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정찰 시작
“오늘은 들어오지 않았어요.”
원재의 말에 의뢰인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하지만 오늘 제 꿈에 그 여자가 나타난 영상이 남아 있는데요. 비록 키퍼님께서 지워줬지만!”
“그렇기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없앨 수 있는 건 악몽뿐입니다. 들어온 드림 코베터까지 없앨 순 없어요. 근데 그렇게 쉽게 제가 없앨 수 있었다는 건, 그 여자 또한 악몽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원재의 말에 멍하니 있던 의뢰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그동안 제 꿈에 나왔던 여자는 다 꿈의 일부였다는 소리인가요?”
“사실···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의 상황으로 봤을 땐 꿈의 일부인 것 같다고 말하고 싶지만 다른 방향으로 확인해 본 것은 아니기에 단정 지어 답하기는 힘듭니다.”
원재의 말에 의뢰인이 짜증이 섞인 숨을 내쉬다가 고갤 끄덕였다. 원재에게 뭐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알겠어요. 또 그 여자가 나오면 다시 오던가 하겠습니다. ···요즘 올라온 기사들을 보면 어떻게든 정리가 될 것 같긴 하던데.”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뢰인이 나간 후 원재가 미간을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울리고 어지러운 게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찬서 씨랑 재연 씨가 들어올 때쯤부터 부작용 주기가 짧아지기 시작했어. 이젠 능력을 쓸 때마다 치료를 받아야 하니······.’
“많이 어지러워요?”
안에서 정리를 하고 나온 정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약간 어지럽네요.”
“그러게 제가 대화 나누면 되는데.”
“의뢰인 분께서 계속 키퍼랑 대화를 해야겠다고 하시니 저희가 어쩔 수 있나요.”
괜찮다는 듯 정에게 웃어보였다. 정은 그런 원재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꿈 속 상황을 보는 건 키퍼고 에이더고 같은데, 가끔 편견이 섞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은 ‘에이더 말고 키퍼 나와.’같은 말들을 하곤 했다. 물론, 정은 그런 말들을 아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벌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윤이 들어왔다. 안 그래도 처치실에 가려고 했던 정과 원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안 그래도 가려고 했는데.”
“일단 나 좀 봐.”
다가와 양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말하는 윤에 원재는 시선을 들어 윤과 눈을 맞췄다. 바로 앞에 있는 윤의 눈과 눈을 맞추기 위해 원재는 두 번 정도 눈을 깜빡이여 초점을 맞춰야 했다. 뒤늦게 눈을 맞췄지만 시선이 오래 머물지 못했다.
“···정 씨, 일단 형 좀 데리고 갈게요. 시야를 본인이 제대로 조절 못하는 거 보니 치료가 필요하겠어요.”
“네, 걱정 마세요. 능력을 쓰는 동안의 뇌파 파일 역시 보내놨으니까 확인하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들어왔던 쪽으로 원재를 이끈 윤이 문을 열고 나갔다. 윤과 원재가 나간 문을 보던 정은 원재의 이마와 관자놀이에 붙였던 전선 끝에 묻은 젤을 닦아냈다.
‘아마 바깥에 탈 것 놔뒀겠지. 어지러워하는 성인 남성을 그냥 데리고 갈 생각으로 오진 않았을 테니.’
정은 화면을 계속 보느라 아팠던 목을 꺾고 어깨를 두드리며 걸음을 옮겼다.
* * *
“일단 누워.”
윤의 안내로 원재가 침대에 눕자 윤이 한숨을 쉬며 원재의 이마와 관자놀이에 전선을 붙였다. 익숙한 듯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보던 원재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찬서 씨가 하게 될 것 같지.”
“응, 아무래도. 너무 완벽한 조건이야.”
두 사람은 그동안 모았던 정보를 통해 알게 된 것들을 떠올렸다. 일반인들이나 루시드 드리머들의 꿈에만 나타난다는 것. 드림 키퍼의 꿈에는 들어올 수 없는 것 같았다. 아마 뇌파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가질 뿐.
그러나 찬서는 드림 키퍼지만 보통의 키퍼들과는 달랐다. 기본 능력이 없기 때문인지 능력을 사용할 때 빼고는 자고 있어도 일반 사람들처럼 뇌파가 감마 파를 유지했다. 어쩌면 찬서는 다른 이들의 꿈을 가져오지 않고도 드림 코베터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아, 나 진짜 곧 그만둬야 하나보다. 몸이 능력을 견디지 못하는 게 점점 느껴져.”
“그만 두면 뭐하게.”
원재의 옆에 능력 제어용 드림 캐쳐를 건 뒤 전원을 켠 윤의 물었다. 그의 물음에 원재가 작게 웃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종류의 고민이라 더 웃음이 났다.
“그러게. 조금씩 생각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굳이 일 안 해도 먹고 살 만큼 돈 있지 않아? 취미 없어서 쓴 돈도 별로 없잖아.”
“나중에 나이 들어서 돈 많이 쓰려고 아낀 거야. 나이 들고 돈 좀 쓰려는데 쓸 데 부족하면 안 되잖아. 원래 계획은 몇 년은 더 일하는 거였는데······.”
“더 해, 그럼. 내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우리 직업이 드림 키퍼 건강 책임지는 건데.”
윤의 말에 눈의 깜빡임이 느려지던 원재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것도, 몸이 어느 정도 버텨주는 키퍼한테만 가능한 거야······.”
말을 마친 뒤 눈을 감은 원재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원재가 잠에 든 것을 깨달은 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뇌파 치료 기기도 켜지 않았는데 잠들고 난리’라고 중얼거린 윤은 기기를 켠 뒤 조용히 부스 바깥으로 나갔다.
“···당장의 키퍼만을 위한 연구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원재의 말대로, 지금 처치팀 연구원들이 내는 결과물들은 다 현재진행형으로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키퍼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밖에 없었다. 그만 둔 이후의 키퍼들에겐 그저 능력 제어용 드림 캐쳐를 주는 게 다였다. 저번에 유진이 지나가듯 말했던 연구 주제가 떠올랐다. 듣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역시 유진 씨는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구나. 가서 나도 도울 일 없냐고 물어봐야지.’
* * *
체력 단련을 하고 온 찬서가 뭔가 떠오른 듯 뒤에 있는 아람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도시 괴담 이야기는 요즘 좀 잠잠한가 봐요?”
“아··· 그 쪽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요즘은 안 나타난다고 하더라고요.”
찬서는 그 말에 고갤 끄덕였다. 어쩌면 당연했다.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향한 관심이 커진 상황에 계속 꿈에 침입했다간 키퍼들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을 테니.
“하지만 아예 그만둔 건 아닐 거예요. 잠깐 텀을 두고 나타나려는 생각이겠지.”
아람의 말이 맞았다. 애초에 이런 관심에 완전히 숨을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다시 나타나면 다른 사람 말고 찬서 씨가 바로 호출 될 텐데 조금의 여유를 즐기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렇겠네요. 아름 씨는요?”
“아, 탕비실 갔을 걸요? 에이, 몰라요.”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아람에 찬서가 웃었다.
“두 분은 안 맞는 것 같은데 잘 맞으시더라.”
“그거 언니가 들었으면 기분 나빠할 것 같은데요. 늘 상 나보고 사고 치지 말라고 화를 내는 사람이라.”
아람의 말에 찬서는 정찰 때 봤던 아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재연과 어느 정도 비슷한 면모을 보였던 기억이 났다. 이성적으로 잘하는 것 같다가도 가끔 핀트가 엇나간 채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가는 모습.
“뭐··· 워낙 아름 씨는 철저한 성격이시니까.”
“에헤이, 저도 철저해요.”
“아는데 가끔 꽂히는 게 있으면 그것만 보시잖아요. 제가 그런 성격인 재연 씨 파트너라서 아는데 꽤 골치 아파요.”
“···그럴 때마다 사과는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수습은 에이더가 하니까요.”
꽤 단호한 찬서의 답에 아람이 웃음을 지은 채 시선을 돌렸다. 그런 아람의 모습에 웃은 찬서가 몸을 돌려 제 책상을 보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에이더 마음은 에이더가 잘 안다니까. 찬서 씨 말 들었지? 그렇게 하지 좀 마라, 제발.”
나긋나긋한 아름의 목소리였다. 찬서가 고갤 들자 머그잔을 손에 든 아름이 서 있었다. 아람이 대충 고갤 끄덕였다.
“그나저나 재연 씨는요?”
“아, 재연이 형은 잠깐 수면실에 갔어요. 피곤하다고요. 오늘 정찰해야 하니 피곤하긴 할 겁니다.”
“정찰? 며칠 전에 하지 않았어요?”
“네, 스케줄 상 정찰은 했는데 다른 분이 일이 생겼다고 해서 재연 씨가 맡아주기로 했어요.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전들 어쩌겠어요.”
“뭐, 본인이 괜찮다고 했으니. 그리고 수치가 나쁘지 않으니 처치팀이랑 이사실에서도 허락한 거 아니겠어요?”
“맞아요.”
어차피 재연이 무리한다 싶으면 처치팀에서 먼저 태클을 걸었을 것이다.
‘이사들 중에 믿을 만한 인간은 별로 없지만··· 연 이사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니까.’
자진해서 키퍼들 일정 관리 승인 업무를 맡은 이사인 연 이사만큼은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포스가 있어 연 이사 사무실에 들어가면 기가 죽긴 하지만 현장팀 사람들을 사람으로서 존중해주는 건 연 이사밖에 없었다. 이사들 중 유일하게 현장직 출신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런 두 곳을 거쳐서 승인 된 것이니 문제는 없을 게 분명했다.
“찬서 씨도 좀 자둬요. 재연 씨 정찰하는 동안 찬서 씨도 깨 있어야 할 텐데.”
“그러게요··· 그래야겠네요. 서류 작성만 마저 하고요.”
스트레칭을 하며 의자를 빙글 돌려 다시 키보드를 잡았다. 그런 찬서의 등을 향해 응원을 보낸 아람과 아름은 곧 업무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 * *
“자, C 구역 정찰 키퍼 분들 준비해 주세요.”
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통해 오늘 C 구역의 담당 연구원은 유진임을 알 수 있었다. 유진의 등 뒤로 치료 기기들이 돌돌돌 소리를 내며 끌려오는 것이 보였다.
‘최근에 들어온 신입이 없어서 그런가 견학 온 사람들은 없어 보이네.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는 않겠어.’
기기와 헤드폰을 확인한 찬서가 침대에 걸터앉은 재연에게 가져온 약을 건넸다. 약을 받은 재연은 익숙하게 삼켰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얇은 이불까지 덮은 뒤 몇 번 뒤척이며 자세를 잡던 재연이 눈을 감았다.
정찰을 하기 위해 누운 침대 뒤로 콘솔이 보였다. 모니터나 스위치, 키보드가 모여 있어 매우 복잡해 보였다.
‘저걸 건드리고 위치 파악하고 하는 게 제일 신기하단 말이야.’
속으로 생각하던 찬서는 이내 화면이 바뀌는 것을 느끼고 헤드폰을 썼다. 이젠 재연과 정찰에 집중할 차례였다.
기본적으로 정찰을 이해하려면 이 말을 알고 있어야 했다. ‘꿈은 네 영혼의 여행 흔적이다.’ 자다가 깬 순간 눈앞을 휙 지나가는 무언가를 본 적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때, 능력자들은 그 지나간 무언가가 본인의 영혼일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를 통해 드림 키퍼들이 어떻게 다른 이들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영혼이 다 나가면 그건 죽은 것이고, 일부가 떨어져 나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키퍼들은 이렇게 나와 돌아다니며 정찰을 허용한 국민들의 무의식을 보호했다.
공기를 가르며 정찰 구역으로 이동하는 재연의 시야를 가만히 보던 찬서가 패드를 켜 지도를 살펴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은 드림 코베터가 안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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