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매다는 나무 8

<목 매다는 나무 8>
바론이 가만히 있자 여자가 알아서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벌레와만 정을 나눠왔을 테니 인간과의 말이 고팠나 보다.
"너무 배가 고팠어. 흉년이기도 했고, 힘 센 놈들이 다 뺏어갔기 때문이기도 했지. 가족들은 다 굶어죽고 아버지와 나만 남았어"
마녀의 목소리에 이상한 슬픔이 깔렸다.
"가족을 잃은 슬픔보다도 배가 너무 고팠어. 아버지가 갑자기 벌레를 먹기 시작하더군. 우리 주위에 남아있던 건 쥐와 벌레들 뿐이었어"
마녀의 목소리가 쇳소리를 품으며 이어졌다.
"우리가 죽으면 파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놈들이었겠지. 쥐는 너무 빨라서 잡을 수가 없었어. 그러나, 우리 주위를 설설 기어다니는 벌레는 힘 없는 우리도 잡을 수가 있더군"
처참한 일이었다. 바론은 묵묵히 그 말을 들었다.
"아버지가 내게도 먹여주더군. 맨처음 먹은 게 뭔지 알아? 나무에서 떨어져 뒹구는 가을 매미야. 날지도 못하고 등을 땅에 대고 매암 돌고 있었지. 우리와 똑같이 기운 없는 놈이었어"
"매미의 맛을 아는 자는 없을 거야. 거미와 제비 빼고는 말야. 인간들은 더욱 그렇겠지. 땅콩 맛이 났어. 어떤 매미는 너무 고소해서 씹기가 아까울 정도였지"
마녀의 목소리는 내용이 변함에 따라 기괴하게 들렸다.
"매미 수 십 마리를 먹고 기운을 차렸어. 물론, 날개는 떼어내고였지. 그때 부터야. 벌레가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았어"
"흐흥, 사람들은 참 어리석어. 이런 맛있는 음식을 모르고 땀 흘려 농사만 지으니 말야. 빠르게 도망가는 짐승을 힘들여 쫓는 자들도 있어"
바론은 제 말에 취해 떠드는 괴녀를 바라봤다. 이 여자가 미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인 것 같았다.
"온갖 벌레를 다 먹었지. 모두 다 맛있었어. 가을이 깊어지자 벌레가 다 사라졌어. 그러나, 걱정할 건 없어. 땅만 파면 그것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마녀는 입맛을 쩍쩍 다셨다.
"진짜 먹음직한 벌레들은 무덤 근처가 가장 많았어. 거기에 벌레들이 먹을 양식이 많았나 보지. 신나게 파헤쳤지. 이 손가락으로 말야"
마녀는 열 개의 손가락을 앙크랗게 세웠다.
"노래기, 지네, 굼벵이, 땅강아지. 오오, 그 사랑스런 것들이 육즙을 가득 품고 우릴 기다리고 있더란 말야. 너무도 행복했지. 이제부터 먹을 걱정은 사라진 거야. 우린 부자가 된 거였어"
말을 듣던 바론의 눈빛이 변했다. 자신의 사고에 의심이 생겼다.
-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자기가 부자라고? 돈이나 재산이 아니고, 땅강아지와 구더기가 부의 기준이라고?
- 으음,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풍요의 기준이 조금만 달라진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말야.
생각 중에도 마녀의 말이 계속되었다.
"언제인지 몰라. 아버지가 병사들의 창에 찔렸어. 숲에서 찐드기를 잡아먹다가 말야. 묶인 채 질질 끌려갔어. 피냄새가 너무 났지. 난 아버지가 숲속으로 떠밀어 넣는 바람에 살 수 있었지"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는 벌레들이 분노의 빛을 띄우며 스멀거렸다.
"아버지를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었는지 알아? '벌레 처먹는 괴물', '숲속의 마귀', '무덤 파는 구울', '시체 파먹는 귀신'"
마녀의 목소리는 점점 분노를 띄어갔다.
"난 수풀 속에 숨어서 아버지를 따라갔어.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 아버지가 말을 못하고 이상하게 울부짖기만 한다는 것을... "
마녀의 말이 점점 더 빨라졌다.
"아버지와 난 그 사이 말을 한 마디도 안 했거든. 벌레 잡아 먹다가 별을 보고 잠들기만 하면 됐었으니까. 참 행복했었어. 그런데 그 행복이 깨진 거야"
"마을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아버지를 따라갔지. 예전에 마을에 들어왔던 도둑놈에게 했듯이 말야. 돌에 맞은 아버지의 전신에서 피냄새가 났어. 마을 놈들이 그렇게 만든 거지"
바론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공격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남에게 해를 끼쳐서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냥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남을 공격할 수 있다. 죄책감 없이도 서로를 죽일 수 있다.
괴녀의 말은 계속되었다.
"아버지는 지하에 갇혔어. 사람들이 지하감옥이라고 떠들더군. 나는 땅을 파고 아버지 옆으로 갔지. 언제부턴지 땅을 잘 팔 수 있게 되었어. 땅강아지를 많이 먹은 다음부터 일 거야"
바론은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다.
"파고 또 팠지. 어느 순간 앞이 바위로 막혀서 아버지 쪽으로 갈 수는 없었어. 그러나 저쪽에서 나는소리는 잘 들렸지"
비참한 일이다. 바론은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의 비명은 끝없이 계속 됐어. 며칠 동안인지도 몰라. 나도 땅 속에만 있었으니까. 어떻게냐고? 땅속은 내 식량 창고야. 맛있는 게 너무도 많았지. 뿌리에 맺히는 물도 많았고"
"놈들이 끊임없이 '실토해라, 실토해라' 하는데 뭘 실토하라는지도 모르겠어. 아버지는 울부짖기만 했어. 말을 못하니까 당연한 거지"
그 소리를 듣자 바론은 들었던 도끼를 내려놨다.
"손톱을 뽑고 가죽을 벗기는 소리가 났어. 나중엔 이빨마저 하나씩 뽑는 것 같더군. 아버지가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우리는 돌아다니는 벌레 몇 마리를 먹었던 것 뿐이었는데 말야. 벌레는 누구 것도 아니잖아?"
맞는 말인데도 바론은 대답을 못했다.
"아버지 눈알을 잡아 뽑는 소리에 난 기절을 했어. 정신을 차렸는데 그때부터 세상이 까무스름하게 보이더군. 며칠이 지났는지도 몰랐어"
"그때부터 온몸에 기운이 가득 들어 찬 것을 알 수 있었어. 모든 걸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벽을 밀었어. 그 바위벽 말야. 그냥 밀었는데 그대로 밀리더군. 기운 센 풍뎅이를 많이 먹어서 그랬나 봐"
바론이 중얼거렸다. 마녀의 비밀이 조금은 풀렸다.
- 그때 이 여자가 괴이한 능력을 갖게 되었구나. 정신적 쇼크와 어떤 미지의 힘에 의해 마역(魔域)에 들어간 거야. 곤충의 힘을 이어받은 것도 그때였겠구나.
"그때 알았어. 이 세상에 아버지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말야. 벽을 밀고 들어가니 검은 로브 입은 두 놈이 바닥을 닦아내고 있더라구"
"난 순식간에 알 수 있었어. 그건 아버지의 피와 살점이었어. 저쪽에 굴러다니는 것은 아버지의 눈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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