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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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처일이 수백 장의 부적으로 불러낸 건 전설적인 포악수(逢獠獸)였다.
그건 해치와 비슷했지만 금방이라도 찢어발길 것 같은 사나운 인상의 사자 얼굴에 이마 한가운데에 솟은 외뿔이 위엄을 더했다. 몸에 돋아난 갈기와 꼬리는 불타는 구름 모양의 불꽃을 피워내며 사위에 위압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크어어어흥!”
포악수가 합트가이를 향해 도발적이고 위엄이 가득한 울음을 터뜨리자 천지가 진동했다.
정신을 차린 양양성의 여문환과 병사들이 사기를 밀어내며 마를 제압하는 포악수의 함성에 밑바닥으로 추락하던 전의가 되살아났다.
“대단한 기세군요.”
도교에서 악한 기운을 쫓는 신수를 직접 목격한 여문환은 흥분과 경외감을 가지며 왕처일을 쳐다보았다.
귓가에 흘러내린 피를 닦으면서도 예의주시하는 왕처일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신중했다.
왕처일이 제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싸움이 시작되면 태극무량진으로 신수를 도와라!”
더불어 여문환에게도 전투태세를 재정비하게 했다.
합트가이와 포악수의 대치에 주위가 평온한 듯 보였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었다. 서로의 탐색과 팽팽한 두 기운의 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점층되고 있어 폭발적인 힘의 균형이 조만간 깨질 걸 왕처일의 심혼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쩌어어엉!
지진으로 대지가 갈라지는 듯한 비틀림의 진동과 함께 합트가이와 포악수가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미묘한 차이로 성난 코뿔소 마냥 포악수가 좀 더 빠르게 돌진했다. 그의 외뿔이 더욱 길고 굵게 커지며 쇄도해 들어오자 합트가이는 좀 더 높은 상공으로 떠올라 뒤로 물러나며 날개를 더욱 활짝 폈다.
찌이이이잉!
불쾌한 굉음와 함께 합트가이의 거대한 검은 양 날개에서 무수한 작은 박쥐들이 대양을 떠도는 수만 마리의 정어리떼처럼 일시에 쏟아졌다.
찌찌찌찌찌찍!
작고 불쾌한 소음 속에 검은 박쥐들이 사방을 에워싸듯 쏟아지면서 쇄도하는 신수를 덮고도 남은 무수한 박쥐들이 성 위를 흑색의 구름처럼 뒤덮어 나갔다.
“발사아아악!”
성 위에서는 곳곳에서 악을 지르는 소리가 넘쳐났고 다시 수많은 화살들이 폭우처럼 빗발쳤다.
왕처일과 그의 제자들의 칠성검에서도 7개의 북두칠성이 별빛처럼 맺히더니 무수한 박쥐 떼를 향해 날아오르며 태극무량진이 발동했다.
* * *
크기는 작은 박쥐였지만 그 이빨은 그 어느 강철보다 단단하고 억셌다. 그런 박쥐가 포악수를 사방에서 둘러싸며 몸체 곳곳을 물어뜯고자 거칠 것 없이 이빨을 박아 넣었다.
쩡! 쩡!
자신을 괴롭히는 박쥐 떼에 사자의 얼굴이 더욱 흉폭해졌다. 그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크게 포효하더니 온몸에 열양의 불꽃을 일시에 터뜨렸다.
화르르륵!
주위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새하얀 열양의 빛으로 터져 나오자 몸을 에워싸던 박쥐 떼가 일시에 눈 녹듯 녹아버렸다.
성난 포악수는 더욱 흥분하며 강맹한 기세를 끌어올리고는 합트가이를 향해 덩치에 맞지 않는 빛살 같은 움직으로 달려가 앞발로 후려쳤다.
쾅!
합트가이가 날개로 막았지만 충격에 휘청하며 중심을 잃자 빠르게 따라붙어서는 양발이 연타로 더욱 사납게 후려쳤다.
쾅! 쾅!
퍼어엉!
엄청난 연타 공격에 합트가이의 거대한 몸체가 마치 폭탄처럼 양쯔강의 강바닥으로 처박히며 거대한 굉음과 함께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솟구쳤다.
쏴아아악!
* * *
쐐기꼴의 전형적 돌격 진형을 갖추고 언제든지 공격 명령을 내리려고 전황을 주시하던 코추였다. 그가 합트가이의 몸에서 무수한 박쥐 떼가 성을 뒤덮자 그걸 신호로 막 입을 열려 든 차에 전광석화처럼 돌변한 전황에다 강물에 처박히는 합트가이를 보는 순간 침을 꿀꺽 삼키며 말없이 제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위력이 강했던지 또한, 합트가이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그 충격파로 인해 솟아오른 물줄기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먼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탈린군 진영까지 물방울이 튀었다.
‘하! 시발, 미치겠군. 같은 편이라고 하지만 볼 때마다 정말 오금이 저리네. 저런 것들이랑 함께 놀아야 한다니···.’
얼굴의 물기를 닦는 코추의 한쪽 볼이 실룩거리며 잔 떨림을 보였다. 어느 순간 제국이 영광스러운 자신의 금자탑이 아니라 저 괴물들의 잔치가 되어가는 모습에 쓴 입맛과 함께 그동안 그의 술자리도 잦았다.
부글부글.
쏴아아아!
강 중앙에서 기포가 들끓더니 물줄기가 다시금 솟구치면서 거대한 어둠이 달빛의 그림자처럼 솟아올랐다.
찌지지지징!
합트가이 특유의 초고주파 울음소리를 내면서 그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의 두 눈이 펄펄 끓는 마그마의 붉은 눈빛으로 포악수를 노려보며 다시금 몸에서 무수한 박쥐 떼들이 쏟아졌다.
찌직! 찌지지직!
박쥐 떼들은 포악수의 근처에서 맴돌 뿐 이전처럼 이빨로 바로 물어뜯지는 않았다. 그 대신 수천 마리의 박쥐 떼가 일정 공간에서 포악수를 가두고는 일제히 입을 벌렸다.
찌이이이이익!
합트가이가 일시에 일으키는 압도적인 초고주파 공격력에는 못 미치지만 수천 마리가 서로의 공명으로 끌어올리는 초고주파 공격은 처음에는 다소 미약한 듯 보였지만 갈수록 소리 파동의 위력이 강해졌다.
포악수도 단순히 귀찮은 듯한 표정에 날파리를 쫓듯 사방으로 이리저리 빠른 발길질을 가했지만, 그럴 때마다 일정한 원거리에서 포위하면서 초고주파 공격은 철옹성처럼 지속 되었다.
어느 순간 포악수를 가둔 공간 속 대기의 공기가 먼지가 떨어지듯 뚝뚝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면서 진공상태에서 투명한 대기가 유리가 갈라지듯 금이 가지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그런 현상이 지속되자 신수의 사자 얼굴에서 짙은 고통이 드리우더니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구름 같은 불꽃이 점차 약화되어갔다.
* * *
합트가이에서 쏟아지는 해일 같은 검은 박쥐 떼가 양양성의 수많은 화살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휘몰아치며 돌진을 이어갔다.
그런 가운데 화살에 맞는 박쥐들이 나왔지만 어느새 지척까지 접근하자 여문환 등 곳곳에서 방패를 앞세워 칼과 창을 빼 들고는 박쥐를 도륙해나갔다.
하늘에선 북두칠성의 별빛들이 떠올라 태극문양의 진법이 그려졌다. 그 진법에 검고 밝은 빛이 회전하면서 박쥐 떼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샤아아아악!
위기감을 느낀 박쥐들이 넓게 퍼지면서 일부는 태극문양을 향해 초고주파 공격을 가했고, 일부는 성의 병사들에 붙어서 그들의 목덜미를 파고 들었다.
태극문양이 박쥐의 사이한 소리 공격에 빛이 꺼져다 켜졌다를 반복하자 끌려가던 박쥐 떼의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그걸 지켜보던 왕처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가 기이한 주문을 외우면서 다시 수십 장의 부적이 날아올랐다.
자신의 선혈을 빛나는 칠성검에 묻혀 흩뿌리자 부적이 종이학으로 변해서 점차 커졌다.
수십 마리의 종이학이 살아 있는 진짜 학처럼 생동감 있게 날갯짓을 하면서 태극 문양을 공격하는 박쥐 떼를 향해 역공을 가했다.
그 순간, 곳곳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살아남은 박쥐 떼가 여기저기서 병사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자 사방에서 비명을 지르며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박쥐들의 날렵한 움직임에 병사들이 곳곳에서 무너지자 내부에서 점차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그런 전장의 분위기를 느낀 여문환이 입술을 깨물고는 만일에 대비해 숨겨두었던 전력을 꺼집어냈다.
“비화창 부대는 나와서 싸워라!”
* * *
탈린군 진영의 코추와 제장들은 허공에서 부딪치는 괴물들의 공방을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양양성 일대를 살피자 성내의 정황이 어지러운 걸 발견했다.
‘저 괴물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안전하긴 한데···. 그러면 다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꼴이니. 음···.’
그가 결심이 선 듯 안광이 번쩍였다.
“일 차 공격 명령을 내려라!”
그의 입에서 위엄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뿔나팔 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우고는 대기하고 있던 함선이 강 양옆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양양성을 향해 나아갔다. 그 순간 난송의 함선도 탈린군의 함선에 공격을 가했다.
육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탈린 부대들이 진영을 이루며 강가로 다가가 난송 함선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난송의 전함들은 바람을 타고 기민한 움직임 속에서 탈린군 함선 사이를 돌고래처럼 휘젓고 다니며 불화살을 마구 날리면서 종횡무진했다.
그에 비해 수전에 약한 탈린군 병사들은 흐르는 격류에 갑판 위에서 제대로 몸을 세우기도 벅차 보였다. 더구나 난송의 함선이 아예 탈린군의 함선 사이로 들어가 버리자 육지에서의 공격도 더 이상 강행하기는 힘든 상황에 빠졌다.
출렁이는 갑판 위에서 난송의 빠른 함선 속도와 불화살 공격에 당황하며 제대로 된 공격이 되지 않자 다시금 악몽이 재현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탈린군 진영 일대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와 먼지가 뒤를 따를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강을 향해 내달렸다. 이후 순식간에 강물에 첨벙 뛰어들었다.
얼마 있다 사방을 진동하는 괴성과 함께 물줄기가 솟구쳤다.
크아아아앙!
웬만한 거선은 휘감고 틀면 뭉개버릴 것 같은 목이 긴 괴생물체가 물 밖으로 나와서 난송의 함선을 향해 물제비의 날갯짓처럼 빠르게 접근했다.
쾅!
그대로 난송의 함선들을 거세게 들이받거나 엎어 버렸다.
풍비박산 난 배 잔해를 부여잡고 떠 있는 난송 병사들의 눈앞에는 어느새 시커먼 동굴이 나타나더니 사정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괴생물체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간 병사들은 그대로 배속으로 들어가 삽시간에 녹아버렸다.
괴생물체가 자신의 존재감을 더 높이려는 듯 풍비박산 난 잔해 속에서 긴 목을 쳐올리며 양양성을 향해 괴성을 토해냈다.
크아아아아앙!
강에 떠 있는 남은 함선들 사이의 병사들이 귀를 막고 머리를 박고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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