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마 대전의 서막과 푸른 눈의 마법사 -1

* * *
나는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각각 다른 네 손가락으로 감싸는 금강권인의 수인(手印)을 맺자 신성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장엄하고 용맹한 대자재천의 법체가 일어섰다.
고오오오오오!
섬뜩한 미소의 훈 초노의 손에서는 진득한 핏빛으로 물들인 혼돈의 기운이 흘러나오며 지옥의 거창을 생성하자 창 주위로 대기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더해서, 휘어진 두 뿔에서 어둑한 화염이 솟구쳐 회오리치더니 안광을 따라 전방을 향해 지옥의 혈로를 열었다.
그 염화의 맹렬한 불길을 따라 다시 지옥의 창이 쏟아지자 지나가는 곳을 따라 모든 생명체의 기운이 뭉텅뭉텅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나의 몸이 어느새 가부좌를 튼 채로 허공으로 떠오르며 손가락이 현묘한 리듬을 타며, 여래가 마왕 파순의 항복을 받을 때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빠르게 맺었다. 왼손은 손바닥이 무릎 위에 올려져 있고 오른손은 무릎에 대고 손가락이 땅을 가리켰다.
이 소천계에선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난 대자재천의 천왕형과 천녀형, 야차형의 삼면의 이마에는 이전에 볼 수 없던 세 번째 눈이 모두 떠지며 형형한 빛이 더욱 눈부시게 발광했다.
징~!! 지이잉~!
네 개의 팔 중 왼쪽 위에는 삼지창과 아래에는 금약병이, 오른쪽 팔 위의 손은 연꽃을, 아래 손에는 수주(數珠)가 들려 있었는데 저마다의 성스러운 빛을 뿜어내며 기운이 점점 강렬해지고 있었다.
웅! 우웅~!
지옥의 염화가 지나가는 일대의 공간이 삽시간에 녹아내리고, 창의 가공할 마력에 차원의 공간마저 뚫릴 것처럼 쇄도하며 대자재천의 눈앞에 닿을 순간.
금약병에서 청아하고 은은한 기파가 퍼져갔다.
그 가운데 아득한 너머의 음성처럼 진언이 흘러나왔다.
"मोक्षपुष्पं फुलन्त"
"모크샤푸슈팡 풀란투!"
금약병에서 흘러나온 은은한 향기의 달콤한 기파를 따라 황금빛 너울이 핏빛의 혼돈과 염화를 식이고, 오른손에 들려 있던 순백으로 발광하는 연꽃이 바람개비처럼 돌며 무수한 꽃잎으로 흩날렸다.
고오오오오오!
천상의 꽃비가 부드럽게 내리듯 꽃잎 하나하나가 신비로운 빛을 발하며 어둠과 혼돈 속에서도 별처럼 무수히 빛났다.
무수한 별들이 공중에서 춤을 추듯 그 한 송이, 송이가 지옥의 창과 맞닿을 때마다 빛무리가 연쇄적으로 터져 나오며 세상이 멈춘 듯한 고요함으로 점점 잠겨갔다.
어느 순간 너무도 고요한 정적이 사위에 내려앉았다.
쿠아아아아앙!
이내 귀청을 울리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그 가운데를 뚫고 훈 초노가 폭발적인 기세로 밀고 들어왔다.
쩡! 쩡! 쩌쩡!
쇄약해진 지옥의 창에 혼돈의 혈기를 때려 붓고는 연화의 꽃비를 헤집으며 달려들었다. 그대로 대자재천의 목 후두 부위를 향해 공간을 뛰어넘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찔러댔다.
대자재천의 야차형이 부리부리한 두 눈으로 치켜뜨고는 이마의 한가운데에서 기이한 청색의 파동이 뻗어 나가자 지옥창의 움직임을 잠시 둔화시켰다.
그사이 삼지창을 모로 세워 옆으로 쳐내자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손에서 한 바퀴 회전한 삼지창이 그대로 훈 초노를 향해 반격을 가하며 빛살같이 날아갔다.
슈아아아아악!
훈 초노가 날개에 혈기를 두텁게 감쌌다. 그와 동시에 폭발적으로 회전하며 삼지창을 흘러버리고는, 손을 뻗어 날아간 지옥의 혈기창을 불러들였다.
다시 손에서 떠난 지옥창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거듭하더니 벗어날 수 없는 십육 방위를 모두 점하고는 수십 개로 분화되어 대자재천의 온몸으로 매섭게 파고들었다. 일시에 대자재천의 주위로 검은 보자기로 감싼 듯 어둑한 그림자로 가려졌다.
이에 질세라 대자재천의 등 뒤 광배에서 눈부신 원형의 투기가 빛살처럼 뻗어 나가 파고드는 지옥의 혈기창을 밀어내면서 긴 수주로 하나씩 빠르게 쳐내며 지워나갔다.
퍼퍼퍼퍼퍼퍽!
이후 허공에서 청명한 삼지창과 사이한 지옥의 창이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청백과 암홍의 빛으로 얽혀 어부의 그물망처럼 공간을 가득 메우며 섬뜩한 공방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 * *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먹구름의 시커먼 동공 사이로 쏟아진 악귀전사의 수는 어느새 만 단위를 훌쩍 넘으며 사위를 까맣게 뒤덮고 있어 기가 질릴 정도였다.
도연 스님의 얼굴은 점점 핏기없는 창백한 표정으로 굳어갔다. 전방에는 눈부신 원형의 판이 여러 개가 형성되어 그곳에 새겨진 각각의 원형의 무늬에서 셀 수 없는 화살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휘리리리리릭!
펑! 퍼퍼퍼퍼펑!
밀고 들어오는 악귀의 웨이브를 정신없이 겨우 틀어막고는 있었지만, 뒤에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어둠의 무리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소천계는 차가운 죽음의 그림자가 세상을 뒤덮을 것처럼 공포와 절망으로 울부짖는 암홍색의 물결로 숨 가쁘게 출렁거렸다.
‘이대로는 힘들어.’
도연 스님의 눈이 지금도 실시간으로 뭉텅뭉텅 쏟아내는 상공의 먹구름을 힐끗 바라보며 눈빛이 어둑해졌다.
그의 품에서 청록색의 인형 하나를 끄집어내서는 허공으로 띄웠다. 짧은 진언을 읊자 고요한 빛을 뿜어내며 인형의 눈이 깊은 바다색을 연상시키듯 빛나더니 점점 몸집을 불리며 거대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그 청록 거인의 입이 벌어지자 자신과 비슷한 청록 피부에 붉은 눈과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야차들을 마구 쏟아냈다.
어느새 뾰족한 쇠침이 박힌 쇠몽둥이나 짙은 묵빛의 쇠창을 든 거구의 야차가 천여 명에 이르며 군대처럼 진영을 갖추어 질서 있게 정열 했다.
그동안의 온화하던 얼굴과는 달리 도연 스님은 전장의 백만 대군을 지휘하는 장수가 된 것 같은 위엄있는 묵직한 음성으로 전방을 향해 외쳤다.
“악귀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쿠와아아아아!
청록 야차들의 용맹한 외침과 함께 밀고 들어오는 악귀 광전사들을 향해 내달리며 쇠몽둥이와 쇠창을 무자비하게 휘둘렸다.
퍽! 퍽! 퍼퍼퍼퍽!
악귀보다 머리 한두 개는 더 큰 야차의 공격에 악귀전사들의 머리통과 어깨가 곤죽이 되듯 터지거나 찌그러졌다. 좀 더 후방은 빛의 화살이 쉴 새 없이 두드리며 저지선을 넓혀갔다.
* * *
“가루라! 날아올라라!”
도연 스님의 온몸이 자바라 여신의 화염으로 붉게 물든 가운데 가루라 역시 거대한 불새가 되어 상공으로 솟구쳤다.
가루라의 몸이 황금빛 어린 불길로 타오르며 수만 명으로 불어난 악귀 전사들의 한복판을 가르며 입에서 멸마의 불길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카아아아아악!
신성한 법염(法炎)의 불길에 지나는 곳마다 악귀전사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녹아내렸고, 돌아보며 마치 파헤쳐진 산맥의 협곡처럼 수백이 몰살당했다.
그런 가운데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지옥의 전사에 혀를 내두른 도연 스님과 가루라는 먹구름 속에 자리한 어둑한 동공들을 향해 솟구쳤다.
"नरकद्वारं तथागतधर्मप्राणेन भरिता भविष्यति।"
"나라카드바람 타타가타다르마프라넨 바리탐 바비샤티."
불새의 머리 위에 합장을 한 채 고고히 서 있는 도연 스님이 눈을 감고는 숨을 깊게 들이켜며 신비롭고 기이한 긴 진언을 읊어갔다.
그러자 천지가 전도되며 가운데를 나누며 은은하게 일렁이던 무지개빛이 올라와 도연 스님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연 스님이 두 눈을 천천히 뜨면서 고요한 울림을 냈다.
"지옥의 문은 여래의 법숨(결)으로 메워지리니.“
나지막한 외침과 함께 도연 스님의 코에서 무지개빛이 모래처럼 알갱이 져 흘러나오더니 상공으로 치솟아 지옥으로 열린 차원의 문들을 점점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카아아악!
무지개빛 광사(光砂)에 닿는 악귀들은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 비명을 토하며 녹아내리자, 지옥의 차원에서 넘어오던 악귀들이 점차 줄면서 빠르게 동공을 메워나갔다. 그렇게 산봉우리마다 맺혀 있던 어둑한 구름 속 지옥의 문들이 빠르게 하나둘 막히면서 도연 스님도 어느 정도 안도감을 되찾았다.
* * *
대자재천과 훈 초노 간의 혈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살벌해지면서 청백과 암홍의 빛들이 불꽃놀이를 하듯 터지며 가공할 투기들이 정신없이 오고 갔다.
어느 순간 훈 초노가 날개를 펄럭이며 후방으로 훌쩍 물러나더니 뒤로 시선을 재빠르게 틀었다.
‘그렇게 쉽게는 안 되지.’
도연 스님은 지옥의 문을 다 막아 버리고는 남겨진 악마의 군대를 향해 법염의 브레스를 날리며 하강하고 있었다.
훈 초노의 두 눈이 이글거리는 붉은 빛으로 끓어오르더니 짙은 암홍색의 광선이 뻗어 나가 무지개빛으로 일렁이는 공간을 때렸다.
찡이이이익!
두 눈으로 철판에 용접을 가하듯 쉴 새 없이 불꽃이 튀는 가운데 그 빈틈을 노리며 등 뒤로 순백의 삼지창이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며 접근했다.
삼지창이 등 뒤 지적까지 다가왔는데도 훈 초노의 두 눈은 계속해서 지옥의 문을 넓히는데 몰두한 나머지 무방비 상대로 너무도 허술해 보였다.
그런데.
삼지창이 훈 초노의 몸으로 파고 들어가는 순간 온몸이 검은 먹물처럼 흐려지며 삼지창이 그대로 구멍을 만들고는 아무런 부딪치는 느낌도 없이 통과해버렸다.
이 기이한 현상에 나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이해되지 않는 현상에 초반 합공 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죽은 줄 알았던 훈 초노가 거대한 먹물 같은 그림자로 되살아나는 모습이.
크크크크큭!
“그 정도 실력으로는 나를 더 이상 해하지 못한다.”
그의 섬뜩한 쇳소리와 함께 지옥문이 다시 열리며 또 다른 곳으로 암홍색의 광선을 투사하며 지옥문을 재차 열기 시작했다.
나는 천변만화해지는 얼굴로 훈 초노의 어둑하게 일렁이는 그림자같은 등 뒤를 보며 어금니를 깊게 씹었다.
* * *
도연 스님이 다시 하강하며 종횡무진으로 암흑의 군대를 불새가 된 가루라를 타고 법염으로 태워버리다 다시 불어나는 악귀 떼에 아연실색했다. 또다시 열린 지옥문에 훈 초노가 있는 지점을 바라보며 얼굴이 납덩어리처럼 무거워졌다.
그가 다시 힘을 내어 먹구름 일대로 솟구칠 때였다.
기이이이이익!
엄청난 무게의 무언가가 기울여지는 소리와 함께 놀랍게도 수미산이 실제 기울고 있었다.
얼마 있다,
쩌어어억! 쩌어어어어억!
상공의 공간이 조금씩 금이 가지기 시작하면서 천지가 전도되어 있던 대지의 물체들이 하나씩 힘을 잃고 떨어지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지상에도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큰일이다. 가온아! 결계가 무너지고 있다!”
훈 초노를 막으려고 온갖 법력을 구사해도 헛수고를 보이고 있던 나 역시 상공이 붕괴되는 현상에 눈이 급격히 흔들렸다.
나와 도연 스님은 동시에 수미산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가자 훈 초노도 두 눈에 광선을 거두고는 우리들의 뒤를 따라왔다.
* * *
사천왕의 몸체가 파편처럼 부러지며 움직임이 멈추자 하르 망가스는 거대한 사원의 내부로 들어가 장육존상을 그대로 강권으로 두들겼다.
콰아앙!
그러나 장육존장에서 엄청난 황금빛 빛무리의 반발력이 터져 나오면서 하르 망가스의 몸이 추풍낙엽처럼 마당으로 떨어졌다.
“이씨, 이게 진짜 가지가지 처하네.”
이후 하르 망가스는 강권으로 안 되자 마력의 구슬을 터뜨려보기도 하고 거미줄을 쳐 물어뜯어도 보았지만 꼼짝을 하지 않았다.
마당에 털썩 주저앉은 하르 망가스는 어느새 작은 소녀이 되어 있었고, 소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눈에 잿빛을 짙게 드리우며 주위를 훑기 시작했다.
“그렇군.”
이곳은 이 소천계의 결계 공간을 만들 핵심이다 보니 그만큼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이곳 자체도 장육존상을 중심으로 탑과 여러 부분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뭉쳐 힘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다.
소녀가 엉덩이를 털고는 일어나 신비로운 보탑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의 손에서 잿빛 기운이 어리더니 길게 뻗어 나가 보탑의 밑동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쾅! 쾅!
“역시나 강하네.”
그가 다시 부서진 금강역사의 잔해 속에서 부러진 보검과 보탑, 금강저, 비파를 가져왔다. 아직도 법기 내부에 법력의 잔해가 남아 있었던지 하르 망가스의 손이 불에 덴 듯 지직거리며 살 타는 냄새가 났지만, 그럴 때마다 빠르게 재생되며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가 일단 부러진 보탑 하나를 잡고는 팔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더니 채찍처럼 휘두르며 구층탑의 아랫부분을 재차 강타했다.
쾅! 쾅! 콰콰콰쾅!
쩌어억!
어느 정도의 추론이였지만 역시나 같은 법기 끼리의 충돌에는 반발력없이 충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후 망가진 보탑을 던지고는 차례로 나머지 법기로 계속해서 채찍을 휘두르듯 엄청난 속도로 충격을 가하자 점차 보탑의 밑동이 금이 가졌다.
쿵! 쿠쿵!
마지막으로 하르 망가스가 발길질을 가하자 보탑이 기울여지며 육중한 소음과 함께 구층탑이 무너져 넘어갔다.
기이이이이익!
보탑이 무너지자 거대한 수미산이 점차 기울여졌다.
“키키키킥! 좋아 좋아!”
하르 망가스는 자신의 예측이 맞자 찢어진 입으로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는 자신의 몇 배나 되는 거대한 보탑을 둘러멨다.
그리고 종아리 비복근과 허벅지 대퇴사두근이 잿빛의 기운으로 부풀어 오르더니 날렵하게 한 바퀴 회전을 가했다. 그 회전력을 이용해 마치 올림픽 선수가 투포환을 던지듯 보탑을 장육존상을 향해 공기를 찢어발기며 투사했다.
콰아앙!!!
& "모크샤푸슈팡 풀란투!" : "해탈의 꽃이여, 피어나라!"
- 작가의말
메리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즐거운 시간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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