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용병 길드는 도시의 항구 근처에 있었다.
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건물의 입구 위로 [용병 길드 크레멘 지부]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는데, 대충 자른 나무판자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작성된 성의 없는 간판은 용병 길드란 곳이 어떠한 곳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있었다.
용병 길드는 말이 용병 길드이지 실상은 사고뭉치인 용병들을 격리하기 위한 시설이자, 용병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용병 전용 여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쌈박질을 하며 바닥을 나뒹구는 놈들, 탁자에 엎어져 입에서 토사물을 쏟아내는 놈, 도박하는 놈, 술 마시는 놈 등 온 동네 불량배들을 불러 모은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용병놈들이란.”
요한의 등 뒤로 슬쩍- 안쪽의 모습을 훔쳐본 로렌초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반면 요한은 고향에 온 듯한 익숙함을 느꼈다.
‘그래. 이게 용병놈들이지.’
요한은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안으로 들어갔다.
삐걱- 삐걱-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마룻바닥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요한의 걸음걸이마다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잖아도 복장이 복장인지라 눈에 띄는데, 신경을 긁어 대는 소리까지 내고 있으니 길드 안의 이목이 단박에 요한에게로 집중되었다.
[야. 야. 기사다. 기사.]
[저거 어디서 본 문장인데. 어디 가문 출신이지?]
[기사 나리가 여긴 무슨 일로 왔대? 혹시 큰 건이라도 있나?]
[목소리 낮춰. 괜히 시비 걸리면 골치 아파진다.]
누군가의 경고에 소음이 잦아들었다. 그러나, 조용해진 상황에서 목소리를 낮춰 봐야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겉으론 관심 없는 척해도 쉴새 없이 굴러가는 눈알에 요한은 기분이 유쾌해졌다.
‘전생엔 내가 저 꼴이었는데, 이번 생은 주목받는 입장이니 인생 참. 알 수 없다니까.’
계산대로 걸어간 요한은 은화 하나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용병을 주선 받고 싶은데.”
요한의 요청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빈 컵을 닦고 있는 털복숭이 사내가 힐끔-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손을 뻗어 은화를 가져가려 했지만 요한의 손가락이 한 발 더 빨랐다.
“개수작 말고. 소개 먼저.”
검지로 은화를 꾹- 누른 요한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하자 털복숭이 사내가 혀를 차며 물었다.
“쯧. 장기요. 단기요.”
장기와 단기.
말 그대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의뢰인지, 아니면 짧은 시간에 끝나는 의뢰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이때 기준은 길드마다 제각각이었다. 기준을 넘게 걸리는 의뢰는 장기, 기준 안에 끝나는 의뢰는 단기로 취급되었다.
“기준은?”
“삼일.”
“소속이 있다면 장기로. 추천할만하다면 단기로.”
전자는 용병단에 소속된 용병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털복숭이 사내가 보증을 설 수 있는 용병을 말하는 것이었다.
“둘 다에 해당한다면?”
털복숭이 사내의 물음에 요한은 은화 두 개를 추가로 꺼내 놓았다.
“좀 더.”
“충분할 텐데?”
“흥.”
털복숭이 사내가 콧방귀를 뀌었다. 어림없단 소리였다. 하기야 이만한 조건을 가진 용병을 찾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감안한다면 중개료를 더 지불해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단, 사실일 경우에만 말이다.
“좋아. 자신감을 믿어보지.”
요한이 은화 일곱 개를 추가로 꺼냈다. 이로써 중개료로 지불하는 은화만 열 개. 은화 한 개가 지구의 화폐 가치로 10만원 정도였다. 이를 고려한다면 중개료치곤 상당히 비싼 값이었다.
“이보쇼. 기사 나리. 무슨 의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내가 해 볼까 하는데?”
등 뒤에서 인기척과 함께 한 사내가 요한의 어깨에 손을 턱- 하니 얹었다. 흥정 도중에 끼어든 불청객에 털복숭이 사내가 불쾌해하며 한마디 하려는데, 요한이 자신의 어깨에 올라간 손을 털어내며 물었다.
“벌써 도착한 건가?”
“그럴 리가.”
“그럴 것 같았어.”
말과 동시에 요한이 창대를 움직였다. 등 뒤 불청객의 다리를 걸어 자빠뜨린 요한은 불청객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던 순간, 창날을 불청객의 목에 들이밀었다.
“힉!”
불청객이 숨을 집어삼키며, 얼어붙었다. 요한은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죽여도 되나?”
“···옘병. 제대로 된 놈이 아니면 내 목이 달아나겠구만.”
털복숭이 사내가 투덜거리며 은화 다섯 개를 요한 쪽으로 밀었다. 불청객을 살려달란 요청이 아니라, 자신이 주선하는 용병이 중개료로 은화 10개를 받을 정도가 아니란 의미였다.
“몇 명이나 있나?”
요한이 돌려준 은화를 털복숭이 사내 쪽으로 밀며 물었다.
“···몇이나 필요하십니까?”
털복숭이 사내의 태도가 대번에 공손해졌다. 이에 요한이 웃으며 말했다.
“일단 전부 불러봐.”
...
“대단하십니다. 요한 경! 그 짧은 시간에 쓸만한 용병을 열 명이나 구하시다니요!”
용선한 선박 위로 물자들을 적재하는 인부들과 그런 인부들 주변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용병들을 가리키며 로렌초가 호들갑을 떨었다.
저 용병들은 요한이 고용한 용병들로, 모두 한냐 용병단 소속이었다.
요한이 직접 면접을 본 결과 제법 실력도 있고, 무엇보다 용병치고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혀 있었다.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심지어 셀렘브리아까지 호위받는 일인데 한 사람당 은화 20개로 해결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대단해요. 혹시 영지에 계실 적에 용병을 다루는 일이라도 하셨던 겁니까?”
“뭐, 비슷한 일을 하긴 했지.”
전생에서란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역시.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용병도 구했고, 배도 구했으니. 이제 좀 쉴 수 있는 건가?”
“그럼요. 아예 이틀 동안 푹- 쉬는 것으로 할까요?”
요한은 고작 이틀 쉬는 것이 푹- 쉬는 것인가 싶었다. 요한이나 로렌초야 말을 타고 움직였지만, 인부들은 3주 이상을 걸었다. 이틀로는 쌓인 피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큰맘 먹었다는 표정을 짓는 로렌초의 얼굴에 요한은 고개만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인부들 다루는 일이야 로렌초가 담당하는 일이니, 불만이 터져 나와도 알아서 해결하겠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요한은 로렌초의 안내를 받아 여관으로 향했다.
...
요한은 도시가 초라하기에 여관도 볼품 없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치가 낮은 탓인지, 아니면 쉴 수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단 생각 때문인지 막상 접해본 여관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따듯한 음식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추가 요금을 지불해 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짐을 챙겨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운 요한은 그대로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듯했다.
“요한 경. 요한 경!”
누군가 자신의 몸을 흔들며 소리쳤다. 이에 부스스한 얼굴로 잠에서 깬 요한이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다급한 표정의 로렌초였다.
그 모습을 본 요한은 본능적으로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곤 눈을 비비며 잠을 몰아내었다. 그러면서 슬쩍- 창밖을 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요한 경!”
“이제 깼네. 대체 무슨 일이기에 호들갑인가?”
“습격입니다! 경비대장. 그 탐욕스런 놈이 일을 벌였다고요!”
로렌초의 외침에 요한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을 벌였다고?”
“예. 밤이 되기가 무섭게 도시의 경비 스물을 끌고 와서는 검문을 해야 한다며 억지를 부리더군요. 이틀 후에 출발하는 배니 그때 다시 검문하라고 말해봤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물음에 답한 것은 로렌초가 아닌 한냐 용병단의 단장 한냐였다. 여성스러운 이름과는 달리 동글동글한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 한냐에게선 피비린내가 짙게 풍겼다.
“얼마나 죽였나?”
순식간에 사태 파악을 끝마친 요한이 묻자 로렌초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 죽였답니다. 다요.”
로렌초가 한냐를 원망스레 바라보며 말하니, 한냐가 요한의 눈치를 보며 변명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강제로 밀고 들어오려는 것을 막으려다 충돌이 일어났고, 한번 피를 보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한은 탐욕스럽던 경비대장을 떠 올렸다. 그렇게나 통행료를 처먹어놓고도 욕심을 부리다니. 심지어 용병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것을 뻔히 보고도 끝내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으니 자업자득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일단, 갑옷 입는 것부터 도와주겠나?”
로렌초와 한냐의 도움을 받아 갑옷을 갖춰 입은 요한은 무기를 챙겨들곤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부들은?”
“한냐 단장님께 부탁해서 창관으로 용병 둘을 보내 뒀습니다. 다른 곳으로 새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배로 향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서두르지. 영주가 눈치라도 챘다간 귀찮아질 것이 뻔하니까.”
...
항구로 향하는 동안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순조롭게 항구에 도착한 일행은 곧장 배에 올라탔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히이잉─
다른 말들은 순순히 배 위에 올라탔건만, 요한의 애마 레아는 배에 올라타기 싫다며 앞 다리를 꼿꼿하게 펴며 완강히 저항했다.
“레아. 조금만 고생하자. 응? 배에 타는 동안은 네가 좋아하는 사과로만 배불리 먹게 해 줄게. 아니면, 이거 먹을래? 이거 먹으면 푹 잠들 수 있을 거야. 푹 자고 나면 배에서 내릴 때쯤 될 거고. 어때? 자, 착하지?”
어르고, 달래고, 애원한 끝에 레아가 마지못해 배에 올라탔고 그제야 출발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어휴. 애가 고집이 그냥.”
사과 자루에 고개를 파묻고선 으적으적 사과를 씹어먹는 레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요한은 배의 갑판으로 향했다.
“로렌초.”
“아. 요한 경. 레아는 잘 달래고 오셨습니까?”
“뭐. 어찌저찌 설득하긴 했네만···”
요한이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내젓자 로렌초가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요. 맹수들 상대로도 겁먹지 않고 오히려 사납게 앞발을 내리찍던 녀석인데···배 타는 것이 그리도 싫은 걸까요?”
“나도 모르겠네. 단순한 변덕인지. 아니면 정말 싫어하는 것인지. 그건 그렇고 배가 깨끗하군.”
“선장 말로는 진수식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배라더군요. 그래서인지 용선료를 어찌나 악착같이 뜯어내던지. 어휴. 뭔 놈의 동네가 돈에 그리도 악착같은지 원.”
로렌초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요한은 배를 한번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너무 깨끗했다. 이제 막 청소라도 한 것처럼.
“선장이 애지중지할만하군. 한데, 출발은 언제 가능하다던가?”
“선장이 항구 관리인에게 급행료를 지급하러 나갔으니 금방 돌아올 겁니다.”
여기서 급행료란, 뇌물이었다. 밤중에 배가 항구를 오가는 것이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보통 이 시간대에 오가는 배들은 밀수선인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뇌물을 건네지 않고서야 항구를 빠져나가긴 힘들었다.
“혹시나 선장이 배신할 가능성은 없겠나?”
“흐흐.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경고를 해 두었지요. 배신하면 이 배를 통째로 불태워 버리겠다고요. 자고로 선장들에게 배란 자신의 애인과도 같으니 어지간해선 배신할 리가 없습니다. 설령 배신한다 해도, 배를 몰 수 있는 이를 수배해 두었고요.”
로렌초의 철두철미함에 요한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쯧. 이게 웬 난리인지.”
“제가 그놈. 사고 칠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무슨 경비가 통행료로 수레 하나를 통째로 요구한답니까?”
“도적 출신이라 그렇습니다.”
어느샌가 다가온 한냐가 이야기에 참가하자, 깜짝 놀란 로렌초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이쿠! 언제 오셨답니까? 인기척 좀 내고 오시지. 어휴. 놀래라. 그런데 도적 출신이라뇨? 누가요? 설마, 경비대장 그놈이요?”
로렌초의 물음에 한냐가 요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왜 헐값에 의뢰를 받았는지 아십니까?”
“글쎄···”
솔직히 이상하긴 했다. 처음에는 이 동네 시세가 그런가 보다 했지만 생각해보니, 아무리 이 동네의 시세가 싸다고 한들 한냐 용병단처럼 실력과 신용이 있는 용병단을 부리기엔 너무 헐값이긴 했다.
그럼에도 요한이 한냐 용병단을 헐값에 고용한 이유는 단순했다. 금액을 먼저 제시한 쪽이 한냐 용병단이기 때문이었다. 요한은 그저 저들이 원하는 금액대로 준 것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한데 이것을 새삼 거론하니 현재 상황을 이용해 다시금 의뢰금 협상을 시도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희 한냐 용병단의 용병들은 모두 크레멘 영지 출신입니다. 보셨다시피 매우 낙후된 영지이지요. 해서, 마을에서 사고나 치던 한량 놈들이 큰돈 한번 벌어보자고 선택한 일이 용병 일이었습니다. 철없는 행동이었지요. 이 용병이란 일이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저기.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배가 출발한 이후에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상황이 상황이라서요.”
로렌초가 눈치 없이 끼어들어 한냐의 이야기를 끊어냈다. 사실 눈치가 없다기보단 남의 시시콜콜한 사정을 듣기엔 상황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크흠.”
한냐가 멋쩍은 표정으로 슬쩍- 시선을 피했다. 로렌초는 한냐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선 어둠이 내리깔린 부둣가를 뚫어져라 노려보기만 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얼마간 흘렀을까. 저 멀리서 한 사내가 용병의 호위를 받으며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 온다! 와!”
항구 관리인을 매수하는 것에 성공했는지, 선장은 선원들을 지휘해 돛을 펼쳤고 배가 서서히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휴. 이제야 한숨 돌리겠네.”
마음이 놓인 탓인지 로렌초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이때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한냐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크흠. 계속해서 이야기하자면···”
“그···”
로렌초가 또다시 한냐의 말을 끊어내자 한냐가 불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또 뭡니까?”
“죄송한데, 저희가 그동안 제대로 쉬지를 못해서요. 간만에 여관에서 푹 쉬려 했더니만 이 난리가 벌어진 터라···. 그래서 말인데 요약해서 얘기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로렌초가 넉살 좋게 웃으며 부탁하자, 한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최대한 줄여 보겠습니다.”
그렇게 한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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