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패막이
“도건 형! 10층 열렸어요!”
중원이 표정이 아주 볼만 하네.
“열쇠가 뭔지 좀 찾아보기나 하고···”
이 자식이!
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원이 튀어 나갔다.
계단 쪽에 있던 세 사람은 급히 물러났다.
나도 천천히 계단으로 향했고.
“형! 일부러 진 거죠?”
“아닌데? 엄청 세던데?”
호산과 덕기 형. 일호.
내 진짜 실력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내가 실실 웃고 있으니 모른 척한다.
“10층 열렸답니다!”
“올라가!”
8층과 9층 사이에서도 싸움이 한창이었다.
우리가 그래도 일찍 온 편이라 이제 도착한 이들이 상당히 많다.
이쪽에선 우리 파티원이 막고 있었고.
덕기 형이 말했다.
“이 지도가 그냥 지도가 아니었어.”
“뭐 다른 게 나옵니까?”
“숨겨진 장소 힌트가 있어. 지도에는 있는데 실제로 보면 안 보이는 것들. 다 챙겨야겠지?”
“그래야죠.”
곧장 10층으로 올라갔다.
10층에는 곤충 마수가 바글바글했다.
쿠에에엑-
갑자기 덤벼드는 기괴한 벌레들.
“우왁!”
일행이 마수들을 쳐내며 길을 열어갔다.
이 벌레들은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에 나오는 돌격 벌레들의 미니 버전 같았다.
쿠에엑-
몸통이 잘리며 노란 체액을 쏟아내는 벌레들.
앞발이 낫 같아서 찔리면 크게 다친다.
일단 입구에 있는 벌레들만 처리하고 다들 책상 위로 뛰어 올랐다.
“와. 이거 장난 아니네.”
벌레들이 책상 위로 무수히 기어 올라온다.
다들 이동하면서 침착하게 잡아 나갔다.
그때 저편에 이중원이 보였다.
끼이에엑-
10층 보스인 거대 거미가 독기를 뿜어낸다.
이중원이 그래도 세긴 세네.
저 커다란 독거미의 하체가 반쯤 잘랐다.
다리도 10개 중 6개를.
“이야! 좀 치는데?”
“꺼져!”
회복약을 마시며 내게 단검을 겨누는 중원.
거미가 날카로운 앞발로 내려치자 바로 피하며 다시 보스를 공격했다.
나도 보스 쪽으로 들어가고.
“너 그런 식이면 꼭대기까지 못 가!”
“참견 마! 회복약은 충분하니까!”
“형님! 한 손 거듭니다!”
“꺼지라고!”
호산이 거미의 다리를 쳐내고는 바로 빠졌다.
사실상 이중원이 보스의 피를 80%나 깎았다.
녀석이 다 잡아놓은 거라 짜증이 날 수밖에.
터컥-
꾸애애액-
잘린 앞다리에서 뿌려지는 체액!
끈적한 진물이 중원의 몸으로 뿌려졌다.
녀석의 몸이 일순 마비되는 순간.
텅- 책상을 박차고 날아가.
그대로 거미의 얼굴에 검을 찔러 넣었다.
끼에엑- 단말마 비명을 토하는 거대 거미.
그대로 푸들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동시에 들려오는 알림.
[고유 스킬 : 경직을 획득했습니다.]
[회복약 10개를 획득했습니다.]
[11층의 문이 열렸습니다.]
알림을 다 읽지도 못했다.
갑자기 목에 단검이 스치는 바람에.
반사신경이 없었다면 목이 잘렸을 듯!
“치사하게 암살기를 쓴다고?”
“닥쳐!”
중원이 필사적으로 내게 달려든다.
무슨 대단한 영광을 누리겠다고 열심인지.
세상을 구하라는 신의 계시라도 받았냐.
신이 아니면 어쩔 건데?
그나저나 암살계가 쩔긴 하네.
소리도 기척도 없이 그림자처럼 스친다.
공간 이동하듯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이중원!”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제야 이중원의 움직임이 멈췄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그림자 같았다.
이중원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저편에서 단검을 꼬나 쥔 채.
“날 어떻게 알지?”
앗. 나의 실수.
“나 기억 안 나?”
“헛소리하지 마.”
“잘 생각해 봐. 하하하.”
어디서 본 거 같기는 할 걸?
어쨌든 싸움은 흐지부지된 듯.
“그러게 파티 맺었으면 좋았잖아?”
그 말을 던지곤.
후다닥 계단 쪽으로 달렸다.
“거기서! 죽여버릴 거야!”
“덕기 형! 다 챙기고 올라와요!”
“오케이!”
낄낄대며 11층으로 곧장 달렸다.
이후 녀석과 나의 경쟁이 벌어졌다.
각층의 마수들을 잡으면서 다음 층이 열리면 재빨리 치고 나가고.
각 층의 장막을 여는 방법은 숨겨진 열쇠를 찾거나. 마수를 다 잡거나. 대장을 잡는 거였다. 히든피스도 있는데 그건 파티원에게 맡겼다.
위로 갈수록 점점 강해지는 마수들을 잡아 나가면서 계속 이중원과 치고받았다.
싸우면서 꽁냥꽁냥 친해진다고나 할까.
중원은 생각보다 마음이 여리다.
강해 보이고자 하는 강박이 있었고 친구도 없었다. 녀석은 늘 외로워했다. 괴로울 정도로.
그래서 놀리는 거다.
녀석에겐 손이 필요하다.
위로하고 일으켜 세울 손.
“너, 압구정 중학교 나왔지?”
“아닌데!”
“그럼··· 한남초??”
“글쎄다!”
“누구야! 너!”
“네 담임이다, 이 새꺄! 하하하!”
정말이지 둘이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나도 녀석도 14층에 오를 때까지 레벨업을 하지 않았다. 이중원도 19레벨쯤 되는지.
“중원아! 너 레벨 몇이냐!”
녀석이 사냥하면서 날 본다.
대답을 망설이는 표정.
“넥스트 레벨!”
뭐야, 이건? 웃어야 돼?
채팅창에도 소란이 났다.
ㅋㅋㅋㅋ로 도배 되는 중.
“이중원! 마수들 제껴라! 제껴라! 제껴라!”
“시끄럽다!”
“어서 저 너머의 문을 열어!”
“이 새끼가!”
카캉-
휘어져 들어오는 단검을 쳐냈다.
“닥쳐! 좀!”
“혼자 광야로 걸어가지 말고 내 손을 잡아! 그 어떤 시련이 온다 해도! 내가 먼저 놓진 않을 거야! 그러니.”
마수 대장 하나 남았다.
“제껴라! 제껴라! 제껴라!”
“진짜 죽인다!”
[15층의 문이 열렸습니다.]
“저 너머의 문이 열렸다!”
“야!”
냅다 15층으로 내달렸다.
이중원은 죽일 듯이 달려오고.
15층으로 뛰어들자, 화살이 빗발쳤다.
“우왁! 이거 뭐야!”
투터터턱- 티팅-
황급히 화살을 쳐내며 옆으로 튀었다.
경갑과 왼팔에 화살을 맞았다.
다른 곳과 달리 텅 빈 사무실.
곧장 벽으로 튀어가며 질주했다.
내가 지나간 방향으로 화살이 쏟아진다.
그냥 들어왔던 이중원도 당황하며 급히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궁병 먼저!”
“명령하지 마!”
쿵- 질주하다 벽을 박차며 쏘아져 갔다.
늘어선 궁병들을 가르며 나갔다. 그다음 열의 궁병들은 이중원이 들이받으며 넘어뜨리고!
녀석과 내가 엇갈리며 궁병들을 베고 또 베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 분당선 기사들처럼 투구 속에 시커먼 얼굴만 있는 놈들이었다.
화살은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멈추는 순간 벌집이 된다. 궁병들 뒤에는 기사들이 있고. 그 뒤쪽에는.
“저기에 보스!”
“나도 눈 있어!”
“버프 받으면 바로 튀어 나가!”
“버프가 뭔데!”
나도 중원도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점점 기사들을 앞쪽으로 끌어냈다. 공간이 생기면 더 기다릴 것도 없이 보스를 노린다.
“공격 버프!”
내 버프의 빛줄기가.
중원의 몸에 닿는 순간!
투아앙-
마력 터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도 나도 동시에 튀어 나갔다.
나와 중원이 공중을 날았다.
깜짝 놀란 15층 보스를 향해서.
푸우욱-
보스의 심장에 꽂히는 내 검!
중원의 단검도 보스의 목으로!
[고유 스킬 : 은신을 획득했습니다.]
[고유 특성 : 지휘를 획득했습니다.]
[A급 보물 지도를 획득했습니다.]
[16층의 문이 열렸습니다.]
15층 사령관 보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처치하자마자 빛의 입자가 되어 사라진다.
백여 명이 넘는 궁병과 호위 기사들도 전부.
“후······.”
이중원이 짧은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쉽게 잡을 줄 몰랐는지.
“버프가··· 게임에 나오는 그거냐?”
“맞아. 내 뽕맛이 어때?”
버프 수치가 그새 올랐다.
공격력 20% 상승. 두 명이다 보니 상승률이 더 높다. 내 마력 수치도 32가 되었고.
“넌 스킬 뭐 들어왔어?”
“같은 거 아닌가.”
“아마, 아닐걸.”
이중원이 날 빤히 본다.
버프 효과에 제법 놀랐다.
“좀 쉬다가 가지?”
“최상층을 남에게 줄 생각 없다.”
“그럼, 먼저 가든가.”
이중원은 바로 16층으로 향했다.
저 녀석은 지치지도 않나.
20층까지는 정말 빡세다. 녀석이 마수들을 정리하고 19층에 가면 그때 가야지.
팔에 꽂힌 화살을 뽑았다.
회복약을 꺼내 먹고 잠시 쉬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새벽이 되어간다.
지금껏 받은 보상.
고유 스킬 경직과 은신.
고유 특성은 지휘.
내 특성은 차분한 늑대다.
그 특성대로 보상이 나오는 듯.
이게 뭔지 확인하고 가는 게 낫다.
“여러분들. 잠시 채널 닫습니다.”
- 스킬 확인하는 거죠?
- 예! 다들 그러더라고요!
정중히 인사하고 채널을 닫았다.
채널을 닫아도 히어로 시스템을 통해 플레이어를 감시하지만. 난 가짜 내용이 전송된다.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와서 먼저 경직을 살펴보았다.
맹수를 마주친 초식 동물처럼 경직되는 듯.
그리고 은신.
거울 속 내 모습이 흐릿해진다.
이중원이 쓰던 그림자와 비슷하다.
이 건물에 숨겨져 있는 히든피스도 비슷한 특성과 스킬들이 있다. 어차피 플레이어 특성에 맞게 나오기에 욕심을 내봐야 별 의미가 없다.
“지금 감시 중?”
(안심해도 돼.)
리볼트가 즉각 대답했다.
안 그래도 물어볼 게 있었다.
“계승이 뭐길래 그런 거야?”
(그 계승이 맞아. 아이템 능력치를 다른 아이템에 그대로 계승하는 것. 이게 히든 스킬인 것이 중요해. 히든 스킬은 최고 보안 등급이거든.)
“본인 외에는 못 건드리는 거네.”
(그래. 다른 스킬은 강제 삭제가 가능한데. 히든 스킬은 안 돼. 그래서 내가 오류 스킬로 바꿔버렸어. 네가 생각한 그 방패막이가 맞아.)
예상대로 나를 보호하는 방패였다.
내가 가속을 사용해도 오류로 인한 버그 스킬이 되는 것. 앞으로 할 모든 일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날 제거하려고 하겠어.”
(이미 제거 시도했어. 그게 되지 않아서 당황한 거야. 네가 제거 되지 않는 것도 오류의 일종인 거지. 그래서 놈들이 아주 급했어.)
어쩐지 노골적이었다.
“이러면 내가 드러난 거 아니야?”
(그건 아직 애매해. 명확한 증거가 필요할 텐데. 그들은 네게서 아무것도 찾지 못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 뭔지 알지?)
“암살자들을 보내겠지.”
(맞아. 앞으로 게임할 때는 물론. 현실에서도 암살자가 찾아갈 거야. 그들에게 중요한 건 포탈을 연 존재야. 그와 관련성을 찾는 거지.)
포탈을 연 존재와의 관련성.
증거가 없다면 단순 제거 대상일 뿐.
내가 드러난다는 것도 그게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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