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니고 주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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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뇨
그림/삽화
니나뇨
작품등록일 :
2024.10.28 21:05
최근연재일 :
2024.11.21 23:0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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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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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
글자수 :
155,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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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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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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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3쪽

22화

DUMMY

[얘. 이번엔 저쪽이야. 얼른 뛰렴. 어서!]


영혼을 담는 주술 도구, 혼병을 만드는 의식을 치른 후, 요한은 한동안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바실리사의 재촉에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게 요한이 하게 된 일은 여기저기 널려있는 영혼들을 혼병에 집어넣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직접 영혼을 잡아서 혼병에 넣는 것은 아니고, 혼병의 마개를 열고 특정한 진언을 읊으면 일정 범위 내에 있는 영혼들이 혼병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식이었다.


“가고 있어요. 어휴···”


혼병을 완성 시킨 이후, 한냐 용병단의 영혼들만 혼병에 넣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요한이었으나, 근처에 널린 영혼들을 발견한 바실리사가 나중에 쓸데가 많다는 이유로 요한을 재촉해 수집하도록 강요했다.


그녀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것은 없었기에 요한도 순순히 그녀의 지시에 따라 영혼을 수집했지만, 영안을 개안하지 못해 영혼을 볼 수 없는 요한의 입장에선 주인의 지시에 따라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개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음. 좋아. 여기는 깔끔하게 싹 수집한 것 같네.]


“이제 끝난 건가요?”


드디어 이 기분이 뒤숭숭해지는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한 요한이 반색하며 묻자 바실리사가 무슨 말을 하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니?]


“아직 남았다고요? 다 수집했다면서요.”


[여기는 끝났다고. 여기는. 저기에 아직 한참 더 남았어.]


말하며, 바실리사가 한 곳을 가리켰다. 요한이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도적들의 본거지가 보였다.


“저기도 가라고요?”


[저기가 제일 많은데? 대충 봐도 수백은 넘겠네.]


요한은 바실리사가 말한 수백이 넘는 영혼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필시, 절벽을 타고 오르던 이들이 분명했다.


도적들의 영혼이야 수집해도 죄책감도, 찝찝함도 없었지만 저들은 조금 달랐다. 도적들에게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유족들로 추정되는 저들의 영혼을 수집할 생각을 하니 죄책감까지는 아니지만 괜히 기분이 찝찝했다.


“그런데 영혼을 수집해서 어디다 쓰길래 이렇게 열을 올리는 거예요?”


[쓸 곳이야 많지. 대가에 대한 설명문 중에 주술 중에 특정 제물을 요구하는 주술이 있다는 문장. 기억하니?]


바실리사의 질문에 요한은 기억을 더듬다가 이내, 주술서의 두 번째 페이지의 내용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니 다행이네. 거기에 나오는 특정 제물을 요구하는 주술이 바로 강령술인데, 강령술에 사용되는 제물이 바로 영혼이란다. 그리고···]


바실리사가 요한의 허리춤에 묶여 있는 혼병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혼병의 입구를 지키는 병마개인, 파수꾼이나 앞으로 담길 원귀, 악귀들의 먹이로 쓰이기도 하지.]


바실리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찝찝함이 더 커졌지만, 영혼엔 자아가 없다는 말과 주술과 관련된 일엔 감정을 최대한 숨기라는 조언을 차례로 떠올린 요한은 찝찝함을 애써 떨쳐버렸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완숙한 주술사가 되어가는 거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인 요한은 도적들의 본거지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언덕 위에 자리한 도적들의 본거지는 나무 목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목조 성이었다. 굳게 닫힌 목책 입구 앞에 선 요한은 있는 힘껏 문을 밀었고, 커다란 문은 별다른 저항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찰팍- 찰팍-


열린 문 사이로 걸어 들어가던 요한은 물 밟는 소리에 무심코 시선을 아래로 내렸고, 이내 자신이 밟고 있던 것이 핏물임을 깨닫곤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피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기에 앞마당이 피로 흥건한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야. 오길 잘했는걸?]


요한의 주변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바실리사가 감탄하며, 요한의 머리에 내려앉았다.


“그 정도예요?”


[안 느껴지니? 영안을 개안하지 못했다지만, 원념이 들어찬 영혼이 이 정도로 모여 있으니 너도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을 텐데?]


“어? 그러고 보니···”


말하고 보니 대낮임에도 한기가 물씬 느껴짐을 깨달은 요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기만이 아니었다.


분명 햇살이 내리쬐고 있음에도 목책 너머의 안뜰부터, 목조 성채까지. 보이는 곳 모두가 어두운 인상을 풍기는 것이 몹시도 스산했다.


“새벽에 공동묘지를 거니는 것 같네요.”


[자자.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 보자.]


마음 같아선 이대로 뒤 돌아 나가고 싶었지만, 바실리사의 재촉 탓에 요한은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끼이익─


문을 열고 성채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코를 찌르는 악취가 요한을 반겼다.


“어윽, 냄새.”


요한이 코앞에 손을 휘휘 내저으며,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일자로 길게 쭉 늘어선 복도는 어둠이 짙게 내리깔려 있었으며, 복도의 양 벽에 걸린 횃불만이 은은하게 어둠을 밝혀주고 있었다.


찰팍- 찰팍-


걸음을 옮겨 복도를 거닐고 있노라니, 바닥에 흥건히 고인 핏물에 발걸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하···돌아가고 싶다.”


핏물을 밟고 지나는 것도 그렇지만, 코를 찌르는 악취와 스산한 분위기까지 맞물리니 기분이 몹시도 불쾌했다.


그렇게 불쾌함을 억누르며 복도를 지나니 이번에는 연회장으로 추정되는 넓은 공간이 나왔다.


[이야. 여기 완전 금광이다. 금광. 얘, 얘. 꼬마야. 뭐 하고 있니? 얼른 혼병부터 열렴. 얼른!]


바실리사가 호들갑을 떠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연회장 곳곳이 피범벅에, 사지가 온전하지 못한 시체들로 가득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복도에서 연회장으로 진입하는 경계에 쓰러져 있는 시체였는데, 잘려 나간 사지와 배가 갈라져 흘러나오는 내장, 반쯤 잘린 목 등에서 조금이라도 더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지독한 악의가 느껴졌다.


“여기서 한바탕 싸웠나 본데···”


[쓸데없는 추측하지 말고 얼른 혼병 열라니까?]


“어휴. 알겠어요. 알겠어.”


거듭되는 바실리사의 재촉에 요한이 혼병을 열고 영혼들을 수집했다.


[좋아. 좋아. 밖에 있던 녀석들보단 못하지만 여기 있는 녀석들도 하나같이 원념 가득한 영혼들이네.]


요한이 영혼을 수집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바실리사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연회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영혼을 수집한 요한은 혼병을 닫아도 좋다는 바실리사의 지시가 떨어지자 드디어 이 불쾌한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빠른 걸음걸이로 복도를 향했다.


[얘, 어디 가니?]


“영혼 수집도 끝났겠다. 이젠 나가도 되잖아요?”


[으이구. 그렇게 나가고 싶니?]


바실리사가 한심하단 투로 묻자 요한이 투덜거리며 답했다.


“···냄새가 너무 심하잖아요.”


[쯧쯧쯧. 비위가 그렇게 약해서야 원. 아직 둘러볼 곳이 남았으니까, 얼른 몸이나 돌리렴.]


“어딜 또 가려고요? 뭐, 보물찾기라도 하려고요?”


[보물찾기? 뭐, 비슷하긴 하네.]


바실리사가 방실방실 웃으며 말하자, 요한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어휴.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데요?”


요한의 물음에 바실리사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콕콕- 가리켰다.


“아래층이요?”


[너, 범죄자나 뭔가 구린 녀석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니?]


“글쎄요?”


[귀한 걸 지하에 숨겨두는 습성이 있다는 점이야.]



...



지하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요한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바실리사가 단박에 찾아내었으니까.


지하로 향하는 길은 연회장의 상석에 위치한 큼지막한 의자 뒤편에 있었다. 의자를 밀어내니, 한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길이 있었고, 그 길 안으로 들어가니 아래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이 있었다.


그렇게 지하로 내려가니 성채에 처음 진입했을 때처럼 긴 복도가 있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복도의 양옆에 제법 많은 문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흠.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코를 킁킁거리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대던 바실리사가 쪼르르 날아가 한 문 앞에서 멈췄다.


[얘. 여긴 것 같아. 여기서 보물의 냄새가 나!]


요한은 바실리사에게로 향하며 그녀가 말한 보물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라면, 주술일 것이요. 그녀에게 보물 취급을 받으려면 역시 주술에 관련된 것일 게 뻔했다.


‘불안한데···’


부디 위험한 것만 아니길 빌며, 요한이 바실리사의 앞을 막고 있는 문을 열었다.


끼이익─


다행히 위험한 것은 없었다. 방 안에는 자그마한 동상 하나와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꽂이와 거기에 꽂힌 책 몇 권이 전부였다.


요한은 아무 책이나 한 권을 꺼내어 펼쳐보았지만, 글자 하나 없는 새하얀 백지장만 보일 뿐이었다.


“뭐지?”


이상함을 느낀 요한은 이어서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전부 살펴보았다. 마찬가지로 전부 백지였다.


“바실리사. 이것 좀 봐요.”


요한은 흑기사가 무슨 이유로 공책을 모아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바실리사를 불렀다.


[왜 그러니?]


“이것 좀 봐요. 여기 책들. 죄다 백지에요.”


요한이 바실리사에게 백지를 보여주자 그것을 잠시 살펴보던 바실리사가 이내 답을 알려주었다.


[성서聖書네.]


“성서? 그···종교에서 신의 말씀을 적은 경전요?”


[신의 말씀? 음. 비슷해. 성서, 성경, 경전. 부르는 이름이야 지역이나 종교마다 다르지만, 본질은 계약서거든?]


“계약서요?”


[응. 본질적으로 종교는 소원성취를 위해 발생하는데, 대부분의 신들이 필멸자들에게 호의적이라곤 하나 이것이 일방적인 헌신으로 이어지진 않아. 신들도 감정이 존재하는 만큼 신의 호의, 즉. 소원성취엔 항상 대가를 필요로 하지.]


[그렇다면 이 대가는 무엇이며, 어떻게 지불하느냐? 우선, 지불 방법은 계약을 통해서만 지불할 수 있는데 이 계약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무척 단순해. 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 신을 믿음으로써 계약이 이루어지지. 믿음으로 성립하는 단순한 방식인 만큼 계약의 성립과 해지 역시 단순하고 말이야.]


[계약이 성립되었다면 대가를 지불할 수 있게 되고 대가를 통해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는데 여기서 대가는 신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돼. 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상을 받고, 신이 싫어하는 일을 하면 벌을 받게 되지.]


[여기서 상이란 축복이고, 벌은 저주야.]


[이처럼 소원이 축복과 저주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만큼 소원이라고 해서 무엇이든 이루어지지는 않아. 오히려, 어떤 신이냐에 따라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 제한되기까지 하지.]


[그러니까, 성서란 신이 선호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작성한 계약서지.]


바실리사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요한은 이 세상의 신이란 존재가 전지할지는 모르나 전능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소설에서 흔하게 나오는 설정처럼 신이 현세에 간섭할 수 있는 힘이 제한되어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또한.


만약 이 자리에 성직자가 자리했다면 신성모독이라며 바실리사를 이단으로 몰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비실리사의 관점은 조금···독특했다. 그녀가 주술사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주술이랑 비슷하네요? 대가를 매개로 발동된다는 점도 그렇고, 신이 싫어하는 일을 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점은 주술 발동에 실패할 경우 반동이 찾아오는 점과 비슷하고요.”


[뭐···그런 면이 있긴 하지. 그래서 어떤 주술사는 주술이 종교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더라. 소문이라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래서 여기에 왜 성서가 있는 걸까요? 아무런 내용도 없이 백지상태인 건 또 어떻고요?”


요한의 의문에 바실리사는 동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때문일 거야.]


“저게 뭔데요?”


[부정한 것의 흔적.]


바실리사의 말에 요한은 동상을 자세히 관찰해보았다.


문어나 오징어 같은 두족류 생물의 촉수가 위를 향해 솟구친 외형에 표면 위로는 검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딱 봐도 불길해 보이는 외형은 요한으로 하여금 혹시 이게 악신의 조각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그 부정한 것이란 게 뭔데요?”


요한의 물음에 바실리사가 잠시 머뭇거렸다. 입술을 몇 번 들썩인 그녀는 옅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부정한 것이란다. 사용하기에 따라 평범한 인간을 네가 상대했던 오염된 존재로 만들 수도 있고, 영혼에게 사용한다면 평범한 영혼을 악귀로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촉매제지.]


요한은 본능적으로 바실리사가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음. 설명만 들어도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물건이네요. 보물의 냄새가 난다더니, 꽝이었네요.”


[얘는. 내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거니? 평범한 영혼을 악귀로 만들 수도 있다니까? 이게 뭘 뜻하겠니? 주술사. 특히, 강령술사에겐 상당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란 뜻이지.]


“보물···이요.”


[그래. 그러니까, 배낭에 잘 넣어두렴. 언제고 쓸 때가 올 테니까.]


전혀 보물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나, 바실리사가 그렇다니 차마 두고 가자는 말을 하지 못한 요한은 옅은 한숨과 함께 동상을 배낭 안에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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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화 +1 24.11.15 334 19 16쪽
19 18화 +1 24.11.14 367 18 14쪽
18 17화 +1 24.11.13 375 21 15쪽
17 16화 +1 24.11.12 425 22 13쪽
16 15화 24.11.11 459 20 14쪽
15 14화 24.11.09 496 23 14쪽
14 13화 24.11.08 541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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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2 24.11.06 578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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