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의 하르 망가스

하르 망가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허연 냉기가 사파이어빛의 광채와 부딪칠 때마다 산성용액으로 부식되듯 지직거리며 연기를 피웠다.
서로 간에 태풍의 눈처럼 적막감이 내려앉았다.
밤하늘의 달이 흘러가는 구름에 가려 잠시 어둑해지던 찰나, 하르 망가스의 입이 쭉 찢어지며 날카롭고 섬뜩한 이빨이 드러났다.
그게 신호탄이었을까? 몸체에 붙어 있던 다섯 개의 팔이 개구리가 혀로 먹이를 낚아채듯 순식간에 늘어나 눈앞의 상대를 향해 머리부터 다섯 곳의 급소를 노리며 달려들었다.
하르 망가스의 늘어난 다섯 개의 팔이 청명한 사파이어빛에 닿자 녹아내리며 불쾌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어둑한 잿빛 연기가 불꽃처럼 피어오르더니 녹아내린 팔 안에서 또 다른 새순이 빠르게 돋아나듯 새로운 팔이 계속해서 생겨나며 광채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도원 스님이 카드반가를 앞으로 내밀며 이미 진언을 발동시켰다.
“ॐ वज्रपाणि सदः पर्युतर”
옴 바즈라파니 사다 파라라하
그 순간 카드반가에서 금색, 청색, 주황색, 녹색의 다채로운 빛이 나선형으로 휘돌아 솟구치며 뭉쳐지자 아름답고 고결한 색색의 다섯 연꽃으로 화해 떠올랐다.
우웅! 우웅!
“바즈라파니여, 마를 영원히 제거하소서!”
다섯 연꽃을 중심으로 원의 광선 형태가 둘러싸더니 다시 주위를 각진 사각 패턴 문양의 만다라를 만들어내고는 흉측한 다섯 개의 손으로 날아갔다. 꽃봉오리가 날아든 벌을 집어삼키듯 부드럽게 감쌌다.
싸아아아아!
화롯불에 닿은 눈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오색의 연꽃에 하드 망가스의 공격이 속절없이 무위로 돌아갔다.
“캬캬캬캬캬캬!”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하르 망가스의 찢어진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위아래로 요동치며 톱질로 쇠를 자르는 듯한 거북한 웃음소리가 흩날리다 뚝 끊어졌다.
하르 망가스의 입이 옆으로 길게 쭉 찢어지더니 허연 냉기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다시 다섯 개의 팔이 이번에는 느리게 천천히 뻗어 나갔다.
도원 스님을 보호하고 있던 사파이어빛이 허연 냉기의 폭포수에 시간이 지날수록 탁해지고 줄어 들어갔다.
심상치 않는 기운에 도원 스님의 눈이 가늘고 깊어졌다.
다시 수십 개의 오색찬연한 연꽃이 비산하더니 도원 스님의 몸을 중심으로 점차 빠르게 회전하며 허연 냉기를 밀어내고는 느리게 다가오는 다섯 개의 팔에 대응했다.
그 찰나, 하르 망가스의 하나의 팔에서 다시 여러 개의 가지가 뻗어 나가 잎새를 맺듯 이리저리 굽어지며 연꽃을 피해 가지치기를 거듭해서는 무수한 팔과 손을 만들어 냈다.
삽시간에 수십 개의 연꽃을 덩굴처럼 덮어버리더니 타고 넘어와 도원 스님까지 감싸버리며 불길한 안개와 불길까지 덧씌우고는 잿빛 불꽃이 맹렬히 타올랐다.
하르 망가스의 수많은 눈매가 기괴하게 처지며 만연한 웃음을 띄웠다.
폭식의 마족은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던지 몸에 있던 수많은 팔들이 다시 뻗어 나와 바람 같은 속도로 질주하며 퇴각하던 승도들을 빠르게 쫓아갔다.
승도들을 따라잡자 치솟더니 다시 무수한 가지치기를 거듭하며 전방의 공간을 온통 잿빛 가지 덩굴로 덮쳤다.
* * *
“장군, 결계의 막이 뚫렸습니다.”
전황을 주시하던 천호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괴물 놈이 대단하긴 하군. 저렇게 쉽게 뚫어버리다니···.”
천호장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전군은 하르 망가스를 피해 좌우로 돌아들어 두더지 사냥을 시작한다!”
부장이 다시 목소리를 더 높였다.
“급속 전진!”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던 탈린군들이 대로의 양 갈래로 나뉘어 주택가 안쪽에서 하나씩 하나씩 담장과 지붕을 넘으며 빠르게 전진해 갔다.
* * *
“탈린의 후속 병력들이 지붕을 타고 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 승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탈린군의 공세에 승도들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탁! 타탁! 탁!
밀집된 가옥의 기와를 타고 날 듯 움직였다. 후방의 이동이 빨라지자 쫓아오던 탈린군의 추격은 더욱 과감해지고 매서워졌다.
뚝!
“왜 멈추는가?”
동료를 이끌고 급속하던 사나래의 신형이 일순간 멈추더니 전방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왼쪽으로 시선을 돌려 후방을 잠시 쳐다보다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삼면으로 포위됐네.”
구름을 벗어난 달빛 아래 수백의 무리가 지붕 위에 서 있는 광경이 뚜렷이 드러났다.
가온 일행과 교전을 하던 바카투르 부대와 후속 지원군이던 바이라 부대가 동남쪽으로 둘러싸듯 틀어막고 있었다.
“서문 쪽으로 이동하죠.”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서문도 틀어막혔을 것 같군.”
그런 가운데도 전방의 탈린군은 독 안에 든 쥐 몰이 마냥 차근차근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동쪽을 뚫을 걸세.”
“네.”
“다만 자네와 여기 몇십 명은 나를 도와줘야겠네. 그리고 윤슬, 자네는 나머지 무리를 이끌고 내가 신호를 보내면 무조건 남문으로 방향을 틀어 뚫고 살아 돌아가야 하네.”
사나래가 주위의 동료들을 잠시 둘러봤다.
“알겠는가!”
“내가 후방을 맡겠네.”
“아니, 시간이 없어. 도원 스님은 저 앞에서 괴물을 홀로 상대하고 계시네. 이번만은 내 말을 무조건 따르게. 반드시 다시 살아남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네.”
모두의 눈에서 울컥하는 감정으로 뿌옇게 흐려졌다.
사나래가 쇠뇌를 장전했다.
“자! 전원 공격!”
그의 외침과 함께 다시 폭풍처럼 질주했다. 달빛 아래 수백의 인영이 따라붙었다.
동쪽을 막고 있던 바카투르가 자기 빰을 어루만졌다. 화살이 지나간 상처 자국에 쓰라린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일 열 방어 태세!”
“이 열, 명령이 떨어지면 조준 사격!”
남쪽을 틀어막고 있던 바이라 부대가 수원승도들이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동하자 후방을 치기 위해 빠르게 따라붙었다.
“윤슬, 지금이네!”
사나래가 바람결에 쩌렁쩌렁한 고함을 쳤다.
그러자 사나래 뒤로 일단의 무리가 대거 남쪽으로 급선회하며 빠르게 이탈했다.
후방을 치기 위해 달려오던 탈린군과 남쪽으로 뚫기 위한 고려 승도 간에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발사!”
슉, 슉.
"컥, 으악."
이미 쇠뇌에 장전 준비를 마치고 뛰어든 고려 승도들의 발사 속도가 더 빨랐다.
달려오던 일선의 탈린군의 가슴이 꿰뚫리며 무너졌다. 이내 좁혀진 거리로 인해 깊숙이 치고 들어온 고려 승도와 탈린병 사이에 일대 난전이 벌어졌다.
쾅!
창! 창!
고려 승도의 창과 탈린군의 만곡도가 달빛을 받아 부딪치며 서늘한 은빛 한기와 살기를 뿜어댔다.
* * *
“고려놈들이 또 얕은 수를 쓰는구나.”
방어 태세로 기다리고 있던 바카투르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어서 가서 도와라!”
동쪽 진영의 탈린군이 수비 자세를 풀고 공세적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나 이내 주춤했다.
남쪽으로 이탈하면서 순간 꺼지듯 지붕에 엎드려 있던 사나래 일행이 용마루를 방패 삼아 저격을 가해 왔다.
쐐애액! 슉!
팍! 팍!
“일부가 매복해 있어 통과가 쉬지 않습니다.”
“정말 성가신 놈들이군.”
“내려가서 아래에서 놈들의 후방을 노려야 할 것 같습니다.”
“······.”
“저길 봐.”
전방 부대가 고려 승도들을 향해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 * *
사나래 일행은 다시 양쪽으로 나뉘어 후방에서 최대한 지연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등 뒤로 바로 치고 들어오는 강력한 탈린군을 상대로는 청금석을 이용한 간단한 결계 방어막을 치고는 대기했다.
우우우웅!
그물 같은 불투명한 결계의 장막이 지붕 위에 설치된 청금석을 기준으로 상공으로 방패처럼 굽어져서는 지상까지 내려왔다.
“전원 화살 장전!”
“발사!”
곧이어 양쪽으로 치고 들어온 탈린군이 결계를 향해 화살비를 세차게 날렸다.
퉁! 퉁!
거센 화살비가 결계막을 두드리자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슉! 슉!
승도들도 결계 내부에서 쇠뇌를 발사하며 견제하자 탈린군 사에서 여기저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탈린 부장의 목소리는 괘의치 않고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결계가 뚫릴 때까지 계속 쏴라!”
“너희들은 밑으로 내려가서 아래에서도 견제 사격을 가해!”
탈린의 전방 부대 일선 지휘관이 수시로 고함과 지시가 이어졌다.
퉁! 투퉁!
다시금 화살비가 쏟아지면서 돌풍까지 불자 임시로 설치된 결계의 장막이 견디지 못하고 곳곳이 찢어졌다.
“이, 삼 선은 계속해서 화살을 쏴라!”
“일 선은 붙어서 치고 들어갈 준비를 하라!”
일 선의 탈린병들이 각궁을 집어넣고는 방패와 만곡도를 집어 들었다.
군데군데 찢어진 결계 막이 너덜거리자 거친 함성이 울렸다.
“일 선 진격!”
탈린군이 결계를 찢고는 난입해 들어왔다. 연이어 고려 승도 간에 다시금 살벌한 난전이 벌어졌다.
“고려놈들은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와아아아~!!
“온다, 일 열은 창을 들어 밀어내기를 시도한다!”
“이 열은 탈린군 후방의 화살 부대와 아래로 오는 공격 견제를 지속한다.”
쾅! 창! 창!
콰당!
첫 충돌에 힘을 버티지 못하고 지붕에서 떨어져 낙마하는 이들이 나왔다.
“다시 출!”
고려 승도들은 복창과 함께 창을 일시에 찔러댔다.
쾅!
콰당! 쾅!
탈린군이 방패로 막아봤지만 고려의 창을 이용한 합공에 밀려나 지붕 아래로 빈번히 떨어졌다.
녹록지 않는 고려의 저항에 지켜보던 투사르의 노기가 치솟았다.
“뭣들 하는 거냐. 다들 일시에 밀고 들어가!”
고려 승도들은 손아귀가 터져 나가듯 창을 쥐어 잡고 찔러대기를 반복했고 탈린병들은 악착같이 밀어붙이기를 이어갔다.
“출!”
“출!”
결계막을 뚫고 난입한 탈린군이 속속 불어났지만 각 지붕의 공간이 협소했고 둘러싸려고 하면 고려의 승도들은 진형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후퇴했다. 그때마다 포위가 무력화되었고 적은 병력에도 후퇴와 협공이 능숙하게 돌아가다 보니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 * *
헉, 헉, 푸우우!
“한계야, 더 이상 버티기 힘드네그려.”
헉, 헉.
“조금만 더 힘내세. 우리가 버텨야 나머지 승도들이 살아나갈 수 있어!”
컥!
순간 휘어진 칼날 하나가 옆에서 분투하던 동료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푹!
다른 방향에서 연이어 도끼가 어깨를 내려쳤다.
“네놈들은··· 내가 꼭··· 데려가마.”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창 자루를 놓치지 않았다. 창을 수평으로 눕혀서는 육탄 공격을 가하듯 탈린병 둘을 밀어붙였다.
탈린병과 수도원승이 바닥으로 콰당하고 떨어졌다.
곳곳에서 처절한 혈투가 오고 갔다. 그때마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괴성이 터져 나왔다.
정신없는 교전 속에 갑자기 한 승도가 오싹한 기분에 뒤편 허공을 쳐다보았다. 알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사방에서 덮쳐왔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어디선가 효시가 연이어 하늘로 날아오르며 비명을 질러댔다.
* * *
부하들에게 속공을 명령한 천호장은 하르 망가스와 도원 스님 간의 기괴한 대결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될까요?”
“저 괴물이 직접 싸우는 건 나도 처음 본다. 상부에서는 저 폭식의 괴물이 나타날 때는 무조건 근처에 알랑거리지 말라고 하더군.”
천호장의 어둑한 눈이 전방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숨겨져 있었다. 먼 곳에서도 하르 망가스의 집채만 한 몸집과 괴이한 모습만으로도 한기가 느껴졌다.
숨 막힐 듯한 정적 뒤에 하르 망가스에서 사이한 불꽃이 피어오르며 기괴한 움직임이 나오자 승려의 몸에서 오색의 빛들이 연이어 터지며 눈을 어지럽혔다.
다시금 사위가 조용해지자 폭식의 마족이 미친 듯이 웃는 소리에 천호장의 머리에 두통이 느껴지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후 그 괴물의 입이 찢어지면서 불길한 연기가 강물처럼 쏟아지더니 덩굴처럼 승려의 온몸을 감쌌다.
“오! 중이 완전히 파묻혀 제압당한 것 같습니다.”
가공할 위력에 괴물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함께 들었다. 이때까지는 좋았다.
다음 순간, 하르 망가스의 몸에서 무수한 팔들이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더니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탈린군마저 집어삼킬 듯 덮쳐갔다.
“시이발!”
“빨리 효시를 발사해!”
고함에 잠시 주춤하던 부장이 연속으로 후퇴 효시를 발사했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끝이 뭉텅한 효시가 하늘로 연속해서 발사되며 울음을 토해내자 본능적으로 하늘을 쳐다보던 탈린군이 좌우로 썰물처럼 빠르게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