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위하여(5)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강식의 방으로 향했다. 확신이 들었다. 강식의 방에 어디론가 향할 통로가 있을 거라는 확신.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아주 어릴 때 강식이 썼던 방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다정과 범우는 눈을 맞추고 고갤 끄덕였다. 조용히 방을 뒤져보자는 의미였다.
다정이 먼저 책상 근처로 다가갔다. 책상 아래를 손으로 더듬어봤지만 손잡이나 틈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혀를 찬 다정이 조심스럽게 책상을 끌어냈다. 끼익 소리가 나는 것에 범우가 화들짝 놀라며 다정 쪽을 쳐다봤다.
“걱정 마요. 최대한 소리 안 나게 할 테니까.”
다정이 고갤 까딱이며 말했다. 범우 역시 그녀의 말에 고갤 끄덕였다. 서로를 믿고 수색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까지 챙기기에 시간은 촉박했으니까. 둘은 계속해서 방을 살폈다. 에어컨이 작동되어 있음에도 이 방은 늘 문이 닫혀 있어서 땀이 계속해서 났다.
다정과 범우는 땀이 흘러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할까 싶어 계속해서 땀을 닦아냈다.
“침대 밑에도 없고. 침대 밑이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했는데······.”
“카펫 밑에도 아니야. 이 방이 아닌 건가······.”
다정과 범우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수면제를 넣었다고 해도 사람마다 다르니 언제 일어날지 몰랐다.
‘일어나기 전에 뭐라도 알아내야 하는데.’
눈을 굴리며 주변을 보던 다정이 붙박이 옷장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옷장 자체가 벽 안으로 나 있었다.
“여보, 설마 저 옷장 보고 있는 거야?”
범우의 물음에 다정이 고갤 끄덕였다.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무슨··· 우리 바닥 쪽을 상세히 살펴보기로 했잖아. 심지어 이 옷장, 열려 있어서 안에도 다 보여. 모르겠어? 비밀의 문 같은 건 안 보여.”
범우의 말에 다정이 고갤 저었다. 다정이 천천히 다가가 옷들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다.
“여보!”
“우리가 살펴봤던 것들. 모두 다 집을 지은 뒤 들인 가구라는 공통점이 있어. 그렇지?”
다정이 건네는 옷을 차곡차곡 두며 범우가 고갤 끄덕였다. 그러다 굳어버렸다. 범우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뜻을 이해했다는 걸 느낀 다정이 말을 이었다.
“저 부부가 원래부터, 애를 낳기 전부터 반능력자 단체 사람이었다면 어떨 것 같아.”
“뒤늦게 물든 게 아니라면··· 이 집을 지을 때부터 이런 통로를 생각하고 지었을지도 모르겠네. 어쩌면··· 그 지하통로가 이미 있고, 그 위에 이 집을 지었을지도.”
“그래. 그런 가능성이 있었던 거야. 이 단체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을 수 있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오래. 어쩌면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그 직후부터.”
계속해서 옷장을 더듬던 다정의 손짓이 순간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옷장에서 덜커덕하는 소리가 났다.
“어, 어딜 건든 거야?”
놀란 범우가 묻자 다정이 몸을 틀어 제 손이 닿은 곳을 보여줬다. 옷장 아래쪽 모서리. 틈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곧 밑에 수납장이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범우는 다급히 폰을 꺼내 그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수납장은 천천히 내려가, 밑으로 향하는 첫 번째 계단으로 자리를 잡자 움직임을 멈췄다.
“허··· 수납장이, 수납장이 아니고 계단이었군.”
“어쩐지. 보고 만지면서도 수납장이 많이 단단하다 생각했는데. 계단으로 쓰이려면 많이 단단해야 했겠네.”
“이 밑이, 아이들이 있는 건물로 갈 수 있는··· 통로구나.”
범우의 혼잣말에 다정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자신의 딸 지원과 만날 수 있을 테다. 그 생각이 범우와 다정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지금 당장 갈까? 가서 지원이만 빼 오자. 그러면 돼. 그럼 지원이가 괴로울 날이 하루라도 줄어드는 거라고!’
이 말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괴롭혔다.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 이 밑으로 내려가 달려가야 할 것 같았다.
‘안 돼.’
다정도 범우도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들의 욕심으로 다른 아이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됐다. 자신들처럼 자식을 찾고 있을 이름 모를 부모들을 위해 한 발 물러서야 했다.
“엇.”
시간이 5분 정도 지났을까, 수납장이 천천히 다시 위로 올라왔다. 다시 옷장이 되어버린 통로를 멍하니 보던 둘은 급하게 옷을 원래 있던 자리에 두었다.
“···이제 나가서 식탁 정리하고, 저 둘 침대에 뉘이고 가자.”
범우의 말에 다정이 고갤 끄덕였다. 깰 때까지 기다릴 생각도 없었다. 확실해졌다. 14년 간 저들과 보냈던 추억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우리도 그 마음 알아요. 다른 누구보다, 우리가 제일 잘 이해해요.’
‘우리 절대 희망 잃지 말아요. 아이들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고, 언젠가 우리 품으로 돌아올 거예요.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요.’
그렇게 무너지는 자신과 범우를 일으켜 세웠던 이들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믿기지 않았다. 무너지는 자신들을 봤으면서, 괴로워하는 걸 봤으면서, 우는 걸 봤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식탁을 치우면서 편안하게 잠에 든 그 눈두덩이에 고기를 썰던 나이프를 찔러 넣고 싶었다.
편안한 낯을 고통으로, 괴로움으로 일그러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행위로도 잃어버린 딸과의 14년은 돌려받을 수 없었다.
‘견디자. 아까 내가 그렇게 얘기했잖아. 순간 감정으로 일을 내면, 지원이와 거기 있는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 거야.’
정리를 마친 다정과 범우는 미영과 계진을 안방 침대에 눕히고 방에서 나왔다. 방문을 닫으며 잠에 든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금 하는 후퇴는 모두 자식을 위해서였다. 지원을 위해, 지원과 같은 처지인 누군가의 자식들을 위해.
* * *
“여기요.”
다정이 건넨 폰을 받아 영상을 본 재연과 찬서가 입을 벌린 채 굳었다.
“집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거죠?”
“네. 들어가진 않았지만······.”
“잘했어요. 확실하게 아는 것도 아닌데 들어갔다가 무슨 일 당하시면 어떡해요.”
찬서가 다정을 다독였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다정에게 물었다.
“그, 걸리지는 않은 거죠? 걸리지 않으셨으니 오실 수 있으셨던 거겠지만······.”
“네, 저희가 영상 찍고 나와서 식탁 정리하고 두 사람 침실에 넣을 때까지 안 깼어요.”
“다행이네요. 그럼 형사님들께 연락해서 그 집을 수색할 이유를 만들던가 해야겠어요.”
“아, 영상에는 안 찍혔는데. 여기, 이 모서리 쪽을 건들면 들어가 지는 부분이 있어요. 여기가 버튼이에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다정 씨랑 범우 씨가 아니었다면 저희, 이번 의뢰 제대로 못 해냈을 거예요.”
찬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정말이었다. 다정과 범우가 아니었다면 이들의 자식이 강식이라는 것도 뒤늦게 알았을 것이며 통로를 알아내는 건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찬서의 말에 다정은 고갤 저을 뿐이었다.
“자식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어서 제가 더 감사하죠. ··· 곧 만날 수 있겠죠?”
다정의 물음에 찬서가 고갤 끄덕였다.
“그럴 날이 머지않았을 겁니다.”
찬서의 말에 다정의 표정이 이전에 비해 편안해 보였다. 이들에게, 그리고 그곳에 갇힌 이들에게 온전한 편안함이 찾아올 날이 최대한 빨리 올 수 있게 노력해야 했다. 다정을 보낸 후 찬서가 바로 폰을 들어 종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형사님. 통로 찾아냈어요. 다정 씨랑 범우 씨 가요. 지금 영상 보낼 테니까 확인해 주세요.”
- 통로를 찾아냈습니까?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그러고 한동안 조용하더니 이내 감탄사와 비명과 같은 탄식이 들려왔다. 다시 종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 확인했습니다. 통로가 어디 있는지도 찾았으니 저희가 이제 계획을 제대로 짜보겠습니다. 다정 씨와 범우 씨는 저희가 한 번 찾아뵙겠다고 전해주세요.
“네.”
전화를 끊는 와중에도 들뜬 기색이 역력한 종호와 재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찬서는 옅게 웃곤, 재연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어, 찬서야!”
재연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그를 잡아 끈 찬서가 빈 회의실에 들어가 그에게 영상을 틀어 보여줬다.
“이게··· 진짜네. 진짜야.”
“그러니까. 이 인간들, 처음부터 통로와 연결하기 위해 이 위치에 집을 지은 거야.”
재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한번 그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떠올랐다. 자기 자식에게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실종을 처리하고 지하에 가둔 인간들.
그리고 그 자식이 세상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탈출하자 죽음에 다다르게 한 인간들.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심지어 다른 이의 자식까지 그곳에 가둬놓고 그들과 가장 가깝게 지낸 인간들이었다.
“···다정 씨랑 범우 씨. 괜찮을까. 힘들 때 기댔던 사람들이 사실 힘들게 만든 원흉이라는 걸 알게 됐잖아.”
“엄청 힘드실 거야. 배신감은 물론이고 분노, 허탈함··· 장난 아니게 느끼고 계시겠지.”
찬서가 재생이 끝나 멈춘 영상을 보며 답했다. 자신은, 재연은 헤아리려고 해도 절대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 * *
찬서와의 통화를 마친 종호와 재운이 생각에 잠겼다. 미영과 계진에 대해 알아본 결과, 흠을 잡을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그거죠.”
종호의 말을 이어받은 재운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재운이 무슨 말을 할지 아는 듯 종호 역시 웃었다.
“좋아요. 그럼 어떤 식으로 그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제대로 짜볼까요?”
“의욕이 샘솟네요. 강도가 침입했답시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까요. 그래야 우리가 조사한다면서 뒤지기 편할 텐데.”
“그거 괜찮은데요?”
둘은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 시작했다.
* * *
“··· 뭔가 찝찝한데.”
침대에서 일어난 미영이 중얼거렸다. 이미 일어나서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있던 계진이 심드렁한 말투로 답했다.
“찝찝한 건 어제부터 그랬지. 안 그래? 곧 딸내미 잃은 날이 다가오는 부부가 비싼 술 들고 오는 것부터 이상하잖아.”
계진이 입술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며 미영을 쳐다봤다.
“한 번 확인을 좀 해야겠어. 두 사람, 뭔가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가까워졌다고 너무 방심한 것 같아, 우리.”
“··· 그러네. 진짜 친구라고 착각이라도 했었나, 우리가?”
“그럴지도. 그렇게 14년을 지냈으니 우리도 모르게 정말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방에서 나온 미영이 머리를 질끈 묶었다.
“근데 난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그저 친구인 미영이랑 범우 씨가 구원받을 수 있게 도운 거잖아. 우리가 정말 진정한 친구지 않나?”
미영의 질문에 계진이 미영에게 물을 한 잔 건넸다.
“그러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몰라. 다정 씨랑 범우도 결국 우리를 비난할걸.”
계진의 말에 미영은 이해할 수 없다고 중얼거리며 강식의 방을 쳐다봤다.
“일단··· 확인부터 하자. 마지막으로 들어갔을 때 확인용으로 찍은 사진, 폰에 있지?”
“응. 가자.”
미영과 계진은 폰을 꺼내 갤러리에 들어가 며칠 전 들어갔다가 나올 때 찍은 사진을 열었다. 자신들이 찍어놓은 사진과 조금이라도 달리진 부분이 없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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