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 버퍼 버서커

다들 일순 고민에 빠졌다.
자기 특성이 좌우되는 선택이라서.
세부적인 직업 선택은 나중에 나온다.
나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미 근딜이자 원딜이거든.
“조력을 선택한다.”
조력은 버프다.
내 버프는 좀 다를걸.
버프도 버그가 될 테니.
“이거 뭘 선택해야 하지?”
“법사는 마법사 말하는 거죠?”
다들 결정장애에 빠졌다.
자신의 특성조차도 모르기에.
공격. 방어. 법사. 조력.
단어만 보면 이게 뭔가 싶다.
내가 선택한 조력도 참 애매하다.
공력과 방어는 기본이고 버프나 힐을 주는 특성. 그 버프도 공격력 10% 증가 정도.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하지만 내게는 사뭇 다르다.
내게는 군주로 가는 첫걸음이지.
나는 버그이자 버퍼이며 버서커다.
“으하하하하.”
내가 웃자 다들 날 보았다.
지금 웃음이 나오나 싶은지.
덕기 아저씨가 한숨을 쉬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 자넨 어때?”
“아저씨는 기사가 어울립니다.”
“기사라······.”
거구 양호산도 물었다.
“난 뭘 하면 좋겠습니까?”
“탱커.”
“탱커면··· 방어 특성요?”
“방패와 창이 어울릴 것 같거든.”
BJ 공일호도 물어왔다.
“형님, 저는요?”
“법사해. 겁 많아서 근딜하겠어?”
“저 겁 안 많아요! 쪼렙이라서 그렇지!”
“넌 마법사가 잘 어울려.”
“그런가.”
김덕기 아저씨를 시작으로.
양호산과 공일호도 능력을 선택했다.
다들 어떤 직업이 될지 선하게 보인다.
탱커는 [나이트] 김덕기와 [디펜더] 양호산.
딜러는 [메이지] 공일호. 난 멀티플레이어.
뭐, 4명 팀이면 적당하겠지.
플레이어 대부분이 공격. 방어. 법사 중에 선택한다. 조력은 누가 봐도 죽기 딱 좋아서.
그래서 ‘버퍼’는 아주 귀한 직업이다.
“시간 다 됐습니다.”
“공격 선택한다!”
“나는 방어로!”
“법사 선택!”
여기저기서 들리는 외침.
47명 중 조력은 단 한 명도 없다.
생존한 여성 플레이어가 없기도 하고.
선택의 시간이 지나갔다.
니케가 다시 스르르 나타났다.
[지금부터 특성 효과를 부여합니다.]
니케가 빛 가루를 뿌렸다.
그 입자들이 플레이어의 몸에 스며든다.
적성에 맞으면 직업으로 고려하라는 의미.
이어 각자에게 알림이 떴다.
어떤 특성 효과가 발생했는지.
[버프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공격 1] [방어 1] [체력 1] [치유 1]
현재 내 마력은 고작 6이다.
버프 한 번 쓰면 바닥나는 수준.
레벨이 오르면 광역 버프도 가능하다.
“3 스탯을 마력에 투자한다.”
내 몸에 빛이 났다가 사라졌다.
버프 쿨 타임만 약간 단축됐겠지.
“다들 특성 어때요?”
“공격력이 10% 올랐군.”
“저는 방어력이 10% 올랐습니다.”
“저는 볼트라는 게 생겼어요.”
“그게 뭔데? 마법이야?”
손으로 쏘는 마법 화살이다.
마력도 이제 막 1이 생겼을 거고.
이제 시작이라 능력들이 참 하찮다.
그때 드디어 알림이 떴다.
다들 긴장하며 허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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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1】
- 튜토리얼 2
<결속>
[던전의 마수들을 처치하세요.]
[마정석을 통해서 마력을 모으세요.]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분배됩니다.]
[파티원이 많을수록 공유 경험치와 버프 효과는 줄어듭니다. 미션의 보상은 공동으로 적용됩니다. 파티 초청자가 리더입니다.]
[모든 채널에 베팅 기능이 열렸습니다.]
[베팅에 참여하면 배당을 받게 됩니다.]
[용사의 자격이 없는 자는 소멸합니다.]
경쟁의 장 : 강남역 지하.
제한 시간 : 3시간.
제거 마수 : 없음.
남은 시간 : 2시간 59분 5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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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 가!”
위치가 강남역 지하임을 확인한 순간.
플레이어들이 무작정 달렸다. 우리도 가까운 출구로 향했다. 덕기 아저씨가 달리며 외쳤다.
“지금 파티 맺는 게 낫지 않나?”
“모두 같은 생각?”
“당연하죠!”
“파티를 구성한다!”
즉시 알림창이 떴다.
[현재 인원 개별 선택]
[현재 인원 전체 선택]
“전체 선택!”
새로운 파티 창이 떠올랐다.
내가 자동으로 파티장이 되었다.
파티원의 레벨과 정보는 비공개.
“갑시다!”
빠르게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상가가 컴컴한 던전으로 변했다.
한 30년은 방치한 듯한 음산한 풍경.
“언제 이렇게 됐지?”
실체가 있는데 실제가 아닌 모습.
그들은 세상을 변형시켰고. 물질의 구성 입자와 구조를 마음대로 바꾼다. 프로그래밍처럼.
채널이 열리면서 서포터들이 입장했다.
베팅 기능 때문에 채팅창이 시끄러웠다.
시야에 방해가 되어서 일단 창을 닫았다.
“베팅이면 도박 아닌가?”
“서포터가 코인을 건다고요?”
“자금을 불리려면 그 방법밖에 없지!”
어차피 플레이어와 서포터는 한배를 탔고.
베팅 액수가 클수록 우리도 큰돈을 번다.
“네 명이 부족하진 않을까?”
“해봐야죠! 던전 공략은 경쟁일 겁니다! 여긴 47명뿐이니까! 다른 거점에서도 올 거예요!”
다들 부쩍 긴장했다.
“다른 플레이어를 죽여야 할 수도 있겠군!”
“그래야죠! 그냥 탈락 판정으로 시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주저하면 안 돼요!”
세 명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소멸’만 진짜 죽는 거고 나머지 표현은 죽을 수 있거나 탈락이다. 탈락하면 시민이 된다.
이번 튜토리얼만 그렇고.
게임마다 다 다르다. 대체로 탈락 판정.
거구 양호산이 주변을 돌아보다가 말했다.
“다른 곳에서도 경쟁 파티가 올 것 같습니다! 근처 삼지전자 사옥은 상당히 커요!”
“그럴 수 있겠어!”
“일단 지하철로 가시죠!”
우리는 곧장 지하철로 내려갔다.
강남역은 지하 1층과 2층에 2호선이 있고. 3층과 4층에 분당선이 있다. 동서와 남북 방향.
교대나 역삼에서 누가 오면 2호선.
논현이나 양재에서 온다면 분당선.
2호선 승강장에 내려와서 살펴보았다.
마수도 마정석도 보이지 않았다.
“분당선으로 바로 가죠.”
“여기는 확인도 안 하고?”
“던전이니 가장 깊은 곳에 있겠죠.”
양호산도 거들었다.
“일리가 있습니다. 지하 4층까지 있는데 마정석과 보스가 애매하게 중간에 있을 가능성은 작아 보입니다.”
“좋아. 곧장 가자고.”
다들 분당선 방향으로 달렸다.
여느 환승역이 그렇듯. 여기도 분당선으로 갈아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한다. 그때였다.
“저기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강남역 플레이어들이에요!”
“4명뿐이야! 잡아!”
갑자기 회사원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전부 피에 물든 와이셔츠 차림.
BJ 공일호 혼자만 기겁하고.
나와 양호산, 덕기 아저씨는 차분히 달렸다.
이내 뻥 뚫린 환승 통로가 나타났다.
“저 사람들 어디서 온 거죠?”
“삼지전자!”
기다란 통로를 신나게 달렸다.
뒤에선 삼지전자 직원 20여 명이 우릴 쫓고 있었다. 아직도 직장 상사의 명령을 듣고 있나.
어째 짠하고 안쓰럽네.
분당선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에스컬레이터도 멈췄다.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고요해서 아무것도 없나 했더니.
“이런!”
다들 미끄러지듯이 멈추고 말았다.
플랫폼 양옆에 웬 병력이 늘어서 있었다.
판금 갑주를 걸치고 창을 든 병사들의 모습.
“이게 다 뭐야?”
그때 들리는 뿌우우우- 하는 소리!
병력이 척- 하고 창을 들더니 진군하기 시작했다. 투구 속에는 시커먼 형체만 있을 뿐.
척척척척-
병력이 우릴 향해 전진했다.
철로에는 스크린도어가 닫혀 있고.
“스크린도어 열어!”
“호산은 이쪽!”
덕기 아저씨와 공일호가 스크린도어를 양옆에서 당겨서 열었다. 생각보다 쉽게 열린다.
그러는 사이. 나와 양호산은 다가오는 병사들을 발로 밀어 찼다.
터텅-
나와 양호산에게 명치를 맞은 놈들이 뒤에 있는 놈들을 밀치며 쓰러졌다. 앞에서 넘어진 놈들 때문에 전진이 순식간에 뒤엉킨다.
“빨리 내려와!”
양호산과 함께 뛰어내렸다.
“호산! 문 닫지 마!”
“놈들이 내려올 텐데요!”
“문 닫으면 스크린도어를 깬다!”
우선 터널 쪽으로 달렸다.
“저놈들 어때!”
호산이 말했다.
“느린데 힘은 세요! 갑옷은 생각보다 얇습니다! 검으로 찌르면 뚫릴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우린 맨몸이야!”
“저 끝까지 가보죠!”
어둠 속 저편에서 묘한 힘이 뭉글뭉글 밀려온다. 마력의 파동 같았다. 터널 입구까지 달려가도 철로에는 아무것도 없나 싶었는데.
시커먼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갑주를 입은 기사들. 정예들인가.
그런 놈들이 터널 입구를 막고 있었다.
[교만의 기사단을 처치하세요.]
[0/300]
“300명이라니!”
다들 맥이 쭉 빠져 버렸다.
레벨을 올리는 게 우선이었나.
아니다. 그 병력을 뚫기는 어렵다.
튜토리얼 2.
팀의 협동과 전략 전술 등을 본다.
다른 팀과 경쟁으로 적도 생긴다.
전략 전술이라 해봐야 별거 없다.
그런 건 약세일 때나 필요하지.
“팀장님! 수가 너무 많습니다!”
“후퇴해! 뒤로 가! 뒤로!”
다른 파티가 속속 도착해서 고함을 질러댔다.
저 창을 든 병력은 정공법으로는 못 뚫는다.
우리야 가장 먼저 도착해서 돌파한 거고.
막막해도 방법은 분명히 있다.
삼지전자 직원들은 해낼지도.
스르르릉-
정예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뒤에선 열린 문으로 병력이 내려오는 중.
“덕기 아저씨. 양호산.”
“말씀하시죠.”
일행을 보며 말했다.
“내가 길을 열면 바로 들어와. 놈들의 검으로 싸워야 한다. 포위되면 탈출 먼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구울이 갑주를 입었다고 할까.
빨리 뚫지 못하면 앞뒤로 포위된다.
“파티 공격 버프!”
말이 떨어지는 순간.
파티원 전체에 빛이 스며들었다.
[파티원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버프 한 번에 마력을 전부 소모.
마력이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조력이 버프였나?”
“예. 최대한 많이 잡고 돌파합니다.”
세 사람의 레벨이 몇인지 몰라도 급속도로 오를 거다. 은근슬쩍 내 진짜 능력치로 싸울 거거든. 그래야 내 마력 수치도 급상승할 테고.
이곳 터널은 꽤 어둡다.
영상을 봐선 분간이 안 된다.
나를 분석해 봐야 나올 것도 없고.
세 명이 은근히 긴장하는 사이.
인벤에서 한 손 검을 꺼냈다.
그러곤 채널을 열었다.
내 채널의 서포터 329명.
그들을 보며 말했다.
“여러분들. 1만 코인씩 걸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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