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판타지 소설을 읽다 보면 다들 이런 상상을 한 번씩은 해보았을 것이다. ‘판타지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라고.
왜 아니 그렇겠는가.
그 미모 하나만으로도 소설이며 만화며 음지와 양지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숲의 요정 엘프.
짜리몽땅한 단신에 맥주를 좋아하며 손재주가 뛰어나 장인 종족으로 유명한 드워프.
수상할 정도로 동물을 좋아하는 특정 취향을 저격하는 온갖 동물을 의인화한 수인족.
왕성한 번식력과 강력한 육신, 돼지를 닮은 외형과 호전적인 성향 등으로 인해 인류의 주적으로 등장하는 오크 등등.
저마다의 개성이 가득한 여러 종족들과 온갖 신비가 실존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실존한다면 한 번쯤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썩 이상한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하지만 정말로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수상한 트럭에 치인다던가, 어떠한 초월적인 존재를 만난다거나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평범한 현대인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판타지 세상 속에 내던져지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마왕의 침략에 멸망을 눈앞에 둔 인류. 그때, 신의 선택을 받은 이세계 용사의 등장. 온갖 시련을 견뎌낸 끝에 마왕을 물리치고 인류의 평화를 되찾으며, 아름다운 엘프 연인과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니면 마나라는 신비로운 힘을 다루는 마법사가 되어, 이종족 동료들과 함께 세상의 신비를 찾아 떠나는 신비하고 스릴 넘치는 탐험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것도 아니라면 현대의 지식을 바탕으로 비누로 시작하여 온갖 현대의 발명품들을 탄생시켜 세상의 모든 부를 한 손에 거머쥐는 거상의 삶, 혹은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귀족 작위와 영지를 사서 영지를 발전시켜 나가며 왕국 나아가 제국을 건설하는 위대한 군주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글쎄···직접 판타지 세상을 살아본 경험자로서 말해보자면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신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로부터 어떠한 ‘혜택’이란 녀석을 갖게 되거나, ‘운’이 특출나게 좋아 높은 신분의 몸에 빙의하거나 태어나지 않는 이상, 혹은 본인 자체가 ‘특별한’ 인간이 아닌 이상에야 판타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현대인의 삶이란 뻔했다.
“제, 제엔 자으으앙. 고작 고블린 따위에게···”
갑작스레 닥쳐온 이상 현상에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숲속을 떠돌다가 판타지 세계의 최약체 종족, 고블린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던가.
“이 빌어먹을 노예 놈아! 빨리 일하지 못해?”
“어쭈? 지금 손이 노는 것 같은데? 오늘 간만에 매질이나 좀 당해볼 테냐?”
“야! 노예! 한스네 밭일 끝나면 우리 집 밭일 해야 하는 것 잊으면 죽는다!”
온갖 고생 끝에 발견한 마을에 찾아갔더니 화풀이 인형 취급을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노예의 삶을 강요받는다던가.
“도, 도적이다!”
“자경단! 자경단은 어디 있어어어!”
“트, 틀렸어! 어서들 도망쳐어어!”
“으헤헤! 남자는 범하고 여자는 죽여라!”
어느 평범한 시골 마을을 약탈한 도적인지 용병인지 모를 놈들 손에 끌려가 노예상에게 팔려 간다던가.
“오, 온다!”
“야! 신병! 정신줄 놓지마! 빨리 창 들어어어!”
“기병 돌격이다아아! 빨리 차아아아앙!”
기껏 큰맘 먹고 목숨을 내건 대탈출 계획을 짜두었더니 다음날 노예병이 되어 전장이라는 지옥 속에 내던져진다든가 하는. 그런 비참한 삶만이 존재할 뿐이다.
다만, 이것도 남성일 경우에나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지 만약 여성이 판타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어휴. 그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지. 쿨럭.”
기침과 함께 피를 한 움큼 토해내었다.
혈액 특유의 쇠 비린내가 입안 가득 머물렀다.
힘겹게 고개를 움직여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시체고, 까마귀였다. 살아있는 생명체라곤 까마귀를 제외하곤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흐. 흐흐···”
그 살풍경한 광경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난데없이 판타지 세상에 뚝 하고 떨어지고 난 이후 숱한 위기가 찾아왔지만 모두 버텨내고 이겨내었다. 그러던 와중 어느 순간부터 꿈을 꾸게 되었다.
현대에서의 하루하루 살아가기 급급한, 별다른 미래를 그리지 않고 남들 그렇듯 사니까 살아가는 그런 평범한 삶이 아닌.
판타지 세상을 여행하며, 이종족 친구들을 사귀고, 소설 속 주인공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노라 자부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본다고 살아 봤는데···하하.”
흔해 빠진 용병 1.
주연은커녕 조연조차 되지 않는 배경이나 다름없는 엑스트라. 그게 최종적으로 내가 맡은 배역이었다. 뭐···그 보잘것없는 배역조차 이제 슬슬 끝난 것 같지만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노예병 신세를 면했을 때 바로 한적한 시골에 정착할 걸 그랬나.”
전장에서 자그마한 공을 세운 대가로 받은 포상금. 그걸 들고 장비를 맞춰 용병 일을 시작할 것이 아니라 조그맣게나마 밭이라도 사서 곡식을 키워 먹고 사는 농부의 삶을 선택했더라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여성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조금씩 돈을 모아 노후에나마 판타지 세상을 유람하고 다니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았더라면··· 만약 그랬다면, 최소한 이런 허무한 최후는 피했을지도 몰랐다.
“크흑. 어우. 이제 슬슬 끝나려나 보네.”
고통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거칠던 숨결이 느릿해져 갔다. 동시에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보니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 느껴졌다.
“허무하네···”
그렇게 내 첫 번째 삶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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