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과의 첫 격돌

과감하게 상대 진영에 근접한 중간 지점에서 덫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너무 가깝지 않나?”
보명의 볼살이 입술의 움직임에 더욱 깊게 파고들어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이 정도는 돼야 상대도 예상치 못한 지점에 당황할 겁니다. 대로 쪽 병력을 끌어들이기에도 좋을 것이고. 그리고 상대는 이전보다 더 많은 인원이 출동할 겁니다. 그러니 이번 작전은 치고 과감하게 빠져나가는 게 승패군요.”
가온의 눈빛이 흡사 범처럼 어둠 속에서도 맹렬히 빛났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야겠습니다. 사형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니 다들 살아서 만납시다.”
그의 음성은 나지막했지만 일행의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스며들었다.
가온 일행은 주택가의 요소요소에 저격 위치를 잡고는 어둠 속에 동화되듯 침묵에 휩싸였다.
두두두두두!
맹렬한 기세의 또 다른 무리의 군마가 질주하듯 다가왔다.
백여 기는 될 듯한 말들이 투기를 품어내며 지났다.
어둠 속에서 담담한 눈빛으로 주시하던 가온이 다시금 만다라를 발동시킬 진언을 읊었다.
"ज्योतिः वातः, शत्रुः नाशय।“
조티ḥ 바타ḥ, 샤트루ḥ 나샤야
위이이잉~~!
중간 지점에서 쇠뇌를 발사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의 걸쇠가 방아쇠를 당기자 풀려난 주홍빛 화살이 횃불을 든 상대를 향해 공기를 찢으며 날아갔다.
슈우우우육!
"컥!"
쉬이이익! 쉭!
한 탈린병이 목 부위를 부여잡고는 강력한 관통력에 그대로 낙마했다. 이걸 신호로 순식간에 수십 발의 화살이 벼락처럼 쏟아졌다.
“컥! 헉!”
히잉! 히이잉!
말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쏟아진 화살에 중심부가 떨어지는 낙엽처럼 난장판이 되었다.
“으아아아악!”
낙마한 탈린병 하나가 동료의 떨궈진 횃불에 얼굴 부위가 대이자 또다시 비명을 토해냈다.
전방의 탈린군이 신속히 전환해 반격을 가했다.
가온은 몇 발을 연속으로 더 쏟고는 일행들과 함께 미련 없이 자리를 이탈했다.
그가 달려가면서 또 다른 진언을 발동하자 팔찌에서 기이한 문자가 떠오르더니 마치 추적하는 화살처럼 어디론가 날아갔다.
가온이 보낸 신비로운 문자가 도원 스님의 카드반가(Khatvanga) 지팡이로 들어와 스며들어 고요한 울림을 냈다.
웅! 웅!
카드반가의 끝부분에는 여러 개의 팔이 반원으로 뻗어 있고 번개의 금강저를 들고 있는 바즈라파니(Vajrapani) 보살이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도원 스님의 묵직한 말투로 정적을 깼다.
“그래, 구했는가?”
“네, 이 근처에 비축해 둔 창고를 알고 있어 다행히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제 움직이세.”
반대편에서 숨죽이고 있던 도원 스님 중 일부가 대로 쪽으로 은밀히 접근했다.
* * *
타타타탁!
가온 일행이 담장과 담장을 넘어 질주하는데 어디선가 경쾌하고 빠르게 타는 소리가 나더니 자신의 앞에서 쿵하고 내려앉는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검은 물체의 출현에 가온 일행의 발걸음이 뚝 멈춰 섰다.
“크르르르릉.”
“이놈, 드디어 찾았군.”
고개를 들어 올린 가온의 눈에 달빛을 받은 거대한 털로 덥힌 괴수가 사악한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괴수의 몸에서 불길하고 짙은 안개가 덩달아 넘실거리며 압도적 기세를 발산했다.
“저···건 또 무슨 괴물이야?”
같이 움직이던 승도 중 한 명이 외풍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눈동자와 목소리가 여지없이 떨렸다.
“저놈이··· 가는 곳마다 고려의 산하가 피로 물들고 사람들의 심장을 씹고 영혼을 잡아먹는다는 훈 초노 같군.”
분노와 절망이 섞인 보명의 음울한 목소리였다.
‘그럼 여기 동경에 세 놈이나 들어왔다는 건가?’
도원 스님의 우려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에 가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크르르르릉.”
사람의 마음속에 저절로 두려움을 피어오르게 하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미혹한 울음소리를 내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가온 일행이 뒷걸음질 쳤다.
“오오옴(ॐ)!”
가온의 청명한 일갈이 있자 바즈라 만다라 팔찌가 함께 공명하며 흐려졌던 일행들의 눈빛이 돌아왔다.
“마하칼라 만다라(Mahakala Mandala)를 어서 만드세요!”
그제야 일행들은 평소 훈련하던 항마 만다라 결계를 만들어 갔다. 각 방위에 네 명의 사람이 각각의 위치를 점하고 안에 원형으로 자리하고는 기하학적 점으로 빠르게 형태를 자리 잡아갔다.
그러는 사이 훈 초노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위헬의 안개가 그의 내뱉은 숨결과 함께 승도들을 향해 꿈틀거리며 뻗어 나갔다.
“하아아아아!”
불길하고 사이한 기운에 가온의 눈썹이 도드라지게 각이 졌다.
“ॐ अरहन् सवरा हन्त”
옴 아라하트 사바라 한다
가온에게서 청명하고도 진중한 진언이 흘러나오자 그의 손목에 차고 있던 바즈라 팔찌도 함께 공명하며 신성한 빛을 발산했다.
우우우웅!
금색과 붉고 파란 세 개의 신비롭고 강렬한 색채가 휘몰아치면서 법륜과 그 주위를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는 빛의 방패가 생겨났다.
끼이이익!
마치 두 개의 강철 검이 맞물려 힘겨루기를 하듯 훈 초노의 죽음의 안개와 가온의 빛의 방패가 부딪치면서 거북한 소리를 냈다.
“크크크큭, 제법이군.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말이야.”
위헬의 안개가 갑자기 쑥 뒤로 물러나더니 훈 초노의 몸으로 돌아오자마자 분수처럼 치솟았다. 커다란 톱날 형상의 거도로 변해서는 가온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콰르르릉!
쩌어어엉!
천둥같은 소리를 내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떨어지는 거대한 톱칼에 법륜 방패로 막았는데도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휘청거리며 겨우 지탱했다.
“으윽, 어···서!”
그 한 번의 격돌에 충격이 상당했던지 그가 파리한 입술로 뒤를 돌아보면서 승도들을 재촉했다.
쾅! 쾅!
재차 거도가 내려치자 충격에 다리가 접히며 주저앉았다.
“가온!”
마하칼라 만다라가 완성되면서 보명이 가온을 불러들였다.
다시금 훈 초노의 죽음의 거도가 내려치려고 하자 가온이 빠르게 만다라의 중앙으로 이동했고 거도는 가온을 따라 만다라 결계를 깨부술 요량으로 다시 치켜들어서는 산을 쪼갤 것 같은 마력을 실어 내려쳤다.
그 순간, 마하칼라 만다라를 발동할 진언이 승도들의 입에서 동시에 하나씩 터져 나왔다.
“ओ(옴)!ं”
우주의 모든 것에 스며있는 태초의 첫 진언이 울리자 승도들의 팔찌에서 빛이 동시에 터져 나와 하늘로 빗살처럼 솟구쳤다.
펑!
태산같은 힘이 담긴 죽음의 거도가 솟구치는 빛의 장벽에 놀란 듯 폭발하는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가온이 정중앙에 자리 잡으며 마지막 진언이 장중하게 허공에 울려 퍼졌다.
“महाकाल पराद्रव वर”
마하칼라 파라드라 바라바
승도들이 위치한 곳에서 각각의 광점이 별빛처럼 발광하면서 빛의 선이 이어져 기하학적인 만다라를 만들어냈다.
고오오오오오오!
우주의 신비를 품은 만다라의 꽃이 피어나자 대자재천의 신성한 힘이 서서히 일어섰다.
부정을 정화하고 마를 멸하는 대자재천의 법계의 힘이 터져 나오자 훈 초노의 죽음의 안개가 역으로 설금설금 물러나 본체로 합류했다.
훈 초노의 한쪽 입매가 구겨지면서 눈은 차가운 암청색으로 매섭게 가라앉았다.
법력으로 형상화된 거대한 대자재천이 온전한 모습으로 일어서자 세 개의 얼굴을 드러냈다. 앞은 천왕형에 좌측은 아름다운 홍백색의 천녀형과 우측은 분노한 야차형이 투기를 마음껏 흘렸다.
각각의 얼굴마다 이마에도 눈이 있었지만 잠든 듯 감겨 있었고 팔은 넷에 한 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붉은빛의 원광을 온몸으로 두른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훈 초노를 향해 형형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킥!”
훈 초노가 괴이한 코웃음을 치더니 자기 주위를 감싸던 위헬의 안개를 대자재천만큼 팽창시키며 자신의 형상으로 거대하게 변모시켰다.
“크르르르릉”
혼 초노가 으르릉거리며 거센 암흑의 투기로 맞받아쳤다.
“겉만큼 속도 야물면 좋겠군. 크크큭”
위헬의 안개에서 형상화된 손에서 상당한 길이의 날카로운 손톱이 만들어졌다. 훈 초노의 본체가 활시위처럼 튕겨 앞으로 나가며 대자재천을 향해 찢어발기듯 공격이 들어갔다.
부동의 자세로 있던 대자재천이 어느 순간 오른쪽 사선으로 비스듬히 한쪽 다리를 전진시키며 훈 초노의 공격을 물 흐르듯 흘려버리고는 삼지창으로 상대의 목덜미를 강하게 후려쳤다.
쾅!
훈 초노가 한쪽 팔로 상대의 후려치는 삼지창을 튕겨내자 붉은빛이 번쩍하면서 위헬의 안개도 휘청거렸다. 재빠르게 반대편의 날카로운 손톱이 대자재천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인간의 동체시력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움직임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대자재천의 좌측 천녀형에 있는 두 개의 눈과 입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훈 초노의 또 다른 넘실거리는 부정한 힘이 담긴 주먹을 틀어막았다. 이와 동시에 다른 남아도는 두 개의 움켜쥔 손이 훈 초노의 가슴을 연속으로 맹폭하게 두들겼다.
그 주먹에는 땅을 찢고 절벽을 부숴버릴 듯한 강렬한 힘이 담겨 있었다.
콰쾅!
가공할 위력을 그대로 맞은 훈 초노가 담장을 연속해서 부수면서 날아가 처박혔다.
마하칼라 만다라가 이 정도까지 위력이 강한 줄 몰랐는지 승도들의 얼굴에 들뜬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가온의 눈은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 바즈라파니(Vajrapani) 보살 : 바즈라파니(Vajrapani)는 금강의 손을 의미하며 금강저를 들고 불법을 수호하는 강력한 힘과 보호의 보살 즉 금강역사를 말한다.
& 마하칼라 만다라(Mahakala Mandala) : 힌두교의 시바 신이 불교에서 대자재천으로 변모하며 불법을 수호한다. 부와 행복 등 길조의 신이기도 하면서 파괴의 신이 되었다. 2, 4, 8 비상등 다양한 형상으로 표현되며 이런 대자재천을 중심으로 기하학적 형상으로 표현한 만다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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