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매다는 나무 7
<목 매다는 나무 7>
목소리가 나오는 곳은 바로 저기다. 바바리안의 귀를 속일 수는 없다.
파리와 까마귀와 시체는 동굴 속 마녀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방어용 배리어다.
마녀의 실체는 이 사형목의 뿌리 속에 있다. 검은 그림자로 보이는 환상 마법으로 가려진 곳이다.
바론이 달려들자 음영은 얇은 젤리막처럼 출렁거렸다. 미약하게 '뻥' 소리가 난 듯도 했다. 이곳은 또 하나의 결계다.
외부의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까마귀든, 시체든 이 결계를 뚫지 못한다. 그러나, 바론은 힘으로 뚫었다.
거대 나무의 뿌리로 만들어진 동굴이다. 수천 년간 뻗어내린 나무 뿌리가 얼키고 설켜 검은 동굴이 형성되었다.
그가 들어가자 뿌리가 스멀스멀 움직였다. 굵은 뿌리, 잔 뿌리가 짐승처럼 그를 바라봤다. 동굴 전체가 움직이는 듯했다.
내부에 들어온 그가 사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룡 심장 바론도 주위에 펼쳐진 풍경에 흠칫했다.
온통 벌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벌레다.
뿌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싸고 있는 벌레가 움직이는 것이다. 이곳은 바론이 전투하기에 아주 불리한 공간이다.
동굴의 길이는 아주 짧았다. 30 여 걸음 정도였다.
동굴 끝의 편편한 바위에 여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체다. 아니다. 나체로 볼 수는 없다.
움직이는 옷을 입고 있으니 나체는 아니다.
얼굴만 빼고는 온통 벌레다. 여자는 벌레의 옷을 입고 있었다.
바론이 앞에 서자 여자의 얼굴 한쪽 편이 움직였다. 웃는 것 같았다.
아니다. 벌레가 움직여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희생자에 대한 기쁨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여자가 가슴에 붙어 있는 것을 손으로 긁어 입에 넣었다. 곧이어 '아작아작' 무엇이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바삭거리는 과자를 씹는 듯한 소리다. 이어 바론의 귀에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풍뎅이 맛이 어떤지 알아?"
이상한 여자였다. 하긴, 이상하니 미쳤겠지. 바론의 대답이 없자 괴녀는 곧 자신의 물음에 자신이 대답했다.
"과일 맛이 나. 소나무 향이 짙은 과일 맛이야. 풍뎅이가 클수록 향이 짙어. 이런 과일 맛은 아마 세상에 없을 걸. 먹어본 사람도 없고 말야. 안타까운 일이야"
한 마디로 벌레를 먹는 년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벌레가 뭔지 알아?"
- 미친년. 알 리가 없잖아.
바론의 생각에 대답하듯 괴녀는 또 자문자답했다.
"지네야. 그런데 이놈은 먹기가 많이 번거로워. 맛 좋은 것은 그만큼 손이 많이 가지. 세상의 이치가 다 그렇듯이 말야"
얼굴의 벌레들이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그 중에는 지네도 있었다.
"그러나, 내겐 다행스런 일이야. 세상 놈들이 이 맛을 알면 지네의 씨가 마르겠지. 나는 맛있는 것을 잃어 항상 우울해 할 거고 말야"
- 그래. 그렇게 맛있다면 네년 혼자 다 처먹어라.
혼잣말은 상황 변화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쯤에서 한 번은 대화를 구성해줘야 한다.
이년은 괴녀를 넘어선 마녀다. 이년에 대한 것을 알아보려면 대꾸를 해줘야 한다. 바론은 마녀에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번거로운데? 지네 맛은 또 어떻고?"
그러자 마녀는 반가운 듯 얼른 대꾸했다.
"발을 하나하나 떼어내야 해. 발은 모든 지네가 같지 않아. 크기에 따라 갯수가 다 틀려. 참, 번거롭지. 더듬이와 주둥이도 역시 정성껏 손질해 줘야 하고 말야. 그러지 않으면 지네가 화를 내"
- 지네가 화를 낸다고? 이년이 제대로 미쳤구나.
"지네 맛 얘기는 언제 할 거야?"
"오오, 그렇지. 내가 맛에 대해서는 아직 얘기하지 않았지. 그러나, 할 필요 없어. 얘기해 봐야 너희들이 알지도 못할 맛이니까.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을 떠들어대 봐야 인간 주제에 어찌 알겠어?"
얼굴에 붙은 벌레가 또 마녀의 다른 얼굴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되려나? 굽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오래 씹어봐. 그 비슷한 맛이 돼. 거기에다 굴뚝 찌르레기의 쓸개와 간을 비벼 넣으면 그 맛에 한 발 더 가까워지지. 오호호호 생각만 해도 즐거워져"
- 뭐라고? 새도 잡아 처먹는다고?
마녀는 얘기를 하며 자기 얼굴에 붙어 있던 팔뚝 길이의 지네를 잡아 정성껏 손질했다.
얘기를 마쳤을 때는 손질이 다 끝났는지 돌돌 말아 얼른 입속에 넣었다. 입에서 시퍼런 물이 쭉 튀어 나왔다.
이어 '오드득 오드득' 과자 씹는 소리가 났다. 마녀는 또 한 손으로 지나가는 땅강아지를 붙잡았다.
땅강아지는 머리 부분에 붙은 삽발을 버리적거리며 마구 반항했다.
마녀는 한 마리를 더 잡아 같은 손에 쥐었다. 식탐이 많은 여자 같았다.
"네 이름은?"
바론이 물었다. 이름을 교환하는 것은 인간관계를 갖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난 평민이라 이름이 없어. 너는?"
"난 바론이야. 그런데 너는 왜 그 냄새를 싫어하지? 그 냄새 때문에 넌 내 친구를 죽였어. 그리고, 나도 죽이려 했고 말야"
언제까지나 미친 년 말상대를 해주며 노닥거릴 수는 없었다. 바론은 막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녀의 모든 행동 중심에는 피 냄새가 있다. 무기를 들고 싸우는 자에게는 항상 몸에 붙어 있는 숙명이다.
마녀가 말리온 앞에 나타났을 때도 그가 가진 피냄새를 맡았을 때였다. 놈도 살인을 한 적이 있는 깡패다.
바론을 공격했을 때도 역시 마차가지일 것이다. 용병은 피냄새를 매달고 사는 존재니까.
바론이 냄새를 거론하자 괴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들고 있던 땅강아지 두 마리를 얼른 입에 넣고 시퍼런 눈길을 바론에게 쏘아 보냈다.
"그건 우리 아버지를 죽인 냄새야. 그런 냄새를 가진 놈들은 다 우리 아버지를 죽인 놈이야"
역시 이상한 여자였다. 아니, 제대로 미친 여자였다. 이상한 것을 이상한 곳에 마구 연결시킨다.
태피스트리에 푸른색, 붉은색, 검은색 실을 제멋대로 이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그것이 괴녀의 정신 상태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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