든 찬서가 안으로 들어섰다. 원재의 자리에 다 같이 모여 컴퓨터의 화면을 보고 있는 것에 의아함을 느낀 찬서가 다가갔다.
“무슨 일 있어요?”
“아, 찬서 씨! 요즘에 떠도는 도시 괴담 아세요?”
“도시··· 괴담이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묻는 찬서에 아람이 다가와 보라며 손짓했다. 찬서가 옆의 재연을 바라보자 재연 또한 모르겠다는 눈으로 찬서를 봤다. 둘은 이 소란스러움의 중심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그들 틈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기사가 나지 않고 있지만 곧 기자들이 취재 다니고 할 듯. 요즘 솔직히 그 여자가 꿈에 안 나온 사람들이 더 적지 않냐? 처음에는 그냥 예쁜 여자가 나오니까 아무 생각 없었는데··· 솔직히 좀 무서움.]
그 여자? 인상을 찌푸린 채 화면을 보던 찬서가 고갤 더 들이밀었다. 옆에서 흥미 없는 눈으로 보던 재연 역시 꿈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글을 읽기 위해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 여자가 울면서 뭐라고 말하긴 하는데 깨고 나면 기억도 안 나고 그냥 찜찜해 죽음. 근데 내 친구도, 내 상사도, 내가 실제로 만나지 못한 내 인터넷 친구도 그 여자를 꿈에서 봤다잖아. 이게 말이 됨? 아무래도 드림 코베터 같음.]
꿈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의문의 여자. 한 사람에게만 계속 나타나는 게 아닌 전국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여자. 그렇다고 해를 끼치는 건 아니지만 찝찝하게 만드는 존재.
“이런 능력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다른 사람 꿈에 나타나는 건 드림 키퍼와 드림 코베터의 기본 능력이잖아요.”
재연의 물음에 원재가 고갤 끄덕였다.
“그렇긴 해요. 하지만 여자를 봤다는 사람들, 다 다른 날에 여자를 본 게 아니에요.”
“그 말은··· 여자가 드림 코베터가 맞다면 한 번에 여러 명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게 지금까지의 정보로 유추해낼 수 있는 결론이었다. 재연의 말에 정이 고갤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저 여자가 드림 코베터가 맞다면 의 이야기지만.”
“아직 저희한테 의뢰가 들어온 건 아닌가요?”
“네. 아직 정식으로 의뢰가 들어온 건 아니에요. 하지만 곧 들어오겠죠.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고 어디가 있겠어요.”
정의 말이 맞았다. 대한민국은 국가의 관리 하에 드림 키퍼 시장을 꿈길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구조였다. 그러니 이곳 외에 이 사태를 해결할 곳이 마땅하지 않을 것이다.
“저희는 일정이 있어서 먼저 이동할게요.”
정의 인사에 동료들이 고갤 끄덕였다. 정이 파트너인 원재를 고갯짓으로 부르자 원재가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이다, 일······.”
“네, 일이죠. 얼른 갑시다.”
터덜터덜 나가는 원재와 정을 보던 찬서가 손목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시선을 내렸다.
[ 박 찬서 키퍼. 2시까지 처치실에 들려 검사 및 치료 받아야 합니다.]
“아, 맞다. 처치실 가야지.”
찬서의 손목에 걸린 워치를 본 재연이 뭔가 떠올린 듯 말했다.
“어쩐지 정신이 좀 몽롱하더라.”
찬서가 작게 중얼거리자 재연이 급하게 찬서의 등을 떠밀었다. 찬서는 조금 더 쉬고 싶다며 칭얼거렸지만 찬서의 등을 미는 손에서 힘이 빠지는 일은 없었다.
* * *
“자아, 찬서 씨. 검사 시작할까요?”
흰 가운을 입은 남성이 카트를 끌고 들어왔다. 남자의 가슴팍에는 ‘연구원 어 윤’ 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윤이 다가와 앉는 것을 보고 있던 찬서가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이 왜 이래요?”
“제 얼굴이 왜요?”
“그거야, 입이 제 자리에 있지 않고 볼에 있잖아요. 입이 있는 자리에는 눈이 있고······.”
찬서의 답에 그를 빤히 보던 윤이 고갤 끄덕이며 얼굴을 잡아당겼다. 아파 보이지 않았으나 얼굴을 잡아당겨 뜯어내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찬서는 그런 윤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가면을 뜯어낸 윤이 카트 두 번째 칸에 가면을 던지고 찬서를 바라봤다.
“일단 기본적인 인지 기능은 문제가 없어 보이네요.”
“다행이네요.”
찬서가 고갤 끄덕였다. 찬서가 기대있던 의료용 침대가 천천히 눕혀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눈을 감으려던 찬서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감겨지던 눈을 떴다. 상체를 살짝 일으킨 찬서가 물었다.
“···이것도 검사의 일환이겠죠? 저기 쓰러진 사람 있는데요.”
“저게 왜요?”
이상한 걸 모르겠다는 눈으로 단진을 돌아보는 윤에 찬서가 당황한 얼굴로 쓰러진 연구원을 쳐다봤다.
“저 분 단진 씨 아닌가요? 쓰러져 있으면 챙기는 게 우선이죠. 좀 봐 봐요.”
“···오케이. 됐어요. 일어나도 돼요, 단진 씨.”
움직이지도 않고 누워있던 단진이 윤의 신호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뱉으며 다시 눕는 찬서에게 윤이 웃어보였다.
“눈이 입 있는 곳으로 가고, 입이 볼로 가고. 이건 너무 대놓고 이상하잖아요.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지 확인하려면 이런 식으로 확인하는 게 나으니까.”
“이래도 모르는 사람이 있겠죠.”
“찬서 씨 전 전 타임 때는 제가 쓰러져 있었는데, 이상한 걸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치료를 좀 더 신경 써서 해줬죠. 상태가 말이 아니더라고요.”
“확실히 누가 쓰러져 있는 걸 신경 쓰지 않는 상태라면 많이 안 좋았겠네요.”
찬서가 드림 키퍼가 된 이후 가장 당황했던 검사 방법 중 하나였다. 드림 키퍼는 다른 이들의 꿈을 다루는 사람이기에 무의식을 계속해서 부유하고 이용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능력을 과하게 사용하다보면 꿈을 잘 다루던 키퍼들도 무의식에 동요되어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질 때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상한 걸 봐도 이상하다 느끼지 못했고 감각도 둔해졌다.
‘그러다 몸이 망가지거나 꿈에서 깨려고 죽는 시늉했다가 진짜 죽는 엔딩이지.’
처치실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유독 윤과 유진은 연구원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이들은 뇌 과학을 연구한 사람들로서 드림 키퍼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담당하는 이들이었다.
과거 완벽히 복지가 갖춰지지 않았을 때, 임무를 마친 키퍼 한 명이 아직 꿈이라고 생각해 건물에서 뛰어내린 게 처치팀을 만들게 된 시작이었다. 찬서가 입사 준비를 하면서 읽었던 책에 적혀 있던 내용이었다.
“자, 이제 제대로 누워볼까요?”
베개를 벤 뒤 눈을 감은 찬서가 이내 이마와 관자놀이에 축축한 무언가가 붙는 것을 느꼈다. 제 뇌파를 검사하기 위해 붙이는 거지만 찝찝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기기 켤 거예요. 지금은 굳이 눈 안 감아도 되는 거 알죠?”
“네.”
그냥 눈을 감고 싶을 뿐이었다. 기계음 소리가 들려왔다. 키보드를 건드는 듯 다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 다행히 찬서 씨 뇌파가 현재는 감마 파를 잘 유지하고 있네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조금 전에 재연 씨가 오늘 찬서 씨가 능력 쓸 때 뇌파 상태를 보내줬거든요. ···흠, 능력을 쓰는 동안에는 리버티 파를 유지해야 하는데 중간 중간에 좀 감마 파에 닿을락 말락 할 때가 있었네요.”
“아, 그래요?”
“네. 부작용이 일어나는 주기는 계속 잘 유지되고 있으니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고··· 오늘은 뇌파 안정 치료만 좀 받고 가면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40분 정도 걸리겠네요.”
“네, 그동안 한 숨 푹 자세요. 여기 능력 차단용 드림 캐쳐 걸어둘 테니.”
고맙다고 인사하자 한 번 손을 흔든 것으로 답을 대신한 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서의 부스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윤이 연구실로 들어간다고 해서 찬서에게 완전히 신경을 끄는 것은 아니다. 연구실에 들어가면 스크린 모니터로 상황을 다 확인할 수 있으니.
달칵 소리와 함께 기기 옆에 걸어 놓은 드림 캐쳐에서 작은 빛이 났다. 이 기구 또한 연구원들이 연구를 통해 만든 것이었다. 능력을 쓰는 이들이 능력을 쓰지 못하게 뇌파를 조절해주는 일종의 의료 기구. 찬서는 눈을 다시 감았다. 치료가 끝나면 연구원 중 누구라도 찬서의 부스 안으로 들어와 깨워줄 것이다.
“찬서 씨. 일어나세요. 찬서 씨.”
“으음······.”
“지금 안 일어나면 재연 씨가 귀에 소리 지를 거래요.”
“어헉!”
몇 번 겪었던,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던 고통이 떠오른 찬서가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고갤 돌리자 유진이 웃으며 찬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유진 씨··· 벌써 40분이 지났어요?”
“그럼요. 뒤에나 봐 봐요.”
유진의 말에 투명한 부스 벽 너머로 눈을 치켜뜨고 있는 재연이 보였다. 그의 눈빛에 깜짝 놀라 침대에서 내려왔다. 유진이 건네주는 티슈를 받아 이마와 관자놀이에 붙어 있는 끈적끈적한 접착 젤을 닦아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찬서 씨야 말로 고생했어요.”
인사를 하고 나오자 재연이 찬서의 손에 들린 티슈를 받아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진 후 찬서의 걸음을 재촉했다. 4시 반. 재연이 맡은 의뢰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재연이 먹어야 할 드림 키퍼용 수면제를 하나 꺼내는 순간,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찬서 씨는 드림 키퍼 기본 능력인 다른 사람 꿈에 들어가는 게 안 된다는 거잖아요.”
“아, 재문 씨 지금 처음 알게 된 거예요?”
“네. 근데 그런 것 치곤 드림 키퍼로 되게 특별 취급 받고 있지 않아요? 드림 키퍼 기본 능력도 없는데, 드림 키퍼라고 할 수 있어요?”
자주 듣던 소리였다. 그저 재연의 파트너, 키퍼 에이더였던 찬서가 하루아침에 드림 키퍼가 됐을 때. 드림 키퍼의 조건 세 가지에 다 해당하지 않는 찬서가 어떻게 드림 키퍼가 될 수 있냐며 말들이 많았다.
“보통이면 드림 키퍼로 인정받지 못했겠죠. 하지만 찬서 씨는 달라요. 드림 키퍼는 기본 능력만 가지고 있어도 인정받을 순 있어요. 이건 재문 씨가 제일 잘 알겠죠. 근데 어떤 드림 키퍼들은 개인 고유의 특별 능력도 가지고 있다는 거 알죠?”
상대방의 말에 기분이 좋지는 않은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갤 끄덕였다. 찬서의 기억에, 재문은 기본 능력만 있는 드림 키퍼였다. 그래서 기분이 안 좋은 걸지도 몰랐다. 찬서가 드림 키퍼로 인정받은 것 역시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걸지도.
“···알죠. 원재 씨는 다른 사람의 악몽을 없애주고, 재연 씨는 자신의 무의식에서 시간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다녀오고. 아람 씨는 다른 사람의 꿈에서 어느 정도 원하는 걸 구사해낼 수 있고.”
“그래요. 그런 개인 고유의 능력. 찬서 씨는 기본 능력은 없어도 개인 고유 능력이 매우 특별하거든요.”
수면제를 담은 작은 소분 병을 쥔 채 찬서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찬서의 인기척을 느낀 여성이 찬서를 보며 가볍게 인사했고, 재문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재문 씨한테 뭐 알려주고 계셨구나, 아름 씨.”
아름이 고갤 끄덕였다. 굳은 채 바닥을 보고 있는 재문을 흘끗 본 찬서가 미소를 지으며 재문이 가지고 있을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저는 다른 이들의 꿈을 가져오는 능력이 있어요, 재문 씨. 그 대상은 일반인이고 루시드 드리머고 드림 키퍼고 가리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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