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계에서의 대혈투 -1

수십 미터의 거대한 크레이터의 내부는 더 깊게 내려앉아 시커먼 동공을 보였다.
하늘에서 내리꽂은 엄청난 마력의 충격파를 미쳐 피하지 못한 탈린군 병사들 중 일부가 동공 속으로 그대로 함몰되거나 몇 명은 모퉁이 끝에 겨우 매달려 버둥거렸다.
“살, 살려··· 으아아악!”
겨우 잡고 있던 부위도 바스러지면서 동공 안으로 떨어지는 탈린병의 애처로운 메아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 * *
창공에는 거대한 독수리의 몸체 위에 훈 초노와 어린 소녀가 잠시 배회하다 다시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휘이익, 힘을 너무 과하게 쓴 거 아냐?”
하르 망가스는 휘파람을 불며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데스웸을 잡는 것도 있지만 이 결계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다.”
훈 초노의 짙어진 암청색 눈이 끌어올린 혈기로 인해 강력한 투기가 흘러넘쳤다.
커다란 독수리 형상으로 변모한 뷔르게드도 훈 초노가 크레이터를 만든 후에 비행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고 있는걸 실감했다.
“그런데 언제 저 수미산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
속도가 좀 더 빨라지긴 했지만 뷔르게드는 자신의 엄청난 비행 속도에도 수미산은 여전히 가까워지지 않고 있어 답답함이 차오르고 있었다.
“······.”
팔짱을 끼고 수미산을 바라보고 있던 훈 초노는 양팔을 뻗어 위헬의 안개를 피어 올리며 바람의 흐름을 느꼈다.
“실제 우리가 있는 곳은 그리 큰 곳이 아니야. 아마 현실에선 다들 일정 공간에서 버둥거리고 있겠지. 우리가 이 결계에 들어오는 순간 심상의 의식 세계로 빠져 의식이 한없이 느려지고 있기에 그만큼 거리도 멀게 느껴지고 있는 거다.”
“그럼, 우린 죽을 때까지 날아야 하는 거야?”
소녀의 작은 입술이 앞으로 모나게 튀어나와 실룩거렸다.
“그럴 순 없지. 이 거대한 세계를 만든 결계진은 저 수미산을 중심으로 해서 나오고 있다. 저곳을 깨부셔야 이곳의 세계가 사라져. 그리고 무엇보다···.”
훈 초노의 몸에서 피어나는 위헬의 안개가 허공으로 수증기가 증발하듯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우리의 힘 역시 약해져.”
“그래?”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듯 소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듯 저 거대한 산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우리의 마력으로 뚫어내면서, 뷔르게드의 비행 활로를 열게 하는 수밖에는 없다.”
훈 초노가 하르 망가스를 향해 짙은 어둠을 담아 강한 어조로 불렀다.
“하르, 넌 내가 신호를 보내면 그만할 때까지 뷔르게드를 보호하는 마력을 투사해야 한다. 그리고 뷔르게드, 너도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서 비행을 해야 해.”
훈 초노의 대답이 있자 하르 망가스와 뷔르게드 모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먼저 훈 초노의 온몸에서 암홍색의 짙고 차가운 혈기가 흘러나오더니 지옥의 화염이 솟구치며 증폭되어갔다.
하르 망가스도 양 갈래 쌍계 머리가 솟구쳐 오르면서 온몸이 잿빛으로 변해가더니 사이한 연기로 일렁거리며 거대한 뷔르게드의 전체를 감싸며 점점 키워갔다.
“지금이다!”
훈 초노의 손에서 뻗어 나간 암홍색의 지옥의 화염이 전방을 향해 긴 화염의 길을 열자, 뷔르게드의 샛노란 눈동자가 검붉게 달아오르면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속이 이루어졌다.
퍼어엉!
마치 소닉붐을 연상시키듯 순간, 공기를 찢는 듯한 강한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대기에 거대한 막이 형성되었다.
그들의 비행이 음속을 돌파해서 갈수록 속도가 증가하자 수미산에서 흘러나오는 결계의 힘 역시 더욱 강한 압력으로 밀려들었다.
마치 심해로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엄청나게 증가하는 수압처럼 온몸을 짓누르는 힘이 강해졌다. 그럴수록 훈 초노가 뿜어내는 지옥의 화염은 더욱 강렬해졌고, 하르 망가스는 뷔르게드의 몸에 더욱 짙은 안개의 투기로 결계의 힘을 지속해서 밀어내며 추진력에 힘을 보탰다.
거대하고 거센 폭포수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폭풍우의 한가운데를 돌파하는 돛단배같이 실시간으로 점층되는 반작용의 태산같은 힘의 기류에 맞서 나아가는 훈 초노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섬뜩했다.
훈 초노의 눈이 지옥의 화염으로 불타듯 넘실거리며 강철같은 송곳니를 드러냈다.
카아아아악!
포효를 터뜨리며 투기를 더욱 끌어 올렸다.
쇄애애애애액!
뷔르게드의 형상이 창공에 수놓은 검붉은 길을 따라 눈으로는 제대로 식별하기 힘들 정도의 희끗히끗한 그림자를 새기며 가공할 속도로 쭉쭉 나아갔다.
* * *
‘그렇지.’
뷔르게드의 눈이 빛났다. 그동안 가고 가도 닿을 수 없던 수미산이 점점 눈앞에 성큼성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기괴한 호선이 그려질 때 수미산 봉우리에서 황금빛 덩어리가 날아오르더니 점점 자신들 쪽으로 다가왔다.
뷔르게드 이상의 거대한 덩치에 붉은 등과 황금색 날개로 위엄과 신성함을 더한 가루라가 훈 초노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가루라의 등에는 한 승려와 젊은 남자가 동승하고 있었다.
훈 초노는 굳어진 얼굴로 그동안 쏟아부었던 혈기의 힘을 회수했고 하르 망가스와 뷔르게드도 숨을 고르며 전방을 주시했다.
“칫, 어쩐지 조용하더라. 치사한 녀석들.”
하르 망가스도 장시간의 힘을 쏟았는지 살짝 창백해진 얼굴로 투덜거렸다.
가온의 눈은 훈 초노에 맞춰 있었다.
불구대천의 어머니의 원수.
그의 맥박이 고래 심장처럼 날뛰고 손끝이 떨리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린 시절 참혹했던 기억과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공포의 그림자가 다름 아닌 훈 초노임을 깨닫고는, 다시 마주한 가온의 두 눈동자는 짙은 살기로 번뜩였다. 그리고 하르 망가스. 스승님의 원수를 보는 눈빛에도 불꽃이 튀었다.
그런 가온의 손을 누군가 따스한 손길로 잡아주었다.
“가온아, 지금은 분노보다는 냉철할 때다.”
도연 스님의 청아하고 부드러운 음성에 정신을 차린 가온이 탁한 숨을 길게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저 어린 소녀가 도원 스님과 싸웠다는 하르 망가스인 거냐?”
“네.”
“허, 외모만 보면 영락없는 귀여운 개구쟁이 동네 소녀인데, 기운은 정말 거대하고 사악하군.”
이곳 결계진에선 사악한 마기는 더욱 뚜렷이 구분되는 곳이라 이들의 정체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잠시 서로를 보면 기색을 살피는 동안 하르 망가스 역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새끼, 언제 봤다고 저리 재수 없게 꼬나보지? 하찮은 인간 따위가 감히. 팍 뽑아버릴까?”
가온의 핏발선 시선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눈에서 섬뜩하고 사이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뷔르게드는 자신과 비슷한 가루라의 투기에 얼굴이 살짝 굳어져 있었고 훈 초노는 불편한 기색을 옅게 드러냈다.
탐색도 잠시. 도연 스님의 진언으로부터 소천계에서의 대격돌이 시작되었다.
“धर्मसंसार समन्वय”
“담마삼사라 사만웨이”
도연 스님의 오른손이 공의 형상을 잡듯 위를 덮고, 왼손이 아래를 받치는 모양새로 법계의 신성한 힘을 일깨웠다.
“법계조화!”
맑고 푸른 하늘이 난데없이 물감을 푼 것처럼 붉게 물들어져 갔다. 그리고 대지도 붉은색이 번지는 속도에 맞춰 파란 색상으로 수놓아졌다.
“흐음.”
이곳이 결계의 내부인 건 알겠지만 끝없는 광대한 세계가 두 개의 색상으로 덮이는 기묘하고 장대한 변화는 훈 초노 일행에 항거할 수 없는 막연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런 광대한 소천 세계의 결계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수십 명의 뛰어난 황룡사 법사들이 만들어 낸 대형의 마니푸라 만다라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만다라의 힘과 이어진 도연 스님의 법력은 이 소천세계에선 거의 신적인 초월적 권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크르르르릉!
훈 초노의 낮은 으르릉거림 속에 암홍색의 짙은 혈기가 하늘 높이 치솟으며 밑바닥에 있던 수천 개의 해골 원혼을 끄집어냈다. 그 숫자는 이전에 서라벌 성에서 싸웠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계속해서 불어났다.
“카아아아아악!”
그동안 무수한 전장에서 훈 초노에 잡아 먹힌 원혼들의 찢어지는 울부짖음과 몸부림이 대기를 진동했다.
훈 초노의 오른손에 어느새 해골 원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이 빠르게 생성되어갔다. 그 창의 표면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원혼의 한이 피를 토하듯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꿈틀거리며 마력이 폭증하고 있었다.
그런 훈 초노의 공격에 하르 망가스는 뜻밖에도 담담한 시선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얼마 전 수십 미터의 크레이터를 내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욱 강대한 마력을 담은 원혼의 해골 창이 훈 초노의 손끝을 떠났다.
종아리 비복근에서 시작된 미증유의 힘을 담은 혈기가 허벅지의 대퇴사두근를 타고 거룡이 승천하듯 등의 광배근이 꿈틀거렸다.
거악의 힘이 타오르는 태양처럼 솟구치자 어깨의 삼각근이 터질 듯 부풀어 올라 폭발적인 기세와 빠르기로 팔꿈치와 손목으로 뻗어 나간 가공할 혈기가 강대한 마력의 창에 더욱 가속도를 실어 날랐다.
“가라아아아!”
쿠아아아아앙!
마치 거대한 로켓의 추진체에서 붉은 화염을 토하며 대기권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한 폭발적인 파공음으로 도연 스님을 향해 질주했다.
훈 초노의 강대한 마력의 투사에 반작용으로 뷔르게드가 버티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사선 아래로 계속해서 밀려나자 하르 망가스의 손에서 잿빛의 안개가 피어올라 받쳐 주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붉은 하늘 위로 검붉고 사이한 원혼의 웅장한 창이 주위의 공기를 진공상태로 밀어내며 도연 스님의 눈앞으로 가공할 속도와 투기로 찢어 들어왔다.
도연 스님이 차고 있던 말라 팔찌에서 성스러운 빛이 온몸을 덮으며 공처럼 쥐고 있던 위의 오른손과 아래를 받치고 있던 왼손의 위치가 서서히 바뀌었다.
“धर्मसंसार विपरीत”
“다르마삼사라 비파리타”
도연 스님의 나지막하지만 깊은 울림의 진언이 다시금 발동했다.
그 순간,
“어···어어···”
그동안 관망하며 냉소적으로 지켜보던 하르 망가스의 눈이 치켜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당황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붉은 하늘과 파란 대지가 거꾸로 뒤집히며 그의 머리도 돌아가고 있었다.
& “다르마삼사라 비파리타” : 천지전도 (天地顚倒), 하늘과 땅, 법칙이 뒤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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