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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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쓰고
작품등록일 :
2024.10.25 19:32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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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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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50

작성
24.10.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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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저벅저벅. 저벅저벅.

무너질 듯한 계단을 올랐다.


이 건물은 일대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무너지지 않은 몇 안 되는 고층 건물이며, 마수는 쉽게 올라오지 못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겐 참 좋은 공간이다.

세상에선 어떤 얼굴로 어떤 가면을 쓰고 살아가든. 이곳에서만은 온전히 나의 얼굴로 지낸다.


저벅저벅.

덜컹.


철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갔다.

시원하게 탁 트인 세상이 보인다.


하늘에 유유히 떠가는 구름.

그 아래에 놓인 고색창연한 폐허.

멀리 이름 모를 마수의 울음이 들린다.


옥상에 있는 물건들을 먼저 살펴보았다.

내가 정리해 둔 그대로였다. 마수나 사람이 침범한 흔적은 없다. 사실 사람을 만난 적도 없지만.


치익-

난간에 서서 콜라를 마셨다.


빛바랜 덩굴에 뒤덮여 버린 빌딩들.

뼈대만 남은 건물들과 도미노처럼 기울어진 아파트들. 사각형으로 이뤄진 정글 숲을 보는 듯했다.


휘이잉-


바람 소리가 들릴 만큼 이 세상은 고요하다.

여기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매번 아찔해진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온갖 소음 때문에.


한 건물 옆구리는 거인이 후려친 듯 손 모양으로 뜯겨 나갔다. 거리는 온통 수풀과 웅덩이로 가득하고 백골들이 잔뜩 깔려 있다.


모두 치열하고 참혹했던 전투와 전쟁의 상흔이다.

난 이 거리를 떠돌면서 저 흔적들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하나둘 알아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

멸망 직전까지도 사람들은 재앙과 공존하며 생활했다는 것. 이제 곧 그 ‘게임’이 시작된다는 것도.


이곳은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이다.

그리 먼 미래는 아니다. 멀지 않은 논현동 주택가에 내가 살았던 본가가 그대로 있으니까.


컹컹-


아래에서 ‘조던’이 짓는 소리가 들렸다.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신호. 마수라도 보았다면 짓는 소리가 다르거든.


아, 조던은 이곳에서 만난 개다.

일단은 개라고 해두고 싶다.


이 도시가 긴 세월을 거쳐서 자연의 품에 안길지. 이대로 쓸쓸히 먼지가 되어갈지는 모르겠다. 이 멸망한 미래가 정말로 닥칠지 어떨지도.


여길 오간 지 10년이 지났는데.

이곳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고.


열일곱 살 때였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2년이 지난 어느날. 내가 사는 3층 건물 창고에 포탈이 열렸다.


그 두렵고도 신기했던 빛의 구체.

왜 생겼는지 모르는 그 괴상한 형체가 당연히 무서웠다. 한동안 들어가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포탈은 이 세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처음 포탈에 들어갈 때 어찌나 떨리던지.

나중엔 겁도 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다 마수를 만나 죽을 뻔한 뒤로는 열심히 몸을 단련했다.


수련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몸에 ‘시스템’이 들어왔기에.


10대였던 당시엔 귀신에 씐 건가 했다.

지금이야 이게 뭔지 잘 알고 친구가 됐다. 이 친구가 ‘게임’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직 모르겠고.


뭐 어쨌든.

시스템 덕분에 난 아주 강해졌다.

10년 넘게 수련했으면 당연한 건가.


마수를 사냥하며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곳곳에 내 은신처도 만들어 두고 별의별 희한한 것들도 많이 찾았다. 종류별로 모아두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노트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지.


해지고 손때가 묻은 평범한 노트.

이곳의 생존자가 기록한 비망록이었다.

첫 페이지를 볼 때부터 버릴 수가 없었다.


어느 노인이 정성스레 써 내려간 듯.

놀라운 이야기가 적혀 있었으니까.

그 첫 페이지는 이랬다.


『비록 세상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한때는 위대한 영웅들이 있었다. 이 기록은 그들을 탄생시킨 지독하고도 잔혹했던 어느 게임에 관한 이야기다.』


이어 다음 페이지를 넘겼는데.


『히어로 : 용사 육성 시스템.


이른바 생존 게임 혹은 전쟁.

그 존재들은 이 게임을 [히어로 시스템]이라고 했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이런 재앙에 인류를 몰아넣은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퇴색해 버린 기억을 더듬어 세상이 멸망한 과정과 이유를 적어보려 한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홀로 남겨져 살아온 세월이 어언 수십 년. 죽기 전에 뭐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나.


그 게임이 시작된 날은.

어느 10월. 금요일 오전이었다.』


이 노트를 발견했던 그날.

난 먼지 쌓인 편의점에서 이 노트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읽었다. 장장 여섯 시간 동안.


그 뒤로 이 멸망한 세계에 올 때마다 노트를 읽고 또 읽었다. 이상한 물건을 찾으면 그 물건이 무엇인지 노트에서 확인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적혀 있진 않았지만, 웬만한 것은 다 쓰여 있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어떤 게임을 하고 어떤 용사가 나타나고 어떤 아이템을 얻는지도.


절대적 세계 랭킹 1위. 대니 하트필드.

한국 1위를 다투었다는 이규. 이중원.

특히 이중원의 이야기는 뭉클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노트를 읽으면서 내 부모님의 죽음이 그 게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내 존재를 드러내선 안 된다는 것도.


그래서 내 이름이 순위에 없었겠지.

내가 누구인지를 숨겼을 테니까.


내 집에 포탈이 생긴 것이 그냥 우연일까.

난 결코 세상이 멸망하게 두지 않는다.

미래는 바꿀 수 있다. 내가 바꾼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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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한 용사의 각오 24.10.31 16 0 10쪽
15 나의 방패막이 24.10.30 17 0 10쪽
14 한 남자가 있었다 24.10.29 18 0 10쪽
13 이상하고 심각한 오류 24.10.28 20 0 10쪽
12 시스템이 없는 그녀 24.10.28 24 0 10쪽
11 그 여자 아니지? 24.10.27 23 0 10쪽
10 던전 파티 공략 24.10.27 26 0 10쪽
9 버그 버퍼 버서커 24.10.26 31 0 10쪽
8 내 친구 리볼트 24.10.25 35 0 10쪽
7 숨겨진 나의 스킬 24.10.25 39 0 10쪽
6 튜토리얼이 빡세다 24.10.25 48 0 11쪽
5 강남역 경쟁의 장 24.10.25 55 0 10쪽
4 다운된 상태창 24.10.25 60 0 10쪽
3 내게는 이미 있다 24.10.25 61 0 11쪽
2 세상의 종말 24.10.25 70 0 11쪽
» 프롤로그 24.10.25 86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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