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매다는 나무 6
<목 매다는 나무 6>
보이지 않는 벽에라도 막힌 듯 파리떼는 일정한 선을 넘지 못하고 윙윙 거리며 결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놈들 무리는 사형목의 일정 범위 내를 벗어나지 않았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로 저 안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범위를 넘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까마귀다. 시체를 파먹던 까마귀들이 파리가 만든 결계를 넘어 바론에게 쇄도했다.
놈들의 뾰족한 부리는 시체의 썩은 피와 살점으로 덕지하고 찐득했다.
바론은 또 물러났다.
아무 이유없이 까마귀와 싸울 수는 없었다.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파리 떼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까마귀도 일정 범위를 넘지 않고 멈춰섰다. 놈들은 그 안에서만 활공하고 있었다. 무엇을 지키려는 행위다.
움직이는 것이 또 있었다.
그걸 발견한 바론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사형목에 매달려 있던 시체들이 자기 손으로 목을 맨 밧줄을 끄르고 있었다.
까마귀에게 뜯기던 시체도 땅바닥에서 움찔거린다.
- 어떻게 된 일이지?
이런 상황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조리있는 대답이 가능할 리가 없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거나 아니면, 여기서 이 상황을 제거할 수 밖에 없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냄새나는 사내는 절대 용서 못 해"
말리온이 마지막에 들었다는 그 소리였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파리떼로 이루어진 결계에서 무엇이 걸어나왔다. 땅에 누워 있던 시체 중 하나였다.
걸어오는 시체는 기다란 손톱이 튀어나와 있었다. 비정형의 이빨이 입술 사이에서 지금도 자라나고 있었다.
놈은 결계를 빠져나와 바론에게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발걸음이 의외로 사뿐거린다.
구울? 아닌 것 같다. 구울의 속도는 엄청 빠르다. 그러나, 지금 일어난 이 괴물은 어기적거리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좀비? 그것도 아니다. 좀비는 그냥 시체의 모습이지 저런 변형체가 되지는 않는다.
까마귀는 높은 곳에서 시뻘건 눈알을 희번덕거리고, 수 만 마리의 파리 떼는 눈 앞에서 돌격 태세를 정비하고 있었다.
좀비인지 구울인지 모를 시체들은 아무런 방비도 없이 바론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야 할지 이 존재들을 박멸시켜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이들과 전투를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의뢰를 받은 것도 아닌데 파리, 까마귀, 시체와 싸워서 무엇하겠는가?
그렇다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다. 바바리안은 전ᆞ투에서 한 번도 물러선 적이 없는 종족이다.
적에게 뒤꽁지를 보이는 것은 전사로서 정신적 죽음을 뜻한다.
바론은 피식 읏었다. 그건 3 년 전 얘기다. 이 세상에 나오고나서, 세상은 흑과 백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론은 배웠다.
전장에서 등을 보여서는 안 되지만, 불필요한 싸움은 처음부터 피하는 것이 옳다. 그는 정신적 만족을 위한 돌격형 도끼가 아닌 현실에 적응한 실전형 도끼가 되었다.
모나게 튀어나오고 고집스럽게 부족한 점은 둥글게 채워 넣어야 한다.
세상은 바론을 한 단계 성숙시켰다. 그의 도끼가 직선에 더해 곡선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걸어오던 시체가 커지기 시작했다.
우선 배부터 커졌다. 급격히 가스가 주입되는 듯, 시체의 배가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다. 양 볼도 풍선을 머금은 듯 변화하기 시작했다.
돌연 바론의 육감에 경종이 울렸다. 바바리안의 예지력이 빨갛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파리 떼와 까마귀 떼들이 결계를 풀고 저만큼 물러서 있었다.
바론의 예지가 또 다시 급하게 점멸했다. 뒤로 돌아설 시간도 없다. 바론은 연속적으로 백텀블링을 했다.
4 번째 했을 때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바론은 겨우 바위 근처까지 올 수 있었다. 황급히 바위 뒤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우박이 바위를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위는 곧 시퍼런 액체와 썩은 냄새나는 살점으로 뒤덮였다. 바위 곳곳에 뼈조각이 박혔다.
걸어오던 시체가 폭발했다.
만약 바론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다면 기사의 창끝처럼 날아오는 시체의 뼈에 그대로 전신을 꿰뚫렸을 것이다.
시체는 전투용이 아니라 폭파용이었다.
또 다시 아까의 음성이 날아왔다.
"아깝네. 덩치가 산만한 놈이 움직임은 메뚜기네. 그러나, 도망은 못 가. 몸에서 이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놈들은 전부 죽여버릴 거야"
그렇다. 이 괴녀는 말리온과 바론에게서 풍겨 나온 피냄새에 반응했다. 전사의 냄새다.
그 냄새를 맡고 괴녀는 순식간에 살인 의지를 일으켰다. 이제는 바론도 물러설 수 없게 되었다.
괴녀가 위협 수준을 넘어 실제로 공격한 것이다. 시체 폭파로 선전포고를 해왔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도 있다.
당초에 그냥 지나치려던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전투다. 그의 당김 머리가 꼿꼿이 섰다.
"씨이이이악"
이상한 기합성이었고 엄청나게 빠른 의사 결정이었다.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바위를 벗어났다.
바위 뒤에서 나오자마자, 바론은 번개 같은 속도로 사형목 쪽으로 몸을 날렸다.
검은 도끼를 들고 첩첩하고 징그러운 적진으로 쇄도해 갔다. 너무도 의외지만 그다운 행동이었다.
파리의 장벽이 우수수 무너졌다. 어찌나 그의 속도가 빠른지 파리가 그의 몸에 앉을 틈도 없었다.
미처 반응을 못한 까마귀도 공중에서 혈안만 끔벅이고 있었다. 침입자에게 부리를 내리꽂을 시간 자체가 없었다.
파리의 벽을 뚫고 시체를 짓밟으며 바론은 거대한 사형목의 왼편으로 날아갔다.
거기에는 거무스름한 음영이 일렁이고 있었다.
- 작가의말
토, 일은 쉬고 월요일 새벽 00시 30분에
<목 매다는 나무 7>을 연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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