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자식을 위하여(1)

찬서는 다리를 달달 떨며 연락을 기다리다 폰이 울리는 순간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아, 찬서 씨. 안 종호 형사입니다.
“네. 결과는······.”
찬서의 옆에서 초조한 얼굴로 찬서를 보던 재연은 시시각각 변하는 찬서의 표정에 더 긴장되기 시작했다. 찬서가 폰을 내려놓자 재연이 찬서의 팔을 붙잡았다.
“뭐라고 하셔?”
“···관리국에 한 명, 꿈길기업 총무팀에 한 명.”
“허, 한 명은 심지어 꿈길기업이라고?”
재연의 되물음에 찬서가 고갤 끄덕였다. 어이가 없을 수밖에. 적을 제 진영에 데리고 있었으니.
“그 사람들에게 들키진 않았다지?”
재연의 물음에 찬서가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종호가 했던 말을 천천히 떠올려 재연에게 전했다.
“일단 그 사람들 정보를 몰래 수집해서 이동 경로를 조사할 예정이래. 그리고 연락한 사람들도 다 찾아볼 거고. 그러면 겹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했어.”
찬서의 말에 안심을 한 건지 재연이 편안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재연을 보고 웃은 찬서도 역시 실마리가 잡혔다는 것에 기분이 들뜬 상태였다.
“오늘 민희 씨에게 이 사실을 알려줘야겠어.”
“그래. 오늘도 민희 씨가 찾아오면 좋겠다.”
민희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우울함과 피곤함이 가득 담긴 낯에 조금의 희망, 긍정적인 기운이 담기길 바랐다.
“그 전에, 우리는 서류 정리나 하자고.”
“좋아. 우리 자리로 가자.”
재연의 말에 의욕이 넘친 찬서가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책상을 향했다.
* * *
정보를 확인하던 종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럴 수가 있을까.
“최근 일주일간의 동선이 어떻게 겹치는 게 한 곳도 없지?”
혹시 몰라 근 한 달간의 동선을 살펴봤음에도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연락처조차. 인상을 찌푸린 종호가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이자 옆에서 보고 있던 재운이 다가왔다.
“되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죠?”
“네. 이렇게 조사를 당하게 될 것 조차 예상해서 대비한 것처럼 말이에요.”
“정확히는 안 걸릴 거라고 자만하지 않았다고 봐야겠네요. 언제든 걸렸을 때 자신들의 거점을 쉽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단단히 준비한 것 같아요.”
재운의 말에 종호가 고갤 끄덕였다. 분명 속임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락한 사람조차 겹치는 게 없다는 건······.”
“그건 이 사람들이 연락한 사람들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파고들어야 겹치는 사람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겠죠. 그렇게 파고들다 보면 연락이 겹치는 사람이 있겠지만··· 진짜 지독하네요.”
종호의 말에 재운이 질린다는 얼굴로 고갤 저었다. 이렇게 치밀하다는 건, 오랜 시간 견고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촘촘하게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대비했다고 봐야 했다.
“강 선생, 보통 아닌 것 같은데······.”
“일단 당분간 또 철야 확정이네요. 우리 파이팅 합시다.”
주먹을 슬쩍 내미는 재운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종호가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맞부딪혔다.
“일단 근 한 달 동안 다녔던 장소 중 매 주마다, 혹은 자주 갔던 장소를 골라서 확인해보죠. 겹치지 않아도 체크합시다.”
종호의 말에 재운이 고갤 끄덕인 뒤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밀어 제 자리로 돌아갔다. 확인할 장소를 추리고 나면, 현장에 가야 할 터였다.
* * *
찬서는 옷을 챙기기 위해, 그리고 옷을 세탁하기 위해 집에 들렀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은진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엄마, TV 보고 있었어요?”
찬서를 본 은진이 시선을 돌려 자신의 아들을 봤다. 이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찬서를 끌어안았다.
“고생 많네, 아들. 옷 챙기러 왔어?”
“응. 정확히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네요. 10시 전에만 가면 되니까 빨래한 다음에 건조기까지 돌리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계를 흘끔 보며 말하는 찬서에 은진이 고갤 끄덕였다. 찬서가 집에서 잠에 들지 못한 지 일주일이 지난 상황이었다.
“그냥 엄마가 해줄게.”
“됐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뭐 하러.”
빨래가 담긴 쇼핑백을 흔들어 보인 찬서가 세탁기가 있는 뒷베란다로 향했다. 그런 찬서의 뒷모습을 보던 은진이 고개를 절절 저었다.
‘아까 재연이 형한테 전해 듣기를, 조사에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그랬지.’
어린 아이일 때부터 성인 될 때까지 바깥세상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쉽지 않을 것 같긴 했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철저한 것에 혀를 내둘렀다.
‘정보 창구가 아예 없는 탓에 민희 씨가 알고 있는 게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물어봐야겠어.’
세탁기를 일반 세탁으로 한 찬서가 세탁 시작을 눌렀다. 덜거덕 소리를 내며 구르기 시작하는 빨랫감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 * *
원재가 이마를 손가락 끝으로 누르다가 의자 등받이에 눕듯이 등을 기댔다.
“으으, 머리 아파.”
“원재 씨 치료 받고 왔어요?”
“네에. 당연하죠. 윤이가 매번 저 의뢰 마치자마자 바로 처치실로 끌고 가거든요.”
원재의 대답에 다행이라고 답하며 차를 한 입 마신 우정이 차를 책상에 내려놨다.
“근데 원재 씨랑 윤 씨는 파트너도 아닌데 되게 친한 것 같아요. 같이 오래 일해서 그런가?”
“그런 것도 있겠지만 둘이 입사하기 전부터 친했던 사이라 그런 걸 수도 있어요.”
옆에서 노트북에 불이 나도록 타자를 치던 아람이 여상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어? 두 분 입사 전부터 친했다고요?”
“네. 저도 정확한 건 모르는데··· 지나가는 말로 들은 적 있어요.”
“정말이에요?”
눈을 빛내며 묻는 우정에 눈을 끔뻑이던 원재가 고갤 끄덕였다.
“대박, 전 당연히 다들 입사하고 친해진 줄 알았어요.”
“대부분 그래요, 대부분······. 저랑 윤이가 특이한 거지.”
“어떻게 친해졌어요? 어쩌다가 같이 입사하게 됐어요?”
눈을 빛내며 이것저것 묻는 우정에 원재는 곤란하다는 얼굴을 했다. 원재가 입을 열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안녕하세요. 다녀왔습니다······.”
찬서가 피곤함을 주렁주렁 단 얼굴로 들어왔다. 원재가 벌떡 일어나 그를 반겼다.
“찬서 씨, 오늘도 회사에서 잘 건가요?”
“아무래도요. 아직 간이용 시야 공유 기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처치팀도 이번에 확실히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의뢰가 장기전으로 갈 수 있으니 간이용 시야 공유 기기도 있어야겠다고.”
원재가 동의하며 찬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토닥임에 찬서가 힘겹게 미소를 지은 뒤 쇼핑백을 자신의 책상에 두고 엎드렸다.
“찬서 씨, 곧 있으면 쓰러지겠는데.”
“아녜요. 쓰러질 일이 뭐가 있다고요······.”
“그냥 안색이 그래요, 안색이.”
원재가 혀를 차더니 액상 비타민 뚜껑을 따 찬서의 입에 집어넣었다.
“우읍!”
“얼른 삼켜요. 이 알약도 같이.”
액상 비타민 뚜껑에 들어 있던 알약까지 야무지게 찬서의 입에 넣고는 삼키라며 고갯짓을 했다. 고갤 끄덕이며 삼킨 찬서가 의아한 눈으로 원재를 쳐다봤다.
“원래 내 나이 쯤 되면 멀티 비타민 같은 건 상비약처럼 챙겨 다녀요.”
“원재 씨 그렇게 나이 안 많잖아요. 서른여섯 아니에요?”
“엄청 많은 건 아니어도 적은 것도 아니죠. 나 찬서 씨보다 열한 살 많은데. 자, 이건 재연 씨 거. 나중에 만나면 줘요. 고생하잖아요.”
찬서의 손에 찬서가 먹었던 비타민과 똑같은 것을 쥐어준 원재가 빙긋 웃었다.
“원재 씨······.”
두 손을 꼭 모은 채 눈을 빛내며 원재를 바라보자 원재가 쑥스럽다는 듯 손을 저었다.
“비타민 준 것 가지고 뭘 또 그렇게 감동하고 그래요. 저는 오늘 의뢰 보고서 작성해야 해서 이만.”
“네, 원재 씨 짱입니다!”
찬서가 엄지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런 찬서를 보던 우정이 웃으며 찬서에게 다가왔다.
“고생 많으세요. 나중에 의뢰 다 해결되면 무슨 의뢰였는지 꼭 알려주세요. 궁금해요. 어떤 의뢰 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알겠어요.”
찬서가 웃으며 답하자 만족스러운 답을 들었다는 듯 우정이 미소를 지었다. 찬서가 시선을 움직여 시간을 확인했다. 몇 시간 남지 않았다.
* * *
찬서는 자신의 무의식인 방 안.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민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못 오려나.’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찬서는 자신의 무의식, 방 안에 균열이 생긴 것을 느꼈다.
“이 느낌은···!”
- 응, 아무래도 민희 씨가 들어온 것 같아.
파장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파장에 문제가 없음에도 찬서의 무의식이 조금씩 일그러지는 게 화면으로 보였다. 그렇다는 건, 파장 속에 누군가 숨어 들어왔다는 것.
“민희 씨!”
“안녕하세요. 기다리고 계셨어요?”
민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찬서가 고갤 저었다. 얼마 안 기다렸다는 뜻이었다.
“아, 주변에 자주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까?”
“주변에··· 음. 그다지요. 그렇게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는데.”
민희가 목 뒤를 살살 쓸었다. 고민하는 듯 했으나 딱히 떠오르는 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저희들이 당분간 여기저기 뭘 임시로 설치해서 특정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야겠네요. 다음에 다시 만날 땐 다음 날 몇 시 쯤 소리를 낼지 알려드릴게요. 특이한 소리를 들으면 다음에 만날 때 들었다고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상황은 어떤가요?”
민희의 물음에 찬서가 코로 숨을 한껏 들이켰다가 뱉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동선도 안 겹치게, 연락도 안 겹치게 해서 좀 걸릴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네. 믿고 있을게요.”
민희가 고갤 끄덕였다. 찬서가 입을 꾹 다물었다.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에게, 희망적인 말을 전할 수 없다는 것에 엄청난 무력함을 느꼈다.
* * *
화이트보드에 민희의 얼굴을 뽑은 뒤 패드와 번갈아가며 보는 찬서에게 재연이 말을 걸었다.
“뭐해?”
“아, 실종된 아이들 중에 찾아보는 중.”
“나와?”
찬서가 어깰 으쓱였다.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이 몇 있긴 하나, 딱 봤을 때 ‘민희 씨다’ 싶은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 몇 십 명이 남았지만.
“찬서 씨··· 그 여자애는 누구예요?”
언제 본관에 인사팀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 민희의 사진을 빤히 보고 있었다. 놀란 찬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민희의 얼굴을 등으로 가렸다.
“노, 노크는 하고 들어오시지.”
“아, 죄송합니다. 근데 혹시 사진 속 아이······.”
말끝을 흐리는 직원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느낀 재연이 찬서의 앞에 서서 직원을 마주했다.
“무슨 일이시죠.”
“그 아이, 올해 스물 되는 아이인가요?”
직원의 물음에 놀란 찬서가 숨을 멈췄다. 민희의 말에 의하면 그랬다. 올해 스물.
“잠, 잠시만 다시 보면 안 됩니까?”
다급하게 재연의 팔을 붙잡으며 묻는 직원에 놀란 눈으로 직원을 본 재연이 물었다.
“뭐 때문에 그러시는 건지 말해주세요.”
틈을 내주지 않는 재연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듯이 굴던 직원이 소리치듯이 말했다.
“14년 전에 잃어버린 제 딸 같아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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