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디로(2)

“다정 씨, 범우 씨······.”
놀란 듯 찬서가 중얼거리자 다정과 범우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아직 제대로 서류 처리를 안 했기 때문에 저희가 완전한 지원이의 보호자는 아니지만, 일단 동의합니다. 지원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솔직히 찬서 씨가 이 일을 해결하는데도 지원이의 능력이 필요하잖아요.”
맞는 말이었기에 찬서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와 동시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오랜 시간 갇혀 있다 겨우 세상으로 나온 아이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에. 뒤따라 온 종호와 재운, 재연 역시 같은 마음이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럼 저희는 물러가 있겠습니다. 계속해서 대화 나누세요.”
다정과 범우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바깥으로 나갔다. 세 사람이 들어오자 지원은 고개를 살짝 까딱이며 인사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지원 씨.”
“14년 내내 민희라고 불리다가 지원이라고 불리니까 이상하네요. 안 맞는 옷 입은 것 같고.”
지원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다 이내 웃음기를 거둔 지원이 넷을 둘러보며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간 건지 아예 파악이 안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지하 통로를 통해서 나 있던 길들을 확인해 봤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서 막혔더군요.”
“거리 상 그렇게 이동한다면 아직 서울 내에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서울 밖으로 잘 나가지 않을 거고요. 그러려면 큰 징조는 보일 겁니다. 가령 퇴사를 한다던가 하는.”
재운의 말에 지원이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알려준 이모와 삼촌 말고도 많은 이모 삼촌들이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럼에도 매일 왔다. 매일 와서 자신들끼리 기도를 하기도 하고 머리를 맞대고 어떤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매일 와야 하는 환경일 것이 분명했다.
“그 사람들이 하는 생활을 보면 그렇게 멀리 가게 두지 않을 겁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찾아낼 생각입니까, 다들?”
재연의 물음에 종호가 턱을 긁다가 답했다.
“처음에 저희가 하려고 했던 거 기억나십니까? 예를 들어 홍보하는 차 보내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그 날 저녁에 혹시 들었는지 물어보자는 그 방식이요.”
“기억납니다.”
재연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굳었다. 꼭 그 쪽에 지원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이들의 꿈에 갈 수 있는 지원이 능력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갇혀있는 아이들의 꿈에 들어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맞네요. 꼭 지원 씨가 그곳에 있을 필요는 없죠. 중요한 건 그 능력으로 소통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지원 씨. 아이들 꿈 파장은 어느 정도 기억하십니까?”
지원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답했다.
“애들 꿈 모양은 거의 다 기억합니다. 피해야 할 강 선생과 다른 이모들 파장도요. 기본적으로 죄인, 아니죠. 능력을 가진 존재들은 파장이 특이하거든요.”
“근데 드림 키퍼 능력을 가진 사람들 꿈엔 들어가지 못하는 거 아닙니까?”
재운의 물음에 지원이 찔린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렇다고 능력이 없는 이들의 꿈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지원은 다른 이의 꿈에 들어가는 능력을 가진 것이지 다른 이의 무의식까지 가지고 놀 수는 없으니까.
“거기 애들, 어린 애들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12살까지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네?”
이해할 수 없는 찬서의 말에 지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재연은 찬서의 의중을 알아챈 듯 미소를 지었다. 재운과 종호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찬서를 바라봤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했다.
“어릴 때도 본인의 파장을 완성할 수 있지만 보통 스무 살은 되어야 제 파장을 완벽하게 가지게 됩니다. 음, 인간의 뇌는 25살까지 계속해서 발달한다고 하죠. 통계 상 본인의 꿈 파장이 완벽하게 갖춰지는 나이는 20살이라고 하더라고요.”
찬서의 말에 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를 하면서 몇 번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지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찬서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었어요. 빛의 크기, 색, 모양이 다 달랐다고요.”
“그럴 순 있습니다. 드림 키퍼로서의 자질이 있는 아이들은 이른 시기부터 제 고유의 파장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뿐, 완벽히 제 파장을 갖추고 있지는 않은 겁니다. 그래서 고약한 드림 코베터들이 아이들의 꿈에 들어가 장난도 치고 하는 거죠. 아이들의 파장은 불안정해서 파장 속으로 들어가도 감지 기기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거든요.”
“그렇다면······.”
찬서의 말을 알아들은 지원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달은 듯 했다. 찬서는 뒤돌아 종호와 재운을 응시했다. 두 사람도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았다.
“오늘은 지원 씨가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이들의 파장을 찾아보는 걸로 하죠.”
“좋아요.”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갑자기 재운이 손을 드는 것에 넷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재운은 제게 쏟아지는 시선에도 당황하지 않고 지원만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원 씨가 아이들의 파장을 찾을 수 있다면, 그 파장을 따라 가는 길을 익혀뒀다가 알려주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지원이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은 그게 되는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능력을 쓸 때 오직 파장만을 인식합니다. 주변 길, 건물들은 들어오지 않아요.”
“아··· 그랬군요. 미안합니다. 다른 드림 키퍼분들이 정찰을 하는 것을 보고 가능한 줄 알았습니다.”
“그건 그저 기본 능력으로 가능할 뿐 고유 능력은 다 제각기 다르니까요.”
찬서의 답에 이어 지원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했다.
“굳이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몰랐던 것뿐이고 몰랐기에 더 나은 길이 있다고 생각해서 물어보신 거잖아요. 좋은 행동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고맙고요.”
훈훈한 대화에 옅은 미소를 지은 찬서가 주먹을 꽉 쥐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갇힌 아이들이 구출될 수 있기를 바랐다. 저렇게 웃고 있지만 지원의 속이 가장 타고 있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직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몸으로 나서는 것일 테니. 갓 스무 살이 된 아이가 나서는데 자신들 역시 힘을 내야 했다.
“그 전에 검사해야 할 게 있습니다.”
뒤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지은은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매트리스 위에 풀썩 누웠다. 고요했다. 방이라고 하기엔 넓은 방에서 작게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갤 돌린 지은은 조금씩 움찔거리는 한 어깨를 발견했다.
‘가은이···던가.’
11살짜리 여자 아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벌을 받을 뻔했던 아이. 민희가 나서서 대신 벌을 받는 것을 봤던 게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지은은 평소처럼 무시하고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
평소와 다르게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낀 지은이 상체를 일으켰다. 제 또래의 아이들은 피곤함에 이미 잠에든지 오래였다. 평소 민희와 같이 애들을 살뜰하게 챙기던 민기 역시 입을 벌린 채 자고 있었다. 상황 파악했으니 다시 누우려던 지은이 빛나는 눈 한 쌍과 눈이 마주쳤다.
“지은 언니이.”
가은이 인기척에 몸을 일으킨 것 같았다. 지은은 머리가 아픈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자신은 한 번도 아이들을 달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은이 고갤 까딱였다. 그 의미를 알아들은 가은이 눈을 빛내며 지은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빠르게 다가오다가 몇 번 삐끗하는 가은에 지은이 엄한 얼굴을 한 채 말했다.
“천천히 와. 누가 이 자리 안 뺐으니까.”
“응응.”
가은이 눈물자국을 매단 채 해맑게 웃었다. 지은은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이럴 때가 있었다. 무서워서 울고, 언니 오빠들이 달래주고 웃겨줬을 때가.
‘나는 왜 그렇게 해주지 못했을까. 왜 아이들을 자신보다 더 챙기는 강식이를, 민희를, 민기를, 별이를 바보 같다고 생각했을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언니 오빠들에게 난 늘 도움을 받아왔는데.’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언니 오빠들 꼴이 나고 싶지 않으니까. 생각을 하던 지은이 정신을 차리고 가은을 응시했다. 자신을 빤히 보고만 있는 가은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 와.”
지은이 팔 한 쪽을 들어 제 품에 들어오라는 듯 굴자 가은이 익숙하게 품에 들어와 안겼다. 가은의 체온이 느껴졌다. 가은이 제 옷을 꼬옥 붙잡는 것을 느낀 지은이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언니······.”
“응, 왜?”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를 흉내 냈다. 아이에게 친절하게 굴었던 적은 별로 없으니까. 가은이 눈을 굴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희 언니는 안 오는 거야?”
“···아니. 나중에 올 거야.”
“진짜? 강 선생님도 이모들도 삼촌들도 다들 민희 언니 이제 안 올 거라고. 나를 두고 갔다고 계속 그랬거든. 그래서 슬펐어.”
이내 시무룩해지는 얼굴에 지은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강 선생님도, 이모들도, 삼촌들도 뭘 잘못 알았나 보다.”
“다행이다. 내일 일어나서 잘못 알고 계시다고 알려드려야지.”
들뜬 가은이 하는 말을 들은 지은이 제 품에 안긴 가은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주의를 주듯 말했다.
“그건 안 돼. 민희 언니가 오려면 언니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야 돼.”
“왜?”
“그게 조건이거든. 비밀로 할 수 있지?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작게 속삭이는 지은에 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희가 올 때까지 비밀을 지키는 거야 어렵지 않으니까.
“그래. 얼른 자자. 민희 언니, 꼭 돌아올 거야.”
지은은 스스로에게도 확신을 주려는 것처럼 몇 번 더 중얼거렸다. 이내 일정하게 호흡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시선을 내린 지은은 가은이 잠들었음을 알게 됐다.
“금방 잠드네.”
조금 전까지 잠이 쏟아지던 것과 다르게 잠이 달아난 지은은 눈을 내리깔고 민희를, 민희를 돕는 얼굴도 이름도 모를 누군가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아주 조금의 희망을 품은 채.
* * *
아무리 급해도 치료도 받지 않은 채 능력을 사용한 지원의 상태를 확인해야한다는 유진 때문에 처치실에 와 갖가지 검사를 마친 참이었다.
“저 치료 필요하다고 하면 어떡해요?”
눈동자를 굴리며 묻는 지원에 찬서 역시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유진은 능력을 못 쓰게 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찬서 역시 말릴 생각이었다.
멀리서 유진이 검사지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찬서와 지원의 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지원과 찬서의 앞에 선 유진이 검사지를 다시 한 번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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