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의 멸마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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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카
작품등록일 :
2024.10.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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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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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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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청록빛의 돌, 바아파

DUMMY

콰아아앙! 콰쾅!


세상의 모든 어둠과 마를 멸할 하늘의 분노가 사원을 떠받치는 거대하고 신성한 기둥처럼 연속으로 내리쳤다.


그 휘황찬란한 발광에 집채만 한 하르 망가스도 흔적도 없이 잠겨버리고는 한동안 지속되다 점차 빛이 잦아들었다. 일순간 정적이 흐르며 고요 속에서 작은 그림자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도원 스님의 눈빛이 무심한 듯 그러나 바닷속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쳇. 지독해.”


쌍계 머리의 귀여운 소녀의 입에서 계속해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 올라왔고 머리는 그을려 있었지만 큰 부상은 없는 듯 보였다.


“빡빡머리, 생각보다 힘이 좋네. 너 때문에 내 머리가 다 엉망이야.”


소녀는 자신의 그을린 머리를 털어내고는 입을 호호 불자 연기가 뭉게뭉게 빠져나왔다.


“커어윽”


“아, 번개는 좀 무리였나. 속이 거북하네. 히히히.”


하르 망가스는 폭식의 마족답게 도원 스님의 엄청난 번개의 힘마저 삼켜버리고는 배를 살살 문지르며 앙정 맞은 웃음을 날렸다.


영락없이 해맑은 장난꾸러기 아이의 모습이지만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소름이 끼칠까?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도원 스님의 어금니가 깊게 씹히며 눈이 가늘어졌다.


‘저런 강한 마족이 도대체 몇 놈이나 있다는 말인가?’


도원 스님이 뒤쪽을 보자 승도들은 이미 저 멀리 눈으로도 식별이 되지 않을 만큼 퇴각해서 그나마 안심이었다.


도원 스님이 길게 변한 금강저를 양팔에 끼워서는 합장한 상태로 진언을 읊자 눈에서 청백의 스파크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ॐ वज्रपाणि करुणायाः शूलैः तमो नाशय”

“옴 바즈라파니 카루나야흐 숄라이 타모 나샤야”


금강저의 양옆에서 터져 나온 번개가 도원 스님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더니 번개 형상의 빛의 창이 하늘로 수십 개가 치솟았다.


오오오오옴!


법계의 소리가 맑고 은은하게 들려온다. 눈부신 자비의 창이 하늘로 솟구쳐 장관을 이루고는 한 둘씩 하르 망가스를 향해 빛살처럼 나아갔다.


“자비의 창으로 어둠을 멸하라!”


쐐애애애액!


소녀의 팔이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급속히 길어지고 부풀어 올랐다.


우드드득!


그러고는 두 개의 손바닥 역시 자신의 몸보다 크게 변했다.


“까아아아악!”


그 손바닥의 중간이 찢어지더니 하르 망가스 특유의 입 모양과 뾰족한 이빨이 드러나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쾅! 쾅!


쏟아지는 수십 개의 강력한 번개의 창이 하르 망가스의 손바닥과 부딪칠 때마다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연이어 터지고 하르 망가스의 몸도 덜썩거리며 뒤로 계속해서 밀려났다.


밀려나면서도 폭식의 마족답게 빛의 창을 쪽쪽 손바닥으로 집어삼켰다. 소녀의 탈을 쓴 하르 망가스의 눈빛은 더욱 짙은 잿빛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충격이 가해지자 하르 망가스도 안 되겠는지 이리저리 민첩하게 피하자 번개의 창에 맞은 지붕들이 퍽퍽 내려앉고 붕괴되었다. 괴물의 몸에서 소녀로 돌아왔을 때에는 몸의 움직임이 다람쥐처럼 날렵하고 솜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을 보였다.


폭풍우 같은 번개의 창도 막혀버리자 도원 스님이 하르 망가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르 망가스의 머리를 향해 먼저 금강저를 날리고 카드반가로 옆구리에 맹공을 가했다.


금강저와 카드반가에서 눈부신 청백색의 빛과 사파이어빛이 터져 나오며 강력한 힘을 휘두르자 몸을 뒤로 쭉 빼더니 양 갈래 쌍계 머리가 사슬처럼 뻗어 나가 금강저와 카드반가에 대응했다.


쩡! 쩡!


강력한 쇠사슬 소리가 울리면서 이리저리 신묘하게 움직이는 금강저를 상대하고는 도원 스님의 움직임까지도 묶어버렸다.


‘저 괴물이 도리어 사람의 형상일 때가 더 위력적이구나.’


괴물의 형상일 때는 공포의 위압감이 더 높았지만 소녀의 형상일 때는 움직이나 힘이 더욱 빠르고 강렬했다. 카드반가와 금강저에 부딪치는 충돌의 여파에 속이 쉴 새 없이 울렁거렸다.


“히히히힝.”


하르 망가스는 뭐가 좋은지 연신 실룩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빡빡머리, 제법인데. 간만에 이 몸으로 싸우니 재밌어. 키키킥.”


쌍계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잿빛 불꽃은 마치 강철처럼 더욱 단단하게 강해지면서 금강저와 카드반가를 숨 돌리 틈 없이 난타를 계속하자 도원 스님의 법력이 급격히 고갈되었다.


앞서 강력한 진언 마저 무위로 돌아가면서 상당한 힘을 소진한 도원 스님이라 눈빛이 점차 탁해지며 체력이 방전되어 갔다.


엄청난 속도의 공방 속에서 도원 스님의 체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자 하르 망가스의 눈이 독사처럼 번뜩였다.


“빡빡이, 이제 너 영혼을 순순히 내놓지. 히히히.”


그동안 팔짱을 끼고 쌍계 머리로만 싸우던 하르 망가스가 기습적으로 한쪽 팔을 뻗어 도원 스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펑!


도원 스님을 보호하고 있던 법력의 방어막이 순식간에 깨지면서 입에 피를 토하고는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끄으윽!”


금강저도 줄어들어 스님의 손안으로 들어온 채로 도원 스님은 카드반가를 의지해서 겨우 반가부좌로 앉았다.


하르 망가스는 뒷짐을 지고는 중력을 거스르며 미끄러지듯 걸어 들어왔다. 승자의 여유가 넘쳐났다.


도원 스님이 마지막 힘을 짜내어 반가부좌를 한 상태로 품에서 작은 청금석을 꺼내더니 네 곳에다 배치했다. 눈을 감고 낮은 음색으로 기이하고도 긴 진언을 읊어나갔다.


도원 스님의 얼굴은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창백한 가운데도 진언은 계속되었고 하르 망가스가 바로 코앞에 와 있어도 멈추지 않았다.


하르 망가스의 손에서 잿빛 불꽃이 짙게 피어오르더니 결계를 그대로 내려쳤다.


쩡! 쩡!


그동안에도 계속해서 도원 스님은 마지막 힘을 짜내듯 고요한 진언 소리가 흘러나왔다.


쩍! 쩌어억!


실금이 가지더니 얼마 못 가서 퍽하고 깨져 버렸다.


“이 빡빡이, 마지막 가는 길에도 염불은 열심히야. 키키킥.”


두드드득!


하르 망가스가 위압적이고 흉폭한 괴물로 급속히 변형되었다. 어느 때보다 어두운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주위의 공기가 파르르 떨리고 들썩거렸다.


“카아아아악!”


하르 망가스의 입술이 갈라지면서 날카롭고 거대한 입이 벌어지자 무수한 팔이 뻗어 나와 도원 스님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도원 스님의 눈이 번쩍 떠지더니 한 손에는 금강저와 다른 한 손에는 카드반가를 쥔 채로 하르 망가스의 팔에 낚여 입 안으로 끌려갔다.


하르 망가스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누에고치처럼 도원 스님의 온몸이 허연 실 같은 것이 모공에서 품어져 나오더니 빛의 속도로 감싸기 시작했다.


“으드득! 으드득!”


* * *


“으드득! 으드득!”


하르 망가스가 계속해서 씹기를 반복하다 고개를 갸우둥하고는 그대로 꿀꺽 삼켰다.


오래간만에 거한 포식에 만족했던지 입맛을 다시며 혀를 할짝대다 얼굴에 가득한 수많은 눈들이 빙글빙글 정신없이 돌기 시작했다.


“커어억! 컥!”


하르 망가스가 갑자기 허리가 굽어지더니 입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도로 뱉어냈다.


툭!


짙은 초록색의 육각형 돌이 떨어졌다.


“으으으윽!”


하르 망가스가 배를 부여잡고는 몹시 괴로워했다. 점차 소녀의 몸으로 줄어들더니 바닥에서 뒹둘었다.


“허어억!”

“이 빡빡이 놈, 마지막까지 곱게 안 죽네. 아구 배야.”


소녀는 타들어 가는 듯한 표정으로 연신 배를 움켜잡고는 은은한 초록빛이 도는 돌을 사납게 쳐다보았다.


“시발, 하여튼 빡빡이 중은 이상한 놈들이 많다니까. 오늘 완전 똥 밟았네. 아니 똥을 먹은 건가? 젠장.”


퉷!


하르 망가스가 걸쭉한 침을 돌을 향해 뱉었다. 타는 듯한 배를 움켜잡고는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저 멀리 솟아난 산을 향해 휘청거리며 날아갔다.


* * *


가온이 의식을 차리고 눈을 뜨자 곳곳이 파괴된 흔적의 텅 빈 공터와 눈에 친숙한 동료들이 보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마른침에 목이 막혀 첫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가온을 보고 주위의 승도들이 히죽 웃었다.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거냐?”


보명이 일어나려는 가온을 부축하며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가온이 수인을 맺고 난 다음의 기억이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


“수인을 맺고 이후 기억은 뿌연 안개처럼 나지 않습니다.”

“그래? 그건 나중에 가서 차차 기억나겠지. 하여튼 훈 초노는 너에게 당하고 물러났다.”

“네?”


그 순간, 저 외곽에서 번쩍번쩍하는 번개 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원 스님이 있는 곳에서 또 다른 큰일이 일어난 것 같네.”


보명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승도들의 얼굴이 다시 짙은 그늘이 졌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도원 스님에게 가봐야겠어요.”

“윽!”


가온이 가슴을 부여잡고는 다리가 풀려 휘청했다. 그 마음을 아는 보명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가온을 바라봤다.


“가온아, 지금 네 몸으로는 무리다. 도리어 가봤자 짐만 될 뿐이야.”

“그래도 가야 합니다. 혹시 도원 스님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가온이 깨문 입술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그가 삐걱거리를 몸을 겨우 부여잡고 다시 몸을 세웠다.


“사형 분들은 어서 퇴각하십시오. 저 혼자 일단 숨어서라도 어찌 돌아가는지 보고 알아서 빠져나가겠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힘을 내어 움직이는 가온의 뒷모습을 보자 승도들 모두 울컥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가세.”


보명이 나서자 나머지 승도들도 다시 가온과 함께 도원 스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가온 일생이 근처에 도착해서 저 멀리서 예의 관찰하자 한 소녀가 배를 잡고 구르고 있었다.


“이런 곳에 저 어린 애가 무슨 일로 있는 걸까요?”

“글쎄다.”


주위가 난장판인데다 살벌한 곳에 있는 아이의 외모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꺼림칙한 기운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여자 아이는 혼자 뭐라 뭐라 떠들더니 이내 귀신처럼 저 멀리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보자 승도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져서는 혹시 몰라 기척을 최대한 숨기고는 한참을 조용히 있었다.


이후 주위가 쓸쓸함과 깊은 적막에 깊게 내려앉고서야 가온 일행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뭔가가 있는데···.”

“이게 뭐지? 도원 스님은 어딜 가시고?”


승도들이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사람의 흔적은 없고 육각형의 사람 크기만 한 청록빛이 감도는 돌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가온이 돌에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꿇고는 잠시 흐느끼는 감정으로 어루만졌다.


“바즈라 아트만 파타르. 바아파라는 돌입니다. 금혼석이라고 불리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승도들이 가온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이건 도원 스님의 마지막···”

“흑.”


잠시 목이 멘 가온이 비통한 눈물을 삼켰다.


“비기입니다. 혹시 강대하고 사악한 마족들과 싸우다 최후에 영혼을 강탈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지막··· 원기를 사용해서 영혼을 법계의 금강석으로 둘러 가두는 비기입니다. 이 바아파는 마족과는 상극의 물질이라 어찌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군요.”


가온이 돌을 어루만지고는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주위의 승도들 모두가 숙연해진 분위기에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가온아, 우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해. 스님의 법체를 빨리 안전한 곳으로 모셔가야 한다. 이곳은 적지와 다름없는 곳이니 언제 탈린군이고 다른 사악한 족속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가온이 깊은 슬픔을 가슴에 꾹꾹 내리누르고는 돌을 들어 올렸다. 살짝 휘청했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함께 들어.”

“아닙니다. 생각보다는 가볍군요. 빨리 벗어나죠.”


보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승도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퇴각 신호를 보냈다.


곳곳이 폐허가 된 흔적들이 얼마나 흉측했던 밤이었는지는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 * *


초원의 제국을 가로지르는 오르홍 강 상류.


쿠르르르릉!


기괴한 울음소리와 함께 물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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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멸마 대전의 서막과 푸른 눈의 마법사 -1 24.12.24 162 0 14쪽
28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4 24.12.20 178 0 14쪽
27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3 24.12.18 180 0 11쪽
26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2 24.12.17 164 0 13쪽
25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1 24.12.11 251 1 11쪽
24 혈기의 창 24.12.09 211 1 15쪽
23 청록 거인의 죄수 24.12.06 223 2 11쪽
22 남섬부주 24.12.05 203 2 13쪽
21 첩첩산중 24.12.02 210 2 12쪽
20 포악수 24.11.29 522 2 10쪽
19 수천, 수만 발의 화살도 24.11.28 167 2 12쪽
18 신비롭고 아름다운 시게송 24.11.27 167 2 9쪽
17 대륙의 전쟁 24.11.26 150 2 14쪽
» 청록빛의 돌, 바아파 24.11.25 109 2 12쪽
15 바즈라파니의 벼락 24.11.22 113 2 11쪽
14 폭식의 하르 망가스 24.11.21 236 2 13쪽
13 버드나무가 바람결에 날리듯 24.11.20 141 2 13쪽
12 천공의 사계수 24.11.19 115 2 11쪽
11 깨어나는 힘 24.11.18 112 2 12쪽
10 해골늑대 24.11.15 112 2 11쪽
9 카드반가의 사파이어빛 24.11.14 113 2 9쪽
8 마족과의 첫 격돌 24.11.13 253 2 10쪽
7 회오리치는 안개 24.11.12 112 2 9쪽
6 빛의 폭풍 24.11.11 126 2 10쪽
5 맹수의 눈빛 24.11.10 149 2 13쪽
4 폭력과 공포가 잠식된 세상 24.11.08 210 2 13쪽
3 마(魔)를 태워 멸하라! 24.11.07 263 3 11쪽
2 사이한 존속들(수정) 24.11.06 458 3 16쪽
1 황금의 문 24.11.06 785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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