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기습
이중원.
그래. 집 가서 감탄하라고.
손을 잡을 걸 그랬나 후회도 하고.
“정상화되는 데 오래 걸리겠군.”
덕기 형의 말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온다.
숨어 있다가 이제야 숨통이 트인 사람들.
“정부가 붕괴해서 수습은 어려울 겁니다. 이 혼돈 상태가 그대로 우리 일상이 되겠죠.”
덕기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다. 난 가족 먼저 봐야 해서.”
“그래야죠. 얼른 가봐요. 호산이도.”
“고맙습니다, 형님.”
“고맙긴.”
세 사람과 포옹했다.
두 사람이 먼저 떠났다.
둘을 보던 일호는 괜히 울컥하고.
“형. 원래 직업 물어봐도 돼요?”
뭐라고 해야 하나.
“카페 한다.”
“오, 이런 미친! 형이 카페를 한다고?”
카페 하는 게 왜 미친 건데?
아직 개업 안 했다.
“저기 신사동에 스타십이라고.”
“알바 자리 있어요? 돈 벌어야 해서.”
“돈보다 코인을 벌어야지. 무슨 알바를 해.”
“내가 빚이 좀 있어서.”
그래. 인생은 가볍지 않다.
“쩝. 저 먼저 갈게요.”
“나중에 봐.”
BJ 공일호. 거구 양호산. 김덕기 형.
일단은 강남역 거점의 동료가 됐다.
그렇게 인사하고 하나둘 떠났다.
내 채널 창을 열었다.
인사는 해야 하니.
- 고생하셨어요! 도건 씨!
- 도건 씨 덕분에 코인 벌었어요!
- 서포터들도 닉네임이 생긴답니다!
- 근데 라스트히트버그 뭔데요? ㅋㅋ
- 우린 뭔지 알지. ㅋㅋㅋ
- 라히버. ㅋㅋㅋ
내 서포터들이 크게 안도했나 보다.
나도 본인들도 살아남았고. 베팅으로 돈도 벌어서 다들 기분 좋은 듯.
- 서포터 미션 의뢰도 가능하답니다!
- 서브 미션 때도 채널 열어주세요!
- 현재 우리 채널 3,390명요!
- 매니저 후보 나왔어요!
“예. 매니저는 여러분이 선임해 주세요. 의뢰는 공감할 만한 사안이어야 합니다. 사적인 복수 안 돼요. 의뢰 비용도 적당해야 하고.”
- 그럼요!
- 오늘 매니저 뽑을 거예요!
“다들 전직으로 뭐 나왔습니까?”
- 제작가. 상인. 중개업자 등등요.
- 다들 뭐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플레이어와는 다른 전직이다.
적성에 맞으면 뭘 하더라도 코인은 번다.
제작가만 해도 장비. 물약. 장신구 등 제작 분야가 많다.
내 서포터가 벌써 3천 명이다.
플레이어가 많이 탈락하면서 시민이 되어 버린 서포터도 그만큼 많다. 다들 코인 먼저 벌어야 한다.
“그럼. 내일 다시 보죠.”
- 수고하셨어요!
- 도건 씨! 화이팅!
- 라히버 가즈아!
웃으며 채널을 닫았다.
언젠가 서포터들은 내 병력이 된다.
서포터가 후원만 하는 것은 아니거든.
바이크를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그냥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강남역 거점 성벽을 받았다.
성벽의 설치와 유지 관리. 그 비용도 우리가 쓰는 것 같고. 파티 보상으로 수호도 받았고.
파티 리더 보상으로는 호출을 받았고.
일단 상태창부터 확인.
“상태창 간단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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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 23
근력 35 민첩 34 체력 34 마력 39
특성 : 차분한 늑대(왕의 자격).
기본 스킬 : 공격 2 방어 2
전투 스킬 : 단검술 1 검술 1
특성 스킬 : 버프 2
고유 스킬 : 경직 1 은신 1 돌진 1
고유 특성 : 지휘 1 인내 1
파티 고유 스킬 : 수호 1
파티 리더 스킬 : 호출 1
보유 스탯 : 18
보유 코인 : 882,327
보유한 아이템 :
제작 재료 도감. A급 보물지도 2/2
거점 성벽 300/300
잔여 퀘스트. : 전직 퀘스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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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것들부터 확인했다.
레벨은 아직 23. 실제 렙은 40 넘었다.
30렙쯤 된 중원이보다 분명 우세했으니까.
특성인 지휘와 인내는 체질 관련이다.
지휘는 전략 전술에 영향을 줄 거고.
인내가 있으면 맞아도 덜 아프다.
저 호출은 꽤 쓸만하다.
채널 간 비밀 통신이라고 할까.
내가 호출해야 연락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왕의 자격.
군주를 목표로 하긴 했다.
이건 온전히 내 의지가 반영된 건지. 리볼트가 유도하고 있는 건지.
솔직히 ‘복제’ 스킬로 바뀐 계승 스킬도 히든피스로 나온 것이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아무도 몰래 나를 돕는 이들이 있는지.
우연을 가장한 빌드업.
세상에 우연이란 게 있나.
은밀한 조력으로 봐야겠지.
“볼트. 개방된 스킬이 있지?”
방긋 웃는 듯 보이는 메시지.
(고유 스킬. 경량 1Lv. 개방됨.)
“경량? 멸망한 세계에서 쓰던 거?”
(맞아. 마수들에게 쫓길 때 네가 썼던 거. 네가 죽게 내버려둘 순 없었으니까.)
그랬군.
그땐 스킬인 줄 몰랐다.
리볼트가 마법을 쓴 건 줄 알았지.
‘가속’에 이어 ‘경량’.
경량은 몸이 엄청 가벼워진다.
힘껏 점프하면 날아오를 정도로.
리볼트도 오늘밤이 위험하다고 봤나.
도망갈 땐 경량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보유한 코인도 무려 88만 개.
보상으로 받은 것과 플레이어가 떨군 것.
그리고 서포터들이 후원한 것과 베팅 배당.
이제 본격적인 메인 게임인데.
오늘과 이번 주가 가장 위험하다.
그들에게 나는 지금이 가장 약하니까.
확실하게 날 제거하려고 하겠지.
이번에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못 죽일 거다.
.
똑똑.
“나, 왔다.”
아무 대꾸가 없다.
“안이지. 나 돌아왔다니까.”
기척이 없다.
얘가 밤새 집을 나갔나.
다시 노크하려는데.
컹컹-
아래에서 조던이 짖어댔다.
뭐지 싶어서 카페로 내려갔더니.
이지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는다.
“왔어요?”
“너 지금 뭐 해?”
“청소요. 먼지가 쌓였길래.”
이지가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 중이었다.
바와 테이블도 깨끗하게 닦아 두었고.
“이걸 다 했어?”
“저 정선에서 알바 많이 했어요. 래프팅 강사도 하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고. 캠핑장에서 장작도 많이 팼고요. 그렇게 벌었던 돈인데 다 잃어버려서.”
시무룩한 표정에 다시 미소가 번진다.
“저. 여기서 알바 하면 안 돼요?”
일어나서 동네 한 바퀴 돌아보았나.
오가는 이도 없이 난장판이 된 거리. 문을 닫은 식당과 카페들.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긴 했지.
돈을 벌기 어렵다는 걸 깨달은 듯.
다른 방을 구해서 나가는 것도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거고. 세상이 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겠고.
“바리스타 자격증은?”
“그게 지갑도 도둑맞아서.”
그냥 해본 소리다.
“원하는 월급은?”
“월세 빼고 100만 원요.”
“장기 자랑 보여주면 150주지.”
이지 얼굴이 또 시무룩해진다.
싫다고 안 할 줄 알았는데.
“고릴라 흉내 낼 줄 알아요.”
“됐어. 하지 마.”
“저 고릴라랑 진짜 똑같거든요?”
이지가 고릴라 걸음 자세를 취했다.
“하지 마! 흉해!”
“150만 원 준다면서요!”
“일하는 거 보고! 그런 건 하지 말라고.”
창피했는지 이지의 뺨이 붉어졌다.
아. 나름대로 애쓴 거구나.
“올라가. 밥 먹게.”
“김치찌개 해놨는데.”
“진짜?”
서둘러 내 집으로 갔다.
이지에게 비번을 주고 가긴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풍기는 밥 냄새.
참치김치찌개. 계란말이. 된장국.
이 세 가지 냄새가 난다.
“네가 다 했다고?”
“그럼요. 간단해요.”
이지가 식탁에서 냄비를 가져왔다.
“잠깐 데우면 돼요. 즉석밥만 있던데 밥하기 싫어서 그런 거예요? 쌀도 없고. 밥솥도 없고. 그리고 방향제 좀 놔요. 어휴, 아저씨 냄새. 섬유유연제도 안 쓰고.”
“아저씨라니!”
“그럼, 이게 오빠 냄새야?”
오빠 냄새는 뭔데?
사실 연애도 한 번 안 해봤구만.
웬 마누라가 덩굴째 굴러들어 와서···
.
맛있게 식사 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집밥인지.
김치찌개에 달걀이면 밥 두 공기지.
“외출할 때 장갑 꼈지?”
“네. 밖이 너무 궁금해서.”
슬쩍 이지의 몸을 보았다.
그냥 보는 건데 왜 눈을 흘기고.
장작 좀 팼다더니 물살은 아니네.
“주먹 쥐어 봐.”
“이렇게요?”
손이 작긴 한데 야무지다.
“일어나. 나 따라 해 봐.”
일어나서 복싱 자세를 취했다.
이지도 어설프게 흉내 내고.
바로 스트레이트를 질렀다.
“이렇게. 펀치를 날리는 거야.”
“이렇게요?”
아이고.
“그건 그냥 팔을 뻗는 거지. 그 옹졸하고 누추한 펀치로는 욕쟁이 할머니도 기절 못 시켜.”
“근데 이거 왜 하는데요?”
“선빵필승. 너 스스로 지키라는 거지.”
이지의 자세를 잡아 주었다.
“주먹 뻗어봐. 힘차게.”
“얍!”
“주먹 말아쥐고! 더 힘차게!”
“야압!”
아무리 봐도 하찮다.
이지 앞에서 자세를 잡아 주고.
그녀의 스트레이트 리치를 확인했다.
“누가 널 공격하려 할 때. 이 정도 거리에서 선빵을 날려야 네가 이기는 거라고. 한 발을 앞으로 디디면서! 체중을 이동하는 동시에! 오른팔을 이렇게 쭉 뻗으며 빡!”
“한 발 앞으로 디디면서 체중을 이동하고···”
“그래, 그렇지!”
“오른팔을 쭉!”
퍽-
내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리치가··· 생각보다 길다.
“어머! 괜찮아요?”
“괜찮아. 그깟 냥냥펀치 맞아봐야···”
“어떡해! 코피 나요!”
“코, 코피가?”
이지가 티슈를 뽑아오는 등 법석을 떨었다.
설마 일부러 친 건 아니겠지? 표정은 정말 당황하긴 했는데. 뭐, 주먹은 제법 매콤하군.
“이제 매일 훈련할 거야.”
“알았어요.”
이지에게 강제로 펀치 훈련을 시켰다.
점심을 먹고 나서 이지의 방에 샌드백도 만들어 주었다. 킥까지 바라는 건 무리라 벽에 고정하는 형태로.
그녀가 훈련하는 사이.
눈 좀 붙였다. 잠을 못 잤으니까.
콩콩. 콩콩.
아래에서 이지가 훈련하는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잠들었다.
.
어느새 어두컴컴해졌다.
잠에서 깨어 누워 있는데.
쿠콰쾅- 콰르르르-
“깜짝이야!”
커다란 폭음과 함께.
갑자기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건물 일부가 무너지는 소리까지!
벌떡 일어나 바로 튀어 나갔다.
암살자가 오면 나부터 노려야 하는데.
어째서 이지에게 먼저? 인질로 쓰려고?
2층으로 뛰어 내려가 문을 열었는데.
사무실 벽 한쪽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이지는 귀신을 본 듯 그 앞에 주저앉았고.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황망한 눈으로 날 보는 이지.
그제야 그녀의 손에 장갑이 보였다.
아이고.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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