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퍽!
등짝이 화끈거릴 정도로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 누가 때리는 거야?”
난 재빠르게 뒤를 돌아봤다.
“야~ 이 놈의 새끼야. 아빠에게 봉식이가 뭐야!”
중년의 살이 통통한 여자는 내 왼쪽 팔뚝을 오른 손바닥으로 다시 갈겼다.
“아야! 아파!”
“아프라고 때리지 그럼 아프지 말라고 때려?”
“아~ 왜 그래?”
“이 새끼가 뭘 잘 못 처먹었나? 엄마한테 반말지꺼리야.”
한 대 더 찰지게 얻어 맞자 난 화가 치밀었다.
“누군데 자꾸 때리는 거야?”
“와~~~ 어유~~~ 이 새끼가 진짜 잠이 덜 깼나보네.”
“왜 자꾸 욕을 해?”
“너처럼 에미도 못 알아보고 아버지한테 봉식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놈에게 욕을 하는 게 당연하지~ 그럼 칭찬을 해주리?”
그녀의 주먹이 다시 날아올 기세였다.
난 기겁을 하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어휴~~~ 저 화상. 아들 새끼 하나 있는게 모자라도 저렇게 모자라나!”
“아우~~~ 박복한 내 팔자야.”
난 화장실 문을 잠그고 밖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여자의 동태를 살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여긴 또 어디야?
그런데 날 구해준 봉식이 사진은 왜 벽에 걸려 있는걸까?
밖에 있는 저 살찐 여자는 나에게 아빠를 봉식이라고 부른다며 구타를 했다.
난 문에서 떨어져 뒤를 돌아보았다.
“어? 어??? 이게 뭐야?”
거울에 비친 얼굴은 봉식이였다.
“봉식이? 내가 봉식이가 된거야?”
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내 얼굴이 왜 차봉식으로 변했지?”
찬물을 틀어서 두손으로 가득 받아 얼굴에 뿌렸다.
여전히 내 얼굴이 아닌 봉식이의 얼굴이었다.
이게 꿈인가 볼을 꼬집어 봤지만 아프기만 했다.
난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여자는 방에서 나가고 없었다.
난 방문을 열고 여자를 찾았다.
여자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얼른 밥 먹고 회사나 가. 쓸데없는 장난 그만 치고.”
“그러니까 아줌마가 내 엄마라는 거지?”
여자는 이제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앉아. 밥 먹게.”
“대답 좀 해줘.”
“디질래? 장난치지 말랬지?”
난 조금 전의 등짝의 충격을 기억하고서 말없이 앉았다.
내 앞에 쌀밥과 콩나물국 그리고 김치가 놓여졌다.
난 앞에 놓여진 밥과 국 그리고 김치를 보자 수십년 전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들이 먹던 밥이 불현듯 떠올랐다.
보리밥에 조그만 무조각이 담긴 멀건 된장국, 그리고 약간의 고추가루로 버무린 배추 몇 조각이 전부였던 밥이 생각났다.
궁금해서 그들이 먹던 밥을 나도 먹어 보았지만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 없었던 그 맛없는 식사가 생각났다.
가만히 앞에 있는 여자, 아니 엄마라고 해야겠지? 아무튼 엄마의 눈치를 보니 공연히 밥에 대해서 말을 하는 순간 다시 또 구타가 시작될 게 뻔했다.
그래서 그냥 먹어 보기로 했다.
선입견이라는 건 참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충분한 식사였다.
밥의 고슬거림과 콩나물국의 고소하면서 향긋한 맛과 향, 그리고 적당히 매운 잘 익은 배추김치. 이처럼 환상적인 조합이 있을까 싶을 만큼 식사는 훌륭했다.
아침의 충격이 싹 가실만큼 입맛이 돌았다.
난 밥공기를 들고 일어서서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냄비에서 밥을 한 공기 더 퍼 담았다.
“아귀처럼 퍼먹는 거 보니까 아픈 건 아니네.”
엄마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지금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걸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두번째 밥공기도 싹싹 비웠다.
이게 얼마만에 누려보는 포만감인가.
위암 4기 판정을 받기 얼마 전부터 난 식사를 잘 하지 못했다.
입에서는 당기는 데 막상 뭔가를 먹으려 하면 속에서 받질 않는 증상이 반복됐다.
그때 난 알았다.
부와 명예도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사실을.
돈이 많아서 아무리 맛있는 것을 사먹으면 뭘 하겠는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소화시키지 못해서 눈과 코로만 감상하는 음식이라면.
그 시간을 한 동안 보냈기에 지금의 내가 너무나 이상한데도 감사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먹고 소화시킬 수 있다니요~’
엄마가 가져다 주는 뿌연 물을 보고 난 물었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숭늉이지.”
아~ 이게 숭늉이구나.
숟가락으로 떠먹어 보니 구수했다.
“무슨 사내 놈이 복 달아나게 숟가락으로 숭늉을 먹어? 그릇째 들고 마셔.”
난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다.
와~ 이것도 신세계로구나.
무슨 물이 이렇게 고소하고 감칠맛이 날까.
난 배부른데도 숭늉 한 그릇을 다 마셨다.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내가 엄마를 향해 감사를 표하자 엄마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야~ 거 정신이 도니까 좋은 것도 있네. 먹고 나서 감사하다고 인사도 할 줄 알고.”
엄마는 괄괄한 목소리로 소리 내어 웃었다.
엄마는 설거지를 급하게 했다.
“얼른 출근 준비해.”
출근? 무슨 출근?
난 혼자 곰곰히 생각하며 눈알을 굴렸다.
‘어디로 출근하는 거지?’
‘대체 난 어디로 출근을 했던 거야?’
난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자세히 방안을 살폈다.
벽에 네이비색 작업복이 걸려있었다.
작업복 왼쪽 가슴에 진영상사 차승현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내 이름은 차승현이구나.
다시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았다.
조금 전에 거울에서 보았던 내 얼굴과 너무나 비슷한 얼굴이 흑백사진 속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아내와 함께 찍은 다정한 사진이었다.
다시 봐도 사진 속의 그 사람은 나를 구해준 차봉식이 맞다.
봉식의 얼굴을 보니 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봉식이 떠오르면서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차봉식이 내 아빠라고?
내가 지키지 못했던 그 약속을 지키라고 날 그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일까?
난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오다가 내가 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내 뒤로 다가와 말했다.
“오늘 아빠 제삿날인거 알지? 오늘은 야근하지 말고 일찍 들어와라.”
난 알겠다고 대답했다.
지금 당장은 어디로 출근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 지가 더 고민스러웠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차주임~ 차주임~ 나 왔어.”
엄마는 내 작업복을 꺼내서 입혀주며 얼른 나가라고 독촉을 했다.
에라~ 모르겠다.
내게 벌어진 상황을 지금으로서는 직접 부딪혀 보기 전까지 어떤 해결책도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난 작업복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차주임 오늘 왜 이리 늦어?”
“빨리 뛰어와. 너 때문에 저기서 버스가 기다리잖아.”
“네. 알겠습니다.”
나를 부르며 손짓을 하는 사람을 따라서 버스를 향해서 뛰어갔다.
차에 오르자 앉아있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
“주임님 안녕하세요.”
“주임님 이게 뭐예요~ 기다리게 만들고.”
“야~ 너 오늘 늦잠잤냐?”
“차 주임이 간밤에 야한 소설 읽다가 늦게 자서 지각했답니다.”
나를 부른 남자의 장난스런 소리에 다같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웃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서라고는 작업복 가슴팍에 새겨진 진영상사 차승현이 전부였다.
혹시나 하고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이라도 있으면 진영상사의 정체를 찾아볼 수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주머니에 있는 거라고는 담배 한 갑과 성냥 그리고 지갑이 전부였다.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나?
난 한숨이 나왔다.
내가 한숨을 쉬는 것을 보더니 그 남자가 내게 물었다.
“왜? 차주임 무슨 고민 있어? 형한테 말해봐.”
난 옆자리에 앉은 그 남자의 이름을 봤다.
그의 가슴에는 황주찬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니예요. 요즘 제가 정신이 없네요.”
“왜, 왜?”
“집에 핸드폰을 놓고 온 것 같아서요.”
난 당연히 “그래?” “아이고~ 오늘 좀 불편하겠네.”와 같은 반응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게 뭐냐?”
“네?”
“너 방금 핸드,,, 뭐라고 했잖아.”
난 그의 반응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아차차··· 내가 아직 핸드폰이 나오지 않은 때로 온거야?
“저··· 지금이 몇 년도 예요?”
“1970년이잖아.”
난 비로서 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았다.
“죄송해요. 제가 잠이 덜 깼나봐요.”
그는 그제서야 웃으며 팔꿈치로 날 쿡 찔렀다.
버스가 회사에 도착했다.
황량한 땅 위에 커다란 공장건물이 덩그러니 서있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앞에서부터 사람들이 일어서서 나갔다.
“야~ 승현아~ 너 오늘 왜 이래?”
“네?”
“다 왔는데 왜 멍하니 앉아있어? 내려야지.”
“아! 네. 내립니다.”
뒤에서 내리기를 기다리던 여직원 하나가 소리쳤다.
“황반장님은 왜 자꾸 차 주임님을 야단쳐요?”
“맞아. 차 주임님이 착해서 그래.”
“차 주임님 그냥 들이받아요~”
난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 양반은 황반장이구나. 이제부터 황반장이라고 불러야 겠네.’
황반장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녀들에게 소리쳤다.
“아니 다 늙은 것들이 왜 차 주임에게 추근대?”
그는 아직 할말이 남았다는 듯이 아예 뒤돌아 섰다.
“니네도 양심이 있어야지. 서른도 훨씬 넘은 년들이 이제 스물인 어린 애를 넘봐? 그러다 벌받는다.”
황반장의 걸쭉한 소리에 버스 안은 한바탕 소란스런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난 스무 살이고, 이름은 차승현이고, 진영상사에서 일을 하고 있고, 황반장과 친한 사이이고, 시간이 가면서 하나씩 나에 대한 정보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 당분간은 좀 불편할거야. 하지만 얼마 동안 만 이렇게 하나씩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머지 않아서 문제 없이 봉식이의 아들로 살 수 있을거야.’
아침에 집을 나설 때에는 까마득하기만 했던 상황이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커다랗게 진영상사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로 사람들을 따라서 들어갔다.
‘이건 또 뭐지?’
공장에 들어서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재봉틀이 줄지어 서있었다.
우와~ 이게 도대체 몇 대야?
그런데 재봉틀을 보자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움직였다.
마치 매일 와봤던 곳에 온 것처럼 내가 성큼성큼 걸어가서 한 재봉틀 앞에 섰다.
그 재봉틀 머리에 “승현”이라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럼 내가 재봉사라는 말이야?’
난 기가 찰 만큼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도 분명 차승현은 재봉틀을 능숙하게 다루었을텐데 오늘 갑자기 버벅거리면 그게 말이 될까?
학생도 아니고, 선생도 아니고, 왜 하필 재봉사이냐고?
직원들이 모두 뒷마당으로 나가서 체조로 몸을 푸는 것을 따라 하면서도 난 마음이 심히 불편했다.
어떡하지?
대충 흉내라도 내야 할 텐데 난 한 번도 재봉틀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황반장이 너의 정체가 도대체 뭐냐고 묻기라도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체조시간 내내 난 그 생각에 사로 잡혔다.
“자~ 여러분 이제 구호를 외치고 업무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직원들은 오른 손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진영의 번영이 나의 번영이다
진영을 통해서 국가에 충성하자.
정말 어이없는 구호였지만 지금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직원들이 모두 자기 자리로 신속히 돌아가는데 난 두려움에 눌려서 천천히 마지 못해 내 자리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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