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계에서의 대혈투 -2

‘천지전도(天地顚倒)’
믿기 힘들게도··· 광활한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역천의 세계가 눈앞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세상은 새로운 꿈을 꾸듯 상공은 어느새 하늘의 푸르름을 감추고, 그 자리를 끝없는 녹음이 가득한 숲과 초원을 지나 뜨거운 숨결의 금빛 사막과 차가운 눈꽃들이 은빛 설원 속에서 마치 작은 별들의 속삭임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 주위를 구름이 아니라 거인들이 조각한 듯한 웅장한 산맥의 등줄기를 따라 어둑하고 깊은 계곡과 종유석처럼 내려오는 차가운 윤기의 산봉우리가 한없이 굽이치며 꿈틀대고 있었고, 수만 리로 뻗어 나간 다리 주위로 파도가 숨 가쁘게 물결쳤다.
아~! 대하(大河)같은 폭포수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듯 우레같이 울부짖으며 상공을 향해 거대한 물줄기가 역류했다.
땅은 특유의 질감을 잃고 옅어지는 태양 빛 사이로 달과 무수한 별들로 점점 더 밝게 반짝이며, 고요하고 신비로운 심해의 바다처럼 넓고 깊은 무한함을 품었다. 그 속을 구름이 강물처럼 쉴 새 없이 흘렀다.
그 역천된 천지의 중간 지점은 무지개 같은 빛의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이는데 기묘한 기운으로 위와 아래를 나누었다.
그렇게 훈 초노와 하르 망가스를 태운 뷔르게드의 거대한 동체 역시 뒤집혔다.
본인의 의지로 뒤집은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전도된 힘으로 변질한 채, 오직 저 황금빛 가루라의 주위만이 홀로 고고히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다.
뒤집힌 세상에 하르 망가스의 한쪽 눈가가 파르륵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훈 초노에서 투사된 강대한 원혼의 창 역시 반대로 자신들을 향해 돌아오고 있는 게 어둑한 눈동자에 맺혔다. 폭발하는듯한 소름 끼치는 용오름 소리를 토해내며.
쿠아아아아앙!
이 경이롭고 황당한 상황에 훈 초노도 어이가 없었던지 한쪽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슈우우우욱!
원혼의 강대한 창을 피해 이제는 뷔르게드가 급격히 선회하려 할 때였다.
“···안 돼애애···.”
훈 초노의 다급한 음성보다 하르 망가스가 더 빨랐다.
그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두 팔이 고물줄처럼 삽시간에 늘어나서는, 두 손바닥이 자신의 몸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의 양 손바닥 한가운데가 쭉 갈라지더니 잿빛으로 뭉쳐진 섬뜩한 마력의 구슬을 토해내듯 튀어나와 창을 향해 벼락처럼 날아갔다.
퍼어엉!
그러나 자신이 쏟아 낸 힘은 근처에 놓인 거울에 반사된 빛처럼 손 쓸 틈 없이 돌아와 그대로 그의 몸을 강타해버렸다.
얼마나 지독한 힘이 실려있었는지 상공으로 한없이 날아 올라간 어린 소녀의 몸은 눈으로 확인하기 힘든 저 먼 산봉우리 하나에 그대로 처박히고서야 멈췄다.
쿠우우웅!
산봉우리 하나가 통째로 무너지는 굉음이 아스란히 들려왔다.
뷔르게드도 동체에 충격을 받고는 휘청거리다 가까스로 선회를 하며 혼신의 힘으로 거리를 벌렸다. 이내 지척으로 다가운 창을 피하기 위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급격히 날개를 틀었다.
쉬이이익!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원혼의 창이 위로 유선형을 그리며 올라갔다 다시 그들을 매섭게 따라오자 훈 초노의 눈이 살벌한 기세로 타올랐다.
“저기 산맥쪽으로 숨어 들어가!”
뷔르게드가 짙은 검붉은 눈빛으로 번들거리며 다시 전력을 짜내어 솟구쳐 상공의 계곡 사이로 가공할 속도로 숨어 들어갔다. 이에 또다시 빗나간 원혼의 창도 위로 치솟으며 빠르게 그들을 따라붙었다.
이후 뷔르게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상공의 계곡 사이를 이리저리 미친 듯이 회피기동을 하며 원혼의 창을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훈 초노 역시 자신이 쏘아 낸 마력의 창을 통제하기 위해서 손에서 끈적한 수백 개의 실 모양의 마력을 뽑아냈다.
그 수백 개의 암홍색의 실선이 창을 감싸 움직임을 통제하며 마력을 재차 흡수하려고 할 때였다.
가루라의 등에서 바위처럼 고요히 서 있던 도연 스님의 두 눈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거리에 상관없이 바로 눈앞에서 보고, 행하듯 두 손이 변화무쌍하게 위치를 바꾸자, 그때마다 뷔르게드 주위에 은빛의 막이 생겨났다.
그럴 때마다 훈 초노에게서 뻗어 나간 마력의 흐름이 차단되다 결국 수백 개의 실이 힘을 잃고 끊어져 버렸다.
크르르르릉!
신경질적인 신음 소리가 입가에서 흘러나오며 훈 초노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생겨났다.
결국, 훈 초노는 뷔르게드의 온몸에 직접 암홍색의 마력을 마구 밀어 넣어 추진력을 더했다.
“저쪽으로 통과해!”
계곡 사이에 좁게 솟아 있는 솟대 모양의 육중한 암석을 발견하고는 수직에 가깝게 곡예를 하며 그사이를 표홀하게 파고들었다.
해골 원혼의 창이 급격히 따라붙다 결국 솟대 모양의 거대한 암석에 때려 박혔다.
콰아앙!
암석에 부딪치면서 약화되어 잠시 속도가 주춤하기 전 이미 빠져나온 훈 초노가 허공으로 박차고 올라 주변 계곡 사이를 양 주먹으로 연타를 가하듯 암흑의 투기를 난사했다.
펑! 퍼퍼퍼펑!
그와 동시에 자신의 몸을 짙은 암흑의 투기로 두르고는 폭발적으로 회전시키자 역천의 힘으로 되돌아온 자신의 투기가 회전하는 와류에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가면서 계곡 사이의 절벽을 더욱 강한 속도로 무차별적으로 두드리며 파괴했다.
펑! 퍼퍼퍼퍼펑!
쿠르르르릉!
천둥같은 쉼 없는 폭발음 속에 이차로 계곡의 암석이 와르륵 무너져 파묻히고서야 창의 형상을 한 강대한 마력이 힘을 다하면 소멸했다.
* * *
“퉷, 퉷.”
“킥! 기껏 힘썼더니 도루묵이네.”
무너진 산봉우리에서 흙먼지를 떨어내며 일어나는 하르 망가스의 작은 입술이 웃고 있었지만, 눈은 짙은 잿빛으로 더욱 어둑해지면서 섬뜩한 칼날처럼 버려졌다.
“ㅅ발, 저 빡빡이를 어떻게 잡지?”
그가 뒤바뀐 하늘과 땅의 경이로운 풍경을 다시 둘러보다 실소를 머금고는 솜털처럼 떠올랐다. 제비처럼 가볍고 날렵하게 뷔르게드 쪽으로 움직였다.
* * *
도연 스님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अराजकता”
“아라자크다!”
별안간 상공에서 그동안 멀쩡하던 무수한 바윗덩어리들이 훈 초노에게 내리꽂혔다.
“젠장, 혼돈의 힘이다!”
단순히 대자연의 물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이 생겨나기 이전의 혼돈스러운 기운으로 대기가 어지럽게 요동쳤다.
뒤바뀐 상공에 놓인 대지의 물체들이 중력까지 보태어져 온갖 것들이 가공한 압사력을 가지고 그들에게 떨어졌다.
슈우욱! 슈슈슈슈슉!
크고 작은 바윗 덩어리들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그들이 움직이는 곳마다 쉴 새 없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뷔르게드는 밑바닥의 마력을 모두 끌어와 날개에 유선형의 칼날처럼 날렵하면서도 밀도있게 감싸고는, 장대비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는 빛의 그림자처럼 곡예비행을 거듭했다.
함께 타고 있는 훈 초노도 어르릉 거리며 각 여섯 개의 손가락에서 날카로운 혈기옥을 뽑아내자 마치 길다란 채찍처럼 변했다. 열둘 개의 채찍이 쏟아지는 무수한 바윗돌을 어지럽게 잘나내거나 풍차처럼 사방팔방으로 회전시켜 숨 가쁘게 박살 냈다.
샥! 샤샤샤샤샥!
하르 망가스는 그런 뷔르게드 일행을 도와주려다 도연 스님 쪽으로 시선을 돌려 폭발적인 속도로 날아갔다.
“스님, 이쪽으로 뭔가 빠르게 오고 있습니다.”
“·········.”
도연 스님이 3시 방향으로 치켜들어오는 음밀하면서도 엄청난 빠르기를 감지하고는 한쪽 손을 뻗어서 아래로 살포시 내리며 청아한 노랫소리같은 진언을 읊었다.
“पृथिवि, रोद्धुम् कुरु”
“프리티비, 로드둠 쿠루”
슈아아아악!
몸에 잿빛으로 피어오르는 불꽃 같은 형상으로 변한 하르 망가스가 온몸에 억센 핏줄이 돋아나며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다 별안간 두 눈을 치켜들었다.
하늘에서 커튼이 내려오듯 수십 미터의 거대한 흙벽들이 그의 사방과 위, 아래를 에워싸듯 내려와서는 공간을 위압적으로 좁혀왔다.
하르 망가스의 두 눈이 사이한 빛으로 더욱 짙어지면서 두 팔이 길어지더니 이전의 마력의 투사와는 다르게 손바닥에 그대로 짙은 안개의 강철같은 장갑을 두르고는 스트레이트를 꽂듯 직접 흙벽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쾅! 쾅! 콰콰콰쾅!
하나의 흙벽을 무너뜨리면 새로운 거대한 흙벽이 바람 같은 속도와 태산 같은 무게로 짓누르듯 내리꽂히며 정신없이 괴롭혔다.
‘ㅅ발, 미친 중놈하군.’
어린 소녀의 팔이 기이한 각도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쳐낼수록 얼굴이 갈수록 흉악해졌다.
* * *
펑! 퍼퍼퍼펑!
하늘에서 떨어지는 혜성같은 위력의 석우(石雨) 속에서 마력을 투사하며 고군분투하는 훈 초노와 뷔르게드의 얼굴이 갈수록 초초해졌다.
“이때로는 힘들다.”
훈 초노의 눈에서 섬뜩한 빛이 흘러나왔다.
“뷔르게드, 탈린군 병사들이 있는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이동해!”
뷔르게드의 검붉은 눈빛에서 의도를 알아채고는 다시금 돌아왔던 길로 선회해 전속력으로 비행했다.
쇄애애애애애액!
“스님, 완전히 도망가고 있습니다.”
무슨 의도인지 몰라 의뭉스럽게 바라보는 나의 말과는 달리 도연 스님의 눈에는 신광이 번쩍이며 끝을 내려는 듯 계속해서 공세를 가했다.
땅에서 흐르던 구름이 솟구치더니 훈 초노 일행의 시선을 어지럽히고는 바위 공격으로 중첩시키면서도 하르 망가스까지 상대했다.
이 광대한 소천계에서 행해지는 결계의 막강한 위력을 지켜보는 나의 눈은 연신 놀라움 속에서 점차 차분하게 심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 * *
탈린군이 사막을 막 벗어날 때였다.
세상이 붉고 파란색으로 물들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 순간,
그들의 발아래는 점차 어둑해지는 하늘이 펼쳐지고 구름은 물결처럼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 빛나는 별들은 바람을 타고 신비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에는 기묘한 무지개 같은 빛이 일렁거렸다.
마치 그들은 무중력 속에 별들과 함께 춤추며 땅을 거니는 기이한 세계의 변화에 모두가 넋을 잃고는 어리둥절했다.
냉막한 성격의 합라 조차도 이 거대한 세계의 경이적인 변화에 할 말을 잃고는 두리번거렸다.
훈 초노 일행은 사방을 분간하기 힘든 짙은 구름과 그 속에 머금고 있는 물방울들이 별안간 결빙되어 빙벽으로 가두기까지 했다. 그 고립된 공간에 육중한 석우의 무차별적 맹공에 만신창이가 되고도 묵묵히 버티며 계속해서 비행했다.
“찾았다!”
입가의 피를 닦으며 아래에서 혼이 빠진 듯 배회하는 탈린군 병사들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뷔르게드, 붙지는 말고 떨어져 크게 선회하며 맴돌아!”
슈아아아아아악!
뷔르게드는 수천 명의 탈린군을 중심으로 멀찍이 떨어져 계속해서 선회하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쉴 새 없는 공격을 피했다.
훈 초노 역시 혈기옥의 채찍으로 방어를 지속하면서 눈에서 막 폭발하기 직전의 분화구처럼 짙은 암홍색의 빛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위헬의 안개와 섞여 일대에 거대하고 사이한 구름같은 적운을 만들어 갔다.
“내려가자!”
그 거대한 적운을 두르고 무지개 같은 혼돈의 중심지를 지날 때에는 훈 초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혼돈의 기운 사이를 비집고 흘러 들어간 적운은 물에 풀어 논 잉크처럼 쉴 새 없이 기운이 요동치며 온몸이 분해되는 듯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부의 해골 원혼을 연쇄적으로 폭발시켜 심혼을 겨우 붙잡고는 내려오는데 성공했다.
쿠아아아아악!
수천 명의 탈린군 병사들을 덮을 정도의 사이한 구름이 중심부에서 실시간으로 더욱 커져가더니 그들의 모공으로 고요히 스며 들어갔다.
아아아아아악!
수천 명의 탈린군 병사들 사이에서 수천 갈래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탈린군 병사들의 몸에서 희뿌연 빛이 어리며 육체 내부에서 뭔가가 들썩거렸다.
끼이이이이익!
계곡 사이에 놓인 거대한 철문이 공명으로 뜯겨 나가는 듯한 끔찍한 소리와 함께 수천 명의 탈린군 병사들의 몸에서 영혼의 형체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수천 명의 영혼들이 나선형으로 회오리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 “아라자크다” : 혼돈, 무질서
& “프리티비, 로드둠 쿠루” : 땅이여, 막아라.
- 작가의말
개인적 사정도 있고 시절도 어수선해서 글이 잘 쓰이지 않더군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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