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소원을 말해봐 1

<I. 네 소원을 말해 봐 1>
몇 년 전, 서울의 모 미술관에서 피카소 특별전을 했다. 가을이 눈 앞에서 마구 간당거리던 때였다. 이 계절이 가기 전, 어떤 낭만 하나는 가슴 속에 품고 싶은 그런 눈길을 가질 시기였다.
그때 전설의 피카소가 한국에 날아왔다. 우리 일생에서 한 번 올까말까 한 <세기의 대기획>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을 붙이고서였다.
덕수궁 정문 부근부터 미술관 입구까지, 대가의 포스터가 담벼락에 도배를 했다. '나중에 저걸 어떻게 떼나' 하는 걱정도 들지 않을 만큼 그것은 당연한 자태로 붙어 있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계속 떠들어댔다. '100년 내로는 다시 오지 않을 전시'라는 것이었다.
이번 기회에 대가를 알현하지 못하면 원시인 취급받기 딱 좋았다. '광고 선전에 얼마를 쏟아 부었는지?' 하는 상상 자체가 발칙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딱히나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서양 미술에 별 관심도 없었고, 또 '유명한' 이란 말에 알레르기도 좀 있는 편이라, 나는 이렇게 요란한 곳은 거의 가지 않는다.
내가 이번 특별전을 가지 않으려는 더 큰 이유는 항상 품고 있는 어떤 의문점 때문이었다.
피카소 같은 대가의 작품은 천문학적 가치가 있다. 이러한 초고가의 작품은 보유국에서 거의 외부로 반출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보험금을 지불한다 할지라도 세상에는 '만일'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불편한 진실을 여기저기서 숱하게 들었기에, 이번 전시 작품이 모사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가짜를 보며 감탄하는 무리 속에 끼기도 싫고, 좋아하지도 않는 피카소를 일부러 봐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모사본이라는 가설이 가장 심도있게 내 발걸음을 잡았다. 남보다 많이 알면 그만큼 더 까칠해지는가 보다.
'지금 안 보면 평생을 후회할 것이다'
미술을 좀 안다고 자처하는 친구의 권유반, 협박반에 굴복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끝나고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우정설득'을 하는데 더 이상 뻗대기도 어려웠다.
좋은 것을 권하려는 친구의 우정도 있었지만, 그 친구가 현대 미술에 대한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려는 의도도 다분한 것 같았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그 친구의 제안을 강하게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시내에 있는 그 미술관으로 가려면 덕수궁 긴 돌담길을 걸어가야 한다. 일부러라도 찾아올 멋진 길이다. 가을이 무르익은 거리는 누구와 걸어도 좋다.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던 중이었다.
돌연, 내 눈길이 어느 한 곳에서 딱 멈춰섰다. 발길도 역시 멈춰졌다. 담벼락에 걸려 있는 그림 한 점이 나를 멈춰 세운 것이다. 평소 시니컬한 나답지 않은 행동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무명 화가의 그림들이 길게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는, 그러니까 길거리 화랑이다.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일반인에게 선보이는 곳이다.
이곳은 알려지지 않은 재능들이 세상과 마주치는 접합점이다.
동시에, 그들의 호구지책 장소이기도 하다.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나 빠리의 몽마르뜨르 언덕과 같은 곳이다.
복잡한 하루에서 무의미한 것들은 뇌리에 들어오지 않고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나는 특히 그런 현상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관심 없는 것들은 그냥 각막 밖으로 흘려 보낸다.
그러한 내 망막 안쪽으로 갑자기 꽂혀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저 그림 한 점이다.
보는 순간, 나는 한 눈에 그것에 빨려 들어갔다. 내가 이런 감정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너무도 강한 느낌이 나를 관통했다.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그림이다. 기기괴괴하게 생긴 산과 바위가 있다. 거기에 빽빽한 소나무가 가득 솟아 올라와 있다.
사진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디테일이다. 사람이 직접 그렸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섬세를 초월한 선들이 그림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진인가? 자세히 보았다. 아니다.
저런 산과 바위는 실제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저것은 그림이다. 현실을 훨훨 떠난 그림이다. 그러니 저건 사진이 아니다.
아주 붓터치가 심한 그림이다. 저걸 그리려면 수 십만 번의 붓터치가 가해졌을 것이다. 그러니 더 신비한 느낌을 준다.
가까이 다가가 본다. 그림이 내 앞으로 다가올수록 그러한 느낌은 더 강해졌다.
마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눈 앞에서 꿈틀거렸다.
그림 속 세상은 인간 세상이 아닌 선계(仙界)다. 그렇게 보이는 몽환의 세계가 점점 더 눈 앞에서 구체화 되고 있다.
극세화다. 물감을 거의 쓰지 않은 흑백의 극세화다. 극세화라 해서, 그려진 사물이 실제의 모습과 똑같지는 않다. 선과 면이 미묘하게 비틀어져 있다. 이 세상의 느낌이 아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뒷면이 묘하게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 바위의 겉면과 이면이 동시에 보이기도 한다. 시공이 동일한 곳에 있고 원근이 마구 뒤섞여 있다.
그림을 보고 있으니, 저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나를 마구 흔드는 듯하다. 거대하면서도 조밀하다. 친숙하면서도 생소한 느낌이었다.
친구가 내 손을 잡아 끌어도 모르도록 나는 한 동안 그 그림 앞에 서 있었다. 그림에 홀린 듯했다.
"무얼 그리 유심히 보나? 그냥 길거리 그림일 뿐인데. 어서 가세"
나는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자네, 이 그림에서 이상한 것 느끼지 못했나?"
"이상하긴. 산사진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구만. 자세히는 그렸네. 그러나, 예술의 향기는 전혀 없어. 자, 어서 가세"
현실적이고 박식한 친구의 의견이었지만, 한 번 꿈틀거리며 일어난 내 감동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아니, 준전문가의 그러한 식견에 오히려 반발심이 불끈 일어났다.
- 이 그림을 사야겠다.
맹세컨대, 나는 여태껏 돈을 지불하고 그림을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림을 선물로 받아 보기는 했지만, 그리 달가워 하지도 않았었다.
그러한 내가 그림을 사려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했다.
잠시 뒤에 들어간다고 핑계를 대놓고 친구를 먼저 전시회장으로 들여 보냈다. 그가 하찮아 하는 그림을 사는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이 그림은 쓰레기 더미 속에 묻혀 있는 보물이다. 길을 잃고 사창가를 헤매이는 귀공녀다. 거리에 걸려 있을 그림이 아니다.
- 내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누가 이 그림을 사가면 어떻게 하나?
이러한 초조감도 한 몫을 했다.
마음 먹은 김에 사기로 했다.
저 그림을 서재에 걸어놓고, 저 안에 들어가서 마음껏 거닐고 싶었다. 그만큼 그 그림은 내게 흡입력 있게 다가왔다.
화가를 찾았다. 그러나, 자기가 그린 그림 앞에 앉아 있어야 할 화가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 화가 대신, 만년의 피카소 얼굴이 뒷 담벼락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덕지한 늙은이 포스터가 끝없는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눈을 들어 사방을 살폈다. 돌담벽을 따라 무명 화가들의 그림이 길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다른 화가들은 모두 자기 그림 앞에 조그만 의자를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화가만 자리에 없었다. 이상하게 초조하다. 친구의 기다림도 그렇고 화가의 부재도 그렇다.
혹시 화장실에라도 갔나 하여 한참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는다.
옆의 코너에 있는 다른 화가에게 물어봤다. 모른단다.
무심히 대답하는 옆자리 화가의 그림은 피카소를 닮아 있었다. 이 기회에 한 몫 잡을 요량인 듯 싶었다.
생각 같아서는 화가가 올 때까지 기다렸으면 싶었지만, 전시장을 안 들어가고 나를 꼬박이는 친구를 너무 오래 세워둘 수는 없었다.
명함이나 전화 번호가 있나하여 화가의 자리 부근을 눈뒤짐했지만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뒤돌아 보며 전시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시회 관람을 다 마칠 때 쯤이면 돌아와 있겠지.
- 작가의말
<극한 심리 판타지 총, 돈, 뇌>를 연재하는 작가 글마법사입니다.
장편 판타지 <달리기가 우주를 구한다>를 1월 20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현대와 타차원, 두 세계를 오가는 질주 능력자의 하드보일드 판타지입니다.
이번에 연재를 시작하는 <달리기가 우주를 구한다>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주제의 장편 판타지입니다.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재미와 사이다를 약속드립니다.
읽어보시고 재미 있으면,
<구독>과 <댓글> 많은 성원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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