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디로(1)

“그랬구나··· 다행이다. 하마터면 우리 딸 못 만날 뻔했네.”
“응. 근데··· 그 언니가 괜찮을지는 모르겠네. 강 선생 진짜 무서운 사람인데.”
걱정스럽게 중얼거리는 지원에 다정과 범우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얘기를 듣던 와중에는 분명 지은을 향해 분노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 아이도 지원처럼 갇혀서 자란 존재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잘 살려면 적응해야 했고 적응하려면 그들을 따라야 했을 것이다. 오히려 지원처럼 반항적으로 자란 게 더 희한한 일일지도 몰랐다.
“저··· 가족들의 대화를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잠깐 대화 가능할까요?”
불쑥 끼어드는 찬서에 다정과 범우가 화들짝 놀랐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찬서는 14년 만에 자식을 만난 둘의 입장에서 더 얘기를 나누고 싶고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까지만 이었다. 아직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몰랐으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모른 척 다 해결된 척 덮어놓고 지나갈 수 없었다.
“저, 찬서 씨······.”
“엄마, 아빠. 저 대화 좀 하게 잠시만 비켜주시겠어요?”
지원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원아!”
이제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딸이 힘든 얘기를 털어놓는다는 게 걱정 된 다정과 범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지원은 완강했다.
“거기 저 말고도 열댓 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갇혀 지내고 있어요. 이번에 놓치면 영영 못 찾을지도 몰라요.”
지원의 말을 들은 다정과 범우는 멍하니 자신의 딸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찬서에게 실례했다며 짧은 사과를 건넨 후 나갔다.
“···제가 실례한 건 아니겠죠? 부모님이랑 대화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다 보니 긴장되네요. 방금도 실수해서 기분이 상하신 걸까요?”
조심스레 묻는 지원에 찬서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지원 씨 말을 듣고 뭔가를 깨달았을 뿐일 겁니다. 지원 씨가 말하는 사람들 모두 지원 씨 같은 사람들일 테니까요. 지원 씨 말을 들은 순간 수많은 본인들을 떠올린 거 아닐까요?”
찬서의 말에 지원은 그제야 걱정이 풀린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 채 찬서를 쳐다봤다.
“이렇게는 처음 뵙네요.”
“그렇죠? 그래도 얼굴을 몇 번 봤던 사이라 마냥 낯설지는 않잖아요.”
웃음기를 머금은 답에 지원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몇 차례 끄덕였다.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죄다 처음 보는 사람, 낯선 공간 중 유일하게 찬서만이 자신이 아는 얼굴이었으니.
“저, 오늘 아침부터 이번에 발견되시기까지 어떤 일이 있으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그게 갑자기 아침부터 분주했어요. 뭔가를 들켰다고 그랬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계속 저를 의심하는 말을 했어요.”
“아마, 지원 씨 부모님이 비밀통로를 알아냈다는 것을 알게 돼서 그런 것 같네요.”
“그런 얘기도 하긴 했어요. 그래서 전 아, 부모님이 아직 나를 찾고 있구나. 깨달았고요. 근데, 강 선생님이 제가 위급 상황 때 쓰려고 숨겨놨던 유리조각조차 알고 있는 거예요.”
“유리조각이요?”
찬서의 물음에 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 날 제가 유리조각을 주운 건 같이 감금된 지은 언니만 봤거든요. 그 언니는 강 선생을 추앙하듯이 따르는 사람이에요. 어쨌든 아침에 모든 상황을 알게 된 그 언니가 다 일러바쳤던 거죠.”
“아······.”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였다. 하지만 이상한 얘기는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무너뜨리고 밟는 이에게 반항하고 적대심을 가지지만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무너뜨리는 대로 무너지고, 밟는 대로 밟히며 그들의 말을 법도처럼 따를 수도 있는 것이다.
“강 선생이 반지에 숨겨둔 마취제. 그러니까 정신은 온전한 마취제를 제 목 쪽에 주입했어요. 그래서 쓰러진 저에게 지은 언니가 자신의 죄를 씻어 내릴 겸 저를 없앨 거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네? 근데 지원 씨는······.”
“네. 저는 살아 있죠. 강 선생은 언니를 신뢰하고 있어서 언니에게 저를 맡기고 나갔어요. 이사하는 집으로 향하기 위해서. 언니는 흉기를 가지고 저에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 * *
‘죽는다.’
눈에 힘을 푼 민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자신을 찌르는 과정을 알고 싶지 않았다.
“···?”
민희는 이미 충분히 서너 번은 찔렀을 시간임에도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자 천천히 눈을 떴다.
“언니?”
눈앞에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민희가 제 팔뚝 쪽을 칼로 벤 것 같았다. 팔뚝에서 멈추지 않고 흐르는 붉은 핏물에 민희가 놀라 몸을 꿈틀거렸다.
“언니, 언니 뭐하는 거야! 피가 계속 흐르잖아!”
“김 민희.”
늘 민희, 민희야 라고 부르던 지은이 처음으로 부르는 제 이름 석 자에 민희는 그대로 굳었다. 지은의 눈빛이 가라앉아 있었다.
“말 하지 마. 너 말하는 것도 지금 힘겨울 거 아니야. 말하는 것도 결국 근육 쓰는 건데.”
“······.”
지은은 이내 충분한 양의 피를 흘렸다고 생각한 건지 민희 쪽으로 손을 뻗어 민희의 옷가지를 찢었다. 칼이 다가오는 것이 움찔거린 민희는 지은의 손에 들린 제 옷가지를 발견했다.
지은은 그 옷가지로 대충 제 팔을 묶어 지혈을 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이내 바닥에 떨어진 제 피를 손에 묻힌 지은이 민희의 몸 여기저기에 제 피를 묻히기 시작했다.
지은의 손이 이리저리 움직일수록 민희는 제 몸에서 피 냄새를 느꼈다.
“넌 죽은 거야.”
“······.”
“난 너 죽이려다가 마취가 덜 된 너한테 다친 거. 하지만 네 몸에 묻은 피는 다 네 거고.”
민희는 솔직히 지은의 행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유리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제보를 해 강 선생에게 확신을 준 것은 지은이니까.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네. 그럴 만도 해. 난 얼마 전까지 정말 강 선생의 눈에 들 생각만 했으니까. 그래야 내가 편해지잖아.”
지은이 뒤로 칼을 휙 던졌다. 칼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근데 강식이가 죽은 날. 네가 가은이 대신 벌을 받은 날 가슴에 돌덩이가 얹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있지, 난 그동안 언니 오빠들이 어떻게 됐는지 이미 알고 있었어.”
지은이 무릎을 당겨 끌어안고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두려웠어. 그렇게 죽기 싫었어. 그래서 최대한 그분들에게 순종했어. 그렇게 지내왔는데 어느 날 강식이가 떠나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붙잡고 알려줬지. 나가다가 걸리면 너 죽는다고.”
“······.”
“근데도 나가겠대. 나가는 걸 성공한다면 참 좋을 거라고. 자기는 이곳에 계속 갇혀 있기 싫다고 말이야. 더불어 여기 있는 동생들도 그렇게 자라게 두기 싫다고.”
먼 과거를 떠올리는 듯 지은의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아마 강식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 날 강식이 눈이 얼마나 빛났는지 너도 알지? 그 때 느꼈어.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의 눈은 그렇게 빛나는 구나. 지하에 있으니 눈이 빛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민희는 조용히 지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강식이의 말이 기억에 계속 남았어. 아이들을 이렇게 크게 두고 싶지 않다는 말.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했을까. 이 생각은 가은이 대신 벌을 받는 널 보면서 더 커졌어.”
민희는 지은의 말에 저절로 가은 대신 벌을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이틀 간 자지도, 졸지도 못했던 그 시간들을.
“그리고 유리조각을 줍는 널 보고 아, 네가 뭔가를 단단히 준비했구나 싶었어. 최근에 넌 툭하면 능력을 썼으니까.”
제 팔을 내려다본 지은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대충 상황을 들은 순간, 나는 네가 유리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야 했어. 강 선생이 널 처리하면 넌 정말 죽을 테니까 내가 신뢰를 얻어서 내 손으로 죽이게 해달라고 해야겠다.”
예상치 못했던 지은의 말에 민희가 눈을 크게 떴다. 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팔에 상처는 어쩌면 내가 했어야 할 일을 대신 했던 강식이랑 너에 대한 사죄의 마음을 담은 거야. 이 정도 피 흘렸다고, 이 정도 크기의 흉이 남는다고 문제가 되진 않지만.”
민희는 처음으로 봤다. 지은의 미소가 흐물거리거나 유약하지 않고 단단하게 보이는 모습을.
“네 능력이면, 아이들이 어딜 가더라도 찾을 수 있겠지.”
지은의 말에 민희는 속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다른 이들의 꿈을 찾아가기 전 늘 보는 게 갇힌 아이들의 꿈 모양이니까.
“네가 나가서 강식이가 바랐던 거, 네가 바랐던 걸 이뤄. 네가 소통했던 그 사람들이랑 아이들을 구해줘.”
‘언니는?’
“뭘 묻는 눈빛인데··· 무슨 뜻인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지은이 작게 웃더니 민희를 끌어당겨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 사람들이 최대한 빨리 널 찾으러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흙 밑에 안 들어간 너를 찾지. 그 사람들이 아니라 강 선생님 사람들에게 들키면 너도 죽고 나도 죽게 되는데······.”
말을 멈춘 뒤 코로 숨을 깊게 들이켠 지은이 말했다.
“그건, 우리 운에 맡기자.”
민희는 속으로 동의했다. 속인다고 흙에 파묻었다가 까딱 잘못해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잘 지내. 꼭 성공하고.”
지은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민희는 지은에게 말하고 싶었다. 언니도 꼭 구해내겠다고, 그 때 까지 다치지도 말고 죽지도 말라고.
하지만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지은은 멀어져 더 이상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친 탓에 민희는 점점 눈이 감겨오기 시작했다.
* * *
“그 이후에 눈을 떴을 때는 아시다시피, 네······.”
양 팔을 살짝 들어 보이는 지원에 찬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고생했어요, 지원 씨.”
걱정과 대견함이 가득 담긴 찬서의 눈빛에 지원은 쑥쓰러워 손을 휘저었다.
“아이, 됐어요.”
“일단 상황 다 들었으니 됐어요. 좀 쉬세요, 이제.”
“네?”
말하면서 일어나는 찬서에 놀란 지원이 다급하게 손을 뻗어 찬서의 팔을 잡았다. 놀란 찬서가 시선을 내려 지원을 쳐다봤다.
“왜, 그러시는?”
“쉬라니 무슨 소리에요. 그 쪽들이 뭐로 그 사람들 찾을 건데요. 나 필요하지 않아요? 아까 지은 언니가 말했던 것처럼 찾으면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눈을 치켜 뜬 채 말하는 지원에 찬서가 곤란한 얼굴로 지원을 응시했다. 아무리 능력이 도움이 된다고 해도 지원은 조금 전에 구출해 낸 피해자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제 팔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강력하게 주장하는 지원이 머리가 아파올 찰나였다.
“그 말대로 하시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찬서가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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