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니고 주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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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뇨
그림/삽화
니나뇨
작품등록일 :
2024.10.2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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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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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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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화

DUMMY

『첫 장에서 강조하였듯 모든 주술은 등가교환의 법칙을 따른다. 따라서 주술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 해야 하며 여기서 대가란 제물祭物과 재물財物이다.』


『재물財物은 흔할수록 가치가 낮으며, 희귀할수록 가치가 높다.』


『제물祭物의 가치를 구분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격이 높은가. 낮은가.


둘째.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셋째. 동족이냐. 아니냐.


특정 제물을 요구하는 주술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주술에서 제물의 가치는 전자에 해당할수록 더 가치가 높다.


예시로 격이 높으며, 살아있고, 동족인 제물은 최상급의 가치를 지니며, 격이 낮으며, 죽어있고, 동족이 아닌 제물은 최하급의 가치를 지닌다.


격의 경우 영안靈眼을 개안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혼의 밝기가 밝을수록 격이 높으며, 흐릴수록 격이 낮다.


영안을 개안하지 못한 상태라면 추상적인 방법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데 보통 나이에 따라 구분할 수 있으며 가치가 높은 순서는 성년, 유년, 노년 순이다. 여기에 사회적 지위, 생명체가 지닌 무력 따위가 변수로 작용하기도 하기에 ‘경험’과 ‘감’에 의지하여 구분하는 수밖에는 없다.


영안을 개안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이를 정도의 위험을 겪거나, ‘혼 불러오기’ 의식을 통해 혼을 자주 접하거나, 갓 죽은 시체와 시간을 자주 보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혼과 친밀해져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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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은 몹시도 다양하여 여러 갈래의 길로 갈라지는데 대표적으로 점䀡, 축복祝福, 저주詛呪, 사역使役, 강령降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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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술使役術은 이론적으로 세상 만물을 사역할 수 있다. 불, 물, 바람, 흙 같은 4대 원소를 비롯하여 피, 철, 빛, 어둠, 영혼, 시체, 생명체 등 존재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사역체로 만들 수 있다. ······내가 본 최악의 결과는 사역체에게 술사가 산 채로 잡아먹힌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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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술降靈術은 혼을 다루는 주술로 그 특성상 몹시도 위험하여 항상 주의해야 하며, 만약 충분한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신체를 빼앗길 수도, 영혼이 뒤틀릴 수도, 최악의 경우 영혼이 소멸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강령술에 입문하고자 한다면···』


탁-


책을 덮은 이반은 옆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부분만 훑어보았는데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반이 볼 때 주술은 몹시도 음습하고 음험했다.


이반이 즐겨 읽었던 장르 소설에 비유하자면 마법은 밝고 희망찬 판타지 소설이며 주술은 꿈도 희망도 없는 공포 소설 혹은 크툴루 소설이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라고···”


당장 접할 수 있는 판타지적 요소가 주술 뿐이기에 잠시 마음이 흔들려 읽어 보았지만 암만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호불호를 떠나서 주술은 너무 위험했다.


심지어 스승도 없이 책만 보고 익혀야 하니 그 위험성이 얼마나 높아질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바바 할머니한텐 미안하지만···이건 무리야. 무리.”


주술에 대한 미련을 내던져 버린 이반은 침상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할 것도 없겠다 낮잠이나 잘 생각이었다.


우웅─


이반이 잠에 빠져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렇나 던져둔 책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점점 크기를 부풀려 나가더니 이내 날카로운 이빨이 빈틈없이 빼곡한 입을 가진 구체 형태의 괴물로 변화했다.


이 괴물은 잠시 방안을 둘러보는가 싶더니 그 거대한 입을 쩍- 하고 벌리며 순식간에 이반을 집어 삼켰다.




...




꿈.

사전적 정의로는 수면 시 경험하는 일련의 영상, 소리, 생각, 감정 등의 느낌을 말하며,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꿈이란 잠에서 깨어난 후 회상되는 회상몽을 말한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으나 전생의 지구에서 살 적의 이반은 회상몽을 자주 겪는 편이었다. 이틀에서 삼 일을 주기로 회상몽을 겪었는데 내용은 주기 동안 읽은 소설의 내용과 장르에 따라 달라지곤 했다.


이반은 이 회상몽을 겪는 것을 무척이나 즐거워했는데 간접적으로나마 판타지 세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판타지 세상으로 전이된 이후로는 회상몽을 겪는 일이 무척이나 드물어졌다. 그나마 겪는 것도 악몽인지라 어느 순간부터는 회상몽을 겪는 것이 꺼려지기까지 했다.


때문에 이반은 현재 상황이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며, 주변은 들풀이 무성히 자란 새파란 초원이 지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어 마치 녹 빛 바다를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이반이 당황한 이유가 아니었다. 이반이 당황한 이유는 너무나도 생생한 감각 때문이었다.


바람은 선선했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분명 이 상황은 꿈이었다. 방금 막 잠에 들었으니 꿈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꿈이 너무 생생했다. 마치 현실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러니 당황할 수밖에.


“뭐···응? 목소리가···”


심지어 말도 할 수 있었다.


이쯤 되니 이반은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얼떨떨한 마음에 이반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떠보기도 하고, 뺨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하···하핫.”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일단 정신이라도 차려야겠다 싶었던 이반은 마른 세수를 했다. 그 순간 지평선 너머로 빛이 반짝였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잘못 봤나 싶었던 이반은 다시 마른 세수를 하려 했는데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지평선 끝자락에서부터 불길이 넘실거리기 시작하더니 불길은 삽시간에 하늘마저 뒤덮어 버렸다.


너무 놀란 이반이 입만 뻐끔거리는데 누군가가 이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화들짝 놀란 이반이 발작하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불타는 듯한 진한 붉은 머리칼에 신비로운 녹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인이었다.


“···내가 여자에 굶주렸나?”


이반이 무심코 중얼거리자 여인이 깔깔거리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어찌나 웃어대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웃어대던 여인이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휴우. 신나게 웃었네. 걱정마. 몽정은 아니니까.”


“···그런데 누구신가요? 여기는 어디고,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혹시 납치인가요? 그쪽은 납치범이고? 그렇다기엔 날씨가···”


“이봐, 꼬마. 진정해. 진정. 주술사는 언제든 냉정하고 침착해야 한다고.”


“누구한테 하는 말이에요? 설마 저 보고 하는 말은 아니죠?”


“오, 여기에 너랑 나 둘 뿐인데 그럼 누구보고 하는 말이겠니?”


말하며, 여인이 ‘애가 생긴 거랑 다르게 좀 멍청한 것 같은데···’하고 중얼거렸다.


“죄송한데 사람을 착각하신 것 아니에요? 전 주술의 주자도 모르는데요?”


“쯧쯧. 네가 주술을 알건, 모르건 상관이 없어. 중요한 건 네가 이 공간에 들어왔다는 것이지. 이건 네가 주술서에게 선택받았단 뜻이니까.”


“주술서?”


순간 이반의 머릿속으로 바바에게 받은 검은 책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거 조금 읽었다고 선택받았다고요?”


이반이 어처구니없단 표정을 짓자 여인이 그런 이반을 세상 멍청한 놈을 다 보겠단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 그게 가능하겠니? 생각을 하렴.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주술서에게 선택받았다고.”


“그 말은 주술서에 자아가 있단 소린가요?”


“오. 날카로운 질문이야. 맞아. 주술서는 자아를 가지고 있어. 그러니 주술의 주자도 모르는 널 이 공간 안으로 초대할 수 있었겠지?”


“···혹시 그쪽이 주술서인가요?”


이반의 물음에 여인이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때려 맞춘 거야?”


“때려 맞추긴 무슨. 당신이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요.”


“내가?”


여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이반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주술서는 자아가 있고, 이 공간은 주술서가 초대한 공간이다. 그럼 답은 나왔죠. 이 공간에서 자아를 가진 존재는 당신과 나. 둘 뿐인데 저는 주술서가 아니니 소거법에 따라 당신이 주술서일 수밖에 없잖아요.”


“스읍. 아주 멍청하진 않네?”


“···뭐라고요?”


이반이 발끈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여인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이반을 달랬다.


“아이. 칭찬이야. 칭찬. 주술사는 멍청하면 일찍 죽거든.”


“아까부터 거슬렸는데. 마치 제가 주술사가 될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전 주술사가 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거든요?”


“글쎄. 그게 네 맘대로 될까?”


“제 일인데 당연히 저한테 선택지가 있어야죠.”


이반이 단호하게 답했지만, 여인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 이반이 혹시나 해서 조심스레 물었다.


“···설마 없어요?”


“운명이란 게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운명은 결말이거든. 물론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야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지만 결과가 정해져 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뭐, 네가 전설에 등장하는 영웅 같은 존재라면야 운명마저 바꿀 수 있겠지만···”


여인이 말끝을 흐리며 이반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네가 그런 존재일 리가 있겠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이반의 눈앞으로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에헤헷. 저도 잘 몰라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그렇게 졸랐는데 할머니가 넌 그럴 운명이 아니라고만 하셨거든요.]


옐레나와 제법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는데 하필이면 왜 이 장면이 떠오른 것일까.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이반의 머릿속에는 차근차근 가설이 정립되고 있었다.


첫째. 옐레나는 주술사가 될 운명이 아니기에 바바가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둘째. 바바는 주술을 통해 미래를 볼 수 있으며 한 달 전, 바바는 미래를 보는 의식을 치렀었다.


셋째. 이반 본인은 바바로부터 주술서를 받았으며, 옐레나는 그 주술서를 보고 바바에게 드디어 제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결론. 이반은 바바의 제자가 되었으며, 이것은 운명이다.


“아니, 아니야···이게 무슨.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꿈이어야 해.”


부정.


“아니, 무슨 이런 사기 계약이 다 있어! 사기 계약도 최소한 본인이 결정해서 맺는 게 당연한데···이런 일방적인 사기 계약! 난 인정 못 해!”


분노.


“이거 취소할 수 없어요? 솔직히 이건 좀 아니잖아요. 최소한 당사자 의사는 물어보고 결정했어야죠. 운명? 그래. 운명이라니 어쩔 수는 없겠죠. 그래도 말했다시피 도달하는 과정은 본인 하기 나름이라면서요. 혹시 알아요? 제가 전설 속의 영웅이 될지.”


타협.


“말도 안 돼. 마법도 있고 정령술도 있고 하다 못 해 신수. 응? 이능력 그거라도 배우면 되는데 왜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이런 음침하고 음습한 주술 따위를 배워야 해···”


우울.


“하. 그러니까 제가 주술사가 되는 운명이라는 거죠? 이거 확실한 거죠? 하아. 그래요. 운명이라는데 별수 있나.”


수용.


흔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 혹은 수용의 5단계라고 불리는 과정을 거친 끝에 이반은 받아들였다.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판타지 소설에서도 흔히 등장하지 않던가. 운명은 절대적이라고. 어쩌겠는가. 운명이라는데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래서. 그쪽 이름은 뭔데요?”


이반의 물음에 여인이 의아하단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름? 주술서가 주술서지 이름이 뭐가 필요해?”


“그래도 자아가 있는데 이름 하나 정돈 있어야죠. 없으면 하나 지어 줘요?”


이반이 머릿속으로 무슨 이름을 지어 줄지 고민했다.


‘머리가 빨가니까 빨강이? 레드? 진저? 아니야. 너무 성의가 없는 것 같아. 좀 얄밉긴 해도 얼마나 오래 같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기왕 짓는 거 좀 성의 있게 지어 주자.’


하지만 이런 고민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이반을 빤히 응시하던 여인은 이반의 작명 실력을 믿지 못하겠는지 아니면 생각해둔 이름이 있었던 것인지 툭- 하니 말했다.


“있어. 이름.”


“뭔데요?”


“이룰 수 없는 희망을 꿈꾸는 주술서. 비망의 바실리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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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화 +1 24.11.13 372 21 15쪽
17 16화 +1 24.11.12 422 22 13쪽
16 15화 24.11.11 456 2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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