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디로(3)
“검사 결과 치료가 필요할 정도까지는 아니네요. 오늘 능력 사용 가능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 없어요. 지원 씨 피곤해질 일 하는 거 승낙하는 상황이라 영 내키지가 않네.”
유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지원은 눈을 깜빡이다가 유진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능력자예요?”
“아, 저는······.”
“이분은 처치팀 연구원. 우리 같은 능력자들이 부작용을 덜 겪게 하기 위해 연구하시는 분들이에요.”
“그럼 능력자가 아니네요. 그런데 제 걱정을 왜 하는 거예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 지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굳었다. 아무리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차별 받지 않고 미움받지 않는다.’라고 설명을 해도 전해 듣기만 했을 뿐, 겪어보지 않은 지원으로서는 어색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어, 음. 지원 씨는 이제 당연한 것에 익숙해져야 할 거예요.”
“당연한 거요?”
유진이 안쓰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네. 정말 못된 사람 아니고서야,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군가 상태가 안 좋고 안 좋은 일이 있고 그러면 걱정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
“···능력이 있든, 없든···?”
조심스럽게 묻는 지원에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으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는 그동안 당연한 걸 모른 채 살아왔네요. 여전히 갇혀 있는 사람들도 그럴 거고··· 바깥에 제대로 나가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 언니 오빠들도 그랬겠죠.”
지원이 한탄하듯 말했다. 작게 헛웃음을 지은 지원이 말을 이었다.
“다 떠나서··· 이미 강 선생에 의해 떠난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가슴에 돌덩이가 얹어진 것 같아요.”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 다들 지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고갤 숙인 채 우는 것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쓰는 지원을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지원은 먼저 떠난 이들을 떠올렸다. 아름 언니, 세진 언니, 다경 언니, 석주 오빠, 정석 오빠. 그리고 자신이 오기도 전에 먼저 떠났을 이들을. 늘 자신이 죄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고문 같은 벌을 받으며 자존감을 갉아 먹히며 살았던 이들을. 용기를 내 웅크렸던 몸을 일으킨 끝이 죽음이었던 이들을.
“남은 사람들은 꼭 구할 거예요.”
지원이 고개를 들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준비는 어렵지 않았다. 모두가 이 일에 익숙했으니까. 처음 기기를 접하는 지원에게 설명해줄 사람이야 넘쳤다. 찬서에게 한참 설명을 듣던 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는 뜻이었다.
“이 약을 먹으면 된다는 거죠?”
“네. 아까 검사해 본 결과 다행히 지원 씨는 저 같은 특이 케이스가 아니니 이 약을 먹으면 됩니다.”
“특이 케이스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지원에 옆에 기기를 준비하던 유진이 말했다.
“네. 특이 케이스. 찬서 씨는···지금 설명하긴 기니까 나중에 제대로 얘기해줄게요. 축약해서 말하자면 찬서 씨는 일반 능력자들이랑 달라서 먹는 약도 새로 만들어야 했다는 거죠. 근데 지원 씨는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 그 약을 안 먹어도 되고.”
제대로 들은 게 아니기 때문에 궁금한 게 많았으나 지금 더 중요한 건 갇혀있는 사람들을 구출하는 거였다. 지원은 손에 들린 약을 물과 함께 삼켰다. 누우라며 손짓하는 유진에 천천히 뒤로 누운 지원이 눈을 깜빡였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니 유리 창 너머 다정과 범우가 보였다.
‘지원아, 무리하지 마!’
‘우리가 여기 계속 있을게.’
다정과 범우가 입을 벙긋거리며 하는 말을 알아들은 지원이 옅게 미소를 지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이임에도 든든함을 느꼈다.
‘왜일까.’
잠깐 고민한 지원은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저들이 주는 사랑에 거짓됨이 없으니까 그런 것일 거라고. 천천히 몰려오는 졸음에 눈을 스륵 감았다.
* * *
- 제 목소리 잘 들리세요, 지원 씨?
캄캄한 시야 속에서 찬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본 지원이 대답했다.
“네, 잘 들려요.”
어두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있던 지원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물었다.
“이제 나가면 될까요?”
- 네. 주변을 둘러보면서 아이들의 파장을 찾아보세요.
“네.”
지원이 나가기로 마음을 먹자마자 근처에 흰빛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원은 익숙한듯 직사각형 모양의 빛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보이네.”
작게 중얼거린 지원이 여기저기 보이는 꿈의 파장을 둘러봤다. 화면을 통해서 보던 찬서의 눈도 커졌다. 지원의 말대로 꿈의 파장들은 제각기 달랐다. 어떤 파장은 빛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그에 따라 수많은 점선으로 이루어진 선들이 같이 움직였다.
- 파장들의 모양들이 저런 식으로 생겼구나······.
처음 보는 파장의 모양에 감탄한 찬서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지원은 그저 하염없이 걸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천천히 지나가는 건 아니었다. 지원의 움직임 한 번에 주변의 파장들이 순식간에 지나쳐지고 멀리 있던 파장들이 눈앞에 와 있었다.
‘그래서 매일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구나. 확실히, 진짜 제 속도로 움직여서 다른 사람 꿈에 들어갈 수 있다면 도착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리겠지.’
그렇게 가만히 지원의 뇌파 수치를 중간중간 확인하던 찬서는 들려오는 지원의 목소리에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 동생들의 파장이에요."
지원의 시선에 담긴 파장들이 보였다. 꽤 가까이 붙어 있는지 작은 파장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지원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 중 아주 작고, 희미한 빛을 띄는 파장에 다가갔다.
- 거기 들어갈 건가요?
“네.”
대답을 한 지원이 작은 파장을 감싸듯 붙어 있는 크고 정교한 파장을 봤다.
‘이건 분명 지은언니 파장인데······.’
평소에 다른 아이들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지은이 가은을 챙기고 있다는 게 놀라웠던 지은이 가만히 있다가 이내 가은의 파장 속으로 파고들었다.
* * *
“가은아~”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 가은의 얼굴이 이내 환해졌다.
“어! 민희 언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가은이 지원을 향해서 뛰었다. 찬서는 화면속에 있는 왜소한 어린 아이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저런 아이들에게 벌을 주고 일을 시켰겠지.’
아이를 안은 지원이 미소를 지은 채 아이의 양볼을 붙잡고 속삭이듯 말했다.
“강 가은. 별일 없었어? 언니 안 보고 싶었어?”
“별일은 없었고, 언니가 많이 보고 싶었어. 강 선생님이랑 이모들이랑 삼촌들이 다 나보고 언니가 나 버리고 갔다고 그러는 거야. 그건 좀 기분 별로였어.”
투덜거리는 가은에 지원이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런 와중에 가은이 했던 말을 다시 곱씹어 본 지원이 되물었다.
“어른들이 내가 너 버리고 갔다 그랬다고?”
“응. 내가 언니는 왜 안 오냐고 물어보니까 그런 식으로 말했어.”
“···언니 원망하지는 않았어?”
머뭇거리다 묻는 지원에 가은은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날 두고 나갔다고 해서 내가 언니를 원망할 이유는 없어!”
“응?”
“언니가 가은이를 예뻐하고 챙겨주긴 하지만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잖아. 언니는 늘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니까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 했어. ”
“···가은이 왜 이렇게 똑똑하지?”
지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은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가은이 씨익 웃더니 비밀을 알려주듯 속삭였다.
“그리고 지은이 언니가 그랬어. 어른들이 잘 모르는 거라고. 언니는 다시 올 거라고 그랬어.”
“지은이 언니가 그랬다고?”
지원의 물음에 가은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할 말이 있는 듯 손을 휘적이며 말을 이었다.
“딱 하나만 지키면 언니가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도 했어.”
“딱 하나? 뭐?”
“지은이 언니가 해준 말을 절대 어른들한테 얘기하지 말 것! 어른들이 알면 안 된다고, 그럼 언니 못 볼 거라고 했어. 맞아?”
가은이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 것에 지원이 끄덕였다. 지원의 반응에 진실임을 확인한 가은이 입에 지퍼를 잠그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꿈에서 언니랑 만나는 것도 비밀이야.”
“그럴 것 같았어. 강 선생님이 말하는 죄가 지금 이거잖아. 꿈에 관련된 능력.”
“그래, 맞아. 언니는 앞으로 이렇게 가은이 꿈에 와서 가은이랑 대화를 나눌 거야. 볼 때마다 어떤 질문을 할 거거든?”
“어떤 거?”
“예를 들어 이사한 이후에 주기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있냐던가 그런 거.”
“음, 이사한 지 오래 안 돼서 잘 모르겠어······.”
어쩌면 당연한 말인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가은이 눈을 크게 뜨며 답했다.
“아, 근데 평소랑 다른 소리가 나긴 했다!”
“! 어떤?”
인상을 찌푸린 가은이 미간을 꾹꾹 누르며 답했다.
“우웅거리는 느낌의 소린데··· 새벽에도 나고, 밤에도 나고 그래. 근데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
가은의 말을 듣던 찬서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웅 거리는 느낌의 소리가 새벽에도 나고 밤에도 나는 곳. 이 말을 듣자마자 찬서의 뒤에 있던 형사들과 재연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원은 정보를 얻어 오는 역할, 다른 이들은 얻은 정보로 위치를 찾아내는 역할이었다. 지원은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으니 이제 자신들이 애써야 했다.
“어느 날 낮에······.”
- 오후 다섯 시 이후로는 음악이 나는 차를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오후 다섯 시 전에 바깥에서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리면 기억해 뒀다가 그 날 저녁에 언니한테 알려줘.”
지원의 말을 들은 가은이 빤히 지원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곳 위치를 알기 위해서야?”
“응. 그래야 언니가 찾으러 가지.”
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음악이 안 들리면 그냥 오늘은 안 들렸다고 하면 돼?”
“응. 그래야 아 여긴 아니구나. 하고 다른 곳을 찾아볼 수 있어. 언니가 열심히 찾아볼게. 가은이 빨리 만날 수 있게.”
지원이 손을 내밀었다. 새끼손가락을 세운 지원의 손을 본 가은이 환하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응. 얼른 와. 보고 싶어, 언니."
가은의 웃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지원이 천천히 눈을 떴다. 상체를 일으킨 지원은 의기양양한 표정의 제 동료들을 볼 수 있었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요?”
“가은 양이 아주 똑똑하네요. 기억력도 좋고. 가장 필요한 단서를 줬어요.”
“가장 필요한 단서요···?”
재연이 미소 지은 채 말했다.
“대충 어느 구역에 있는지 알 것 같다고 하네요.”
“정말요?”
지원이 놀라서 되물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순간 머리에 붙은 전선이 엉켰다.
“진정하세요! 저희가 다가가서 얘기해 드릴게요. 정리하는 동안 차근차근.”
종호의 말에 엉킨 전선을 짜증스런 눈으로 보고 있던 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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