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여우 5

<불여우 5>
술좌석에서 동료들이 물었다.
"조대리. 요즘 너무도 유쾌하게 변했는데, 그 비결이 뭐야? 애인이라도 생겼나? 매일 즐거운 것 같아"
예전 같으면 숨겼을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솔직해 지기로 했다.
다 같이 좋으면 좋은 것 아닌가? 조대리는 백내과에 대한 것을 그들에게 얘기했다.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앞으로 백내과의 대기 시간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 * *
홍현숙은 놀이터에서 떠들며 노는 아이들을 창 밖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은 요즘 시간 날 때마다 하는 그녀의 일과가 되었다. 그녀의 눈은 부러움에 가득 차 있었다.
- 저런 아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딸도 좋고 아들도 좋아. 왜 우리에겐 아이가 안 생기지?
남편도 자상하고 근면하다. 능력도 있고 자기만을 사랑한다.
여자로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딱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아이가 없다는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려고 창문을 열었다. 음악 소리가 따로 없었다.
많은 종합 병원을 전전했다. 불임 클리닉도 받아보고, 시험관 아기도 시도했었다. 그러나, 어떠한 것도 그들 부부에겐 소용 없었다.
결혼 10 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러다간 영영 아기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 저 쪽 건물에서 두 여자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여자가 보기에도 둘 다 대단한 미인들이었다.
쭉 빠진 몸매에 얼굴 또한 장난이 아니다. 남자들이 보면 반은 미칠 얼굴들이다.
오늘도 그녀들의 손에는 과자 봉지가 잔뜩 들려 있었다.
놀던 아이들이 '와아' 소리를 지르며 그 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요즘 점심 시간만 되면 매일 보는 광경이다.
아이들 곁에 있던 아낙네 들이 그녀들을 보자, 얼른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그냥 고개만 까딱 하는 겉치레 인사가 아니라 진짜로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정식 인사다.
한참을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던 두 여자가 다시 들어갔다. 그 뒤꼭지에 대고 아낙네들이 다시 인사했다.
홍현숙은 그녀들이 향하는 곳을 눈으로 따라갔다.
의원이었다. 한 건물에 의원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백내과 의원', '오비뇨기과. 산부인과 의원' 홍현숙은 눈을 반짝였다.
여태껏 흘려 보기만 하느라 전혀 못보던 상호였다. '산부인과'.
이런 외진 동네에 산부인과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녀는 왠지 저기에 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쇠뿔은 단김에 빼자. 그녀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
* * *
온 동네에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결혼 10 년간 아이가 없던 홍여사다. 누구나 다 안다.
그녀가 오산부인과를 다녀간지 한 달 만에 임신이 된 것이었다.
소문은 산 밑 동네까지 내려가 천지 사방으로 마구 달려 갔다.
불임으로 고민하던 여성들이 서울 곳곳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소문은 더 빨리 퍼져 나갔다.
거기에 더한 것이 있었다. 이것은 메가톤급 폭탄의 위력으로 폭발했다.
오비뇨기과를 다녀오면, 비실대던 남성이 갑자기 슈퍼맨으로 변신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변강쇠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오박사로 인해서였다.
그들은 XX그라, CR리스, 이런 첨단 약들로도 효과를 보지 못하던 저주받은 자들이었다.
전국에 산재한, 아니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빼곡히 많은 게 고개 숙인 남자들이다.
그런 고민남들이 이런 천상의 복음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골고다 언덕으로 몰려 들기 시작했다.
이 외진 산간 마을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물론, 철저하게 예약제이기 때문에 데모떼 처럼 몰려들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사람들로 항시 북적였다.
백의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격과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여기가 내과인지 정신과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사회 부적응자들이 모여 들었다.
두 의원의 원장은 여자들이다. 그녀들의 슈퍼급 미모에 덧붙여 실력에 대한 소문 또한 점점 더 높이 날개를 달았다.
전혀 약물을 안 쓴다. 인간의 내외부를 자극하는 것만으로 최고의 효과를 거둔다. 약물 중독의 위험성같은 것은 전혀 없다.
게다가, 이들의 치료 효과는 확실하고 안전한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러한 여러 요소들로 두 의원의 명성은 들불 번지듯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다만,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예약을 하려면 몆 달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약이 됐다 하더라도 시간별 예약이 아니라 날짜별 예약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런 불편은 감수하고 넘어간다. 특히, 남자들 같은 경우는 하루 종일을 기다려도 불평 한 마디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간호사들의 미모 역시 여신급이기 때문이다. 대기실에서 일주일을 기다려도 좋다.
숙박, 취사가 가능하다면 병원 복도에서도 텐트 치고 버너에 불을 붙일 기세였다.
두 번째 단점은 시술비가 엄청 높다는 것이다. 고도의 인체 공학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사람마다 시술비는 달랐다. 부자들에게는 눈깔 튀어나오게 높게 받고, 일반인에게는 감당할만 하게 받는 것 같았다.
인간의 사정을 정확히 꿰뚫는다. 현대판 박씨 부인이다. 하여튼 그래도 진료비는 그 수준에서 상당히 높다.
그녀들은 신비 투성이었다. 첫 번째로 신기한 것은, 두 사람의 이름 같다는 것이다. 둘 다 '미호'다. 성만 다르다.
'오미호', '백미호'. 동네 아낙들의 얘기로는, 두 여자는 이종 사촌지간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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