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다 1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어디로 가는지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 몰라서 두려웠고 긴장했었다.
그렇지만 저녁에 집에 들어가는 길에는 손에는 소고기가 들려 있고 내가 미싱의 신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의기양양해서 걷는 내 모습이 한 가게의 유리창에 비쳐서 보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
미친 놈처럼 웃고 말았다.
한국 전쟁 때 우리 부대 근처에서 떠나지 않고 배회했던 아이들이 문득 떠올랐다.
그 아이들 중 집이 없는 아이들도 있었겠지만 집은 있어도 먹을 것을 찾느라 죽치고 있던 아이들도 많았다.
그 아이들은 어쩌다 사탕이나 초콜렛을 얻는 날이면 딱 지금의 내 표정과 발걸음을 하고 돌아 갔었다.
그 기억이 떠오르면서 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침에 내 등짝을 힘껏 때리며 욕지거리를 날렸던 엄마가 보고싶기까지 했다.
“엄마를 보러 가자.”
“엄마가 기다린다.”
혼자서 흥얼거리면서 걷는 내가 하루 사이에 낯설지 않았다.
봉식이 아내가 내 엄마다.
봉식이의 마음 속에 한으로 남았을 것이 분명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내가 봉식이 아들이 되어 앞으로 모두 풀어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스스로 감격스러워서 길거리에서 난 소리쳤다.
“봉식아~ 내가 너와 한 약속 다 지킬께.”
역시 같은 일은 또 벌어지기 마련이다.
퍽 !
등짝에 불 같은 고통이 일어났다.
“아! 뭐야?”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 곳에 엄마가 서있었다.
“봉식이가 니 친구냐? 이 새끼야~”
“헉. 엄마?”
“왜? 나한테도 진숙아 진숙아 하고 부르지 않고?”
“엄마 이름이 진숙이야?”
난 예상했다. 왼쪽 팔뚝으로 두번째 주먹이 날아올 거라는 걸.
아직 엄마는 모르겠지만 내 지능은 유럽권에서도 최상위였으니까 한번 속지 두번 속지는 않는다.
난 두번째 주먹을 예상하고 얼른 대비하고 있었다.
“악!”
그런데 엄마는 내 완쪽 다리를 걷어 찼다.
아니 이 여자는 정체가 뭐지?
몸매에 비해서 너무 날렵하잖아!
길거리에서 강력한 로우킥을 날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마터면 소고기를 놓칠 뻔했다.
난 절뚝거리며 집으로 도망갔다.
“집에 가서 소고기는 냉장고에 넣어둬.”
뒤에서 엄마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볼륨으로 소리쳤다.
영국에서도 엄마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다는 속담이 있는데 역시 전세계 엄마들은 똑같은가 보다.
내가 소고기를 들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난 살짝 불안해졌다.
조금 전 봉식이에게 그의 아내인 내 엄마를 잘 살게 해주겠다며 큰 소리쳤는데 저 여자의 모습을 보고 나니 왠지 그녀에게 묻어가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달려가서 소고기를 냉장고에 넣어 두고 손을 깨끗이 닦았다.
“아들~ 음식 준비하자.”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엄마가 소리쳤다.
당분간 적응하는 데 애를 먹을 것 같았다.
엄마는 소리통이 커서 그런지 말을 하면 사방이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내가 담당한 일은 전을 부치는 것이었다.
그 사이 엄마는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나물 몇 가지를 무쳤다.
“제사에는 어떤 음식을 놓는 거야?”
“아빠가 제일 좋아했던 음식.”
“그럼 아빠가 이 음식들을 제일 좋아했던 건가?”
“그래. 아빠는 잔칫날에 이런 음식을 드시면서 좋아하셨어.”
난 매가 두려워 속으로만 생각했다.
‘봉식이는 햄버거를 좋아했는데.’
둘이 북한군을 피해 다니면서 내가 봉식이에게 물었었다.
“봉식,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게 뭐야?”
“햄버거. 햄버거가 먹고 싶어.”
“좋은 거 다 놔두고 햄버거야?”
“내가 먹어 본 음식 중에서 햄버거가 제일 맛있었어.”
“넌 미군에 소속되어 있어서 자주 먹었겠구나.”
“그렇지. 처음 햄버거를 먹었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부드러운 빵 사이에 육즙이 흐르는 소소기 패티 그리고 신선한 야채”
그는 입맛을 다시는 시늉까지 했다.
“그런데 가장 날 미치게 한 게 뭔지 알아?”
“뭔데?”
“쏘스~ 그 달콤하면서도 상콤한 쏘스~”
“너 정말 지금 햄버거가 먹고 싶구나?”
“말해 뭐해. 난 지금 햄버거를 하나 준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우리는 이틀 동안 아무 것도 씹지 못하고 물만 먹고 있었다.
그 생각이 나자 난 결심했다.
봉식이 제사상에는 햄버거가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
‘봉식아~ 기다려. 네가 영혼을 팔아서라도 먹고 싶다고 하던 햄버거를 준비해 올께.”
난 전을 서둘러 모두 부치고 나서 조용히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밖으로 나갔다.
난 큰 거리에 나가서 매장들을 둘러 보았지만 햄버거 가게는 단 하나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신문을 파는 가판대가 보여서 얼른 다가갔더니 주인이 “어서 오세요~”하며 반겼다.
“혹시 이 주변에 햄버거를 파는 곳이 있나요?”
“뭐요?”
“햄버거요.”
“햄버거가 뭐예요?”
응? 햄버거를 모른다고?
“빵 두개 사이에 소고기를 넣어서 먹는 거요.”
주인은 손님이 될 지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욕은 하지 않았지만 눈으로는 욕을 하고 있었다.
“아니··· 소고기를 왜 빵 사이에 넣어 먹어요. 그럴 소고기가 있으면 불고기를 해 먹겠네요.”
“아~ 못 보셨군요.”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왜 그런 음식을 팔아요. 그런 건 없어요.”
미친 사람이라야 그런 음식을 먹는다는 소리를 들으며 난 가슴이 뛰었다.
아직 햄버거를 아무도 한국에서는 팔고 있지 않구나.
그제서야 난 깨달았다.
아직 한국은 햄버거를 먹을 만큼 소득수준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생각을 하니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봉식이 집안을 일으키려면 사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햄버거가 아직 안 들어왔다면 그게 최고의 아이템이다.
“야이~ 빌어먹을 놈아.”
“아~ 또 욕이야.”
“아빠 드릴 음식을 하다가 말도 없이 사라지는 놈이 어딨어?”
“금방 왔잖아.”
“얼른 준비해. 아빠 배고프시겠다.”
엄마는 정성껏 음식을 상에 올렸다.
상이라고 해봐야 어디서 주워 온 듯한 낡은 탁자로 보였지만 깨끗한 하얀 종이로 덮자 그럴 듯하게 보였다.
엄마가 가져다 주는 견본을 보며 삐뚤빼뚤하게 긴 종이에 그림 같은 글자를 썼다.
“엄마가 해주면 안돼?”
이 한마디 했다가 또 얻어 맞을 뻔했다.
“누가 지방을 여자가 쓴다냐. 그건 남자가 쓰는거야.”
하는 수 없이 난 그렸다.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서 그렸는데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혀를 찼다.
“에이구~ 당신은 그냥 밥이나 얻어 자시는 게 다행이라 생각하슈.”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준비가 끝나자 엄마가 내게 말했다.
“승현아~ 아빠에게 절 해야지.”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절을 했다.
“돌아가신 분께는 한번이 아니라 두번을 하는거야.”
왜 그런 지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냥 외우면 쉬운 일이니까.
세상에 모든 것들이 이유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은 팔십 몇 년을 살아보니 자연스레 터득한 사실이었다.
“자 이제 아빠 식사하시게 잠깐 나가 있자.”
엄마는 방문과 대문을 조금씩 열어두고 밖으로 나갔다.
“근데 왜 문은 열어 둬요?”
“아빠가 들어가셔야지. 먼 길 오셨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못 들어가시면 가슴에 한이 된단다.”
사실 말이 안 되는 발상이지만 그냥 그 마음 만 보기로 했다.
난 믿지 않지만 죽은 영혼이 있다면 문이 닫혀 있다고 들어가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믿지 않지만???
방금 내가 말하고도 뭔가 되게 웃기다.
지금 차승현 몸에 들어와 있는 건 내 영혼이 아니면 뭐야?
이제부터 절대 영혼이 있다면 이라는 가정이나, 난 그걸 믿지 않지만 이라는 단정은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영혼은 있다.
내가 안 믿었던 그 일이 내게 생겨서 사실 좀 많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덕분에 난 다시 살아보니 나쁘지 만도 않은 일이었다.
10분쯤 시간이 지나고 엄마가 이제 들어가서 밥을 먹자고 했다.
“우와~~~ 이 음식들은 내가 먹어 본 것 중에 최고야 최고.”
난 아침처럼 밥 두 공기를 순식간에 비웠다.
“우리 아들 잘 먹고 큰 일 해야지.”
“엄마 근데 저 사진 속의 나는 몇 살이었어?”
“저게 첫돌 기념사진이었어. 그리고 마지막 가족사진이었지.”
“저 사진 찍고서 아빠가 전쟁에 나가셨구나.”
“맞아.
“아빠는 어떻게 죽었어?”
“총에 맞아서 죽었겠지. 전쟁이 끝나고 엄마가 아빠가 근무했던 부대에 찾아갔는데 몇 달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지.”
“어떻게 죽었는지 거기서 얘기해 줬어?”
“응. 자세히는 아니지만 대충 얘기해 줬어.”
“어떻게 죽었데?”
“후퇴하다가 뒤처졌나봐. 인민군을 피해서 다니다가 남양주 어딘가 야산에서 시체가 발견됐데.”
난 그때의 상황을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차마 엄마에게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분명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을거야.”
“알아. 네 아빠는 어려운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돕는 사람이었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면 용감하게 나서서 마을 사람들이 다 존경했거든.”
“그랬구나.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뭐? 넌 어려서 아빠에 대해서 기억하는 게 없을텐데..”
난 조금 전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생각했다.
이거 진짜 불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몸은 차승현이지만 영혼은 하워드로 살려니 앞뒤가 안 맞는 말과 행동들이 여기저기서 수시로 튀어나왔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구.”
“거참~ 희한하네. 네 말이 다 맞아.”
엄마는 밥을 먹다 말고 나를 정색을 하고 쳐다보았다.
“근데 너 아침에 아빠 사진을 보고서 왜 봉식이? 라고 한거야?”
난 잠시 주춤거렸다. 말을 잘 둘러대야 한다.
“아~ 그거? 꿈을 꿨어. 꿈에서 아빠가 죽는 꿈인데 내가 아빠의 군대 동료로 나왔어. 그래서 사진을 보고 이름을 부른거야.”
엄마는 피식하고 웃었다.
“너두 이제 나이가 먹나 보다. 아빠가 꿈에 나오는 거 보면.”
엄마는 아직 다 비우지 못한 밥그릇 옆에 숟가락을 놓았다.
“아빠가 보고 싶니?”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도 이제 어른이니까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어.”
엄마는 내 얘기를 듣자 흠칫 놀랐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면서 내게 말했다.
“가서 소주하고 잔 두개 가져와.”
난 소주가 뭐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일어서서 부엌으로 가 구석진 곳의 찬장을 열고 안쪽으로 깊이 둔 소주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고 작은 유리잔도 두 개 챙겼다.
“여봐 여봐~ 내가 이 자식이 쥐새끼인줄 알았어.”
“뭐? 왜?”
“내 소주가 야금야금 없어진다고 생각했더니 이 새끼가 다 처먹은거야.”
난 왠지 찔리는 게 있어서 찍소리도 못하고 야단을 들었다.
“아이~ 알았으니까 하려던 말이나 해.”
엄마 잔에 가득 소주를 붓고 내 잔도 채웠다.
“우리 아들과 처음으로 대작해 보네.”
엄마와 나는 잔을 부딪혔다.
“엄마하고 사느라 고생했다.”
“뭘~ 앞으로 더 긴 기간이 남았는데.”
“이 자식은 한 마디도 안 져. 하여간.”
우리는 소주를 들이키고 안주로 전을 우걱거리며 씹었다.
엄마는 소주 한 잔을 더 마시고 나서야 비로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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