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의 다리
“이거 너무 무거운데?”
대걸레봉을 들어봐도 꿈쩍도 안 했다.
바닥에 놓인 그대로 인벤에 넣었다.
일부러 보여줬다. 증거 삼아서.
“그 철봉은 뭡니까?”
“전직 퀘스트 보상요.”
“보상으로 무기도 나와요?”
플레이어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때다 싶어 허공에 대고 말했다.
“게임 관리자들 잘 들으세요. 오늘 내 전직 퀘스트. 비공개 채널로 다 담았습니다. 내가 경고하는데. 다음엔 공식으로 송출할 거야.”
지금도 내 채널은 열려 있다.
그들은 전혀 몰랐을 거다.
녹화되고 있었는지.
“당신들은 내 채널 강제로 못 닫아. 어차피 히어로 시스템은 용사 육성하는 거 아니었어? 원하는 용사가 되어주면 되는 거잖아?”
지나가던 플레이어들이 더 늘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다.
“선 넘지 말자고. 막장 가기 싫으면.”
말을 잔히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다들 플레이어들도 관심을 끊고 각자 흩어졌다. 대부분 다음 주 금요일까지는 쉬겠지.
그나저나.
경량화 마법은 어디서 구하지?
비망록에는 자세한 기록이 없었다.
고급 마법인 만큼 어려운 던전에 있을 거고.
랜덤이라도 플레이어 특성에 맞게 나온다면 내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난 광전사라서.
광전사의 무기는 대체로 크니까.
“보물 지도 확인.”
인벤에 있는 지도를 확인했다.
두 곳 모두 고난도 던전이었다.
의도적으로 싸움을 붙이는 장소.
[삼성동 코엑스 3.1km]
[잠실 123빌딩 6.8km]
이 지도를 나만 받은 게 아니다.
지금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듯.
남이 찾아낸 보물을 빼앗을 수 있어서.
그런데 잠깐.
코엑스 근처에 절이 있다.
꼬마가 한강 얘기는 전혀 안 했다.
다리를 건넜으면 봤다고 했을 텐데.
서쪽이 아니라 동쪽이었다.
서울역도 고속버스 터미널도 아닌.
수서역이었다. 거긴 SRT 기점이다.
* * *
코엑스 인근의 작은 식당.
식당 유리창은 전부 깨져서 박살이 났고. 테이블과 의자는 죄다 엎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깨진 술병과 싸늘한 시신이 여기저기 누워 있고. 누군가 약탈한 듯 음식 자재들의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렸다.
이 식당 주방의 한쪽 구석에.
겁에 질린 남매가 숨어 있었다.
10살과 7살인 오빠와 동생이었다.
소년은 눈을 부릅뜬 채 꺼진 스마트폰을 들고 있고. 소녀는 그 오빠에게 기운 없이 기대어 있었다. 둘 다 무척 지친 모습이었다.
“오빠··· 나 추워.”
“그러니까, 담요 덮으라고.”
“싫어. 피 묻었어. 시체 냄새나.”
“같이 덮으면 되잖아. 기다려 봐.”
소년이 일어나려다 멈췄다.
소녀가 그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나 무서워.”
“잠깐 담요랑 먹을 것 좀 가져올게. 아저씨들이 다 가져가진 않았을 거야.”
“그래도.”
소년은 동생을 물끄러미 보았다.
흘린 눈물이 말라 푸석해진 동생의 뺨을 닦아주었다. 꼬질꼬질해진 앞머리도 넘겨주고.
“오늘 밤만 여기서 보내고 새벽에 나가자. 스마트폰 충전해서 그 아저씨한테 다시 전화하면. 분명히 우리 구해주러 오실 거야.”
“응. 빨리 와야 해.”
소년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곤 머리를 조금 내밀어 앞을 보았다.
주방 입구에 죽은 요리사들이 누워 있었다.
울상 지으며 앞을 보는 소년.
동생을 한번 보곤 조심히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식자재 창고로 갔다. 텅 빈 창고.
밀가루 등만 쏟아져 있을 뿐. 먹을만한 뭔가가 없었다. 지난 이틀 동안 수많은 이들이 훔쳐 갔기 때문이었다. 냉장고도 마찬가지였다.
코엑스 주변에선 약탈자 무리가 식량을 모으고 있었다. 그들은 인근 학교에 거점을 구축했고. 약탈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판을 벌였다.
홀로 나온 소년은 방으로 들어갔다. 담요가 아주머니들 시신 밑에 깔려 있었다. 소년은 고개를 돌린 채 담요 끝을 잡고선 힘껏 당겼다.
여러 시신에 깔린 담요라 당겨도 빠지지 않았다. 두 손으로 잡고 당겨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소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무리 당겨도 빠지질 않는다.
식당 밖에선 나쁜 아저씨들이 지나간다.
결국 쌓였던 서러움이 왈칵 터지고 말았다.
동생 때문에 애써 참아왔는데.
이깟 담요 때문에 복받쳐 올랐다. 눈물이 주르륵 쏟아지고 콧등이 시큰해졌다.
“제발··· 달라고. 담요 달란 말이야.”
눈물범벅이 된 채.
소년은 있는 힘껏 담요를 당겼다.
쿵- 담요가 빠지면서 소년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누가 들었을까, 주변부터 살폈다.
소년은 피가 말라붙어 뻣뻣해진 담요를 말아 안고선. 먹을만한 것을 찾아 기어다녔다.
눈에 보이는 건 바닥에 엎어진 것들뿐.
핏덩이와 함께 굳어 버린 먹다 남은 밥. 시큼한 냄새가 나는 반찬들과 고기 몇 점.
소년은 밥알을 집어 입에 넣어보았다.
조금 쉬긴 했지만 이거라도 먹어야 했다.
계속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았다. 동생이 쓰러질 것만 같았다.
소년은 밥그릇에 밥을 주워 담았다.
반찬과 말라비틀어진 고기도 주워 먹은 뒤. 옆에 쓰러진 물통도 주워 동생에게 향했다.
“승희야. 이거.”
“오빠.”
“물에 말아 먹어.”
소년은 밥그릇에 물을 부어주었다.
오전에만 해도 아무것도 먹기 싫다던 소녀는 오빠가 물에 말아준 밥은 잘 먹었다.
소년은 그런 동생을 지켜보았다.
누가 들어올까 연신 식당 밖을 살피면서. 밤이 되면 또 누가 올까 봐 걱정이 컸다.
재앙 당일 오전.
지방에서 올라온 남매였다. 이모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가던 중 갑자기 사고가 났다.
영동대로에서 벌어진 수많은 연쇄 충돌 사고.
그때 이모는 사고로 죽었다. 남매는 겁에 질린 채 한동안 택시 안에 숨어 있기만 했다.
방학도 아닌데 이모가 갑자기 왜 서울로 데려왔는지 남매는 알지 못했다. 서울에 있는 아버지 친구 집에 간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이모는 죽기 전.
스마트폰을 소년에게 건넸다.
주소를 찍어 놨으니 거기로 가라고.
신사동의 어느 건물이었다.
이후 남매는 걷다가 숨기를 반복하다가 이 식당에 들어와 숨어 지냈다. 처음엔 무서워서. 그 뒤로는 시신의 냄새 때문에 먹지 못했다.
“더 먹어.”
“아니. 오빠 먹어.”
“난 먹었어. 냄새 안 나지?”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
소년은 담요에 묻은 마른 피를 탁탁 털어준 뒤. 동생에게 덮어주었다.
“따뜻해?”
“응.”
소년은 동생을 안아주었다.
어른들이 갑자기 왜 싸우는지 모르겠지만. 자신도 강해지고 싶었다. 동생을 지켜야 해서.
1시간쯤 지났을까.
덜컹. 하는 소리에 졸던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덩달아 깨어난 동생의 입을 급히 막았다.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
그 나쁜 어른들이었다.
“야. 고기 푹 삶게 들통 좀 가져와.”
“술 좀 남은 거 없냐? 잘 좀 찾아보라고!”
“근처는 삼성역 새끼들이 다 털어갔다니까!”
“그 시발 것들 걸리기만 해 봐!”
남매는 겁에 질린 채 입을 틀어막았다.
걸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가기를 바랐으나. 바람대로 되진 않았다.
“뭐야, 이 꼬마들?”
남자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야. 너희 몇 살이냐?”
소년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대답 안 해!”
“여, 열 살. 일곱 살요.”
“너희들. 아저씨와 함께 가자.”
남자가 남매 앞으로 왔다.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그런 게 어딨어. 시키면 해야지.”
남자가 소년의 뒷덜미를 잡아 올렸다.
발버둥을 쳐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남자는 겁에 질린 소녀까지 잡아 올렸다.
“야, 너 예쁘게 생겼네?”
“오빠···”
“내 동생 건드리지 마!”
“그래서?”
쿵-
남자가 소년의 머리를 냉장고에 때리면서 소년은 기절하고 말았다. 소녀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오들오들 떨기만 했다.
일당은 식기구를 들고 식당을 나갔고. 남자는 남매를 짐짝처럼 들고 뒤따랐다. 대기 중이던 승합차 문이 열리자, 남매를 밀어 넣었다.
승합차에는 잡혀 온 여자들이 있었다. 전부 손이 묶인 채 재갈까지 물린 상태였다. 그들 앞에는 한 남자가 단도의 날을 혀로 핥고 있었다.
“우웁! 우우웁!”
“이것들이! 조용히 안 해!”
“살살 좀 다뤄라. 상처 날라.”
그렇게 승합차는 어딘가로 향했다.
그 무렵 바이크를 탄 채 그 광경을 본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그냥 지나갈 뿐이었다.
.
어느 학교 정문 안에 장작불이 타올랐다.
남자들이 그 불에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들 패거리의 수는 30여 명.
승합차가 정문으로 들어와 멈췄다.
남자들이 여자들과 남매를 끌어내렸다. 여자들은 전원 같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었다.
“여, 이번 애들은 물 좋네.”
“쇼핑몰 지하에 숨어 있더라고.”
“던전에 숨어 있으면 어쩌자는 걸까?”
“하하하!”
남자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모두 경갑을 입고 있으나 일부는 찢어진 정장에 대기업 배지를 단 이들도 있었다.
“바로 목욕시켜. 대장 또 짜증 낸다.”
“그래서 애들 데리고 왔잖아. 여자들 수발들라고. 언제까지 내가 해야 돼?”
“저 새끼, 잔머리는.”
남자들이 승합차에 있던 여자들과 남매를 끌고 정문으로 나갔다. 정문 바로 앞 고급빌라 입구에 무장한 남자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남자들은 여자들과 남매를 데리고 빌라로 올라갔다. 2층에 있는 여러 집 중 하나의 문을 열자. 벌거벗은 여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어딘가에서 야릇한 신음이 들려왔고. 여자들은 뭔가 취한 듯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여자들과 남매를 방으로 밀쳤다.
“너. 너. 그리고 너. 벗어. 목욕하게.”
“사, 살려주세요.”
“제발 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다른 곳은 뭐 다를 거 같아? 너희 굶기진 않을 거야. 세상이 험하게 변했으면 적응해야지. 안 그래?”
소년은 쓰러진 채 동생을 품에 안았다.
자신을 멍하게 보는 여자의 시선을 피하며 동생을 꼭 안아주었다. 눈물도 훔치지 않았다.
그 시각 학교 정문으로.
바이크 한 대가 유유히 들어왔다.
술판을 벌인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장작불 앞까지 다가온 남자.
그제야 흉악한 자들이 그를 보았다.
“뭐야, 저 새끼?”
남자는 표정이 없었다.
“너 혼자냐?”
“아, 우리 쪽에 오게?”
“10레벨은 돼야 받는다. 하하하.”
남자가 그제야 입을 뗐다.
“빌라까지 모두 32명.”
낄낄대던 자들의 웃음이 멈췄다.
패거리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에게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발, 뭐야 이건?”
남자에서 밀려오는 살기는.
광포한 분노로 변해갔다.
“너희 32명은 오늘.”
남자는 도건이었다.
“여기서 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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