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니고 주술사입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니나뇨
그림/삽화
니나뇨
작품등록일 :
2024.10.28 21:05
최근연재일 :
2024.11.21 23: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6,042
추천수 :
585
글자수 :
155,475

작성
24.11.12 06:00
조회
424
추천
22
글자
13쪽

16화

DUMMY

여행길은 순탄했다. 도적이나 짐승 같은 불청객이 가끔이라도 찾아올 법도 한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요한은 가상 공간에서 수련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고, 간단하지만 유용한 주술 몇 가지를 배우는 성과도 있었다.


그렇게 3주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지금까지의 평화는 꿈이었다는 듯이 불청객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건너 하루꼴로 습격을 해대었다.


덕분에 요한을 비롯한 일행들의 신경은 몹시도 곤두서 있었다. 특히 직접 도적들을 상대해야 하는 요한은 몸에 피가 마를 날이 없을 정도였다.


“후···이놈들은 서로 정보 공유를 하지 않는 건가? 그렇게나 죽어 나갔는데도 끝도 없이 덤벼드는군.”


“반대로 푸짐한 먹잇감이 있다고 소문이 났을지도 모르죠.”


“도적들이 이리도 극성인데 자넨 대체 이 길을 어찌 지나온 건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가도만 있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로렌초가 아쉽다는 투로 투덜거렸다. 한데, 로렌초의 말 중 요한의 관심을 끄는 단어가 있었다.


“가도?”


“모르십니까? 아. 샹뤼달, 아헨베르크, 공국연합 이 3국에는 가도가 없으니 모르실 만도 하지요. 가도란 건 도로입니다.”


“그야 이름만 들어도 쉬이 짐작이 되네만.”


요한이 그게 뭐가 대단하냐는 투로 말했다. 한데, 이것이 로렌초의 역린을 건드린 듯 로렌초가 발작하듯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단순한 도로가 아닙니다! 무려, 하이페리온 제국이 건재할 당시에 건설한 도로이죠. 폭은 마차 네 대가 동시에 지나도 될 만큼 드넓고, 바닥은 자갈과 석회, 점토를 쌓아 다진 후 그 위에 평평한 마름돌을 쫙 깔아두어 아주 비가 아무리 와도 물이 고이지 않아 언제 어느 때고 편하게 다닐 수 있지요. 심지어 이러한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나가 대륙 전역을 이어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흥- 하고 거센 콧김을 뿜어내며, 가도에 대한 자부심을 표출하는 로렌초의 모습은 퍽- 우스웠으나 요한은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가도란 것이 있으면 상황이 달랐을 거라 이건가?”


“그렇죠. 하이페리온 제국이 동서로 나뉜 이후엔 영주들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갔는데 이 가도란 것이 군사적 유용성이나, 상거래 활성화 같은 간접적 효과를 제외하더라도 통행세라는 직접적 이익이 만만치 않은 터라 영주들은 가도의 유지 및 보수를 몹시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가도가 있었다면 영주들이 나서서 도적들을 해결했을 것이다?”


“예. 가도에서 도적들이 날뛰면 영주들이 거둘 통행세가 줄어드니까요.”


“확실히 자네가 아쉬워할 만하긴 하네.”


“뭐, 어쩌겠습니다. 없는 건 없는 거고. 저흰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 하시죠.”


네모반듯한 종이 여러 개를 이어붙여 만든 책자 비슷한 것을 펼치고 접기를 반복했다. 저게 대체 뭔가 싶어 요한이 시선을 주었다.


종이 위에는 거미줄처럼 선이 쭉쭉 그어져 있었으며, 그 선 위에는 깨알 같은 크기의 글자가 빼곡히 쓰여 있었다.


너무 복잡하여 소유주 말고는 알아보기 힘들겠지만 일단, 형태는 지도였다.


“지도로군. 직접 만든 건가?”


단박에 정체를 알아본 요한이 중얼거리자, 로렌초가 자랑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럴만했다. 지도란 것이 구하고 싶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저렇게 대륙 단위의 지도는 국가가 아니라면 보유하기 쉽지 않은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주어도 구하기 힘든 물건인데 그런 것을 직접 제작하였으니 실로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본인만 알 수 있다는 단점은 제쳐 두더라도 말이다.


“흐흐. 맞습니다. 제가 손수 만든 제 자식놈이지요. 자. 여기가 요한경의 고향인 크롤리베츠입니다. 그리고 여기, 코노토프가 저희가 만난 장소이고 이렇게 남동 방향으로 이동하여 현재 미르고로드 영지를 지나는 중입니다. 본래 일정은 여기. 드니프로에서 배를 타고 드네프르강을 따라 이동하여 트베니르 공국의 수도, 셀렘브리아로 향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잠시 말을 멈춘 로렌초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짐말들이 끌고 있는 수레 양옆으로 인부들이 털레털레 걷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무척 지쳐 보였다.


“도적들의 습격도 너무 잦아졌고, 다들 지쳐있는 관계로 여기. 크레멘에서 배를 구해서 이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한은 잠시 지도를 바라보았다. 드네프르강이라는 이름 아래 파란 선이 드니프로를 기점으로 휘어져 거대한 바다와 이어져 있었다.


“그럴 것이었으면 처음부터 크레멘이란 곳으로 향했으면 될 일인데, 왜 처음 계획은 드니프로에서 배를 구하는 것이었나?”


“그게···저도 소문으로만 전해 들었습니다만, 여기 크레멘에서 하류로 향하는 물길 인근에 섬들이 빽빽한 구간이 있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물길이 제법 험하다곤 하는데 솔직히 이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섬들에 도적놈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도적인가···”


무슨 놈의 나라에 도적들이 이리도 많은지. 치안 강국으로 불렸던 나라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는 요한으로선 한숨만 새어 나왔다.


“확실한 것은 아니고, 소문뿐이긴 해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기에 처음엔 드니프로를 경유지로 정했습니다만, 경험하셨다시피 치안이 나빠도 너무 나쁘니···”


로렌초가 말을 끝맺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차피 겪어야 할 도적놈들 한 번만 크게 부딪치고 남은 일정은 편하게 이동하자. 이건가?”


“예. 물론 요한 경만 괜찮으시다면요.”


그러잖아도 풍경 구경하는 것도, 도적이나 야생 동물의 습격에 대처하는 것도 슬슬 질려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한 번만 크게 고생하면 남은 일정은 편하게 갈 수 있다고 하니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하지.”


요한이 결정을 내리자 로렌초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우리 고용주께서 포상금을 약속하셨습니다! 이틀! 딱 이틀만 고생하면 도시에 도착하니 모두 힘들 냅시다!”


[오오오오!]


포상금 때문인지, 아니면 이틀 뒤에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인지.


축- 쳐져 있던 인부들의 어깨는 제자리를 되찾았고 그 들뜬 분위기에 요한도 조금이나마 힘이 났다.




...




“도착이다아아!”


한 인부의 환호성과 함께 저 멀리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로렌초가 말했던 이틀이 아닌 하루가 더 걸려 삼 일째에 도착하긴 했지만 일행들에게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도시가 눈앞에 있고, 따듯하고 안전한 잠자리, 푸짐한 음식과 술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응시하며 요한이 슬며시 물었다.


“여관에 저 많은 짐들을 보관하긴 힘들 듯한데, 어찌할 생각인가?”


“바로 배부터 구해서 물자들을 선적해 두어야죠. 다만 경비가 문제인데···”


“용병들을 고용하는 것은 어떤가?”


요한의 제안에 로렌초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용병 놈들을요? 허이구, 걔들로 경비를 세우실 생각이라면 포기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신용 있는 용병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렵거든요.”


요한은 로렌초의 이러한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다. 전생에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일이 용병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용병이란 놈들이 소설이나 만화에서 나오는 모습과 달리 얼마나 못 믿을 놈들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것도 요한이었다.


수틀리면 의뢰를 포기하는 것은 예삿일이고, 좀 돈 되는 물품 운반 의뢰를 맡으면 선금으로 받은 의뢰비 일부와 함께 도망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놈들이었다.


좀 더 심한 놈들은 아예 의뢰인을 등쳐먹거나, 죽이고 다 빼앗는 일도 서슴지 않으니 이게 도적놈들인지 용병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요한이 용병들을 경비로 고용하잔 제안을 한 것엔 이유가 있었다.


“용병 개개인들을 고용하면 그렇겠지. 하지만 용병단에 소속된 용병이라면 어떤가?”


용병단은 말 그대로 용병들이 모인 집단으로, 보통은 서로 마음 맞는 용병들끼리 모여 자신들이 무슨무슨 용병단입네. 하고 주장하면 그게 용병단이었다.


당연히 도적집단과 다를 바 없는 놈들이었지만, 수 차례 의뢰를 완수한 용병단의 경우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실적을 증명할 수 있는 용병단은 신용 있는 용병단으로 취급되어 그 값이 비싸나 충분히 제값을 하는, 소설이나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용병들의 이미지와 비슷한 진짜 용병들이었다.


“용병단이 더 위험합니다! 물론 실적 있는 용병단이라면야 좀 덜 위험하겠지만, 그런 용병단이 저런 조그만 도시에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물자들을 처분한 이후라면 모를까. 당장에 그들을 고용할 정도의 돈은 없습니다만···”


“용병단 전체를 고용한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용병단에 소속된 용병 몇 명 고용할 여유는 충분하잖은가?”


“그건 그렇습니다만···그런 이들이 저 도시에 있을까요?”


로렌초는 회의적인 반응을 내비쳤으나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인부들만으로 경비를 세울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나.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직접 경비를 서는 것이지만 솔직히 나도 좀 쉬고 싶거든.”


“일단, 들어가셔서 생각하시죠.”


로렌초가 성문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응시하는 경비병들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저렇게 환한 얼굴과 기대감 어린 눈빛은 필시 통행료로 한탕 해 먹겠다는 심보가 명백했기에 로렌초는 전의를 다졌고, 요한은 그런 로렌초를 속으로 응원했다.




...




“에이씨. 무식한 동부 놈들 같으니라고. 이러니까 무시 받지.”


한 시간의 실랑이 끝에 도시 안에 진입할 수 있었던 로렌초가 바닥에 침을 퉷- 하고 뱉으며 투덜거렸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옆에 요한이 있음에도 동부인들을 싸잡아 욕할 정도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경비병들과 흥정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로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던지 경비병들이 자신들의 대장을 불러와 흥정을 이어갔는데, 이 경비대장이란 놈이 보통 탐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수레 한 대. 싫음 돌아가던가.]


무슨 통행료로 인생 역전이라도 꿈꾸는 것인지 수레 한 대에 담긴 물자들을 통행료로 요구하였고, 보다 못한 요한이 나서서 적당히 통행료를 줄여보고자 시도하였으나 경비대장은 도통 요지부동이었다.


이것을 협박하고, 어르고, 달래고를 반복하며 반으로, 또 반으로 줄이고 줄인 끝에야 간신히 도시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으니 로렌초가 성을 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작네. 더럽고. 냄새나고.’


도시를 둘러본 요한은 속으로 악평을 남겼다. 경비대장과의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실제 감상이 그러했다.


판타지스러운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최소한 뭐랄까. 오! 중세 도시네. 같은 감탄이 절로 튀어나오는 풍경을 기대했던 요한으로서는 실로 실망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겉모습만큼은 지구에 살 적에 시골 읍내와 비슷한 느낌을 물씬 풍겼으나 거리는 똥오줌으로 악취를 풍겼고, 건물들은 죄다 단층의 목재 건물로 몹시도 조촐했다.


“전형적인 동부 도시네요.”


로렌초의 감상평에 요한은 왜 동부가 문명의 변방이라며 무시 받는지 이해했다. 사실이 그러했던 것이었다.


“일단···용병 사무소부터 찾아보시죠. 용병을 고용하건, 말건. 결정이 나야 이 짐들도 어떻게 보관할지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로렌초의 말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렌초가 인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자. 다들 당장이라도 여관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더 고생합시다.”


로렌초의 말에 인부들 사이에서 탄식과 함께 원망이 터져 나왔지만 로렌초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아잇 씨팔! 다들 포상금 안 받을 거야? 창관가서 질펀하게 안 놀 거냐고!”


로렌초의 욕지거리와 협박에 당장이라도 폭동을 일으킬 것 같던 인부들이 순한 양으로 돌변했다. 로렌초는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당당한 걸음걸이로 앞장서 걸어갔다.


“가시죠! 요한 경!”


그 모습이 어찌도 당당하던지. 요한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사 아니고 주술사입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25화 24.11.21 267 10 14쪽
25 24화 24.11.20 220 10 14쪽
24 23화 +2 24.11.19 260 14 16쪽
23 22화 +1 24.11.18 283 14 13쪽
22 21화 +1 24.11.17 304 19 15쪽
21 20화 +1 24.11.16 299 17 15쪽
20 19화 +1 24.11.15 334 19 16쪽
19 18화 +1 24.11.14 367 18 14쪽
18 17화 +1 24.11.13 375 21 15쪽
» 16화 +1 24.11.12 425 22 13쪽
16 15화 24.11.11 459 20 14쪽
15 14화 24.11.09 496 23 14쪽
14 13화 24.11.08 541 22 13쪽
13 12화 +1 24.11.07 575 24 14쪽
12 11화 +2 24.11.06 578 24 12쪽
11 10화 24.11.05 629 24 12쪽
10 9화 24.11.04 645 21 13쪽
9 8화 24.11.03 676 28 12쪽
8 7화 +2 24.11.02 681 25 11쪽
7 6화 24.11.01 726 20 12쪽
6 5화 24.10.31 780 25 12쪽
5 4화 +2 24.10.30 850 27 16쪽
4 3화 24.10.29 973 29 13쪽
3 2화 +2 24.10.28 1,137 32 12쪽
2 1화 24.10.28 1,447 38 13쪽
1 프롤로그 +1 24.10.28 1,716 39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