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냥꾼이 된 미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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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프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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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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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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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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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졌다

DUMMY

다음날 신문에 실린 사진과 기사를 보며 난 한편으로 언짢았다.

“아니 이 놈들이 나를 대놓고 노인이라고 부르네.”

하지만 사진은 너무나 맘에 들게 나왔다.

다시 보니 어느새 내가 이리 늙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빠. 잘 잤어요? 아픈 데는 없었고요?”

큰 아들인 조나단이 노크를 한 뒤 방에 들어서며 안부를 물었다.

“존~ 어서 와라. 난 아주 컨디션이 좋단다. 너도 잘 잤니?”

인정받는 내과 전문의인 조나단은 익숙한 솜씨로 내 상태를 점검했다.


내 이름은 하워드 우드브리지이다.

옥스포드 경영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얼마 전 87세 생일이 지났다.

영광스럽게도 세계적인 대학인 옥스포드로부터 종신교수로 임명을 받아서 불과 얼마 전까지도 난 학생을 가르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약 일 년 전에 위암4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조나단 말에 따르면 이제 2~3달 정도 남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번 한국 방문은 이 땅에서 나의 마지막 여행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2개월 전 새한대학으로부터 “세계석학에게 듣는 이 시대 젊은이의 과제”라는 제목의 2시간짜리 강연 요청을 받았다.

내 건강상태로 인해 가족들이 만류했지만 난 죽기 전에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큰아들이 여행에 동행하겠다는 조건 하에 가족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나와 포옹하는 사진이 신문에 대서특필된 윌리엄 총리는 내가 교수생활을 처음 시작한 해에 내가 가르친 첫번째 제자들 중 하나였다.

그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쳤고 운이 좋게도 그 중에는 세계적인 기업들의 리더가 다수 배출이 되었고 대통령과 총리들도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어제와 같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기고는 한다.

몇 년 전 두바이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는 나를 제외한 4명의 연사들이 모두 내 제자였던 재미난 추억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정말 운이 좋고 행복한 인생을 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빠~”

“응? 왜?”

“주무실 때 만이라도 그 목걸이는 좀 벗어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니··· 이 목걸이는 날 지키는 부적과 같아.”

난 아들을 보며 웃었다.


목걸이를 매만지며 난 생각했다.

누군가 당신이 살면서 아쉬움이나 후회로 남는 것이 있냐고 묻는 다면 나는 한 가지를 빼고는 내 삶에 대체로 만족한다고 대답을 할 것 같다.

내가 후회하는 그 한가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할 그 한가지는 이 목걸이 주인과 했던 약속과 관련된 것이다.


내가 벗지 못하고 늘 차고 있는 목걸이는 한 군인의 군번줄이다.

BONGSHIK CHA, RA17000505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식별이 가능할 만큼 잘 관리된 목걸이를 볼 때 마다 난 지금의 삶이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 여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에 지구 반대편인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그 전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옥스포드 대학에 입학한 1951년 초부터였다.

그리고 이듬 해인 1952년 6월에 나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취미로 하고 있었던 사진촬영 덕분에 난 전투가 아닌 전쟁의 실상을 사진에 담는 일을 맡았다.

난생처음 전쟁의 현장을 눈으로 보는 것이기에 난 몹시도 긴장했다.


슈욱~ 쾅! 쉬익~~~ 쿠쾅!!

요란한 박격포 소리가 진지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내가 있던 곳은 남양주였다.

인천과 포천을 거쳐 남양주에서 난 우리 군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전투 현장을 다니며 촬영을 하다보면 촬영 중에 교전이 시작되는 일도 자주 있었다.


교전이 시작되면 주위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

수십명, 아니 수백명이 동시에 총을 쏘는 현장에서 다른 소리는 일체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보다 더 사실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타이밍은 없었다.

그래서 위험한 줄 알면서도 난 사진을 찍기 위해서 전장의 한복판으로 뛰어 들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그랬다.


쓰러진 전우들을 사진에 담는 것에 나는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전장에서 스러진 그들은 오직 두 가지로 기억된다.

군번줄과 사진이다.

내가 그들을 놓친다면 그들의 희생을 누가 기억해 줄 수 있을까?

이 생각을 하며 위험을 피할 여유가 없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이봐~ 하워드! 하워드! 빨리 와!”

“후퇴해야 해.”

“더 이상 지체하면 안돼!”

“하워드! 하워드!!”

하지만 난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게 난 전쟁터에서 고립이 되었다.

사진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 편이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총소리는 들리는데 그들이 벌떼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느꼈던 공포는 지금도 가끔 꿈에서 나타날 정도였다.


미친듯이 반대편을 향해 달렸다.

총알을 피하겠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평소 동료들이 알려준 이동 시의 요령도 생각나지 않았다.

넘어지면서도 그냥 막무가내로 달렸다.

하지만 너무 늦었는지 아군은 여전히 보이질 않았다.

차츰차츰 그들과의 거리가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죽는구나. 아니면 포로가 되어 죽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되거나.’

그런 생각을 하자 절망적인 마음이 들었다.

텅빈 마을로 막 접어들었을 때 그가 나타났다.


“쉿! 조용히해.”

그는 내 팔을 낚아 채고는 재빨리 익숙한 길처럼 뛰었다.

뒤채로 달려가서 겉에서 보이지 않는 비밀 통로로 날 안내했다.

그들은 마을을 샅샅이 뒤지는 듯했지만 결국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곳에서 그가 가진 수통에 있는 물을 아주 조금씩 마시며 우리는 이틀을 버텼다.

밖은 조용했다. 북한군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 그는 내게 처음으로 말을 했다.

“내 이름은 차봉식이야.”

“난 하워드야. 그런데 너 영어를 하네?”

“난 미군 소속이야. 국적은 한국이지만 영어가 된다고 미군에 소속되서 근무하고 있어.”

“너 영어이름은 없어?”

“없어. 그냥 봉식이라고 불러.”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할아버지 대부터 사업을 시작해서 아버지가 사업을 더 큰 규모로 성장시켰다고 했다.

봉식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전쟁이 터졌고 어려서부터 미국 선교사에게 배워서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군에 들어갔다.


봉식과 나는 북한군을 피해 극도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하지만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남으로 이동하는 북한군과 마주쳤고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됐다.

“악!”

급하게 달아나다가 난 오른쪽 발목을 삐었다.

“봉식, 날 두고가.”

“너 포로가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어?”

“그런데 나랑 같이 가면 너도 붙잡혀.”

봉식은 아무 말없이 날 부축하고서 나아갔다.


“우린 살 수 있을까?”

“그럼 난 아내와 아이도 있는데 살아야지.”

“그래? 넌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구나.”


봉식은 기어이 숨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낮은 동산의 중턱 숲에 있는 커다란 바위와 고목들 사이에 숨겨진 아주 작은 동굴이었다.

그는 나를 그곳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지만 소리를 내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그 굴은 내가 들어가니까 꽉 찼다.

“여기서 꼼짝하지 마. 너는 안전할거야.”

그는 자신의 군번줄을 내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전쟁이 끝나거든 내 가족에게 이걸 전해줘.”

“이천에 가서 내 이름을 대면 다 알거야.”

이 말을 남기고 그는 서둘러 달아났다.

나는 겁에 질려 그를 붙잡지도 아무런 인사도 전하지 못했다.

그는 산꼭대기 방향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북한군의 무리가 그 뒤를 쫓았다.

북한군이 알 수 없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한참 뒤에 산속이 총성으로 뒤덮였다.

탕, 탕, 탕탕탕, 두두두두~

총소리가 멈추고 한참 뒤에 북한군이 서로 잡담을 나누며 산을 내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 지 모르지만 서서히 산에 한기가 느껴지고 빛이 옅어졌다.

난 눈치를 보며 굴에서 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봉식이 달아난 방향으로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갔다.

퉁퉁 부어 오른 발목의 고통을 참고 올라갔다.

오르는 동안 산속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저 만치에 한 사람이 옆으로 누운 채 쓰러져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다가가서 똑바로 눕히자 그는 봉식이었다.

“으~으~윽~~~~ 흑~~~~~ 흑~~~~~~~~”

난 소리를 죽인 채 울었다.

“어~~~으~~~~~ 봉식,,,,,,,,”

그의 얼굴을 매만지며 울었다.

그의 몸이 점점 차가워졌다.


그의 시신을 큰 나무 아래로 옮기고서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잘 덮어주고 그 앞에 큰 돌을 몇 개 겹쳐서 쌓아두었다.

그에게 묵념을 하자 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의 군번줄을 만지며 난 약속했다.


“너의 가족을 찾을께. 그래서 네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전해줄께.”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봉식이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봉식아 편히 쉬어. 너와의 약속을 꼭 지킬께.”

그리고 이틀 뒤에 난 아군에게 발견되었다.


허무하게도 일주일 뒤에 전쟁이 끝났지만 난 영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늦추었다.

봉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통역을 데리고 이천으로 내려가서 차봉식의 집이 어디냐 물으니 그의 말 대로 한 사람이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그곳에 살지 않았다.

그의 가족이 어디로 갔는 지 수소문했지만 모른다고 했다.

동네를 다니며 차봉식의 가족의 행방을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난 이틀을 그곳에 머물며 그의 가족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하워드 중사님.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 더 이상 찾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통역의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그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영국으로 돌아갔다.



#



“오늘 특강의 연사는 이미 광고해 드린 대로 하워드 우드브릿지 박사님이십니다.”

“하워드 박사님은 옥스포드 경영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그후 많은 기업들을 부도의 위기에서 구한 세계적인 경영자 이십니다.”

“그 중 영국항공을 턴어라운드시키신 사례는 모든 경영학 교과서에 등장할 만큼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그후 모교인 옥스포드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시며 종신교수로 임명 받으셨습니다.”

“교수님의 제자들은 영국의 현 총리이신 윌리엄 총리를 포함하여 전세계 정재계에서 두루 활약하고 있습니다.”

“하워드 박사님을 모시고 뜻깊은 강연을 듣겠습니다.”

장내가 떠나갈 듯한 박수를 받으며 난 휠체어를 타고 무대로 나갔다.


그리고 90분 간의 특강 후에 마무리로 한국전쟁에서의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여러분은 저에게 한국전쟁에 참전해주어 고맙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에 생명을 빚졌습니다.”

“제가 이룬 경영자로서 화려한 이력과 교수로서의 큰 명예도 모두 한국이 받아야 마땅합니다.”

“저는 이제 두 달 밖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제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은 제 생명을 구해준 한국을 이끌고 갈 여러분에게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어둠을 뚫고 일어선 한국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조국인 한국을 사랑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난 강연을 마치고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퇴장하는데 심장을 쥐어짜는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아버지! 아버지!”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조나단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정신을 잃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난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병원인가?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병원이 아니었다.

그냥 못 보던 방이었다.

아담한 작은 방에는 짐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응? 이건 뭐지?”

난 일어서며 내가 잔 자리를 보았다.

침대가 아니라 매트를 바닥에 깔고 잔 것 같았다.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일어서서 사방을 걸어 다니며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벽에 걸려있는 가족 사진이 보였다.


그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봉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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