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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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쓰고
작품등록일 :
2024.10.25 19:32
최근연재일 :
2024.11.07 16:16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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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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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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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없는 그녀

DUMMY



“아버지 이름이 뭔데?”

“안성욱.”


성욱.

아버지 절친의 이름.

성은 다르다. 그럴 리가 없다.


“원래 살던 집은 어디?”

“외국에서 살다가 어제 왔어요. 23살이 되면 반드시 한국에 가서 이곳을 찾으라고 하셔서.”

“한국에 친척도 없어?”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숨어 지냈다는 건가.


“갑자기 한국에 온 이유는?”

“저 정말 갈 데가 없어요. 근데 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겨서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이 세상에 저 혼자뿐인데 사람들이 서로 마구 해치고······.”


여자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참으려고 하는데 결국 뚝뚝 떨어진다.

버티고 버텼던 정신이 곧 무너질 것 같다.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셨는데?”

“15년 전에요. 저 9살 때.”


왜 비슷한 걸까.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외국에서 죽 살았던 거야?”

“아니요. 그게···”


거짓말을 못 하네.


“외국에서 산 거 아니지?”

“네.”


당황했는지 여자가 급히 말했다.


“실은 강원도 정선에서.”

“정선?”

“외할머니집요.”


혼란스럽다.

무슨 착오가 있었나.


“월세 낼 게요. 당장 방 구하기 어려워서.”

“월세 70이다.”

“네에?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 눈은 좀 예쁘긴 하네.


“서울 강남이 원래 비싸.”

“지금은 돈이 없어요. 여기 올 때 사고가 났는데. 제 가방을 누가 훔쳐 갔어요. 힘들게 모은 돈인데.”


사고가 나서 피가 난 거군.


“그럼, 코인으로 내던가.”

“그게 뭔데요?”


뭐지?

23살이면 여지없이 참가자다.

16세 이상 노약자를 제외한 전부.


“서포터도 아니라는 거지?”

“서포터요?”

“흠.”

“제가 어떻게든 벌어서 낼 게요.”

“일단 따라와.”


여자가 끙끙대며 캐리어를 끌고 올라왔다.

서포터도 아니라면 히어로 시스템도 없다는 뜻이다. 왜 이 친구는 예외가 됐을까?

내가 모르는 게 있다.


“이리 줘.”

“저도 들 수 있어요.”

“그럼 빨리 옮기던가.”


그 캐리어를 들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

3층 문을 열자 먼지 쌓인 사무실이 나온다.


“여기서 지내.”


여자가 사무실을 보곤 놀랐다.

내 공간에서 얹혀살 줄 알았는지.


“고맙습니다.”

“3층에는 절대 올라오지 마. 얼씬거리면 바로 쫓아낸다. 화장실은 1층에서 쓰고 식사는 알아서 해결해. 자주 정전될 테니 난방도 알아서. 근데···”


여자애를 스윽 보았다.


“여자 맞지?”

“네?”

“여장 남자··· 아니지?”

“저, 여자 맞거든요!”


왜 성질은 내고 그럴까.

내가 한 번 속았던 적이 있거든.

하여간 3층에 올라오기만 해 봐라.


“밥은 잘해?”


여자가 날 빤히 보았다.


“못하진 않아요. 할머니한테 배워서.”

“이름은?”

“안이지요.”


이름마저 닮았다.

기억의 심연에 묻었던 오랜 그리움이.

파도가 되어 따스한 빛과 함께 밀려온다.

한가한 오후의 창가에 비치던 그 햇살처럼.


“본명 아니지?”

“본명 맞는데요.”

“월세 밀리지 마. 한 번이라도 밀리면···”


여자애가 마스크를 벗었다.

순간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설마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왜 그러세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예쁠 수가.


“우리 이지 씨. 식사는 했어?”


그래. 햇살을 닮았다.

저 어색한 미소까지.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그럼, 우선 씻어. 내 집에는 온수 나오니까 마음 편하게 샤워해도 돼. 속옷 없으면 내 거 쓰던가.”

“네? 아, 네.”


마스크를 벗고 인사하는 그녀.

‘지금 뭐 하는 수작이지?’ 싶은 눈길.

쫓겨날까 봐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간단히 정리하고 같이 올라가.”

“네, 그럼.”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는 미국에서 죽었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기억의 화석으로 남은 그때의 미소처럼.

어두컴컴한 내 마음에 빛이 스며든다.

그게 벌써 15년 가까이 되었네.


이제는 다르다.

그녀 스스로 지킬 것이다.

이제는 어린 소녀가 아니니까.


그래. 내가 큰 착각을 했다.

저렇게 엉덩이 큰 남자가 어딨다고.

점퍼를 입어서 난 아무것도 없는 줄···


“왜 그렇게 보시죠?”

“마스크는 왜 하고 다녔어?”

“어릴 때부터 습관이에요. 아빠가 그러래서.”

“그랬구나. 이제 집으로 올라가지?”

“근데 아까는 절대 얼씬도 말라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오늘 겪어 봐서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 경계하는 건 당연한 건지. 그쪽이 시골에서 와서 사람 쉽게 믿는 거라고.”

“제 이름 말한 거요?”

“그럼. 어디 가서 개인정보를 알려주면 큰일나. 내가 잘 생기긴 했어도 변태라든가, 나쁜 놈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녀가 날 빤히 보았다.


“뭘 그렇게 보셔?”

“그쪽은 믿어도 돼요?”

“그럼. 집주인 오빠를 믿어야지. 누굴 믿어.”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그녀가 날 빤히 보는 것 같다.


띠리릭- 덜컹.

내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컹컹컹-

‘조던’이 날 보며 반갑게 짖는다.

겉모습은 매우 커다란 보더콜리다.


“잘 지냈어? 산책은 나중에 하자.”


컹컹-

조던이 안이지를 보며 꼬리를 쳤다.

가족을 만난 듯 그녀에게 안기기까지.

너. 뭐 아는 거냐?


“우와! 너무 잘생겼다.”


컹컹-

조던 저 녀석. 꼬리에 모터 달렸나.

그녀도 개와 친숙한 것 같고.


“얘 이름이 뭐예요?”

“조던.”

“이름도 근사하네?”

“샤워부터 해. 난 다시 나가야 하니까.”

“알았어요.”

“칫솔 없으면 내 칫솔 써도 되고.”

“으윽.”


이지가 또 날 변태 보듯 한다.

차마 말 하진 못하고 날 흘기다가 욕실로 들어갔다. 조던이 욕실까지 따라 들어가려다 밀려났다.


“조던.”


다가온 조던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지 지켜야 한다. 이제 사람들 시선에 주의할 필요 없어. 이지가 노출됐다는 건 내가 노출되었다는 뜻이니까.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


컹컹-

녀석이 다시 욕실 앞에 가서 앉는다.

이지가 샤워하는 사이 난 라면을 끓였다.


“리볼트. 이지에게 히어로 시스템 없어?”


(놀랍게도 없다. 내가 한 게 아님.)


“그러면 누가?”


(글쎄. 알아내야겠지.)


누가 히어로 시스템을 막았다는 건데.

리볼트 외에는 ‘그들’만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우호적인 존재가 했나.


이지를 왜 지켜주려는 건지.

아무튼 이지는 ‘제거’당할 일은 없다. 시스템의 보고가 들어갈 일도 없고.

나 때문에 위험해질 순 있겠지.


이지의 아버지인 이성욱 소장.

내 아버지의 친구이자 태산그룹 연구소장.

뭘 연구하다가 잘못됐는지 그도 살해당했다.


미국에서 처음 봤을 때.

날 오빠라고 부르던 9살 소녀.

그 소녀가 저렇게 예쁘게 자랐네.


그녀가 정선에서 살았을 줄이야.

날 못 알아보는 건 당연하다.

그때와 다른 얼굴이기에.


리볼트의 인벤토리를 열었다.

아이템을 보다가 장갑을 꺼냈다.

아주 특별한 장갑인데 하나 더 있다.


이지를 찾으면 주려고 했다.

남은 하나는 내가 쓸 거고.


“리볼트. 이지에게 시스템 줄 수 있지?”


(당연하지. 히어로 시스템인 척. 내 것을 줄 거야. 너처럼 스킬이 하나씩 개방되도록.)


“신체 능력이 따라가야 하니까.”


이지에게도 시스템이 생긴다.

본인도 모르고 있다가 내가 ‘그들’에게 드러날 때쯤 신체 능력에 따라 하나씩 개방한다.

그 전엔 스스로 지켜야 하고.


이 소장이 딸을 내게 맡긴 이유가 있겠지.

명의를 다른 사람에게 돌렸지만 이 건물도 아버지와 이 소장이 매입했다.

그리고 난 건물을 바꾸었다.


평범한 이 건물에 리볼트의 결계가 걸려 있다. 복잡한 건 아니고 방어벽 같은 거.

포탈이 있는 창고도 그냥 봐선 안 보인다.


식탁에 라면을 놓고 김치도 꺼내고.

수건을 들고 욕실로 갔다.


똑똑.


“아직 멀었어?”

“다 했어요!”


똑똑.


“빨리 나와라. 라면 불어.”

“지금 나간다고요!”

“여기 보송보송한 수건 있는데?”

“여기도 수건 있거든요!”

“그거 내가 거기 닦던 건데?”

“꺄아아아!”


콰당탕.


“비누 밟았어?”

“훔쳐보면 죽일 거야!”

“혹시 아래에 뭐가 달렸니?”

“아아악!”


.


후루루룩-

라면이 조금 퍼졌지만 맛있다.

이지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날 힐끔거리는 시선에 어째 경멸이 담겨 있긴 했지만.

하하하.


“잘 먹었어요. 그럼.”

“돈 벌어서 월세 내라.”

“쳇, 누가 떼어먹는대?”


이지가 눈을 흘기곤 나갔다.


“안이지.”

“또 뭔데요?”


쪽지와 장갑을 건넸다.


“집 비번. 장갑은 외출할 때 껴.”

“아직 겨울도 아닌데.”

“집주인이 끼라면 끼는 거야.”

“참나. 어이가 없어서.”


이지가 장갑과 쪽지를 낚아챘다.


“그거 안 끼고 다니면 쫓아낸다.”

“돈 벌어서 방 구할 거거든요!”

“어, 그러시던가.”


으르렁대며 내려가는 그녀.

저러다 손에 발톱도 생기겠네.

어릴 때는 참 귀여웠는데 말이지.


슬슬 나가볼까.

아디다스 트레이닝 세트를 갈아입었다.

집에서 나가 2층 문을 두드렸다.


똑똑.


“또 왜요?”

“조던이랑 같이 있어.”


덜컹.

문이 열리자 조던이 냉큼 들어갔다.

이지가 날 보며 콧바람을 뿜는다.


“당분간 나가지 마라.”

“그럴 거예요.”

“참고로, 나 김치찌개 좋아해.”

“어쩌라고요!”


쾅- 문이 닫혔다.

아우, 추워. 벌써 겨울이 오나.

건물에서 내려가 스쿠터에 올랐다.


강남역 12번 출구에 들를 생각이다.

다음 게임이 뭔지 알고 있으니까.


.


강남역에 긴장감이 돌았다.

삼지전자 직원들. 그 외 플레이어들과 우리 파티가 편의점에서 살벌한 다툼이 있었다고.


“호산.”

“예, 형님.”

“게임에서 만나면 죽여.”

“그럴 겁니다.”


현실에서 죽이면 진짜 죽는다.

게임에서 죽이면 캐릭터 삭제이고.

우리도 사람이라 사람을 죽이기 쉽지 않다.


시간을 보니 아직 30분 남았다.

호산이 일호에게 물었다.


“근데 너. 나한테 자꾸 반말 한다?”

“헐, 어이 털리네. 몇 살인데?”

“나 26.”

“나랑 동갑이네!”


흔들리는 일호의 눈.


“민증 까 봐.”

“뭔 민증을 까. 나 빠른 25야.”

“난 빠른 26. 형이라 불러라. 처맞기 전에.”

“아 놔! 존나 미필이네.”

“나 21사단 전역.”

“어? 갑자기 왜 배가 아프지?”


일호가 한 건물로 뛰어갔다.

호산이 바로 쫓았다.


“공일호! 거기 좀 서 봐!”

“왜 따라와! 똥싸러 가는데!”


덕기 아저씨가 낄낄댔다.


“도건아. 그냥 형이라 불러.”

“그러죠. 덕기 형.”


호산과 일호가 몸싸움을 벌인다.

그 광경을 보며 쉬었다. 오늘 밤을 새우기 때문에 캔 커피도 홀짝홀짝 마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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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한 용사의 각오 24.10.31 16 0 10쪽
15 나의 방패막이 24.10.30 17 0 10쪽
14 한 남자가 있었다 24.10.29 19 0 10쪽
13 이상하고 심각한 오류 24.10.28 20 0 10쪽
» 시스템이 없는 그녀 24.10.28 25 0 10쪽
11 그 여자 아니지? 24.10.27 23 0 10쪽
10 던전 파티 공략 24.10.27 26 0 10쪽
9 버그 버퍼 버서커 24.10.26 31 0 10쪽
8 내 친구 리볼트 24.10.25 35 0 10쪽
7 숨겨진 나의 스킬 24.10.25 39 0 10쪽
6 튜토리얼이 빡세다 24.10.25 48 0 11쪽
5 강남역 경쟁의 장 24.10.25 56 0 10쪽
4 다운된 상태창 24.10.25 60 0 10쪽
3 내게는 이미 있다 24.10.25 61 0 11쪽
2 세상의 종말 24.10.25 7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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