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니고 주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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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뇨
그림/삽화
니나뇨
작품등록일 :
2024.10.28 21:05
최근연재일 :
2024.11.21 23:0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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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6
추천수 :
585
글자수 :
155,475

작성
24.11.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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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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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2쪽

6화

DUMMY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쉬자 뽀얀 입김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주변을 돌아보니 온 세상이 백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반은 시선을 옮겨 둔덕 아래를 훑어보았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풀을 뜯는 가축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들판에는 다양한 종류의 깃발과 함께 이동식 천막들이 군데군데 무리 지어 뭉쳐 있었다.


“···많이 늘었네.”


안드레이가 광장에서 연설을 할 때만 해도 당장이라도 내지를 약탈하거나, 인근 부족들을 힘으로 무릎 꿇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지난 한 달 동안 안드레이가 한 것은 주변 부족들을 회유하는 일이었다.


안드레이는 제 측근들과 함께 주변 부족들을 방문하며 내지가 얼마나 부유한지, 함께 힘을 모으면 나라 하나도 털어먹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들을 설득하였다.


처음엔 대다수의 부족들이 이놈들이 우릴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며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당장 겨울이 오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약소 부족들이 합류하기 시작하며 덩치를 불려 나가기 시작하자 (합류를 결정한 것과는 별개로) 자신들의 지분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소극적이던 부족들도 태도를 바꾸어 앞다투어 합류하니 그렇게 모인 부족의 숫자가 흰 사슴 부족을 포함하여 24개 부족이요, 전사들의 숫자는 물경 1만에 달했다.


“모일 만한 부족들은 거의 다 모인 것 같으니 조만간 가겠네. 어휴. 내가 만약 저 약탈 집단을 처음 맞이하는 영지에 살았다면···”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린 이반이 몸을 부르르 떠는데 저 멀리서 이반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들이 보였다.


“헉헉···이반 형! 있잖아···”


“바바 할머니 다 나았대! 이건 육포 몇 개 짜리야?”


“아! 그거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이반! 어제 이끼 돌 부족이랑 큰 바위 부족이 싸웠대.”


“이반! 이거 들었어? 며칠 뒤에 내지로 약탈을 나간대!”


“이반! 어젯밤에 모니샤 아줌마가 호른 형아랑 둘이서···”


“이반! 이반!”


이반 앞에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이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병아리들처럼 삐약 거리며 시끄럽게 떠들어 대었다.


남들이 본다면 이반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구나 싶겠지만 아이들이 이러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한 달 전, 이반은 몸집을 키우기 위해 두 형들에게 음식을 최대한 많이 구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두 형들인 안드레이와 알렉세이는 이반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한데 부탁을 들어줘도 너무 잘 들어주어 하루에 짐승 한 마리씩 툭 던져주었는데 혼자서 처리하기엔 너무 많은 양이었다.


그렇다고 내버릴 수도 없어 이반은 남는 고기로 육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 외로 맛이 좋았다.


그렇게 나날이 육포는 쌓여만 갔고 더 이상 보관이 힘들 상황까지 도달하자 이반은 이것들을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처분할 곳은 많았다. 흰 사슴 부족이 제법 규모가 크다곤 해도 초원 부족 특성상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렸으니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나눠줘도 서로 가져가겠다고 다툴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이반은 그런 식으로 소모하고 싶진 않았고 어떻게 하면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소모 시킬까 고민하다 투자를 해 보기로 결정했다.


투자의 대상은 부족의 아이들. 성인들에게 나누어 주기엔 모자라나 대상이 아이들이라면 충분하게 나눠줄 수 있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물론 투자라고 마냥 주는 것은 아니었다. 아침마다 찾아와 어떤 이야기든 해 주면 거기서 쓸모 있다고 판단한 이야기에 따라 차등을 주어 육포를 나눠주었고 이 투자는 대성공을 맞이하여 최근에는 타 부족의 아이들도 찾아올 정도였다.


“자자. 줄 서. 줄.”


먼저 육포를 받겠다며 앞다투어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능숙하게 줄 세운 이반은 아이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으며 육포를 나눠 주었다.


너는 쓸만한 정보를 들고 왔으니 육포 5개. 너는 그보다 부족하니 육포 3개. 그리고 너는 네 동생이 이불에 오줌 싼 이야기를 들고 왔으니 1개. 또 너는 아무것도 못 받으면 슬플 테니 1개.


뭐, 이런 식으로 정보의 질에 따라 차등은 주되 못 받는 아이가 없도록 골고루 육포를 나눠준 이반은 손을 탁탁 털었다.


“자. 이제 끝. 돌아가.”


[와아아~]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몰려갔다. 멀어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녀석들이 마구잡이로 내뱉던 이야기 중 쓸만한 정보들만 쏙쏙 골라낸 이반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소꿉놀이는 이제 다 끝났니?”


이제 막 일어난 것인지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다가온 알렉세이의 물음에 이반이 어깨를 으쓱였다.


알렉세이가 이반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몸 여기저기를 매만졌다.


“아. 징그럽게 왜 이래?”


이반이 질색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흐음. 네가 덩치를 키운 게 한 달째지?”


“어. 뭐.”


“따로 훈련 같은 것도 안 했고?”


“맞아. 살집을 불리는 게 제일 급하기도 했고 훈련 시켜줄 알렉시도 최근에 많이 바빴잖아. 그런데 왜? 뭐가 이상해?”


“아니. 그건 아니고 덩치만 키운 것 치고 근육이 제대로 붙어 있어서. 먹기만 해댔는데 살만 불어난 게 아니라 근육도 커졌다니. 타고난 건가?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차라리 잘 됐지.”


“잘돼?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이제 슬슬 내지로 갈 것 같거든? 그래서 나온 말이 이번 성인식을 동시에 치르자고 하더라고.”


“성인식을?”


초원의 아이들은 열다섯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게 되는데 놀거리가 부족한 초원에서 이것은 하나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성인식을 치르는 아이들은 홀로 초원 각지로 퍼져나가 사냥감을 잡아 와야만 하는데 초식 동물은 안 되고 오직 육식 동물만이 사냥감으로 인정받았다. (참고로 사람 또한 육식 동물로 취급하여 타 부족의 전사를 잡아 오면 인정해 주기도 했다.)


“들어보니까 전사가 최소 만 명은 동원된다고 하던데 그걸로도 사람이 부족한 거야?”


“그건 아니고 성인식을 치르자니 부족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으니까 사냥감을 내지의 전사로 지정해서 얄탈 하는 김에 성인식도 한 번에 치르려는 것 같더라구.”


“그래서 언제 시작하는데?”


“글쎄···계획대로면 진작 시작했어야 하는데 약탈해 보고 많이 약하다 싶으면 거기에 정착하자는 부족이 제법 많아서 그 문제를 조율한다고 한세월, 약탈품 분배 때문에 전사들 숫자로 분배할지 약탈 지역을 나눠서 알아서 부족마다 알아서 해 먹을지를 조율한다고 또 한세월. 뭐, 이래저래 조율할 게 많아서 정확히 언제라고 말을 못 하겠지만 식량 사정이 빠듯할 테니 늦어도 한 달 안에는 움직일걸?”


“그래?”


최대 한 달 정도 시간이 남았다는 대답에 이반은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본 알렉세이가 슬쩍 물었다.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그동안 형이랑 훈련이라도 할까?”


“미안하지만 선약이 있어서. 그럼!”


이반이 도망치듯 뛰어나갔다. 알렉세이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닌 듯 이반을 붙잡지는 않았다.




...




“어휴. 큰일 날 뻔했네.”


집에서 멀어진 이반은 힐끗- 뒤를 돌아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 있을 약탈과 성인식을 생각한다면야 알렉세이와 함께 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썩 마음이 동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이반의 흥미를 이끄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신수와 이능력, 영력과 주술의 존재를 인식한 이후로 이것들은 이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이 중 비중이 큰 것은 주술이었다.


앞의 세 가지는 당장 어쩔 수 없는 것들이지만 주술의 경우 습득 가능성의 문제만 존재할 뿐 당장 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흐흐흥~”


절로 나오는 콧노래와 함께 바바의 천막 앞에 도착한 이반은 잠시 천막을 바라보았다. 나무 기둥으로 뼈대를 세우고, 양모로 만든 펠트로 벽과 지붕을 덮은. 큰 틀은 다른 천막들과 같았다.


그러나 벽면에 새겨진 구불구불한 글자들과 뱀부터 시작해서 지네, 거미 등의 독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은 공포 영화 그 자체였다.


심지어 입구의 문틀 위에는 큰 뿔이 인상적인 순록인지 사슴인지 모를 생명체의 두개골까지 턱- 하니 걸려 있으니 마왕성이 따로 없었다.


‘전에는 이런 장식들이 단순히 바바의 악취미라고 생각했지만···이제 보니 뭔가 주술적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해.’


바바의 천막을 빙글빙글 돌며 한참을 관찰하던 이반은 이내 이렇게 본다고 뭔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곤 입구 앞에 서서 소리쳤다.


“바바 할머니! 안에 계세요?”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안에서 인기척과 함께 문이 열리며 백발의 허리가 굽은 노파가 지팡이를 짚은 채 모습을 드러내었다.


“누가 올까 했더니만. 볼프네 막내였구나.”


참고로 볼프는 흰 사슴 부족의 전 족장이자 이반 형제들의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거라.”


말과 함께 바바가 다시 문 안으로 사라졌다.


“바바 할머니? ···뭐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반이 어째야 하나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


바바의 천막 안으로 들어온 이반은 속으로 감탄했다. 어둑한 공간에 화롯불의 불길만이 빛을 내고 있으니 뭔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냄새가 좀···’


화학 약품 특유의 냄새와 시체 썩는 냄새가 뒤섞여 절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인가 싶어서 둘러보니 화학 약품 냄새는 화로 위에서 요상한 액체를 끓이고 있는 냄비에서 나는 냄새였고, 시체 썩는 냄새는 벽에 걸린 온갖 동물의 사체에서 나는 것 같았다.


“들어 왔으면 앉지 않고 뭘 그리 두리번 거리누?”


“아. 네.”


이반의 오른편에 자리를 잡고 앉자 바바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네?”


“손 내놓으라고.”


“아, 네.”


이반이 손을 내밀자 바바가 이반의 손을 잡더니 잠시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빈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는가 싶더니 언제 꺼냈는지 모를 바늘로 이반의 검지를 콕- 찔러 피를 냈다.


이에 이반이 깜짝 놀라 손을 뺐지만 바바는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는 듯이 신경조차 쓰지 않고선 바늘에 묻은 이반의 피를 핥았다.


그 괴상한 모습에 이반은 심리적인 불쾌감이 느껴져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흠. 생각보다 재능은 없구먼.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옛다. 받거라.”


바바가 책 한 권을 이반에게 건넸다. 이반이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살펴보니 책 겉면이 온통 검게 칠해져 있어 무슨 내용이 적힌 책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저···이게 무슨 책인가요?”


“찾던 거 얻었으면 이만 가 봐.”


“제가 찾던 거요?”


“스읍. 얼른 나가지 않고 뭐해!”


바바의 호통에 이반은 순식간에 밖으로 내쫓겼다.


밖으로 나온 이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몹시도 맑았으며, 날은 밝았다.


“대체 뭐였지?”


너무 순식간에 일이 휙휙 진행되어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것 같았다. 그래도 손에 남아 있는 검은 책이 현실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진짜 뭐지?”


분명 주술에 대해 묻고 배울 수 있으면 배워보려고 찾아온 것인데 질문은커녕 일방적으로 이리저리 휘둘리다 내쫓기니 황당하다기보다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흐음···”


이반은 책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일단 재질은 종이가 아니라 양피지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슬쩍 첫 페이지를 펼쳐 보니 붉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모든 주술은 등가교환임을 명심하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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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1 24.11.12 429 22 13쪽
16 15화 24.11.11 463 2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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