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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뇨
그림/삽화
니나뇨
작품등록일 :
2024.10.28 21:05
최근연재일 :
2024.11.21 23:0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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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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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19화

DUMMY

“후우···”


적의 목에 꽂아 넣은 검을 뽑아내며 한냐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 한냐에게 동료 중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냐. 우리가 성공할 수 있을까?”


동료의 목소리엔 불안감이 가득했다. 한냐는 그런 동료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시선을 마주했다.


“바실리. 어차피 이번이 아니면 더 이상 우리에게 기회는 없어. 너도 알잖아. 드락시스 놈의 수완이 얼마나 뛰어난지.”


피를 마시는 자, 드락시스.


홀연히 일백의 도적들을 이끌고 등장하여 순식간에 크레멘 영지 인근의 드네프르강 하류의 섬들을 집어삼킨 도적단 ‘붉은 바람’의 대장.


하류의 섬들을 거점 삼아 물길을 통제하며 부를 쌓고 세력을 키운 그는 호시탐탐 자신을 토벌할 기회만 노리던 크레멘의 전 영주와 그 일가를 몰살시키더니, 전 영주의 먼 친척을 영주의 자리에 앉히면서 크레멘 영지를 장악했다.


이후, 크레멘 영지의 정상화란 명분으로 쳐들어온 인근 영지들의 군세를 한 번의 회전으로 격파하더니, 역으로 쳐들어가 인근 영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군대도 잃고, 영향력도 상실한 인근 영주들은 크레멘의 현재 영주가 그렇듯 서서히 드락시스의 꼭두각시 영주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이 모든 일 들이 고작 3년 사이에 벌어졌으니 앞으로 그가 얼마나 더 세력을 성장시킬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한냐와 그의 동료들이 일을 벌일 것을 결심한 것은. 이대로 기회만 노리고 준비만 하고 있다간 그 격차만 커질 뿐, 복수는 영영 불가능할 것이라는 현실을 깨달았기에.


그랬기에 한 번의 뼈아픈 실패 이후, 확실한 기회가 오지 않는 이상 성급하게 드락시스를 치지 않겠다던 맹세를 한냐와 그의 동료들은 깰 수밖에 없었다.


“우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한냐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어느새 다가온 동료들이 하나둘씩 한냐의 어깨에 손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보다 더 많은 형제들이 죽겠지.”


“시골 청년 십 수명이 모였던 그때와는 다르니까.”


“그래. 이제 우린 삼백 명의 유족들이 모인 복수귀들이지.”


“그만큼 적들도 커졌고 말이야.”


한 동료의 발언에 모두가 껄껄거리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기사 나리 쪽 사람들에겐 미안하게 됐어.”


“그 사람들 입장에선 어처구니없겠지. 쓸만한 용병들을 싼값에 고용했다고 생각했더니 이런 짓을 벌일 줄은 생각도 못 했겠지.”


“재수가 없던 거지. 용병 길드의 털북숭이가 우릴 추천할지 누가 알았겠어?”


“그 양반도 참. 돈 밝히는 양반이 답지 않게 정이 참 많단 말이야. 당장 날뛰겠단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는 게 누구인지도 모르고, 한냐랑 우리만 멀리 보내면 사람들이 알아서 흩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게 참···순진하단 말이지.”


“우리 입장에선 운이 좋았지. 다들 봤잖아? 그 기사 나리가 도적 십수 명을 간단히 썰어버리던 거. 그놈들이 그래도 붉은 바람 내에서 제법 잘 싸우는 측에 드는 놈들인데도 말이야.”


“그러니까 웃기지도 않는 연극을 하면서까지 데려왔지. 우리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야.”


“그런데 그건 우리들 희망 사항 아니야? 솔직히 기사 나리 입장에선 화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분노에 눈이 멀어서 우릴 쳐도 이상하지 않을 건데···”


“에이. 갑판에서 기사 나리가 한냐랑 대화하던 것 못 들었어? 이상한 걸 감지하고서도 확신이 들 때까지 가만히 있던 걸 보면, 성급하게 움직이진 않을 거야.”


“맞아. 맞아. 그리고 우리 희망 사항대로 움직이지 않음 뭐, 어때. 그때쯤이면 우리 모두 검은 강을 건넌 이후일 텐데. 으하하핫.”


적의 본대가 몰려오길 기다리며, 수다를 떠는 동료들을 지켜보던 한냐는 밤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보다 눈을 감았다.


[이히힛─]


한냐의 귓가로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냐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힘주어 움켜쥐었다. 그러자 다시금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친구들은 잘들 준비하고 있겠지? 계획과는 다르게 너무 급작스레 일이 진행돼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건 아닌가들 몰라?”


“야콥 경이 알아서 잘 지휘하고 있겠지. 선임 기사였던 양반이니 지금쯤 섬의 반대편에서 신호만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빠!]


동료들의 목소리 사이로 한 소녀의 목소리가 어른거렸다. 그 햇살 같은 따사로운 미소도.


“한냐. 온다. 준비해.”


한 동료가 한냐에게 활과 불붙은 화살을 건네주곤, 다른 동료들이 그러는 것처럼 몰려오는 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뜬 한냐가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는, 불붙은 화살촉을 밤하늘을 향해 겨누었다.


“크세니야. 기다려. 곧 갈 테니까.”


피잉─


불화살 한 발이 밤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




“지형이···참 지랄 맞네.”


강변을 따라 움직이며, 섬의 지형을 둘러본 요한은 도적들이 자리를 잘 잡았구나 싶었다.


섬의 세 면은 높다란 절벽이고, 남은 한 면은 자갈밭이었다.


자갈밭에는 나무판자로 만든 부둣가가 있으며, 거기서 배를 대고 내려 자갈밭을 지난 후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야 도적들의 본거지가 나오는 구조였다.


“이 정도면 정규병을 끌고 와도 답이 없겠는데···”


공성전의 기본 전술인 숫자로 압도하는 것의 경우엔 자갈밭의 면적이 그리 넓지 않아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고, 공성 병기로 공략을 해 보자니 마찬가지로 땅의 면적이 좁은데다, 고지를 선점한 적이 가만히 두고 볼 리도 없었다.


그렇다고 절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이니 정면에서 끝없이 병력을 밀어 넣으며 공략을 하는 수밖에는 없는데, 대체 얼마나 많은 병력을 밀어 넣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니 유일한 공략 법은 배들로 섬을 포위하여 적들의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말려 죽이는 수밖엔 없는데···문제는 한냐 용병단이 선택한 전술이 정면 돌파라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고작 십여 명 남짓한 숫자로 정면 돌파를 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시도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 그렇지.”


저 멀리, 어둠 사이로 나룻배들이 절벽을 향해 접근하는 모습이 요한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한냐 용병단은 미끼였군. 적의 본대를 끌어낼.”


하기야. 십여 명 남짓한 적들이 쳐들어왔다면 본거지에 틀어박혀 막기보단 튀어나가 쓸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판단이었다.


“한쪽에서 시선을 끌고, 다른 한쪽에서 공략한다 라.”


나쁘지 않은 작전이었다. 다만, 시선을 끄는 쪽에 과도한 부담감이 가해지는 것을 버텨내며, 충분한 시간을 벌어줄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어쩔까···”


요한은 시선을 옮겨 한냐 용병단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적의 본대를 향해 용맹히 맞서는가 싶던 그들은, 어느샌가 기울어진 배 위로 도망쳐 한바탕 공성전을 벌이고 있었다.


배라는 거대한 지형물과 무릎까지 오는 수심 덕에 도적들의 움직임에 큰 제약이 있긴 했지만, 수적 차이가 큰 터라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뻔해 보였다.


병력 분배에 실패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냐 용병단이 자신들의 실력을 과신하지 않았다면 그들만으로 시선을 끄는 역할을 맡은 이유가 있을 터였다.


풍덩─


무언가가 물속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요한이 시선을 절벽 쪽으로 돌리니 절벽을 타고 오르던 이들이 중간도 가지 못해 떨어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래서였나···”


하는 꼴을 보아하니, 절벽 공략을 맡은 병력들의 수준이 몹시도 형편없었다.


보통 저런 일을 맡는 전력을 정예들로 구성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한냐 용병단과 저들의 역할이 뒤바뀐 것 같았다.


“···복수를 원한다고 했었나?”


보아하니 절벽 공략을 맡은 이들은, 도적들에게 가족을 잃은 이들이 모인 일반인들로 추정되었다.


“어차피 실패하면 다 죽을 텐데 무슨 생각인지 원···”


차라리 저들을 시간 끄는 용도로 사용하고, 한냐 용병단이 절벽 공략을 맞는 것이 좀 더 승산이 높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상황이었다.


“쯧.”


이딴 허술한 계획에 휘말려 버렸다고 생각하니 새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서야 저들이 죽건 말건 신경 쓰고 싶지 않았으나, 살아서 이 섬을 빠져나가려면 저들이 깔아 놓은 판에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가자, 레아.”


요한은 더 늦기 전에 전투에 개입할 것을 결정하곤 고삐를 휘둘러 전장으로 내달렸다.




...




“버텨! 야콥이 드락시스의 목을 딸 때까지! 못해도 싸움을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텨! 죽더라도 버텨야 해!”


“병신 같은 소리 하네! 죽었는데 어떻게 버텨!”


“그만큼 열심히 버티란 소리겠지! 으하하핫! 이거 진짜 뒤지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역할을 바꾸자고 할 걸 그랬어!”


“그런 말 하지 마. 우리니까 이 정도나 버티고 있는 거지. 절벽 공략을 맡은 사람들이 여기 있었으면 이 정도도 버티지 못했어!”


위급한 상황이지만, 한냐 용병단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배 위로 올라오려는 적들을 물리쳤다.


“후우···”


갑판 위에 올라오는 것에 성공한 도적 하나를 쓰러트린 한냐가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판은 드넓은데, 아군의 숫자는 너무 적었다. 빈틈은 곳곳에 존재했고, 도적들은 이를 집요하게 공략하고 있었다.


아직까진 희생자 하나 없이 잘 버티고 있긴 하지만 희생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언제 상황이 역전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저들도 끌어들여야 하나···”


한냐가 굳게 닫힌 화물실의 문을 바라보았다.


가장 큰 전력이 될 요한이야 말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의 일행들이 떠나는 것은 확인하지 못했으니 필시. 화물실의 문 너머에서 숨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 손이라도 절박한 상황에서 저들이 도와준다면 큰 힘이 될 테지만···


“반대로 적으로 돌아서면, 이 위태위태한 외줄 타기도 순식간에 끝나버리겠지.”


한냐가 미련을 버리곤, 다시금 도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려는데 저 멀리. 자갈밭을 빠르게 내달리는 한 필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어딘가로 사라졌던 요한이 홀연히 나타나 자갈밭에서 부하들을 지휘하고 있던 도적단 수뇌부들을 들이받는 광경에 한냐가 이를 악물었다.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불리하던 전황에 변수가 발생하자 한냐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요한 경이 오셨다! 다들 힘을 내!”




...




자갈밭을 내달리며, 흔들리는 말 위에서 요한은 적들의 진형을 관찰했다.


수백 명에 달하는 병력 대다수는 배 위에서 공성전을 펼치는 한냐 용병단을 상대하고 있었으며, 자갈밭에 남은 병력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병신들아! 고작 그거 하나 못 올라가서 쩔쩔매고 있냐!]


[우리 숫자가 얼만데 배 하나 못 올라가서 아직도 싸우는 거야!]


[한 시간이다! 한 시간 내로 배 위에 올라가지 못하면 감옥에 처넣고 삼일 동안 쫄쫄 굶을 줄 알아!]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대는 꼴을 보니 자갈밭에 남은 이들은 지휘부로 추정되었다.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먹기 좋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꼴을 보자니 요한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판이 제대로 깔렸네.”


부하들을 다그치는 지휘부는 신경이 온통 배에 쏠려 있는 탓인지 요한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고, 덕분에 요한은 아무런 방해 없이 놈들을 들이박을 수 있었다.


쿠웅─


요한의 창에 세 명이 꿰뚫리고, 레아의 몸에 치인 도적들은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순식간에 지휘부 여덟이 무력화되었고, 이제 남은 적은 열둘이었다.


괜히 저들에게 시간을 주었다간 부하들에게 합류하여 귀찮게 굴 것이 뻔했기에 요한은 시체가 주렁주렁 매달린 창을 버리곤 허리춤의 곡도를 뽑아 들었다.


“이럇!”


요한의 첫 돌격에 혼비백산한 도적들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재차 요한이 돌진해 오자 기겁하며 흩어지려 했지만, 달리는 말보다 사람의 움직임이 빠를 리가 없었다.


스걱─


등 돌려 도망치려던 한 녀석의 머리통이 날아가고, 네 명의 도적이 레아의 몸에 치여 날아갔다.


이후엔 일방적인 학살극이었다.


본거지로 도망치려던 놈들은 요한의 추격을 뿌리치지 못해 모조리 목이 달아났고, 물가로 도망친 이들은 겨우 둘 뿐이었다.


“쯧. 결국 기어들어 갔네.”


지휘관 둘을 놓쳤으니 도적들이 쉽사리 항복할 가능성이 사라졌지만, 요한은 혀를 한번 찰 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도적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 봤자 놈들은 물 안에 있었고 물 밖으로 나오기 위해선 상당한 체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물에 들어가느라 체력을 소모하고, 공성전을 벌인다고 또 소모했으며, 물 밖으로 나온다고 다시금 체력을 소모할 테니 밖으로 나온 도적놈들은 상당히 둔해져 있을 터.


그렇다면, 나오는 족족 말로 밀어버리거나 칼로 썰어버리면 그뿐이었다.


“자. 어서들 나오라고. 빨리 끝내고 쉬고 싶으니까.”




...




자신들은 목숨을 내걸고도 시간을 끄는 것이 고작이었던 수백의 도적들을 홀로 쓸어버리는 광경은 실로 경이로웠다.


“우리가 저런 인간을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고?”


싸움을 지켜보던 한냐의 동료 중 하나가 무심코 중얼거릴 정도로.


“이거, 싸움이 끝나면 우리가 살 수 있을까? 내가 저 양반이면 당장 우리 목을 따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데.”


한 명이 두려움에 잠긴 목소리로 묻자, 다른 동료가 시큰둥하게 받아쳤다.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긴. 복수만 성공하면 우리들 목숨 따위야 얼마든지 줄 수 있지.”


그렇게 한냐 용병단이 싸움의 향방을 주시하는 사이. 요한의 압도적인 무위에 도적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에 한냐 용병단이 환호성을 내질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도적들의 본거지에서부터 언덕길을 따라 내려오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한 사내가 떨리는 손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야. 저거···드락시스 그놈 아니야?”


사내의 말에 동료들이 황급히 가리킨 곳을 바라보며 사내를 타박했다.


“···뭐? 그럴 리가. 절벽 쪽에 삼백 명이 죄다 몰려갔는데, 그중 절반만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고 쳐도 백 오십이야.”


“거기다, 드락시스를 상대하려고 야콥 경이 직접 나서기까지 했다고. 본거지에 얼마나 남아 있는진 모르겠지만 백 오십 명을 이끄는 야콥 경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라는 말을 차마 끝맺지 못했다.


어둠이 물러나고 서서히 해가 떠오르는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게 칠한 갑옷을 입은 창백한 인상의 사내와 그 손에 들린 머리통 하나였다.


둘 모두, 한냐 용병단에게 있어 몹시도 익숙한 것들이었다.


사내는 한냐 용병단의 원수, 드락시스였으며.


그의 손에 들린 수급은 한냐 용병단이 굳게 믿고 있던 야콥 경의 머리였다.


“씨발···”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혀를 빼물고, 눈을 뒤집은 야콥 경의 수급을 지켜보던 한냐 용병단은 두려움과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었다.


“가자.”


한냐가 배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러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 배 위에서 뛰어내려 드락시스에게로 향하는 한냐에게 합류했다.


복수는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였다.


그러니 놈과 싸우는 것도, 싸우다 죽는 것도.


자신들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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