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기원 l (6)

신의 기원 l (6)
"그렇다면 얘기가 쉽겠군. 지금 우리가 그 상황에 처한 것 같아. 지금의 여기는 우리가 살던 세상이 아냐. 다른 세계로 떨어졌다고 봐야 해"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콘라드를 멍하니 바라보던 로체스터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조그만 세계 지도를 펼쳤다.
"지금 지구상에는, 원시인이 두 군데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중부 오지에 사는 부시맨이 그 하나죠”
그는 손가락으로 지도의 일정 지역을 가리켰다.
“또 하나는, 아마존 깊숙히 숨어 사는 여러 부족인데,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의 말을 콘라드가 받았다.
"그렇지. 이 지형을 봐. 절대 아마존은 아니지. 그리고, 부시맨들은 사막에 살아. 그들이 사는 곳은 여기와는 지형과 기후가 완전히 다르지"
콘라드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또한 그들은 절대 이런 모습이 아냐.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이놈들은 우리 시대의 그 사람들이 아냐. 부시맨이나 아마존 원주민은 문화적으로는 원시인이지만 골격이나 겉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아"
그는 헬기 밖을 가리켰다.
"그러나, 저들을 보게. 우리하고 어떻게 다른 가를..."
그 말에 로체스터는 숲속에서 웅성거리는 무리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저 뒷편에 보이는 눈 덮힌 산들을 ᆞ둘러 봤다.
그는 몸을 으스스 떨었다.
"그렇군요. 우리는 X - 파일처럼 어떤 시공간을 넘어 왔다는 결론이 되네요. 저들은 진짜 원시인이고요"
그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실망하기는 아직 일러. 어떡해든 방법을 찾아 봐야지. 우선은 우리와 같이 타임 터널 (Time Tunnel) 에 떨어진 윌리암 소령과 제이슨 대위를 찾아야 해. LCH 는 우리보다 먼저 이 공간으로 빨려 들어 왔어"
이렇게 두런 두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저녁 노을이 지더니 곧이어 짙은 땅거미가 세상을 뒤덮었다.
저쪽 원시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니 모닥불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불에 무엇인가를 굽고 있었다.
연기를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저들은 최소한 불을 쓸 수 있는 지혜는 갖고 있는 존재였다.
아까는 돌창과 돌도끼를 쓰는 것을 봤다. 짐승은 벗어나 사람쪽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의사소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자신들과 최소한의 교집합은 있었다.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에 나오는 저그형 벌레는 아니다. 그런 것들과는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불을 피우고 있는 저들과는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들은 인간이다.
* * *
달이 떠오르고 있다. 다행히 달이 하나였다.
조금 가까워 보이기는 했지만, 항상 우리가 보던 그 달이었다. SF 소설에서 단골로 나오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타임 슬립(Time Slip) 한 그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개 달이 몇 개인 다른 별에서 정신을 차린다.
그런데, 한 개의 달을 보니, 여기는 최소한 다른 행성이 아닌 지구다. 시간만 뒤엉켰을 뿐이다.
- 휴우, 이것만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당장의 궁금증은 두 가지다.
첫번째, 지금 내가 어느 시간대에 와 있는가?
두번째, 내가 있는 곳은 지구의 어느 지역인가?
콘라드와 로체스터는 이 부분에 대해 계속 얘기를 나눴으나, 첨단 장비가 다 무효화 된 지금 결론이 날 리가 없었다.
이곳은 그들이 와본 적이 없는 지역이기도 했다.
비상 식량으로 식사를 마친 콘라드와 로체스터가 쌍안경으로 원시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관찰하던 로체스터가 쌍안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콘라드에게 말했다.
"단장님. 아까 얘기 나눴던, 시대에 대한 의문은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우선, 저들이 불을 사용하고 있군요"
저편에 있는 원시인들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먹고 있었다.
"유인원은 아니라는 겁니다. 불은 인간 밖에 사용하지 못하거든요. 게다가 저들은, 조악한 재질이긴 하지만 몸의 일부를 가리고 있습니다"
그는 쌍안경의 배율을 조정하며 말을 이었다.
"허리 부분이 여며져 있습니다. 가죽에 구멍을 뚫고 다른 가죽 끈으로 양쪽을 이었습니다. 저들이 바늘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죠”
로체스터가 쌍안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학자들은 인류 최초의 바늘 출현을 4 만년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시대를 최소한 그 이후로 봐야겠지요"
그냥 지나칠 법한 조그만 고고학 지식이 큰 도움이 된다.
"으음, 정확한 추론이야. 난 저들의 일부가 발싸개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추측했네. 현대의 신발에 해당하는 발싸개는, 바늘이라는 도구가 없으면 만들지 못해. 윗부분을 단단히 여몄구만"
"예, 단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본 게 또 있습니다. 저들은 아까 식사를 하기 전에 하늘을 보고 두 손을 받쳐 들었습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을 보고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콘라드가 보니 어떤 자는 지금도 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이것은 음식이 부족한 원시인들이 식사할 때마다, 무엇엔가에 하는 <감사의식>입니다. 저도 어느 책에서 본 것입니다"
로체스터는 쌍안경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그런데 저들이 동시에 한 곳을 보지 않고, 각자가 다른 곳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의식을 하고 있더군요. 이것은 자신들이 의지하는 그 무엇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 작가의말
독자 여러분. 새해가 밝았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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