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의 멸마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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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카
작품등록일 :
2024.10.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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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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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의 눈빛

DUMMY

두두두두두두!


골목길 사이를 말들이 정신없이 내달렸다.


퉁, 퉁.


퍽! 퍽!


등 뒤에서 빗발치는 화살이 골목 담장 여기저기에 틀어박혔다.


날카로운 화살촉이 공기를 가르며 잔잔한 떨림으로 쇄도하자 뒷머리에서 전해지는 찌릿한 감각에 온몸이 전율로 스치며 육감이 미친 듯한 위험을 경고했다.


그때마다 몸을 비스듬히 낮추고는 고삐를 좌우로 당겨 골목 모퉁이를 이리저리 꺾었다.


정평이 난 탈린군의 기마술 못지않은 가온의 감각적인 움직임이었다.


직선 도로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급히 꺾었다. 히이잉 말이 울음소리를 내며 다리가 휘청했다.


탈린군 역시 과부하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꺾어서 다시 시위를 당기려다 멈칫했다.


‘어’


말만 보이고 사람이 없었다.


잠시 어리둥절해 있던 탈린군의 사선 담장 위에서 가온이 기다렸다는 듯 쇠뇌를 연속 발사했다. 손놀림과 조준이 예사롭지 않았다.


슉! 슉!


"헉! 커억!"


짧은 거리임에도 한 명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어깨에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얼굴을 부여잡았다. 용케도 말에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탈린병들도 즉시 반격을 가했지만 가온은 사격 이후 미련 없이 담장 아래로 몸을 피했다. 화살이 그의 머리 위로 날아왔지만 개의치 않고 반대편 담장으로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 * *



“으악! 이런 개 같은 놈이 있나.”


한 손엔 뽑아낸 화살촉을 쥐고 있었다. 피범벅 된 얼굴을 헝겊 조각으로 닦아내며 외쳤다.


“뭐들 해! 너희 둘은 계속해서 저놈을 쫓아 가! 그리고 넌, 빨리 인근 병력을 모아 주위에 다른 쥐 새끼들이 있는지 살펴라!”


“네!”


두 명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급히 추격을 재개했다.


한 명은 어깨에 맞은 화살 부위가 연신 욱신거렸지만 주위의 동료를 부르기 위해 자리를 떴다.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 골목 좌측으로 틀고자 속도를 늦췄다.


쉬이익! 슉!


무의식에 가깝게 한 팔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말의 갑작스러운 몸부림에 결국 낙마했다. 그새 또 다른 화살이 말에도 박혀 있었다.


순간 그림자 하나가 쑥 덮쳐왔다.


“컥!”


인영이 스치면서 목에 날카로운 단도를 쑤셔 박았다. 상대의 절명을 확인하고는 시체를 후미진 외곽으로 재빠르게 치웠다.


추격을 재개했던 탈린병은 골목 여기저기를 누비면서도 쥐 새끼 한 마리 찾지 못하자 다시금 십호장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인근 주택가는 사람들이 출입을 삼가고 숨어있자 한산했다. 멀리서 간간이 들리는 비명과 괴성이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 * *


정체불명의 기괴한 그림자가 저택의 지붕 위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전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짙은 초록과 노랑이 섞인 두 눈은 원초적인 야생의 본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가 저 멀리 한곳에 시선이 멈추자 일순간 갈증과 광기가 폭주하며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의 눈빛으로 폭발적으로 내달렸다.


* * *


방장 이하 여러 스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소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수원승도의 정찰 보고가 있었다.


“하르 망가스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으흠.”


스님들의 얼굴이 어두운 납덩어리처럼 심각하게 굳어졌다.


“하르 망가스가 나타나면서 그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성의 상당수 병력이 몰려가다 보니 탈린군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성문을 내어준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괴물은 사라지고 남은 병력들이 시가전으로 탈린군과 싸우다 크게 패하면서 각개로 전환한 상태입니다.”


“탈린군 하나로도 벅찬 상황인데 그런 사악한 존속까지 연이어 등장하다니···.”


율장 스님의 탄식이 이어졌다.


“그럼 지금까지 나타난 마구니는 둘 뿐인가?”

“지금까지 보고는 그렇습니다.”


방장 스님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히며 생각에 잠겼다. 좌중의 분위기도 침묵으로 가라앉자 스님들의 얼굴에 더욱 짙은 그늘이 끼였다.


“다들 마음을 다잡으시게나. 낙담만 해서는 어찌 이 국난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각자 수심에 빠진 채 침울해 있던 분위기에서 혜광 스님의 청명하고 우렁한 사자후가 터져 나오자 주위의 침울한 어둠이 일시에 밀려났다.


“자네는 다른 사찰과 역으로 가서 소식을 전하도록 조치하고 인근 산성에도 이곳 정황을 알려 최대한 군을 모으도록 독려하게.”


도연 스님이 급히 자리를 떴다.


“이곳 황룡사는 동경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니 탈린군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야.”


혜광의 두 눈이 좌중을 훑으며 창문 너머의 황룡사 구층 목탑을 말없이 한동안 바라보자 좌중의 스님도 함께 시선이 따라갔다.


그때, 깊고도 진중한 음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법우들이여, 저 황룡사는 다섯 번의 벼락을 맞고도 저렇게 당당하고 올곧게 우리들 눈앞에서 수백 년을 버티고 있네. 나 역시 이곳을 저 목탑처럼 부끄럽지 않게 굳건히 지켜낼 것이네. 비록 볼품없고 늙은 한 몸이지만 여래에게 모든 걸 바치려 하네.”


혜광의 음색에는 이 사찰의 아버지 같은 다정함이 담겨 있었고 깊은 고뇌가 담담히 녹아 있어 스님들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뭉클하고 엄숙한 결의에 다들 고개를 숙이게 했다.


별안간 율장 스님의 두 눈에서 강렬한 기광이 흘러나오더니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스님들. 우리의 천 년 사찰을 저 흉악한 마구니에게 순순히 넘겨 주시겠습니까!”

“정령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방장 스님의 결의와 율장 스님의 기백에 좌중의 스님들도 알 수 없는 기분으로 고양되었다.


“불가합니다! 불가합니다.!”


스님들의 결연한 목소리와 함께 영원의 길을 밝혀 주는 만다라의 장엄한 빛이 실내에 넘실거렸다.


* * *


탈린병 두 명이 십호장이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길가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는 십호장은 동여맨 얼굴을 부여잡고는 연신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이미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말에서 내려 다가와 말했다.


십호장이 인상을 쓰며 신경질적으로 발길질을 가했다.


순간,


퍽! 퍽!


넘어진 탈린병에게 화살이 쏟아졌다.


“으흑! 컥!”


탈린 병사의 눈에는 당혹감과 불신이 함께 교차했다.


흐려진 두 눈에는 동여맨 헝겊을 풀어헤친 낯선 얼굴이 맹호의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절명한 시체 둘을 인근 경내의 후미진 곳으로 끌고 갔다. 이미 십호장도 싸늘한 채 갑옷과 투구가 벗겨져 있었다.


짧은 머리의 젊은이가 어딘가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 후,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질풍 같은 속도로 지붕을 타고 건너오다 담장 위에 착지했다.


팍!


훈 초노가 담장 위에서 끙끙 냄새를 맡더니 후미진 곳에서 탈린군의 시체를 발견했다.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머리 두 개가 큰 신장과 건장한 체격에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었다.


저벅, 저벅.


훈 초노가 움직일 때마다 주위로 사이한 안개가 일렁이며 함께 따라 다녔다.


그가 죽은 탈린병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손으로 만지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입을 벌리자 턱선 아래에 드러난 끈적끈적한 침액이 맺힌 날카로운 이빨은 차가운 금속과 같았고 징그러운 혀가 날름거리며 손에 묻은 피 맛을 핥았다. 그의 여섯 손가락에서 강철같은 칼날이 불쑥 돋아났다.


두 눈에 야수의 본능이 꿈틀거리며 초록색 눈빛이 짙은 암청색이 어린 차가운 빛으로 변화며 허공을 향해 기괴한 울음을 토해냈다.


“크르르르르릉!”


* * *


“방장 스님!”

“도연 스님인가? 어서 들어오게”

“정찰조에서 인원 투입을 요청해 왔습니다.”

“얼마나 필요한가?”

“그게···, 제법 많은 숫자를 요청했습니다.”

“······.”

“탈린의 기습으로 성이고 인근 백성들이 제때 피신하지 못하고 자택에 숨어 있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내에는 산발적인 시가전이 여기저기서 이어지고 있어···.”

“음···.”


방장 스님의 얼굴에 잠시 자책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나도 사찰을 수호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 같구만. 더 중요한 게 중생 구제인 것을···.”

“그래, 어느 정도면 적당하겠는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그럴 여건은 아닌지라···.”

“저기 있는 경내 지도 좀 가져와 보게.”


탁자에 두루마리를 펴자 제법 모양을 갖춘 동경 인근의 배치도가 보였다.


“여기 북문이 기습으로 무너졌다고 했지? 그리고 시가전은 어느 쪽에서 나오고 있나?”

“후속 보고를 보니 이후 탈린군이 섬멸보다는 약탈과 방화에 치중하는 관계로 살아남은 이들이 동, 서문 쪽 병력의 협조로 아직은 시가전으로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건천의 부산성 쪽에서도 지원 병력을 보낸다고 하지 않았나?”

“예, 우리가 모아서 당도하면 얼추 합을 맞춰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톡, 톡.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단 삼백 명 정도를 지원자로 추려서 보내도록 하게.”

“네.”


* * *


수원승도는 황룡사에 소속되어 있지만 인근에서 여러 일을 하며 외주로 거주하고 있어 지원자는 제법 넘쳐났다.


삼백 명의 인원이 어두워지는 전방을 가르며 성을 향해 질주했다. 죽음의 사지를 향해 가면서도 그들의 눈빛에는 사명감과 단단한 항쟁의 의지가 녹아 있었다.


* * *


“스님, 저기에 가온이 보입니다. ”


젊은 남성이 그늘진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어둡고 차가운 바람 앞에서도 금강석으로 빚어낸 듯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도원 스님이 송충이 눈썹 사이로 미간을 좁히며 다가갔다.


“그래, 정황은 어떠하냐?”


급히 움직이다 보니 숨결이 다소 거칠었다.


“닥치는 대로 약탈과 방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값이 나가는 물건은 수레에 실려 나르기 바쁜 가운데 아직도 성내에는 피신하지 못해 숨어있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부산성이고 아직 기별은 없더냐?”

“오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음···. ”


‘예서 더 기다려야 하는 건가?’


도원 스님의 고민이 깊어지면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성내의 사정이 위태롭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우선 구하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가온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도원 스님이 그런 가온의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이놈, 안된다면 혼자라도 뛰어들 기세군.’


“그렇다고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적지 않은 인원이 몰살당할 수 있어. 모르지는 않겠지?”

“지금 상황에선 다소의 위협을 감수할 수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겪어 본 바론 탈린군은 말이 활동하기 좋은 곳이 아니면 시가전에서는 그렇게 힘을 잘 쓰지는 못하더군요.”

“······.”


도원 스님이 팔짱을 끼고는 더 해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가온이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더니 바닥에다 읍성 일대를 간략히 그리기 시작했다.


쓱! 쓱!


“탈린의 주력은 여기 북문을 중심으로 내부로 다 들어가지 않고 외곽에 주력의 일부가 주둔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북문을 중심으로 인근과 안쪽 시가지로 약탈과 방화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성을 장악해서 주둔하겠다는 건 아니군.”


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동, 서문에서 병력을 모아 탈린을 쳐내려다 타격을 입고는 산발적 시가전으로 조금이나마 억제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양상입니다.”

“그리고 약탈을 당하는 백성들의 참상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젖어 든 음성이 끝났을 땐 목격한 참극들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고 있었다.


우악스럽게 생긴 도원 스님도 그런 마음이 전해졌는지 잠시 불호를 읊었다.


“어디서 공략하면 좋겠느냐?”

“여기 동남쪽과 남서쪽 시가지가 촘촘해서 시가전을 벌이기에는 유리합니다. 시가지가 미로처럼 복잡한 관계로 말이 크게 힘을 쓰지 못하니, 이곳으로 산발적으로 분산 유도해서 각개 격파로 치고 빠지는 게 유리할 듯합니다.”

“그동안 다른 조는 아직 피신하지 못한 백성들을 빠르게 성 밖으로 이주시켰으면 합니다.”


“······.”


가온의 이야기를 다 듣고서도 도원 스님의 얼굴에는 신중함이 가득했다.


“어서···”


도원 스님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너의 이야기를 잘 들었다. 다만 지금 올라온 보고에는 탈린군만이 아니라 사악한 괴물들도 함께 나타났다. 네가 가고 난 다음 황룡사에서도 뷔르게드가 나타나 결계를 깨부수려다 실패했어.”


가온의 눈빛에 옅은 파문이 일었다.


“하르 망가스도 초반에 활약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하는데 만약 이들이 동시로 나타나면 나 외는 제대로 대응할 사람이 없게 된다. 그나마 우리가 병력의 수가 우세하다면 해볼 만 하지만···.”


잠시 침묵이 지나고서야 도원 스님이 주위의 승도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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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멸마 대전의 서막과 푸른 눈의 마법사 -1 24.12.24 165 0 14쪽
28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4 24.12.20 183 0 14쪽
27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3 24.12.18 182 0 11쪽
26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2 24.12.17 167 0 13쪽
25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1 24.12.11 254 1 11쪽
24 혈기의 창 24.12.09 213 1 15쪽
23 청록 거인의 죄수 24.12.06 224 2 11쪽
22 남섬부주 24.12.05 206 2 13쪽
21 첩첩산중 24.12.02 215 2 12쪽
20 포악수 24.11.29 533 2 10쪽
19 수천, 수만 발의 화살도 24.11.28 171 2 12쪽
18 신비롭고 아름다운 시게송 24.11.27 171 2 9쪽
17 대륙의 전쟁 24.11.26 152 2 14쪽
16 청록빛의 돌, 바아파 24.11.25 111 2 12쪽
15 바즈라파니의 벼락 24.11.22 115 2 11쪽
14 폭식의 하르 망가스 24.11.21 239 2 13쪽
13 버드나무가 바람결에 날리듯 24.11.20 143 2 13쪽
12 천공의 사계수 24.11.19 117 2 11쪽
11 깨어나는 힘 24.11.18 114 2 12쪽
10 해골늑대 24.11.15 114 2 11쪽
9 카드반가의 사파이어빛 24.11.14 115 2 9쪽
8 마족과의 첫 격돌 24.11.13 258 2 10쪽
7 회오리치는 안개 24.11.12 114 2 9쪽
6 빛의 폭풍 24.11.11 128 2 10쪽
» 맹수의 눈빛 24.11.10 152 2 13쪽
4 폭력과 공포가 잠식된 세상 24.11.08 212 2 13쪽
3 마(魔)를 태워 멸하라! 24.11.07 266 3 11쪽
2 사이한 존속들(수정) 24.11.06 462 3 16쪽
1 황금의 문 24.11.06 793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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