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의 멸마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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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카
작품등록일 :
2024.10.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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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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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0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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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남섬부주

DUMMY

* * *


황룡사 일대가 보이는 곳에 자리한 소나무 가지에 언제 나타났는지 양 갈래머리의 귀여운 소녀가 앙증맞게 다리를 놀리며 걸터앉아 있었다.


“처음부터 세게 나오네. 히히힝!”


탈린군 진영은 황룡사를 향해 십여 기의 오연발 선풍오포(旋風五砲) 투석기를 조립하느라 분주했다.


“근데 이 녀석은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이지?”


탈린군의 군마가 동, 서 양 진영으로 일부가 이동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훈 초노가 어떤 기척을 느끼고는 저 멀리 창공을 쳐다봤다.


“······.”


슈우우우우우!


한동안 보이지 않던 거대한 독수리 형상의 뷔르게드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내려앉으면서 몸집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호리호리한 큰 키가 전봇대를 연상시킬 정도에 도드라진 매부리코가 독수리 형상을 닮아 인상적이었다.


“호랑이도 아니지, 독수리 새끼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키킥. 넌 그동안 뭘 하고 이제야 나타나?”


하르 망가스가 그런 뷔르게드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훑어봤다.


“손등의 깊은 상처 자국은 뭐냐? 쯧쯧, 알만하네. 저 사원이 왜 이리 멀쩡한가 했더니 되레 처맞았군. 한심하다 한심해.”


키르르르르!


평소에 서로가 앙숙인지 보자마자 타박을 해대는 하르 망가스의 말에 뷔르게드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키며 낮게 으르릉댔다.


훈 초노는 그들의 말싸움에 무신경으로 대하며 전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 * *


“발사!”


텅! 텅! 텅!


슈아아아악!


묵직한 돌덩어리들이 황룡사를 향해 공기를 찢어발기며 허공을 날아오르자 훈 초노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빛났다.


하나하나의 돌덩어리에 맞으면 담장이고 상당한 규모의 황룡사 건물의 지붕들도 폭삭 주저 않을 것은 명백해 보였지만.


퉁! 투투투투퉁!


돌덩어리들이 황룡사 일대로 낙하하는 순간 구체의 막이 생겨나면서 가벼운 울림과 함께 그 힘만큼 반발력을 가지고 무섭게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쿵! 쿵! 쿠쿠쿠쿵!


“으악!”


“피해애액!”


돌덩어리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면서 동서 양 진영과 전방의 탈린군 진영에 되레 막대한 피해를 주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이, 이런······.”


전장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느긋하게 지켜보던 탕구타이도 놀란 나머지 입을 벌린 채로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 * *


퍽!


훈 초노 진영에도 여성의 허리 둘레 만한 돌덩어리가 날아들자 그의 강철같은 주먹이 아무렇지 않게 전방으로 질러버리자 퍼썩 깨져나갔다.


“흠···. 결계의 반탄력이 상당하군. 네가 공격할 때도 저 정도였나.”

“···저 정도는 아니었어.”


뷔르게드의 샛노란 눈에 검붉은 빛으로 물들며 결계를 유심히 살폈다.


“제법 까다로운데. 초반에 안으로 정찰은 보내고 시작한 거야?”


턱을 매만지던 뷔르게드가 훈 초노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건 외부의 힘이 강해질수록 역으로 반탄력이 증가하는 결계 같은데.”

“파훼법은?”

“파훼법이 뭐가 필요해? 내가 먹어 치우면 끝나는 걸. 히히히!”


훈 초노가 되묻자 중간에 하르 망가스가 끼어들어서는 히죽거렸다.


“지랄, 잘난 네가 해보든지. 아마 너 같은 폭식충이도 저건 쉽지 않을걸.”

“뭐야? 이게 죽을려고 진짜!”

“그만! 다들 한 번씩 당했으면 진지해져라. 생각보다 저곳이 고려에서 가장 큰 전력을 숨긴 곳인지 몰라.”


훈 초노가 묵직한 음성으로 호통을 쳤다.


“그래서 파훼법은 뭐지?”

“저 결계는 외부의 강한 자극이 올수록 반발력이 급격히 늘어나지만 조용하게 들어가는 건 쉽게 해놓았으니 직접 들어가는 방법이겠지. 아님, 저놈 말처럼 외부에서 더 강한 힘으로 뭉개버리는 건데 보아하니 쉽지는 않을 거야. 제법 준비가 잘 된 것 같아. 그리고 예상보다 실력 있는 놈도 있더라고.”


뷔르게드가 자신의 오른쪽 손등을 잠시 쳐다봤다. 한 승려의 화살이 관통된 날개 부위의 손등이 화염에 지진 흔적으로 아직도 아릿한 상처가 전해졌다. 그 상흔이 마력의 흐름을 교묘히 방해하자 미간이 찌푸려졌다.


“비껴봐! 내가 한 방에 저걸 뚫어버릴 테니.”


쌍계 머리의 하르 망가스가 외모와는 다르게 살벌한 눈빛으로 나서면서 몸에 변형을 가하려고 하자.


“잠깐! 있어 봐.”


훈 초노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사이한 위헬의 안개를 증폭시키더니 황룡사 일대로 뻗쳤다.


암홍색의 짙은 어둠의 투기가 황룡사 일대를 본격적으로 침투해 들어가려다 거북한 소리가 들리면서 촛불이 바람에 꺼지듯 피식 녹아내렸다.


훈 초노의 초록색 눈동자가 암청색으로 변하면서 위헬의 투기가 더욱 급증하자 거대하고 강력한 혈기가 뭉쳐 창의 형태로 변했다.


슈아아아악!


훈 초노가 손짓을 하자 마력의 창이 하늘에서 내려꽂히듯 결계를 두드렸다. 그런데 웬걸?


바다에 잉크를 풀어 놓은 것처럼 흔적도 없이 잠겨버렸다.


금방이라도 달려갈 것 같던 하르 망가스의 눈도 절로 짙은 어둠으로 내려앉으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의 마력과는 상극이다. 더구나 뷔르게드 말처럼 마력이 강할수록 반발력의 위력이 급증하는 게 맞아. 크크큭, 이거 진짜 어느 놈이 이 정도 수준의 결계를 만들었는지 정말 보고 싶어지는데.”


훈 초노의 눈매가 매서워지면서 강철같은 날카로운 이빨에서 침샘이 흘러나왔다. 그의 원초적 본능처럼 승부욕을 자극했다.



* * *



탕구타이는 어지러운 진영을 다시 수습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봐도 기이한 결계의 힘이 상당한 듯합니다. 외부에서 강한 자극에는 더 강하게 반발을 하는 게 아무래도···.”


탕구타이가 부장의 말에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와라. 이말인가? 하하하하!”

“재밌군, 재밌어. 고려에 와서 남부 끝단에서 이런 환영식이 있을 줄은···.”


탕구타이가 무언가를 찾는 듯 잠시 사방을 둘러보고는 다시금 목청에 힘을 주었다.


“저놈들 뜻대로 해주지. 사방에서 침투해서 압도적 병력으로 일거에 쓸어 버린다!”

“네에!”


탕구타이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장의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총공격하라!”


부우우우웅~! 부우우웅~!


뿔나팔을 부는 탈린병은 목에 핏대가 올라 얼굴이 붉그레 졌다.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탈린군 진영이 황룡사의 남쪽과 동서 양진영으로 밀고 들어갔다.


“바토르, 돌격!”


탈린군의 돌격부대가 사방에서 질주했다.


척! 척!


바토르 부대원들이 각자의 허리에서 갈고리 밧줄을 꺼내어 담장에 걸고는 거침없이 타고 올라갔다.


“정문을 열어라!”


끼이이익!


담장은 넘은 바토르 부대원은 웅장한 남문의 빗장을 풀고는 신속히 문을 열어 젖었다.


빗장이 풀리자 탈린군이 쏟아져 들어왔다.


선봉장 카루는 여기서부터 기이한 공격에 낭패를 당한 걸 기억하고는 마른 침을 삼켰다. 방패를 다부지게 움켜쥐고는 다시금 외쳤다.


“중문도 열어라!”


계속해서 바토르 선봉대는 다음 담장을 넘어 육중한 중문으로 다가갔다.


“어···.”

“뭐냐, 빨리하지 않고 뭐 해!”

“자칸, 열리지 않습니다!”

“뭔 소리야!”


속전속결로 중앙문을 열어야 하는 임무를 맡은 바토르 부대였다. 그를 이끌던 카루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났다.


그동안에도 황룡사의 정문으로 계속해서 탈린군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으차.


“나와봐!”


담장을 넘은 카루가 중문으로 다가가서 살펴보다 얼굴이 굳어졌다.


‘어, 방금 전까지는 이곳은 분명 문이었는데.’


언뜻 문처럼 보였지만 단단한 강철의 벽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근데 왜 아직까지 공격이 없지?’


앞서 솟구쳐 오르던 종루나 경루며, 벽에서 나오는 기묘한 공격이고 애초에 아무도 없었던 듯 너무도 조용하고 한가롭기까지 했다. 그게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피워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별다른 공격이 없는 것에 안도했다.


정문으로 계속해서 탈린병이 쏟아 들어오면서 정문과 중문 사이가 정체되었다.


“담장을 넘어라! 어서 담장을 넘어!”


열리지 않는 중문을 뒤로한 채 담장을 타고 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동서 양진영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그렇게 아무런 제재도 없자 탈린군 병사들이 거침없이 황룡사 안으로 물밀듯이 들어와 담장을 넘고 경내로 본격 진입을 시도했다.



* * *



선봉장 카루가 부하들과 함께 경내로 진입하자 기이한 안개가 짙게 깔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한 걸음씩 한참을 걸어가자 안개가 그치며 시야가 탁 트였다.


“어!”

“뭐야!”


곳곳에서 당황하는 기색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자신의 주위로 짙고 차가운 철의 산맥이 둘러싸여 있었고 저 멀리에는 정말 거대고 웅장한 산이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카루가 전방의 전경을 제대로 알기 위해 높게 자란 나뭇가지를 밟고 한참을 올라가 굽어보자.


“헉!”


끊임없이 펼쳐진 산맥과 바다로 이어진 광대한 곳에 자신과 부대가 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탈린군이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이렇게 하늘 높이 쭉 뻗은 기이한 나무를 본 적이 없군.’


그제야 카루는 자신이 딛고 있는 나뭇가지의 밑동을 내려다보자 지상은 아득한 느낌의 거리감을 주었다. 줄기는 푸른색에 가까웠고 가지는 붉고 노란색이 섞여 있는 괴상한 색상과 뱀처럼 꼬인 기이한 모양이었다.


별안간 특정하기 힘든 허공에서 준엄하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7개의 산맥과 8개의 바다로 둘러싸인 삼천대천세계에 온걸 환영한다.”


언제나 자신들이 압도적 우위와 공포로 짓누르며 패자로, 정복자로 거침없이 파괴와 약탈을 일삼고 유린하던 탈린군 병사들의 눈동자가 돌개바람에 휩쓸린 낙엽처럼 정신없이 떨렸다.



* * *



“돌아가아아! 후퇴애애!”


이 알 수 없는 기묘하고 광대한 세계에 카루와 바토르 부대는 북극의 빙해에 빠진 것 같은 한기를 느끼며 다시 돌아가길 바랐다. 그래서 온 힘을 짜내듯 거친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들어올 때는 쉽게 들어왔지만 나갈 문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주위로는 거대한 강철의 철위산(鐵圍山)으로 막혀 있어 뒤로 후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계속해서 탈린군의 숫자는 불어나고 있었고 들어오는 속속 이해되지 않는 이질적 환경에 탈린병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너도나도 패닉에 빠졌다.


“시바아아알! 이 중놈들, 얌전히 죽이나 봐라!”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공황. 그다음엔 전사답게 이걸 이겨내려는 투쟁심이 분노를 끌어올리며 카루가 거친 입담을 과시했다.


그때,


“뭐야!”

“아 뜨거!”


난데없이 어느 화산에서 분출된 건지 모를 마그마가 땅으로 밀고 들어오자 근처에 있던 탈린군의 옷과 발바닥이 불이 붙거나 녹아내리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헉! 화염의 해일이 밀려온다!”

“뛰어! 어서 달려!”


앞쪽에 있던 이들이고 정신없던 상황에서 뒤에서 십여 미터 높이의 불타는 해일이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치켜들어오자 탈린군의 눈동자 역시 불이 켜졌다.


너도나도 정신없이 내달려가다 누군가 넘어지고 누군가는 손을 내밀고, 어떤 놈은 동료의 머리나 손이고 죽기 살기로 그대로 밟고 지나가면서 앞으로 앞으로 죽은 힘을 다해 달려갔다.


“으아악! 살려 줘!”


넘어져 밟히고, 쓰러졌다 제대로 다시 일어서지 못한 이들은 결국 화염의 해일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참상과 절규에 달려가는 탈린군 병사들은 차마 뒤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수천 명의 탈린군이 정신없이 내달리다 보니 어느새 열기도 약해지고 사위가 조용해 지면서 거대한 현판이 달린 이십여 미터의 기둥이 나왔다.


쿵!


남섬부주(南贍部洲). 고풍스럽고도 현묘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글씨체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크고 긴 다리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고 옆에는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넓은 바다가 드리워져 파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카루가 기둥을 지나 그런 생경하고 오싹한 다리를 건널지를 고민하는 가운데 뒤에서 들리는 외침에 상념이 여지없이 날아갔다.


“화, 화염의 해일이 다시 밀려온다!"


화해의 분노가 끝난 게 아니었다. 단지 이전보다 느린 속도로 불타는 아가리가 붉은 장막으로 넘실거리며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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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멸마 대전의 서막과 푸른 눈의 마법사 -1 24.12.24 162 0 14쪽
28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4 24.12.20 178 0 14쪽
27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3 24.12.18 180 0 11쪽
26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2 24.12.17 164 0 13쪽
25 소천계에서의 대혈투 -1 24.12.11 251 1 11쪽
24 혈기의 창 24.12.09 211 1 15쪽
23 청록 거인의 죄수 24.12.06 223 2 11쪽
» 남섬부주 24.12.05 204 2 13쪽
21 첩첩산중 24.12.02 210 2 12쪽
20 포악수 24.11.29 522 2 10쪽
19 수천, 수만 발의 화살도 24.11.28 167 2 12쪽
18 신비롭고 아름다운 시게송 24.11.27 167 2 9쪽
17 대륙의 전쟁 24.11.26 150 2 14쪽
16 청록빛의 돌, 바아파 24.11.25 109 2 12쪽
15 바즈라파니의 벼락 24.11.22 113 2 11쪽
14 폭식의 하르 망가스 24.11.21 236 2 13쪽
13 버드나무가 바람결에 날리듯 24.11.20 141 2 13쪽
12 천공의 사계수 24.11.19 115 2 11쪽
11 깨어나는 힘 24.11.18 112 2 12쪽
10 해골늑대 24.11.15 112 2 11쪽
9 카드반가의 사파이어빛 24.11.14 113 2 9쪽
8 마족과의 첫 격돌 24.11.13 253 2 10쪽
7 회오리치는 안개 24.11.12 112 2 9쪽
6 빛의 폭풍 24.11.11 126 2 10쪽
5 맹수의 눈빛 24.11.10 149 2 13쪽
4 폭력과 공포가 잠식된 세상 24.11.08 210 2 13쪽
3 마(魔)를 태워 멸하라! 24.11.07 263 3 11쪽
2 사이한 존속들(수정) 24.11.06 458 3 16쪽
1 황금의 문 24.11.06 785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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